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C 미국드라마 <뉴 암스테르담> 포스터

NBC 미국드라마 <뉴 암스테르담> 포스터 ⓒ NBC

 
"코로나 바이러스가 가장 극심했을 때 어떤 남자가 저를 막았어요. 제 팔을 잡고는 얼굴에 침을 뱉었죠. 그러고는 나를 물건처럼 내던졌어요. (누구한테 얘기한 적 있어요?) 아뇨.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흔한 일이에요."

여기서, 우리 같은 사람은 미국 대도시에 사는 아시아계 여성이다. 직업이 의사여도 상관없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펼쳐진 뉴노멀의 시대, 원인 모를 고통에 시달리던 필리핀계 여성 환자의 진단명을 가까스로 알아낸 신경과 의사 카오가 동료에게 털어놓은 진실은 잔혹했다.

미 지상파 NBC의 의학병원 드라마 <뉴 암스테르담> 시즌3 5화의 이 에피소드는 현재 미국이 겪고 있는 이중의 위기와 고통을 담담하게 적시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무너뜨린 미국인들의 일상과 그 일상의 분노를 표출하는 이들의 폭력에 노출된 아시아계 약자 및 소수자들의 현실 말이다.

드라마 속 카오와 여성 환자가 딱 그랬다. 환자들은 종종 거짓말을 하지만 또 때때로 발병의 원인을 스스로 감추기도 한다. 복부 통증을 호소하던 이 필리핀계 여성 환자가 그랬다. 두려움인지 트라우마인지, 말을 아끼던 이 환자는 결국 뉴욕의 밤길을 걷다 두 백인 남자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하며 복부를 걷어차였다고 울며 고백한다.

단지 "코로나를 미국에 퍼트렸다"는 것이 폭행의 이유였다. 환자를 다독이던 카오는 차마 환자에게 '나도 당했노라'고 동조할 순 없었다.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흔한 일"이라고 나중에 털어놓은 이는 뉴욕의 가장 오래된 공공병원인 뉴 암스테르담의 의료팀장이자 백인 남성인 주인공 맥스 굿윈이었다.

코로나 19 시대를 반영한 의학드라마 
 
 NBC 미국 드라마 <뉴 암스테르담 시즌3> 트레일러 캡처

NBC 미국 드라마 <뉴 암스테르담 시즌3> 트레일러 캡처 ⓒ NBC

 
<뉴 암스테르담>은 기본적으로 휴먼 의학 드라마다. 이상주의자이자 개혁가인 의료팀장이 공공병원의 시스템을 어떻게든 뜯어고치려 안간힘을 쓰는 과정이 무리 없이 전개되는 식이다. '막장' 같은 설정도, 과장된 캐릭터도 없다.

관점에 따라 인위적이고 작위적이라 받아들일 순 있지만 공공, 정치적 올바름, 그리고 휴머니즘을 강조하는 연출이 힐링을 선사한다. 여타 개성 있는 의료진의 직업적이고 개인적이고 다채로운 고민은 주제적인 면에서 필수일 터. 한데 그 주요 의료진의 인종조차 백인과 흑인, 인도인과 아랍계, 아시아인이 뒤섞여 있다.

미국 NBC 드라마 <뉴 암스테르담>이 지난 3월 시즌3 방영을 시작했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후폭풍으로 방영을 1년 쉰 결과였다. 그 첫 화의 제목이 '뉴노멀'이었다. 그렇다.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국가 중 하나인 미국의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제대로 반영한 의학 드라마가 탄생한 것이다.

드라마 자체가 원체 정치적 올바름이나 의료 시스템 개혁과 같은 공공의 선을 주제로 삼긴 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더해지면서 그 절박함과 현실성이 배로 다가오는 것은 저 멀리 한국의 시청자들도 다를 바 없으리라.

