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빛나는 순간> 관련이미지.

영화 <빛나는 순간> 관련이미지. ⓒ 명필름

 
사랑에는 어떤 형태나 제약도 없다. 이 명제는 그 자체로 맞는 말이다. 종종 우린 문학과 여러 공연예술에서 한계를 뛰어넘고 끝내 사랑을 쟁취하고야 마는, 혹은 반대로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는 여러 가상 인물을 만나왔다. 

영화 <빛나는 순간> 또한 같은 맥락에서 적잖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줄 것이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일흔이 넘은 노인과 젊은 청년의 사랑을 소재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다분히 정신적이거나 아가페적인 사랑이 아닌 격정적인 감정의 파고를 품고 있는 멜로적 요소가 가득한 사랑이다.

휴양지로 알려진 제주도는 본래 바람과 돌, 여자가 많아 삼다도라 불리기도 한다. 살기 척박한 그곳에서 고진옥(고두심)은 평생 해녀로 물질을 하며 살아왔다. 매일 물에 들어갈 때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그곳, 어느새 진옥은 마을에서 가장 숨을 오래 참는 명인이 돼 있었고 동시에 마을을 수호하는 존재처럼 여겨지게 되기도 했다.

평범하지만 비범한 그를 찾아온 건 한 외주 제작사 프로듀서다. 활짝 웃으며 접근하는 경훈(지현우)을 진옥은 냉대하고 외면한다. "육지 것들은 믿을 게 못 돼"라는 마을 주민들의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단순히 짧은 경험에 기댄 편견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늘 권력자와 이데올로기의 피해자가 돼 왔던 제주도 사람들의 오랜 아픔이 축적된 결과다.

이를 아는 듯 경훈은 무작정 진옥의 매니저를 자처하며 그의 주변을 맴돌기 시작한다. 물질도 돕고, 생물을 직접 공판장까지 나르기도 한다. 신뢰가 쌓인 걸까. 진옥은 어느 순간 자신을 촬영해도 좋다는 말을 쑥스럽게 남긴다.

비판과 지지의 가능성이 공존
 
 영화 <빛나는 순간> 관련이미지.

영화 <빛나는 순간> 관련이미지. ⓒ 명필름

  
 영화 <빛나는 순간> 관련이미지.

영화 <빛나는 순간> 관련이미지. ⓒ 명필름

 
영화의 본격적인 사건은 여기서부터다. 보통의 휴먼드라마 장르였다면 두 사람의 우정, 갈등, 화해를 다루고 마무리했겠지만, 이야기는 진옥과 경훈 사이에서 싹트는 또다른 감정을 조명한다. 사실 중간중간에 떡밥처럼 이들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기류를 포착해놨기에 어느 정도 예상은 가능하지만, 그럼에도 연인으로 발전해 가는 두 사람의 모습이 마냥 편하게 다가오는 건 아니다.

노인과 청년의 사랑이라는 텍스트는 분명 상업적 코드와 거리가 멀다. 노인이 주인공이었던 영화들 중 상당수는 그들을 지혜로운 존재이거나 역사적 아픔을 지닌 존재로 묘사하곤 했다. 혹여나 사랑이 주제라고 해도 또래의 대상이 있었다. <빛나는 순간>은 말 그대로 제목처럼 가장 순수한 상태로 자신의 마음을 연 진옥을 빗댄 표현일 것이다.

한편으론 일부 관객에 의해 비판받을 여지도 있다. 성이 바뀐 채 소재는 비슷했던 또 다른 영화 <은교>를 떠올리기 충분하기 때문이다. 극 중 몇몇 캐릭터의 대사, 예를 들면 동료 해녀의 "젊은이가 오니 아주 분위기가 사네", "그동안 남자가 없어서 힘들었나보네" 등과 같은 표현은 어떤 의미에서의 성적 희화화로 받아들일 가능성도 있다. 

물론 이는 투박한 해석일 것이다. <은교>와 <빛나는 순간>의 가장 큰 차이점은 성적 대상화 유무이고, 노인의 욕망 내지는 소망을 성적 호기심으로 한정 지었냐 여부기 때문이다. 적어도 <빛나는 순간>은 진옥과 경훈의 정서적 교감을 다뤘고, 두 사람이 비슷한 상실의 아픔이 있음을 짚었다. 사실 그 과정을 좀 더 명확하고 친절하게 묘사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다. 

그럼에도 <빛나는 순간>은 몇 가지 논쟁적이고 토론할 만한 거리를 효율적으로 던지고 있다. 제주 속담에 '쉐로 못 나난 여자로 낫쥬'(소로 못 태어나서 여자로 태어났죠)라는 말이 있다. 그 섬에서 여자로서 산다는 건 소보다도 더한 고통을 겪기 일쑤라는 뜻을 테다.

여성의 몸을 지닌, 그래서 평생 남편의 병수발을 들고 생계를 책임지던 진옥이 내면에 눈을 뜬다는 건 분명 이 영화를 둘러싸고 나올 비판의 목소리를 잠재울 힘이기도 하다. 동시에 영화는 제주 4.3 사건의 트라우마가 현재진행형임을 언급하며 우리 사회 구석에 존재하는 아픔도 들여다보려고 했다.

이처럼 대중 예술로써 영화는 현실을 반영하고 재해석 해야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꿈꾸는 어떤 현실을 제안할 수도 있어야 한다. <빛나는 순간>은 그런 의미에서 충분히 '문제작'이다. 

한줄평: 멜로영화로만 치부할 수 없는 문제작 
평점: ★★★☆(3.5/5)

 
영화 <빛나는 순간> 관련 정보

각본 및 감독: 소준문
출연: 고두심, 지현우, 양정원, 전혜진, 김중기 등
제작: 명필름 및 웬에버스튜디오
공동제작: 명필름랩
배급: 명필름 및 (주)씨네필운
러닝타임: 95분
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개봉: 2021년 6월 30일
 
빛나는 순간 고두심 지현우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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