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10월 방송된 JTBC 교양 프로그램 <장동건의 백 투 더 북스>가 제54회 휴스턴국제영화제에서 필름 다큐멘터리 부문 백금상을 수상했다. 김태영 감독이 연출하고 배우 장동건이 진행과 내레이션을 맡은 <백 투더 북스>는 총 4부작으로 중국, 프랑스, 일본, 한국의 서점을 탐방한 프로그램이다. 

서점 탐방 다큐멘터리가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할 수 있었던 이유는 중국의 센펑 서점을 다룬 1회만 봐도 알 수 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매체가 활개를 치고, 문자 문화가 위기를 맞은 이 상황에서 책을 파는 서점이 대체 뭘할 수 있을까? 다큐멘터리에 그 길이 있따.
 
공공도서관이 된 서점
 
 JTBC <백 투 더 북스>의 한 장면

JTBC <백 투 더 북스>의 한 장면 ⓒ JTBC

 
눈이 나빠서 칠판 글씨를 볼 수 없어 중학교조차 마칠 수 없었던 한 소년이 있었다. 책을 좋아하던 소년은 밤늦게 책을 보다 불을 냈다. 그 일로 그만 어머니께 쫓겨난 소년은 큰 아버지 댁에 머무르게 되었다. 자신이 머무르게 된 방에 책장을 두 개 짜넣은 소년은 자신은 물론 사람들이 책을 실컷 읽을 수 있는 공간을 꿈꿨다.

어른이 된 소년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문짝도 없는 허름한 4평짜리 서점을 열었다. 하지만 세상은 소년의 꿈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한 사람의 손님이라도 더 받기 위해 늦게까지 문을 열었지만 개업 8년 만에 폐업 신세를 면치 못했다. 죽으려고도 했다. 하지만 다시 심기일전, 빈 손으로 서점을 연 지 20여 년 만에 CNN, BBC, 독일 슈피겔지,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손꼽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중 하나의 주인이 되었다. 바로 셴펑 서점주 첸사오화이다.

셴펑(先逢), 거침없이 나아간다는 뜻을 지닌 셴펑 서점은 중국 인문학의 등불을 자처한다. 오전 9시 서점 앞에는 백화점 할인 행사같은 긴 줄이 늘어 서 있고, 서점 안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중국 지식인의 양심으로 무려 22년간 해외를 떠돌았던 시인 베이다와의 만남을 위해서다. 끼니는 걸러도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젊은이들의 열기는 흡사 콘서트장처럼 느껴진다. 베이다오만이 아니다. 세계 각국의 문화 인사들이 셴펑을 찾는다.

'독자의 품격을 높일 수 없으면 불합격', 셴펑의 정신이다. 특히 한 시대를 비추는 빛, 한 사람의 정신을 고양시키는 장르로서 '시' 전문 서점을 자청한다.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고향을 찾아 영원히 헤맨다'는 오스트리아 시인 게오르크 트라클의 시구를 서점의 지향으로 내건다. 삶의 이방인으로 다양한 지식의 항해를 통해 마음의 고향을 찾을 수 있는 '도시의 거실'이다.

또한 4000m²의 지하 방공호를 개조한 서점은 책을 파는 곳을 넘어 '공공 도서관'의 역할을 자처한다. 독자의 체험을 고려하여 설계된 서점은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혼자 앉아 책에 몰두할 수 있다.

중국이라는 국가에서 이율배반적으로 서점에 들어서면 마주치는 건 오르막길의 거대한 십자가이다. 젊은이들의 인기있는 명소가 된 이곳이 의미하는 바는 '종교'가 아니다. 책을 매개로 선한 의지에의 믿음을 십자가를 통해 구현하고자 한다. 그리고 십자가라는 상징물을 넘어 서점은 곳곳에 걸린 엽서처럼 아날로그적 소통의 공간을 제공하고, 사고파는 곳을 넘어 삶의 철학을 나누는 공간이 되고자 한다.

셴펑 서점의 향촌 살리기 프로젝트 
 
 JTBC <백 투 더 북스>의 한 장면

JTBC <백 투 더 북스>의 한 장면 ⓒ JTBC

 
그런데 어쩌면 셴펑 서점의 정신은 거대한 규모, 그곳을 꽉 채운 사람들의 장수성 최대의 공업 도시 난징 도심 숲속의 우타이산 본점보다는 15개에 이르는 분점을 통해 더 잘 드러날 지도 모르겠다. 

도시에서 차로 2시간을 달려간 셴펑 서점의 점주는 1천 년이나 산 소나무와 아름다운 경치가 있는 이 오지마을에 서점을 열 계획을 세운다. 그의 향촌 살리기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농촌 출신인 그는 농민들의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한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떠나고 쇠락해가는 농촌을 살리기 위해 공공시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해발 900m 가장 높은 지역, 그래서 가장 가난했던 진가오 마을에 전통 민가를 살려 14번째 분점을 연 게 1년 전이다. 2만 권의 책을 주민 스스로가 옮겨 만들어진 서점, 촌장이 서점의 직원이 되어 마을의 특산품을 팔았다. 1년이 지난 후 마을은 오지 마을의 서점을 찾는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버스로 2시간을 달려 책을 보기 위해 아이들이 온다. 첸샤오화가 원했던 인문학 부흥 운동의 중심이 되고 있는 중이다. 

셴펑 서점은 난징, 인후성 등 서점이 위치한 곳의 문화와 융합된 지점을 만든다. 건축물이 아니라, 그 자체로 문화가 됐다. 젊은이들이 즐겨찾는 여행지인 난징 옛 국민당 총통부 안에 서점이 있다. 명·청 시대 번영했던 노문동, 과거 시험을 준비하던 준혜 서옥도 셴펑 서점의 분점으로 변신한다. 예전 시대 그대로의 천창을 살리고, 옛 중국인들의 일생을 묘사한 섬세하고 화려한 목각 공예가 서점을 채운다 쑨원 묘지가 있는 영풍사의 분점에는 파블로 네루다, 푸시킨 등 여러 시인들의 방이 마련되어 있다.

영풍사 분점에서는 주기적으로 직원들의 시 낭송회가 주최된다. 본점에는 70년 된 배로 만들어진 '노전 공작소'가 있다. 역시나 직원들을 위한 공간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경영권, 분배권, 채용권을 나눈 수평적 조직가 백미이다. 문화 셴펑 서점은 젊은이들에게 인기있는 직장이다.

셴펑 서점은 그저 책을 파는 곳이라는 '경제적 공간'인 서점이 어떤 철학적 모토를 가지고 실천하는가에 따라 한 시대를 이끌어가는 문화적 이정표로 거듭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 https://brunch.co.kr/@5252-jh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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