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 D.P. > 한준희 감독 인터뷰 이미지

ⓒ Netflix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 D.P. >(아래 <디피>)는 그동안의 군대 콘텐츠와는 분명히 결이 달랐다. 혹독한 군사훈련을 이겨내고 성장하는 과정에 집중하는 MBC <진짜 사나이>나 채널A <강철부대> 등과 달리, <디피>는 군대에서 폭력이 반복되는 구조를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군필자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의 공감을 샀다.

혹자는 "지금 군대는 달라졌다"고 말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올해만 해도 공군 제20전투비행단, 해군2함대에서 성폭력 피해자가 사망했고, 지난 9일에는 해병대1사단에서 후임병에게 가혹행위가 발생한 사실이 드러났다. 대본을 쓴 김보통 작가가 SNS에 쓴 "이제는 (군대가) 좋아졌다는 망각의 유령과 싸우기 위해 만들었다"는 말이 더욱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이유다.

1일 오후 온라인 화상 인터뷰로 <디피>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한준희 감독을 만났다.

<디피>는 군무 이탈 체포조 안준호(정해인 분)와 한호열(구교환 분)이 다양한 사연의 탈영병들을 쫓으며 미처 알지 못했던 현실을 마주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2015년 레진코믹스에서 연재된 이래 지금까지 누적 조회수 1000만뷰 이상을 기록한 김보통 작가의 웹툰 < D.P 개의 날 >을 각색한 작품이다.

원작과 드라마의 가장 큰 차이는 주인공 안준호가 상병이 아니라 이등병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웹툰에서 상병 안준호는 후임 일병을 데리고 능숙하게 탈영병들을 추적하지만 드라마 속 안준호는 이제 막 입대한 신참이다. 대신 DP에 익숙하지 못한 안준호를 이끄는 한호열 상병이 오리지널 캐릭터로 새롭게 추가됐다.

한 감독은 "원작 웹툰에서 안준호는 완성형에 가까운 인물이다. 안준호가 입대해서 훈련을 받고 자대 배치를 거쳐서 'DP'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드라마로) 시청자들이 따라갈 수 있게끔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이등병으로 바꿔서 설정했고 대신 (원작) 안준호의 완벽한 지점들을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로 한호열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안준호의 어린 시절 사진부터 군에 입대하기까지의 과정을 짧게 보여주는 오프닝 타이틀 영상에는 한준희 감독의 이러한 의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추상적인 이미지와 함께 출연 배우들을 소개하는 여느 작품들과는 다른 방식이었다. 한준희 감독은 "타이틀도 작품의 일부분이다. 사람들이 건너 뛰지 않는 오프닝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고 말했다.

"(안준호의 입대 과정이) 적정한 타이밍에 나와야할 것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한국 남자가 태어나고 자라서 입대를 하고 그런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청자가) 조금 더 몰입하고 따라올 수 있게끔 만들려고 했다. 한국에선 남자들 대다수가 군대에 가게 된다. 우리에겐 익숙한 일이지만 누군가 개개인 인생에겐 당연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어떤 개인이 조직에 들어가서 어떻게 변화하고 성장하는지 그런 모습들을 차례로 보신다면 시청자들이 더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그렇게 봐주시면 감사할 것 같다."

또한 웹툰을 영상으로 옮기면서 한준희 감독은 좀 더 보편적인 방향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단다. 그는 "원작의 시니컬 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부분들, 심오한 감정의 부분들을 잘 유지하려고 했다"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기를 원했다"고 전했다. 원작자이자 실제 '군탈 체포조'로 복무한 김보통 작가도 각색에 참여하면서 고증 역시 철저할 수밖에 없었다고. 또한 드라마 속 대부분의 에피소드들에 연기자들, 스태프들의 실제 경험이 녹아있다고도 털어놨다. 한 감독은 "스태프들도 대개 군필자니까 연령별로, 세대별로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있더라.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고증이 됐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노력들 덕분일까. <디피>를 본 시청자들, 특히 군 필자들은 너무 현실적이라서 'PST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느꼈다는 반응들을 쏟아냈다. 드라마에는 그만큼 군대 내 폭력에 대한 리얼한 묘사가 가득 담겨 있다. 일각에서는 성추행, 폭력 장면을 필요 이상으로 적나라하게 그린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한준희 감독 역시 폭력 신의 수위를 어느 정도까지 해야할지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다고 고백했다.

