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가정할 것을 가정해야지. 아예 나달이라는 선수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가정하시지."

얼마 전 유튜브에 올라온 한 테니스 영상 밑에 이른바 '빅3' 선수들에 대해 촌평을 달았다가 아주 '혼쭐'이 나고 말았다. 보기에 따라서는 '몰매'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많은 비평과 비난을 받았다.
 
적잖은 테니스 애호가들의 속을 뒤집어 놓은 건 크게 두 가지 대목에서였다. 하나는 페더러가 한 손 백핸드가 아니라 두 손 백핸드였다면 빅3의 판도가 어땠을까? 다른 하나는 페더러가 조코비치보다는 만 6살, 나달보다는 만 5살가량 나이가 더 들었는데, 이 정도면 체력 수준이 서로 비슷하다고 봐야 할지 애매하다는 문제 제기를 한 것이, 그만 적잖은 테니스 동호인들의 속을 뒤집어 놓은 것이었다.
 
최근 조코비치 선수가 프렌치 오픈에서 나달을 꺾고, 뒤이어 열린 윔블던 대회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리면서,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사상 최고의 선수(The Greatest Of All Time 일명 GOAT)' 논쟁이 뜨겁다. 테니스의 빅3로 불리는 조코비치, 나달, 페더러의 그랜드슬램 대회 우승 숫자가 20개로 동률을 이룬 데 특히 힘입어 인터넷 등에서 설전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테니스도 다른 스포츠 종목과 마찬가지로 크게 보면 기술과 체력 이 두 가지 요소가 재능의 우열을 결정한다. 헌데 이 재능을 비교하기가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다. 아니, 재능의 우위를 흠없이 완벽하게 가릴 수 있는 비교법은 존재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사상 최고의 선수를 경기 성적으로 골라내는 건, 일견 가장 무난한 방법일 수는 있다. 전 세계적으로 프로 테니스 선수들이 참가하는 대회는 연간 수백 개가 넘는다. 이 가운데 상위권 선수들의 참여도가 높고, 상금이나 이른바 랭킹 포인트 또한 큰 대회를 테니스계에서는 '빅 타이틀'로 부르는데, 이들 대회에서 좋은 기록을 낸 선수를 고른다면 속칭 GOAT는 이렇다 할 논쟁거리가 되지 않는다.
 
테니스계에서 빅 타이틀 대회는 대략 4종류로 분류된다. 그랜드슬램, ATP파이널, 마스터스, 그리고 4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올림픽 테니스가 그것이다. 빅타이틀을 기준으로 하면 조코비치는 그랜드슬램 우승 횟수에서는 나달 페더러와 20개로 동률이지만 빅타이틀 총계는 61개로, 나달의 57개, 페더러의 54개를 앞선다.
 
깊이 생각할 것 없이 현 시점에서 조코비치를 GOAT로 꼽는다면 논쟁의 여지는 거의 없어 보인다. 더구나 조코비치는 빅3 가운데 나이가 가장 젊고, 더구나 최근 상승세가 나머지 두 사람에 비해 압도적으로 가파르다.
 
하지만 다른 종목과는 눈에 띄게 차별되는 테니스라는 '묘한' 운동의 특성을 감안하면, 진정한 GOAT를 꼽기는 참으로 쉽지 않다. 테니스는 크게 단식과 복식의 형태로 치러지는데, 단식과 복식은 기본적으로 같은 룰에 따르고, 이름 또한 똑같은 테니스이지만, 심하게 말하면 서로 다른 운동적 요소가 한둘이 아니다. 예컨대 복식에서는 단식과 달리 발리 능력이 승패를 좌우하는 데 아주 큰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테니스라는 운동을 단식으로 한정해 따져보면 어떨까? 공을 이용하는 운동 즉 구기는, 실내에서 주로 하는 경기이든 바깥에서 대부분 벌어지는 종목이든 보통 공과 맞닿는 표면의 물성이 대체로 동일하다. 탁구도 그렇고, 축구도 그러하며, 야구도 크게 예외가 아니다.
 
반면 테니스는 크게 분류해도 최소 4가지 유형의 표면에서 경기가 이뤄진다. 유서가 가장 깊은 잔디, 또 최근 수십년 사이 세계적으로 대세를 이룬 하드, 그리고 전통적으로 유럽에 특히 많은 클레이, 그리고 겨울철 실내 테니스 때 이용되는 카핏(실내 하드)이 그들이다.
 
이들 4가지의 코트 표면은 특성의 차이가 너무도 커서, 테니스를 밥벌이로 하는 프로선수가 아니라 동호인들도 단박에 그 차이를 알 수 있을 정도이다. 그래서 혹자는 테니스 대회 기간을 유로 클레이 시즌이니, 북미 하드 시즌이니 하는 식으로 표면에 따라 분류하기도 한다.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는 역사상 다시 출현하기 힘든 테니스 황금기의 빅3로 불리는데, 표면에 따른 성적 차이는 이들에게도 예외가 전혀 아니다. 한마디로 테니스의 귀재들인데, 이들도 상대적으로 잘하는 코트 표면이 있고, 그나름 어려움을 겪는 코트 표면이 있다는 것이다.
 
