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코다> 메인포스터

영화 <코다> 메인포스터 ⓒ 판씨네마(주)


 *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바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선댄스 영화제(The Sundance Film Festival)는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영화제였다. 1970년 중반 영화배우 겸 감독인 로버트 레드포드가 유타 주 솔트레이크 시티의 이름없는 영화제 하나를 후원하면서 시작된 이 영화제는 1985년 미국영화제(The United States Film Festival)를 흡수하면서 자리잡기 시작했다. 영화제의 이름은 로버트 레드포드의 대표작인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 자신이 직접 연기했던 배역의 이름에서 가져온 것이다.
 
2010년 초중반 이후로 <라이크 크레이지> <블루 발렌타인> <위플래시> <서치> 등의 작품이 선댄스 영화제 출품 및 수상작으로 소개되고, 국내에서 사랑을 받기 시작하면서 국내에서도 선댄스 영화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특히, 작년에는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가 이 영화제의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작품으로 알려지며 선댄스 영화제가 선택한 영화의 작품성에 대한 관객들의 믿음은 점점 더 확고해지고 있다.
 
영화 <코다> 역시 같은 선상에 놓인 작품이다. 올해 선댄스 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첫 선을 보인 이 작품은 심사위원과 관객들의 기립 박수를 받으며 큰 관심을 받았다. 그 결과, 심사위원대상과 관객상은 물론 감독상과 앙상블상까지 수상하며 역사상 최초로 선댄스 4관왕에 등극한다. OTT 업계의 다크호스로 급부상한 애플TV+가 2500만 달러, 한화로 약 280억 원을 이 작품의 글로벌 판권 구매를 위해 제안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금액은 선댄스 영화제 37년 역사상 최고가로 기록되었다. 영화제 역사상 최초의 4관왕과 최고가 판권 구매 제안은 이 영화 <코다>에 쏟아진 기대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게 한다.
 
 영화 <코다> 스틸컷

영화 <코다> 스틸컷 ⓒ 판씨네마(주)


02.
영화는 끝없이 펼쳐진 바다 위의 한 고깃배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소녀의 모습을 비추며 시작된다. 그녀의 이름은 루비(에밀리아 존스 분). 가족 내 유일한 청인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로 농인인 부모님과 오빠를 대신해 어릴 때부터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통역하는 일을 모두 맡아왔다. 등교 전 새벽같이 일어나 바다로 나가는 배에 오르는 것도, 가족의 병원 진료에 따라다니는 것도,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애써 잡은 가족의 생선을 헐값에 구매하려는 경매장 관리인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것도 모두 가족의 유일한 대변인인 루비가 해야 할 몫이다.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형성되어 루비에게 주어진 역할과 지위는 그 울타리의 바깥 세상에도 영향을 끼친다. 농인의 가정에서 태어났다는 사실과 배 위에서 엉겨 붙은 바다의 짠내, 그리고 생선의 비린내는 철없는 아이들의 놀림감이 된다. 그녀가 자신의 세계를 오롯이 세우는 데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이다. 가족 구성원들 가운데 홀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루비의 감각(청각)은 양쪽의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분명히 필요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녀의 삶을 버겁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그런 루비에게 노래는 유일한 안식이다. 아무도 듣지 못하는(파도 소리가 가득한 망망대해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가족의 배를 벗어나지 않으며, 안타깝게도 가족의 배 위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루비 자신 뿐이다) 곳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다른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는 수단.
 
03.
영화의 후반부에서 오빠(다니엘 듀런트 분)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는 농인 가정에서 청인 자녀가 느끼는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등장한다. 가족과 세상의 중간에서 연결고리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귀가 들린다는 이유로 그들의 세상에 온전히 들어갈 수 없는 존재의 필연적인 감정에 대한 것이다. 가족은 분명 자신들의 핸디캡을 보완해 주는 딸의 존재에 고마움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이 딸의 존재나 재능, 역할을 인정하는 것과는 분명 다르다. 그런 점에서 합창단을 지도하는 Mr.V(에우헤니오 데르베스 분)와의 만남은 코다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다 준다.
 
