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장대높이뛰기에서 5m 75cm를 뛰어오르며 당시로서는 한국 신기록을 달성했던 진민섭 선수의 모습.

2019년 8월 장대높이뛰기에서 5m 75cm를 뛰어오르며 당시로서는 한국 신기록을 달성했던 진민섭 선수의 모습. ⓒ 대한육상연맹 제공

 
빌린 장대로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며 화제에 올랐던 선수가 이제는 후지산 꼭대기를 뛰어넘을 준비에 나선다. 맨몸으로 들고 달리는 장대 하나에 의존해 하늘 가장 높은 곳까지 오르는 종목인 장대높이뛰기의 대한민국 간판선수, 진민섭(충주시청) 이야기이다.

한국 신기록만 여덟 번을 갈아치운 진민섭 선수이지만,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가 그에게는 처음이다. 서른 살 나이에 도전하는 올림픽에 대한 각오는 어떨까. 그리고 진민섭 선수가 직접 소개하는 장대높이뛰기 종목의 매력이란 어떤 맛일까.

25일 도쿄로 출국해 마지막 담금질에 나선 뒤, 오는 31일 도쿄 카스미가오카 국립경기장에서 열리는 2020 도쿄 올림픽 남자 장대높이뛰기 예선에 출전하는 진민섭 선수를 만났다. 지난 22일, 출국에 앞서 국내에서 마지막 훈련을 하던 진민섭 선수와 전화로 인터뷰를 가졌다.

"코로나19 탓에 실전 경험 부족 아쉽지만..."
 
진천선수촌에서 훈련을 이어가던 진민섭 선수는 인터뷰 당시 경북 예천에서 최종 훈련에 나선 상황이었다. 진민섭 선수는 "훈련장 분위기를 도쿄 느낌에 맞추어 준비해 주셨다"면서, "부상을 조심하고 있기에 체력을 유지할 수 있는 기초 훈련 위주로 훈련하되, 장대를 들고 달릴 때의 스피드를 높이는 훈련을 하고 있다"며 훈련 진행에 대해 전했다.

내륙 지방에서의 훈련이 덥지는 않은지 물었다. 진민섭 선수는 "한국만큼 일본도 날씨가 더우니, 여기서 더위를 적응해 도쿄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오히려 낫다. 날씨에 적응할 기회인 것 같다. 도쿄에서는 비만 안 오고, 지금 한국같은 날씨가 그대로 이어져서 한국에서처럼 편하게 경기했으면 좋겠다"며 개의치 않아 했다. 

사실 그에게 아쉬운 것은 코로나19 탓에 실전 경험을 쌓는 데 무리가 있었던 점. 진민섭은 "지난해 시합을 충분히 뛰어서 경기력을 향상시키고 감을 익혔어야 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탓에 실전 경험을 쌓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진민섭 선수는 "4월에 미국 가서 전지훈련 겸 시합을 뛰었던 것이 마지막 실전 경험"이라면서 "세계 랭커들은 해외에서 올림픽 2주 전까지 경기를 뛰곤 했었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해 많이 아쉽다"며 "잘 하는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면서, 경쟁을 하면서 좋은 에너지를 쌓을 수 있는데 그럴 수가 없어 어려움이 크다"고 털어놨다.
 
그런 아쉬움을 극복하는 진민섭의 방법은 '이미지 트레이닝'이다. 진민섭은 "훈련 하나를 할 때도 집중해서 임하고 있다. 특히 요즈음에는 '여기가 올림픽 본선 무대'라고 생각하곤 한다"면서, "한 달 전부터 나에게 최면을 걸 듯 훈련하고 있는데, 환경에 탓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부분을 하게 되는 것 같다"며 웃었다.

시합장에서 우연히 만난 장대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죠"

진민섭 선수에게 '장대높이뛰기'는 운명이었다. 학교 운동회에서 달리기를 잘 하는 것을 본 학교 육상부 코치가 '육상을 해보자'며 다가와 권유한 것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하지만 달리기 속도가 다른 선수보다 빠르지 않았던 탓에 멀리뛰기를 했다고 진민섭 선수는 전했다.

멀리뛰기에서 장대높이뛰기로 종목을 바꾼 계기도 우연과 같았던 운명처럼 다가왔다. 진민섭 선수는 "중학교 때 시합장을 갔는데 장대높이뛰기를 하는 형들을 보면서 '나도 해보고 싶은 것을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님께 장대높이뛰기를 하고 싶다고 졸랐는데, '하려는 의지가 보인다'면서 허락을 해주셨다"라고 전했다.