"마지막까지 고민했다. 어디까지 표현하는 게 맞을까. 이렇게까지 보여주는 장면이 필요할까. 묘사가 너무 지나치면 이야기를 보시면서 불편할 수도 있고, 그렇다고 (가혹행위) 묘사를 모두 뺀다면 작품이 지양하는 바에 다다르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보시는 분들에 따라 지금의 표현도 부족하다고 느끼실 수도, 과하다는 반응도 있을 것으로 안다. 양쪽의 말이 다 맞을 수 있다. 다만 저희는 그 가운데의 어떤 밸런스를 맞추려고 노력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불편하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저희가 더 고민하면서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 D.P. > 한준희 감독 인터뷰 이미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 D.P. > 한준희 감독 인터뷰 이미지 ⓒ Netflix

 
<디피> 후반부에 드러나는 조석봉(조현철 분) 일병의 에피소드는 제작진이 가장 고민한 부분이다. 극 중에서 조 일병은 미술학원 선생님을 꿈꾸던 평범하고 착한 인물이었지만 군대에서 오랜 기간 괴롭힘과 성폭력을 견디다 못해 괴물로 변해간다. 드라마가 공개된 이후 조석봉 역을 맡은 배우 조현철에 대한 관심도 급상승했다. 특히 가해자 황장수(신승호 분)의 집에 찾아가 복수한 후 계단을 내려오면서 참아왔던 욕을 쏟아내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었다는 평가. 한준희 감독은 "조석봉 일병 역을 조현철 배우가 하지 않았으면 캐릭터를 바꾸려고 했다"고 귀띔했다. 

"다른 배우가 소화할 수 있을까, 이 역할을? 물론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제 머릿속의 그림과는 다를 거란 생각이 들더라. 조현철도 고민을 길게 했는데 다행히도 장고 끝에 결정을 해줘서 같이할 수 있었다. 조현철이 현장에 와서 준비할 때는 아무와도 대화하지 않고 준비할 때도 있었다. 현장서 어슬렁어슬렁 걸어다니면서 음악만 듣고 그런 식으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아마 연기자도 이 역할을 연기하면서 많이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좋은 연기를 보여줘서 너무 고맙다."

드라마는 군대 내 폭력 구조와 방관자에 대한 묵직한 메시지를 전한다. 폭주하는 조 일병에게 "군대도 바뀔 수 있다"고 설득하는 말에 "1953년부터 쓰고 있는 수통도 안 바뀐다"고 조소하는 장면은 이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한 마디이기도 했다. 한준희 감독은 "이 작품 만들면서 '나는 누군가를 방관한 적 없나. 지금은 그러지 않고 있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거창하진 않더라도 이런 질문들을 개인이 스스로에게 해보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작지만 중요한 질문을 작품에 담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디피>의 배경인 2014년은 군대 내 폭력 문제가 가장 뜨겁게 달라올랐던 때였다. 육군 제28사단에서 후임병을 구타해 숨지게 한 '윤일병 폭행 사망 사건'과 제22사단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하다가 무장 탈영한 임병장이 총기를 난사해 14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임병장 총기난사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났다. 군대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한준희 감독은 여전히 방관하고 있지 않은지 끊임 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했다.

"2014년은 군대 문화의 과도기였다. 지금은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고 (군대도 과거에 비해) 좋아졌다. 좋아졌어야 한다. 그렇지만 그 시대가 언제이든지 간에 우리가 알지 못했다고 해서 없었던 일은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있나. 문제를 여전히 방관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그런 질문들을 계속 던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날 한준희 감독은 드라마의 메시지나 은유에 대해 정의하기를 꺼려 했다. 그는 "작품의 함의도 물론 중요하지만 (시청자가) 느끼는 그대로 보시면 좋을 것 같다. 만든 사람의 해석이 오히려 감상에 지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든다"고 조심스러워 했다. 그동안 여러 작품을 통해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깊이 있는 질문을 던져온 그의 연출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러면서도 한 감독은 앞으로도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거창하진 않지만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를 내가 하고 있나'라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지. 첫 작품을 만들 때부터 그런 생각을 했다. 이 이야기를 만드는 이유가 뭘까. 이 이야기를 내가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뭘까. 이 이야기 속 인물들이 조금이라도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나. 부족한 사람들을 보여주고 있나. 이들이 그걸 극복하려고 하고 있나. 저는 그런 인물들이 있는 게 좋거든. 물론 영화의 가치는 재미있어야 하는 거니까. 어떤 해석이나 주석을 떠나, 보고 느끼는대로 감상이 가장 중요하지. 그렇게 되려고 아직 부족하지만 노력하고 있다."
D.P. 한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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