시즌3 전반에 이 팬데믹이 휩쓸고 간,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은 위기의 잔해가 드리워져 있다. 실제 전투를 치러낸 의료진은, 지쳤다. 심지어 신경과 과장은 합병증으로 쓰러졌다. 환자들은 병원을 꺼린다. 돈이 없는 환자들은 더 그렇다. 그들을 위해 만든 공공병원일지라도 예외는 없다.

맞다. <뉴 암스테르담>이 지향하는 주제가 바로 거기 있다. 병원은, 의료진은 누굴 위해 복무해야 하는가. 코로나19 시대의 미국인들에게 이러한 근본적 질문은 그 어느 때보다 절감하고 체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 패닉의 순간을 전경화하거나 선정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뉴노멀'이란 제목의 1화에서 '왓 어 원더풀 월드'란 배경음악이 주는 역설과 함께 2020년 한 해의 전쟁과 같은 순간들을 연속된 장면들로 담담히 묘사할 뿐이다.

개별 에피소드들도 그런 담담함의 연속이지만 구체적인 상황 묘사가 인상적이다. 2화에선 이 대형병원에조차 약품(프로포폴)이 동이 나 버린다. 코로나19의 폐해는 의료대국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자 의료팀장 맥스가 뉴욕의 다른 병원장들에게 전화로 응급 신호를 보낸다.

그런데 웬걸. 그쪽도 동이 난 지 오래라면서 또 다른 약품이 없느냐는 반문만 돌아온다. 전화를 몇 군데나 걸어 봐도 수화기 너머엔 '이거 없느냐', '우리도 이게 떨어졌다', '이건 남아돈다'는 병원장들의 한탄만 들려올 뿐이다.

해결책은 우연찮은 노력의 산물이었다. 병원마다 필요한 약품과 남는 약품을 기억하고 있던 맥스가 다중 통화로 서로를 연결, 일종의 약품 물물교환을 성사시킨 것이다. 해당 에피소드가 가리키는 지향은 분명하다. 국가 의료체계의 위기와 붕괴를 효과적으로 묘사하면서도 결국 서로가 서로를 돕는 자구책과 연대만이 살길이라는 다소 희망 섞인 전망이랄까.

사실 대체로 이런 식이다. 이상주의자이자 낙관주의자인 의료팀장 맥스가 다소 엉뚱하게 보이는 개혁 정책을 이뤄나가고 난관을 극복하는 방식이. 에피소드 3화에선 맥스가 코로나19로 겁을 먹고 병원 자체에 등을 돌린 환자들을 되돌려 놓기 위한 광고 영상을 찍는 과정이 묘사된다.

짐작했다시피, 맥스는 촬영을 끝마치지 못한다. 아무리 낙관주의자라도 거짓말은 거짓말이다. '우리 병원은 안전하니 언제라도 믿고 찾아 달라'는 홍보영상 속 대사를 맥스는 끝끝내 거부한다. 그리고는 일종의 TV 쇼 닥터였던 혈관종양학과 동료 할렌에게 도움을 청한다. 여기서도 반전은 필수다. 흔쾌히 촬영에 동의했던 할렌이 카메라 앞에서 마음의 동요를 일으킨 것이다.

바이러스와의 공생
 
 NBC 미국 드라마 <뉴 암스테르담 시즌3> 트레일러 캡처

NBC 미국 드라마 <뉴 암스테르담 시즌3> 트레일러 캡처 ⓒ NBC

 
"(환자들에게) 뭘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는 거예요. 난 자신 없어요. 당장은요. 솔직히 말해서 나도 무서워죽겠어요. 대체로 이런 기분이에요. 왜냐하면, 우리는 끔찍한 악몽 같은 세상에 살고 있고, 선량한 사람들이 아이들과 가족을 두고 먼저 떠나고 있으니까요."

매일 같이 암 환자들을 마주하고 누구보다 죽음과 가까이 살아가는 종양내과 의사조차 코로나19에 대한 공포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그런데 '웰컴 투 병원'이라고 홍보를 하라니. 현실이 그렇다. 'corona board' 사이트의 코로나19 실시간 상황판에 따르면, 29일까지 미국 내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3558만 4192명, 사망자는 62만 8487명이었다.