그렇게 장대높이뛰기를 선택한 그는 거침없는 성장세를 드러냈다. 2009년 세계청소년육상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내기도 했다. 진민섭은 "금메달을 따오니 연맹에서도 '나를 키워보자'라면서 우크라이나에서 시크비라 아르카디 코치님을 데려오셨다"며 "아르카디 코치님 덕분에 많은 성장을 할 수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슬럼프도 있었다. 인천 아시안게임 이후 국군체육부대로 입대한 그는 대표팀 선발에서 낙방하는 등 좌절의 순간도 왔다. 그때 김도균 코치가 손을 내밀었다고. 진민섭 선수는 "김도균 코치님께서 '혼자 해서 못 하면 내가 도와주겠다'라고 해주셔서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바닥을 치고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진민섭 선수에게 장대높이뛰기는 선수 본인의 운명을 갈랐던 선택이었다. 평범한 학생 선수였던 그가 장대높이뛰기를 만나, 10년째 한국신기록을 갈아치우는 국내 간판 육상 선수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민섭 선수는 "돌이켜보면 장대높이뛰기는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던 것 같다"며 웃었다.

"처음 써본 장대로 올림픽까지... 인생 경기였죠"
  
 2020년 열린 제74회 전국육상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진민섭 선수의 모습. 사진에서의 그의 모습처럼 '반듯이' 서는 자세가 관건이라고 그는 전했다.

2020년 열린 제74회 전국육상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진민섭 선수의 모습. 사진에서의 그의 모습처럼 '반듯이' 서는 자세가 관건이라고 그는 전했다. ⓒ 대한육상연맹 제공

 
진민섭 선수가 지난해 깜짝 유명세를 치른 계기는 그에게 올림픽 출전권을 선물한 '인생 경기'가 되었던 호주 오픈이었다. 한국과 호주 사이의 규정이 꼬여 그에게 맞는 장대를 가져가지 못해 낭패를 보았던 그였지만, 호주 현지에서 극적으로 구한 장대로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는 데 성공하며 주목을 받았다.

"항공 규정이 꼬여서 제 장대를 못 가져갔어요. 어쩔 수 없이 몸만 호주에 간 뒤 방법을 찾아봤는데, 1800km 떨어져 있는 곳에 저한테 맞는 장대가 있다는 거예요. 김도균 코치님께서 2박 3일 동안 운전을 하셔서 장대를 가져다주셨어요. 장대를 받고, 코치님께 정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경기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급하게 마련한 장대였던 탓에 한 번의 연습도 거치지 못한 채 경기에 임해야 했다. 실전 첫 경기를 '빌린 장대'로 하게 생긴 것. 진민섭 선수는 "장대를 가져다주신 코치님에게 그저 감사하다는 생각 외에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면서, "그저 장대가 '나에게 최대한 맞겠지'라는 암시를 하고 경기에 뛰었다"고 회상했다.

"장대가 사실 제 장대가 아니다 보니 감각이 처음에는 다를 것 같았어요. 그런데 막상 장대를 들고 뛰어올라보니 제 장대와 감각이 너무 똑같더라고요. 어떻게 이런 경우가 있지 싶을 정도였어요. 사실 경기 감각이 다르지 않을까 고민했는데, 막상 시합 당일 경기를 뛰어보니까 잘 맞아서 너무 좋았습니다."

그렇게 뛴 경기에서 올림픽에 도전하기 위한 최소 기록인 5m 80cm에 도전하는 순간까지도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라고 고민했던 진민섭 선수. 하지만 막상 뛰어넘은 순간 벽처럼 느껴졌던 그 높이를 넘어섰다. 진민섭 선수는 "5m 80cm를 넘으니까, 지금까지 경기하면서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던 '슬로우 모션'이 느껴지는 기분이었다"라면서 웃었다. "이제 세계 선수들과 경기를 뛰면서 배울 수 있겠구나!"라며 기뻤다는 것이 당시의 감상이었다고. 

