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이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을 조 1위로 통과하며 최종예선에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투르크메니스탄, 스리랑카, 레바논을 차례로 완파한 벤투호는 지난 3월 한일전 0-3 참패의 후유증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는데 성공했다.

1차적인 목표는 이뤘지만 벤투호가 3연전에서 남긴 공과는 냉철하게 분석해봐야할 필요가 있다. 한국축구의 진정한 목표는 최종예선이 아니라 월드컵 본선이고, 더 나아가서는 국가대표팀의 시스템과 클래스를 질적으로 향상시키는 데 있다. 그런 면에서 벤투호가 현재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에 대하여 끊임없는 문제제기와 성찰이 필요하다.

지난 한일전과 월드컵 예선 3연전은 모든 면에서 상황이 달랐다. 한일전 당시 대표팀은 주축 유럽파가 대부분 빠진 반쪽짜리 전력이었고 상대는 라이벌 일본인데다 원정경기였다. 그에 비하여 이번 3연전은 손흥민-황의조-김민재 등 베스트멤버들이 총집결했고 객관적인 전력에서 몇 수 아래인 아시아 약체팀들을 모두 안방에서 맞이하는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었다.

한국이 나란히 5골차로 대파한 스리랑카와 투크르메니스탄은 지난 맞대결에서도 각각 8-0, 2-0으로 승리했던 상대였다. 애초에 승패가 문제가 아니라 몇 골차나 벌어질지가 더 관심사였을만큼 결과보다 내용이 더 중요했던 경기였다.
 
  13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대한민국 대 레바논의 경기. 파울루 벤투 감독이 경기에서 승리한 뒤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13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대한민국 대 레바논의 경기. 파울루 벤투 감독이 경기에서 승리한 뒤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한일전 참사 이후 벤투 감독을 향한 비판 여론이 악화되었던 이유는 빌드업 축구의 효율성과 보수적인 선수선발에 대한 지나친 집착 때문이었다. 벤투 감독은 한국대표팀 부임 이후 꾸준히 패스와 점유율을 기반으로 하는 유럽식 빌드업 축구를 이식하기 위하여 노력하면서 자신의 축구철학에 잘 맞는 선수들(특히 해외파) 위주의 소수정예화된 대표팀 운영을 고집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전은 벤투호가 '일정 수준 이상의 강팀을 만났을 때' 그리고 '부상이나 돌발변수로 원하는 최상의 선수구성을 갖추지 못했을 때' 얼마나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던 무대였다. 이는 월드컵 최종예선이나 본선에서 벤투호가 얼마든지 다시 맞딱뜨릴 수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 모의고사에서 벤투호가 보여준 것은 한 마디로 참사였다. 한국보다 더 오래 전부터 꾸준히 패스와 점유율 축구를 추구해온 일본을 상대로 벤투호의 '빌드업 축구'는 전혀 통하지 않았고, 주전 선수들이 없을 때 가동할 수 있는 '플랜B'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벤투 감독은 2차 예선 홈 3연전을 통해 여전히 빌드업 축구에 대한 강한 소신을 드러냈다. 표면적으로 3경기에서 전승을 하고 12득점을 하고 1실점을 했으니 성공한 결과가 아니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투르크메니스탄이나 스리랑카를 대파한 것으로 빌드업 축구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것은 무리다. 오히려 그동안 한국축구를 여러 차례 괴롭혔던 레바논과의 마지막 경기에서는 상대의 밀집수비와 역습, 그리고 '침대축구'에 상당히 고전하며 불안한 모습을 드러냈다.

벤투 감독은 자신의 빌드업 축구에 대한 의구심이 나올 때마다 비판 자체를 무시하거나 왜곡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누구도 빌드업 축구 자체가 잘못 되었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약팀이라고 매경기 압도적인 점수차로 대승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축구는 다양한 방식이 있고 선수구성-상대팀-경기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정답은 바뀔 수 있다. 때로는 롱볼을 올리며 '뻥축구'를 하거나, 수비를 두텁게 내려서 '버스'를 세워야하는 상황도 있다. 이러한 개연성을 무시하고 그저 '빌드업만 옳다'거나 '빌드업이 아니면 뻥축구나 옛날축구'라는 식의 흑백논리야말로 전제부터가 잘못됐다.