자신의 음악적 재능에 대해서는 조금도 알지 못하고, 그 방향으로의 미래를 모색한 적도 없었기 때문에 루비가 처음 합창단에 들어가게 되는 계기는 너무나도 평범하다. 현실에서도 종종 우연한 계기가 한 사람의 인생을 뒤바꾸어 놓는 경우가 있듯이 그녀의 시작도 그렇다. 짝사랑하던 남학생 마일스(퍼디아 월시-필로 분)를 따라 들어간 합창단에서 자신의 미래를 그리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첫 날 테스트에서 도망치는 모습만 보더라도 그렇다. 배 위에서 줄곧 노래를 불러왔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처음이라는 것, 실제로 자신의 노래 실력에 대해 조금도 자신이 없었다는 것, 그리고 농인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흔히 겪게 되는 어눌한 발음으로 인한 처음의 부정적 경험이 그녀의 족쇄가 된다.
 
"너는 할 말이 있니? 할 말이 없는 예쁜 목소리는 세상에 차고 넘쳐."
 
Mr.V의 존재가 루비에게 중요한 것은 그가 처음으로 그녀에게 스스로의 미래를 그리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게 만드는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타인(가족)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일이 아니라, 아무도 듣지 못하는 곳에서의 외로운 외침이 아니라 진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말이다.
 
 영화 <코다> 스틸컷

영화 <코다> 스틸컷 ⓒ 판씨네마(주)


04.
영화는 루비가 합창단에 들어간 이후, 합창단 속 루비의 모습과 가족의 모습을 교차하며 진행한다. 계속되는 경제적 어려움을 시작으로 하루 수입보다 더 많은 비용을 내고 연방 관리인을 구인해 배에 태우고 조업을 하라는 조합의 강요까지. 가족이 비춰지는 장면들에서는 하강의 이미지가 스토리를 통해 구체화된다.

한편, 실력을 인정받는 것은 물론 마일스와의 듀엣까지 제안 받게 되며 점차 두각을 드러내는 루비의 모습에서는 반대로 상승의 이미지가 그려진다. 상반된 두 장면의 교차는 루비가 어느 쪽에도 자신을 온전히 내어줄 수 없는 상황임을 암시한다. 가족의 일원으로는 현재의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루비의 도움이 필요하고 루비 개인의 경계 내에서도 스스로의 영향력을 키워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가족의 목소리로 살아가야 하는 세계와 자신의 목소리로 살아가고 싶은 세계가 점차 부딪히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시작되는 문제는 영화 전체를 아울러 세 번의 지점을 통해 계속적으로 이어진다. 기존 조합의 부당함에 맞서 싸우기 위해 가족이 시작한 사업과 루비 자신의 미래를 위한 Mr.V와의 약속이 부딪히는 두 번째 지점에서는 가족의 목소리를 지키는 대신 루비 자신의 목소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 세 번째 지점에서는 반대다. 루비가 자신의 세계를 지키는 대신 가족의 목소리로 살아가야 하는 세계를 잠시 외면하는 동안 아빠(배우 트로이 코처 분)와 오빠가 큰 어려움에 빠지고 만다. 어느 한쪽을 온전히 선택하는 동안 다른 한쪽은 지킬 수 없게 되는 장면의 반복. 동시에 두 세계를 모두 지지할 수 없음이 이 과정을 통해 드러난다.
 
"가족들 없이 뭘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물론 가족들에게도 가족 나름대로의 사정은 존재한다. 언제까지나 루비를 가족의 일에 억류할 수 없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현재로서는 루비가 아닌 다른 사람을 구하기에는 여유가 없다.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일찍부터 루비가 가족의 품을 떠나고 난 뒤의 준비를 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는 것. 루비가 자신의 꿈을 잠시 포기하고 가족의 일을 돕겠다고 약속하던 날에 불같이 화를 내던 오빠의 마음이 가족의 마음을 대변한다. 자신들 때문에 동생이 꿈을 펼치지 못할까 걱정하던 오빠 레오는 뒤늦게나마 세상과 직접 부딪히며 동생이 독립할 때를 준비해 보지만 여의치 않다. 그가 답답해하던 마음은 동생의 재능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이 상황을 어쩌지 못하는 자신을 향한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 <코다> 스틸컷