하지만 최고의 성과를 올리고 한국에 돌아온 그를 맞이한 것은 환영 대신 코로나19였다. 잡혔던 국내 시합이 취소되고, 그나마 잡혔던 대회도 코로나19가 확산되면 취소되기 일쑤였다. 진민섭 선수는 "장대높이뛰기를 할 수 있는 운동장이나 시설이 많지 않은데, 코로나19 때문에 폐쇄된 경우가 많아서 어려움이 컸다"고 털어놨다.

다행히도 지난 1월부터 진천선수촌에 다시 입촌해 훈련만큼은 걱정 없이 할 수 있게 되었다. 진민섭 선수는 "1년 정도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가 선수촌이 개방되면서 훈련에 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였던 훈련도 감사한 일이구나 생각했던 계기가 되었다"라고 말했다.

"제가 잘 해서, 육상이라는 종목 알리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진민섭 선수 스스로 평가하는 '자신의 강점'은 어떤 것이 있을까. 그는 '날씨나 바람 같은 변수에 신경 쓰지 않고 편하게 경기에 임하는 것'을 장점으로 꼽았다. 도약하는 자세 역시 다른 선수들에 비해 반듯하다는 것이 진민섭 선수가 말하는 자신의 강점.
 
TV로 보던 올림픽에 직접 나가는 기분도 궁금했다. 진민섭은 "이전 올림픽 때 TV로 선수들을 보면 '나도 저 정도의 실력을 만들어서 올림픽에 나가야지'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이뤄내니 기분이 좋다"면서, "이번 올림픽을 통해 '구경하던 무대에 직접 가는 기분'을 느낀다. 개인으로도 성장하는 계기가 되고 싶다"라고 말했다.

TV로 대회를 접할 국민들에게 알리는 장대높이뛰기의 '관전 포인트'도 물었다. 진민섭 선수는 "장대에 폴을 꽂고 도약하는 순간, 선수가 얼마나 꼿꼿이 잘 서는지를 보면 된다. 자세를 반듯이 잘 잡는 선수가 그날 컨디션이 좋은 선수이니 기대를 해보면 좋을 것 같다"며 웃었다.

이번 올림픽 진민섭 선수의 1차 목표는 호주 오픈에서 기록했던 5m 80cm의 기록을 뛰어넘는 것이다. 1차 목표 달성에 성공하면 메달권이라고 일컬어지는 5m 90cm도 올림픽 무대에서 처음 통과하고 싶다고. 진민섭 선수에게 올림픽에서 한국 신기록을 새로 쓴다는 것이 부담은 없냐고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올림픽 같은 큰 무대는 부딪혀본다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선수들이 잘 해야 국민분들께서 종목에 관심을 많이 가져주실 것 아니에요, 제가 잘 해서 육상이라는 종목을 많이 알리고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해야죠."

이어 진민섭 선수는 "선수보다 고생이 많으신 분"이라며 김도균 코치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는 "선수가 성적이 잘 나오면 선수 덕이지만, 성적이 못 나오면 코치 탓이 된다. 그래서 부담감이 크실 것 같다"면서, "이번 올림픽 때는 제가 옆에 있으니 코치님께서 마음 편하게 믿어주시고, 내가 경기 뛰는 것 웃으며 지켜보셨으면 좋겠다"라고 김도균 코치에게 메시지를 전했다.

중계를 접할 국민들에게도 메시지를 전했다. 진민섭 선수는 "국민분들께서 TV로 장대높이뛰기를 접하시고, '한국에도 장대높이뛰기를 이만큼 잘하는 선수가 있구나!'라는 점을 느껴주셨으면 좋겠다"면서, "부상 없이 시기를 잘 마무리하면 박수 크게 쳐주셔서, 도쿄까지 응원의 기운 많이 모아주셨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진민섭에게 도쿄 올림픽은 그의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올림픽이라는 각오다. 진민섭 선수는 "내 나이가 이제 서른이니만큼 처음이자 마지막 올림픽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만큼 올림픽 출전에서 꼭 좋은 성과를 내고 돌아오고 싶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 장대높이뛰기란? - 7월 31일 오전 9시 30분 첫 경기를 시작으로 경기가 펼쳐지는 장대높이뛰기. 맨몸으로 장대에 의지해 아파트 두 층 정도의 높이를 뛰어넘기에 선수들에게는 '인간새'라는 별명이 붙는다. 진민섭 선수는 지난 2012년 런던 올림픽에 나섰던 최영희 선수 이후 처음으로 장대높이뛰기로 도쿄 올림픽에 선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