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나는 상담심리사다. 매일 상담실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사연과 고민을 듣고, 성장하는 길에 함께 한다. 그런데 최근엔 유독 청소년 내담자들을 많이 만난다. 엄밀히 말하면 이들의 부모들이 상담실을 찾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경우 상담 신청자는 부모고, 아이들은 부모의 권유에 마지못해 상담실을 찾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상담실을 찾은 청소년의 부모들은 대체로 '아이가 이해가 안 된다'며 이렇게 혀를 끌끌찬다.
 
"하여튼 사춘기 아이들이란."
 
하지만 청소년 아이들과 조근조근 대화를 하다 보면, 아이들의 마음엔 늘 이유가 있다. 그리고 대체로 그 이유는 타당하다(어른들이 그렇듯 말이다). 청소년들이 자신의 마음의 이유를 알아가는 순간은 뭉클할 때가 많다. 이를 안 부모와 어른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땅 끝 마을, 해남의 한 작은 중학교 배드민턴부 아이들의 일상을 다룬 SBS <라켓 소년단>. 나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상담실에서 만난 청소년들을 떠올렸다. 드라마 속 아이들은 상담실에서 주로 만나는 청소년의 문제행동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만의 세계를 차근차근 쌓아간다. 어른들의 오해를 받으면서도 끝내는 어른들에게 깨달음을 주는 '라켓 소년단'의 모습은 내가 상담실에 만난 청소년이라는 세계를 매우 잘 보여주고 있었다.
  
 SBS 드라마 <라켓 소년단> 포스터

SBS 드라마 <라켓 소년단> 포스터 ⓒ SBS

 
놀고 싶지만, 중요한 걸 잊지 않는
 
상담실을 찾는 청소년의 부모들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스마트폰과 게임 문제다. 부모들은 "틈만 나면 폰만 들여다본다"고 하소연을 하고, 아이들은 "폰 본다고 뭐라하는 게 제일 짜증 난다"고 불평한다.
 
<라켓 소년단>의 소년들도 마찬가지다. 해남으로 이사온 해강(탕준상)과 함께 지내게 된 아이들의 가장 큰 불만은 와이파이가 없다는 점이었다. 때문에 이들은 드라마 초반 '1승하면 와이파이를 설치해준다'는 코치의 약속을 믿고 간절히 1승을 원한다. 이토록 스마트폰이 절실한 '라켓 소년단'은 운동을 하지 않을 땐, 언제나 늘 스마트폰을 한다. 쉬고 있을 때, 방에 모여 있거나, 대회에 나가 숙소에 머물 때, 차를 타고 이동할 때 이들은 어김없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런 모습들은 현실에서 부모들이 걱정하는 청소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이라고 아무 생각 없이 게임만 하는 걸까. <라켓 소년단>의 아이들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늘 게임을 열망하는 아이들이지만 이들은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판단할 줄 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경기가 있을 때, 이들은 '게임 한 판 하자'는 다른 친구들의 제안을 과감히 거절한다. 14회엔 소년체전 준결승 진출에 대한 보상으로 현종(김상경)이 스마트폰을 돌려주며 "게임한다고 정신 팔리는 거 아니지?"라고 말하자 아이들은 이렇게 답한다.

"그러고 싶은데 우리한테 목표가 있잖아."(해강)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순간인데."(우찬)
"그것을 폰이 대신할 수 없다는 걸 잘 안당께요."(용태)

 
이렇듯 청소년들은 어떤 것이 중요한 것인지 잘 알고 있다.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것들을 위해 즐거움을 내려놓을 준비도 되어 있다. 상담실에서 만난 아이들도 대체로 그랬다. 부모들이 걱정하는 것 못지않게 이들도 자신들의 삶을 고민하고 있었다.
 
욕하지만, 편견 없는
  
 <라켓 소년단>의 청소년들은 틈만나면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한다. 하지만, 이들은 '진짜 중요한 것'을 늘 기억하고 있다.

<라켓 소년단>의 청소년들은 틈만나면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한다. 하지만, 이들은 '진짜 중요한 것'을 늘 기억하고 있다. ⓒ SBS

 
상담실에서 자주 만나는 청소년의 또 다른 문제 중 하나는 바로 욕설이다. 부모들은 아이가 욕을 달고 산다며 상담을 신청하기도 하고, 때로는 학교에서 친구나 선생님의 뒷담화를 한 것이 화근이 돼 갈등을 겪기도 한다.

<라켓 소년단>의 친구들 역시 이런 욕과 뒷담화에서 자유롭지 않다. 해강은 인솔(김민기)을 '재수탱이'라고 부르고, 상대편 선수들을 비하하는 발언을 종종 한다. 공중파 드라마니까 수위조절이 되었겠지만, 아마도 현실이었다면 이 아이들은 훨씬 더 거센 단어를 입에 담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욕설에는 편견이 없다. 이들은 뒷담화의 대상이었던 인솔이 팀에 합류하자, 금세 그와 친구가 된다. 평소 경쟁상대로 아니꼽게 바라보던 상대편 선수들까지도 훈련소에서 만나면 한 방에 모여 게임 하면서 순식간에 우정을 쌓는다. 이처럼 청소년들이 내뱉는 욕설은 상대방을 진정으로 폄하하고 미워하기보다는 부러운 마음, 친해지고 싶은 마음, 이기고 싶은 마음 등 다양한 마음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9회 일본 선수들과 연습게임을 치른 후 코치들은 아이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니들도 일본 싫지? 그래서 열심히 했지?" 이에 여자 선수들은 이렇게 답한다. "저희는 일본 애들 싫지 않아요. 연락도 자주 하고 같이 놀러다니고요. 저희 일본 애들 아니었어도 그렇게 했을 거예요. 말씀하신 대로 중요한 국가대항전이고 스포츠잖아요. 민턴은 그냥 민턴이니까." 그리고 남자 선수들은 이렇게 말한다. "혼나기 싫어서요. 그래서 열심히 했어요."
 