벤투 감독은 3연전에서는 이전과 달리 비교적 다양한 선수들을 기용했다. 투르크메니스탄전 승리 이후 스리랑카전에서는 선발로 나선 선수 중 남태희를 제외하고 10명이나 교체되었다. 심지어 주장 손흥민이 2016년 11월 이후 4년 반 만에 처음으로 대표팀에 소집되고도 경기에 나서지 않고 휴식을 취한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역시 주전들의 체력안배라는 측면을 제외하면 플랜B와는 거리가 멀었다. 최약체 스리랑카는 냉정히 말해 한국 2, 3군이 나서도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였다. 벤투 감독은 선수들만 바꾸었을 뿐 포메이션과 전술 기조는 그대로 유지했다. 스리랑카전에서는 기존 주전인 황의조나 손흥민과는 스타일이 또 다른 장신공격수 김신욱을 투입했음에도 그를 활용한 측면 크로스 전술이나 경기템포의 변화 등은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올림픽팀의 배려 요청을 무시해가며 차출을 고집한 원두재나 이동경의 활용도 역시 의문부호를 자아냈다. 선수의 장점을 극대화하기보다 '자신이 원하는 전술에 선수를 끼워맞추려는' 벤투 감독의 스타일은 상대만 약해졌다는 것을 제외하면 한일전 때와 달라진 게 없었다고 볼 수 있다. 

가장 걱정스러운 부분은 최종예선이나 본선에서도 과연 이대로 무사히 순항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울리 슈틸리케 전 감독은 2차 예선까지 전 경기 전승-무실점으로 벤투 감독보다 더 뛰어난 성적을 올렸지만, 최종예선에서 중국-카타르 등에게 잇달아 덜미를 잡히며 낙마했다.

최종예선은 경쟁팀들의 수준이 높아진다. 운이 나쁘게 톱시드가 유력한 일본이나 이란, 호주를 만나게 된다면 한국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침대축구와 밀집수비로 한국을 괴롭히는 중동의 언더독들도 즐비하다. 여기에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아시아 최종예선 방식이 변경될 가능성도 있다. 지금처럼 홈앤드 어웨이 방식이 아니라 본선처럼 중립지역에 출전국을 모아놓고 버블 방식으로 조별리그-토너먼트로 진행되는 시나리오다. 단판승부는 이변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에서 한국처럼 전통의 강호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시나리오다.

더구나 최종예선을 통과하여 한국이 월드컵 본선에 나간다고 해도 세계적인 강호들과 경쟁해야한다. 현재 벤투호의 빌드업 축구는 벤투만의 독창적인 전술도 아니고 유럽의 축구트렌드를 그저 따라가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현재 벤투 감독의 빌드업 축구가 탈아시아 수준의 유럽-남미팀들을 만났을 때도 경쟁력이 있다고 볼 수 있을까.

한국보다 앞서 빌드업축구를 꾸준히 시도해왔던 일본만 해도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지쿠(브라질),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는 알베르토 자케로니(이탈리아) 등 외국인 감독들을 앞세워 지역예선부터 순항하며 4년간 꾸준히 연속성을 이어왔지만, 정작 본선에서는 경쟁력에 한계를 드러내며 조별리그 통과조차 실패한 바 있다. 고유의 장점이나 독창성이 없는 모방만으로는 '원조'를 뛰어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축구는 2010년 남아공월드컵을 이끈 허정무 감독을 마지막으로 지역예선부터 본선까지 완주하는 감독을 더 이상 배출하지 못했다. 벤투 감독에게 이번 3연승이 눈앞의 위기만 잠시 피한 산소호흡기에 불과했는지, 아니면 더 큰 도약을 위한 반전이었는지는 시간이 증명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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