영화 <코다> 스틸컷 ⓒ 판씨네마(주)


05.
이 작품 <코다>의 가장 인상적인 연출은 영화의 후반부 초반에 등장하는 교내 합창부 공연 장면에 위치한다. 이 장면의 무대를 장식하는 것은 이제 자신의 재능을 꽃피우기 시작한 루비다. 하지만 장면이 이어지는 내내 이 지점의 중심에 놓여있는 것은 무대를 보기 위해 공연장을 찾은 루비의 가족임을 잊을 수 없다. 농인 가족 안에서 청인인 루비가 내내 그랬던 것처럼, 모두가 청인인 공연장에서 그렇지 못한 가족들이 소외를 당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들리지 않기에 무대를 즐길 수 없음은 물론, 다른 관객들과 함께 호흡할 수도 없는 상황의 연속. 심지어는 긴 공연 시간을 이기지 못하고 오늘 저녁은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장면도 담긴다.
 
특히 이 장면은 스크린 밖 관객들에게 조금 이상하게 여겨질 수 있다. 딸의 공연을 보러 와서 저녁 끼니를 고민하는 부모와 가족의 모습. 어딘가 이상한 게 분명하지 않나. 하지만, 감독은 다음의 장면을 통해 이 모든 의구심을 날려버린다. 하나의 장면을 위해 철저하게 짜여진 다른 모든 장면들. 영화는 루비가 마일즈와 듀엣을 이어가는 도중 포커싱을 아웃시키며 영화를 바라보던 모든 관객들을 가족의 자리로 밀어 넣는다. 바로,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는 이들의 자리다. 솔직히, 이 지점의 경험은 놀라움을 넘어 어떤 충격이었다.
 
영화는 이 지점에서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생각이다. 조금 더 유예를 하자면, 다음에서 등장하는 루비와 아버지의 아픈 이야기까지다. 영화 전체를 통해 감독은 자신이 해야 할 모든 이야기를 보여줬다. 루비의 쪽에서는 가족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자신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한 소녀의 이야기를 구축하고, 가족의 쪽에서는 그들의 세상에 속해있지 않았기 때문에 제대로 알지 못할 그들만의 이야기를 보여줬다. 더 나아가 공연 장면을 통해서는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간접적 체험까지 가능하게 만들었다.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할까. 그 이후의 이야기들은 영화의 조금 더 매끄러운 마무리를 위해, 서사적 구조의 성취를 한번 더 보여주기 위한 장치에 불과해 보이는 까닭이다.
 
 영화 <코다> 스틸컷

영화 <코다> 스틸컷 ⓒ 판씨네마(주)


06.
"저는 농인 문화의 외부인이기 때문에 그것을 왜곡하지 않으려면 농인 문화에 대해 깊게 몰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번 작품을 연출한 션 헤이더 감독은 영화를 연출했던 자신의 태도에 대해 이처럼 이야기 했다고 한다. 사려 깊은 감독의 시선 덕분에 이 영화를 마주하는 대부분의 관객들도 모두 비슷한 마음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감독의 시선이 그곳에 놓여 있기에 관객들 역시 따뜻한 마음으로 이 영화를 가슴 깊이 받아들이게 된다.
 
사실 이 작품은 지난 2015년에 소개된 영화 <미라클 벨리에>의 할리우드 리메이크 작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 감독인 에릭 라튀쥬 감독의 작품으로 전세계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평소에 좋은 리메이크 작품은 원작의 중요한 가치를 이어받으면서도 원작의 모양이 겹쳐 보이지 않도록 연출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이 영화 <코다>가 딱 그렇다. 영화의 중요한 지점마다 원작이 말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묻어 있지만, 지금 이 작품의 장면을 침범해 오지 않는다. 원작의 이야기를 유지하면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영화 <코다>는 충분히 좋은 리메이크 작품이다. 아니, 그 자체만으로 좋은 영화가 되어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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