다시 <뉴 암스테르담>. 할렌은 "그래도 사람들을 안심시킬 필요가 있어요"라는 홍보 담당자의 권유에 "내가 아는 사람들은 두려움을 떨치고 싶어 하던데요? 살아남기만을 바란다고요"라며 이렇게 토로한다.

"그런데 난 그들을 안심시킬 수 없어요. 아무도 못 하죠. 이 세상은 안전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니까 나더러 두려워할 것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하라고 하지 말아요. 우리 모두 두려워해야만 한다고요! (그럼 우린 뭘 해야 하죠?) 사람들한테, 사람들한테 진실을 말해줘야죠. 바이러스를 없애는 게 불가능할지도 모른다고요.

그래서, 거기에 적응해 살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요. 왜냐하면 전 국민에게 백신을 투여한다고 해도 다른 바이러스가 발견되고 또 다른 게 발견될 거니까요. 그렇다고 삶을 포기할 순 없잖아요. 평생 바리케이트를 치고 살 순 없어요. 왜냐하면 그때는 정말로 소중한 걸 잃게 될 테니까요."


드라마는 드라마다. 헬렌의 이 연설 아닌 연설은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겼고, 결국 유튜브를 통해 공개돼 화제를 모은다. 현직 공공병원 의료인의 절절한 호소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이런 지상파 드라마를 통해, 또 넷플릭스를 통해 미국인들이 잠시 잠깐이나마 치유를 받는다고 생각해 보시길. 지난해 오만하고 무지한 정책으로 미국인을 수렁에 빠뜨렸던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정치보다 훨씬 유용한 콘텐츠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다시 아시아계 여성 환자와 의사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 지난 2월 한국계 앤디 김 의원을 포함한 미 하원 연방의회 아시아·태평양 미국계 모임(CAPAC) 소속 의원들은 미국 내 아시아계에 대한 혐오 범죄의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 개최를 공식적으로 요청한 바 있다. 코로나19 시대의 혐오 범죄를 트럼프가 부추겼고, 그 결과 백인우월주의가 극심해졌다는 주장이었다.

<뉴 암스테르담>이 해당 에피소드를 방영한 것이 지난 3월이었음을 고려하면 이 지상파 드라마의 문제 제기가 얼마나 시의적절했는지, 동시대성을 반영 중인지를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제작진은 지난해 코로나19 확진 사실을 공개하는 한편 아시아계에 대한 인종차별 범죄에 단호하게 목소리를 냈던 <로스트> 한국계 배우 대니엘 대 킴을 시즌3의 주요 배우로 캐스팅하기도 했다.

이렇게 주인공들이 항시 마스크를 쓰는 장면이 연출되고, "마스크 쓰세요", "응급실에서 마스크 벗지 마세요"란 대사가 횡행하는 드라마를 접하는 일은 조금은 낯설다. 그래도 친숙하게 다가오는 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특히나 미국의 현재 상황을 떠올리면 더더욱. 29일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지난주(19일~35일) 미국의 신규 확진자는 50만을 넘기며 세계 최고를 기록했다. 델타 바이러스의 영향 탓이었다. 그로 인해 미 하원 의회는 최근 의회 내 마스크 착용 의무를 부활시키고, 경찰은 이를 어길 시 체포도 불사하겠다고 엄포를 놨다고 한다. 

전 세계가 1년 반이 넘도록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겪고 있는 지금, 힐링 중요하지만 코로나19 시대를 반영한 아마도 최초의 의학드라마가, 더욱이 미 지상파의 주요 시간대 드라마가 가져다주는 방역 홍보 효과를 떠올리게 되는 일 또한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NBC에서 방영을 끝낸 <뉴 암스테르담> 시즌3를 미국인들이 넷플릭스로 시청하는 동안,  우리 역시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영원히 공생해야 할지 모른다는 공포에 진절머리를 치며 OTT 서비스(왓챠)로 같은 드라마, 같은 장면에 공감 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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