나달의 경우 별명인 '흙신'에서 알 수 있듯, 20개의 그랜드슬램 가운데 무려 13개 우승을 흙코트인 프렌치오픈에서 일궈냈다. 나달 만큼은 아니지만, 페더러는 그랜드슬램 20개 우승 가운데 8개가 잔디 코트인 윔블던에서 나왔다. 조코비치는 반면 하드에서 12개, 잔디에서 6개로 눈에 띄는 성적을 올렸는데, 흙코트인 프렌치오픈에서는 불과 2차례 우승했다.
 
코트 표면에 따른 이들의 확연한 우승 편차는 인류 최고의 테니스 재능을 가진 선수가 누구인지를 확정하기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을 보여준다. 4개의 그랜드슬램 가운데 지금은 유에스오픈(USO)과 오스트레일리아오픈(AO) 2개 대회가 하드 표면에서 열린다. USO와 AO는 각각 1881년과 1905년 첫 대회가 열렸던 유서 깊은 대회지만, 1987년까지만 해도 AO의 경우 잔디 코트에서 열렸으며, 하드 코트 그랜드슬램의 대명사 같은 USO도 1978년부터 하드로 '표변'했다. 빅3를 타임머신에 태워 1988년 이전으로 돌려보낸다면 이들의 그랜드슬램 판도가 오늘날과 똑같았을까.

이런 상황은 다른 빅타이틀 대회에서도 비슷하다. 페더러가 빅타이틀 숫자에서 꼴찌로 밀려난데는 마스터스 대회 총 우승횟수가 28개에 불과해 각각 36개씩인 나달과 조코비치에게 현저하게 떨어지는 탓이 크다.
 
테니스 마스터스 대회는 현재 연간 9개 대회가 열리는데, 이 가운데 흙코트가 3개이며 나머지는 하드코트이다. 페더러가 빅3 가운데 가장 강한 면모를 보이는 잔디 코트 마스터스 대회는 아예 없다. 만일 마스터스 대회가 흙, 잔디, 하드 각각 3대 3대 3인 비율이었다 해도 빅3의 성적은 지금과 똑같았을까?
 
잔디 코트는 윔블던으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지만, 시즌 자체가 4주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짧은 것도 놓치지 말아야 할 대목이다. 테니스 시즌은 11월 중순~12월 말까지 대략 달포 정도의 휴식기를 갖는데, 만일 흙, 잔디, 하드가 각각 3개월여씩으로 시즌이 비슷하다면 빅3의 성적표에도 지금과는 다른 변화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코트 표면에 대한 적응력을 차치하고 오로지 기술 한 가지 만으로 본다면, 빅3 가운데 눈에 띄는 점은 페더러의 한 손 백핸드라 할 수 있다. 한 손이냐, 양 손이냐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페더러를 옹호하기 위함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백핸드가 한 손이냐, 두 손이냐에 따른 장단점이 현저하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경기 성적에서도 한 손과 두 손의 차이는 드러나서, 예를 들면 한 손 백핸드는 상대적으로 잔디 코트에서 강한 면모를 보인다. 반면 두 손 백핸드는 흙 코트에서 종종 강점을 발휘한다.
 
과거 샘프라스와 테니스계를 양분하다시피 했던 애거시 이후 프로 테니스 선수의 80% 안팎이 두 손 백핸드를 사용한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직업으로 테니스를 선택한 사람들의 절대 다수가 두 손 백핸드를 채택한다면, 승률에 있어 미묘하나마 두 손 백핸드가 유리해서 아닐까.
 
페더러가 두 손 백핸드였다면 어땠을까 가정하는 건, 충분히 실현 가능한 가정이다. 두 손이냐, 한 손이냐는 선택의 문제일 뿐, 어떤 선수 자체가 출현하지 않았다면 하는 가정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 USO에서 그랜드슬램 첫 우승 기록을 낸 도미닉 팀 선수의 경우 두 손 백핸드로 한동안 치다가 대세와는 반대로 한 손 백핸드로 돌아선 경우이다.
 
한편 테니스는 2000년대 들어 여느 종목 못지않은 격렬한 운동으로 자리하는 경향성을 보이고 있다. 이는 바꿔 말해 나이에 따른 체력 요소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뜻이다. 페더러가 한 손 백핸드를 구사하는 외에 나달이나 조코비치 보다 5~6살 많은 점을 간과하기 어렵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격렬한 신체 활동을 수반하는 스포츠에서 나이 10살 차이는 동등한 체력 조건으로 보기 힘들다는 데 대부분 동의한다. 그렇다면 5~6살 차이는 어떨까? 동등하다고 보기도 그렇고, 차이가 있다고 보기도 그런 애매한 대목이 아닐까. 예컨대 22살 짜리와 28살 짜리는 6살 차이라도 체력에 차이가 거의 없을 수 있는 반면, 똑같은 6살 차이라도 33살과 39살은 차이가 있지 않을까.
 
편견을 갖고 특정 선수를 옹호하면 자칫 팩트를 놓칠 수 있다. 더구나 GOAT 논쟁이 팬덤들 간의 저질성 충돌로 흘러서는 생산적일 수 없다. 보다 입체적 복합적으로 테니스의 기술적 측면과 체력 요소 등을 분석해야 진정한 테니스 재능이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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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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