비록 대화에 욕설을 섞고 비속어를 사용할지라도 아이들의 마음엔 이처럼 편견이 없다. 점잖은 말을 사용하고 예의를 차리면서도 상대방이 상대방이라는 이유로 (그러니까 일본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싫어하는 어른들보다 어쩌면 아이들의 태도가 더 성숙한 것 아닐까. 다행히도 <라켓 소년단>의 어른들은 이를 금세 알아차리고 수긍한다. "니들이 우리보다 낫다"라고 아주 솔직하게.
 
꼰대라 부르지만, 존중하는

상담실을 찾는 청소년과 그 가족들은 종종 세대간의 갈등을 호소해온다. 많은 청소년들은 실제로 어른들을 '꼰대'라고 부른다(심지어 자신들의 부모까지도!). 그리고 어른들과 함께 하는 걸 불편해하고 어색해한다. 이는 <라켓 소년단>의 소년들도 마찬가지였다.
 
해강은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엄마 영자(오나라)와 함께 있는 것을 불편해한다. 11회 엄마와 둘이 수제비를 먹는 해강은 영 편안해 보이지 않는다. 이에 영자는 "엄마랑 단 둘이 있는 게 어색하지?"라고 상황을 인정한다. 아이들의 세계를 이해해주려 애쓰는 아버지 윤 코치의 노력도 아이들에겐 오버로 보일 뿐이다.
 
하지만 청소년들은 어른들을 무조건 폄하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청소년들은 어른들의 진심을 알아차리는 힘이 있다. 이런 태도는 12회 '하얀늑대'를 대하는 아이들의 태도에서 잘 드러났다(하얀늑대라는 별명을 가진 백 감독은 책임자라는 이유로 폭력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는 과정에서 누명을 쓴다).

아이들은 폭력사건에 휘말렸던 '햐얀늑대'를 두려워하지만, 곧 소문이 아닌 자신들의 경험을 믿기로 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뭐 별거 없어요. 저희 감독샘 믿기로"(우찬), "전에 해체될 뻔 했는데 감독샘 돈으로 대회 나갔다니까요"(윤담), "또 저희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주시거든요"(해강), "맨 처음 체육관에 오셨다 마지막에 가시거든요"(은솔), "감독쌤은 출장할 때마다 만난 걸 사온다니까요"(용태). 이처럼 이들은 꼰대라 부르면서도 자신들을 대하는 태도 속에 묻어나는 진심을 볼 줄 아는 지혜를 지녔다.
 
상담실의 아이들의 경우도 그랬다. 상담 초반 "엄마 아빠 때문에 짜증나요"라고 호소했던 아이들조차 마음 깊은 곳에선 "엄마 아빠에게 미안해요. 잘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라켓 소년단>의 아이들은 친구들을 편견없이 받아들인다.

<라켓 소년단>의 아이들은 친구들을 편견없이 받아들인다. ⓒ SBS

 
이처럼 <라켓 소년단>의 아이들은 요즘 어른들이 걱정하는 청소년의 태도를 모두 지니고 있다. 스마트폰과 게임에 빠져 살고, 욕설을 달고 살며, 어른들을 꼰대라 부르며 멀리한다. 하지만, 드라마 속 이들의 행동은 문제행동으로 보이지가 않는다. 상담실을 찾는 부모들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은 주제지만, 이들이 문제 아이들이 아닐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바로 이 한 마디에 있다고 생각한다.
 
"애들을 믿어봐."
 
'하얀 늑대' 즉 백 감독(신정근)이 윤 코치에게 자주 했던 이 말, 그러니까 아이들을 하나의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믿어주는 어른들의 마음이 아이들에게 전달됐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실제로 상담실에서 만난 많은 청소년들은 자신들을 아이 취급 하는 것에 불만을 표하곤 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생각과 느낌을 그저 한 사람의 것으로 존중해줬을 때 아이들은 속 깊은 마음을 보여주곤 했다.
 
김소영 작가의 <어린이라는 세계>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지나고 보면 그런 단계를 가졌을지 몰라도 살아 있는 한 모든 순간은 똑같은 가치를 지닌다. 내 말은 다섯 살 어린이도 나와 같은 한 명의 인간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 구절이 청소년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청소년이니까, 문제가 많은 시기니까 라는 시선을 거두고 청소년을 저마다의 세계를 가꿔가는 한 사람으로 대해줄 때 우리가 걱정하는 아이들의 행동은 더이상 걱정거리가 되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은 성장하는 힘이 있다. 그리고 어른들의 믿음이 더해질 때 그 힘을 발휘할 것이다. <라켓 소년단>의 아이들처럼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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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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