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노회찬, 6411>의 한 장면.

다큐멘터리 영화 <노회찬, 6411>의 한 장면. ⓒ 명필름


제주 관련, 그리고 몇 개의 독립 영화와 노동 관련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왔던 그에게 정치인 노회찬은 생소한 사람이었다. 한 지상파 방송국 피디와 전통 있는 영화제작사 명필름의 제안이 왔을 때부터 노회찬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마침 준비 중이던 다른 작품을 한쪽에 제쳐놓을 정도로 그는 노회찬이라는 사람에 매료됐다.

생전 고인이 남긴 명연설의 일부를 따와 제목으로 삼은 민환기 감독을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기간에 만났다. 전주시네마프로젝트에 선정된 <노회찬, 6411>을 통해 그는 노회찬이라는 사람을 보여줌과 동시에 진보정당 운동 50년사를 정리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 결과 180분에 달하는 상당한 분량의 결과물이 탄생했다.

6411번 버스에 담긴 노회찬 정신

서울 구로에서 출발해 대림, 영등포, 강남 등을 지나는 버스 노선인 6411을 언급하며 말 그대로 노동자, 서민의 삶을 누구보다 이해했고 그들의 틈에서 대중 정치의 꿈을 키웠던 사람. 민환기 감독은 "젊은 시절 가졌던 이상을 포기하지 않은 분"이라며 영화 작업 중 느낀 고인의 매력을 하나씩 전했다.

"많은 사람들이 살면서 경로를 변경한다. 근데 그분은 그런 게 없더라. 개인적 인연이랄게 없었다. 그의 강연을 한 번 듣고 악수 한 번 했을 정도였다. 솔직히 부담스럽긴 했다. 제가 성격이 약간 못돼서 그를 영웅으로 그리기보단 인간적 약점이나 한계를 다루려 했는데 개인적 삶이 가장 축소된 사람이랄까. 약점이라면 이게 약점이었다. 다른 사람보단 제가 하는 게 현실적인 노회찬을 그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보통 좌파라고 하는 집단이 있잖나. 노회찬은 그 집단 중에서도 좀 더 좌에 계신데 어떻게 보면 관념적이고 이론적인 것을 관철하려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과격함이 있으면서도 유머가 남다른 분이었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여실지견', 그리고 사실에 입각해 진리를 탐구하려는 '실사구시'. 이 두 단어가 그를 잘 설명하는 것 같다. 이념적 과격성이 있다고 봤는데 훨씬 더 유연하시고 구체적인 분이었다."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초청작 다큐멘터리 <노회찬, 6411>을 연출한 민환기 감독.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초청작 다큐멘터리 <노회찬, 6411>을 연출한 민환기 감독. ⓒ 이선필

 
물론 모든 게 완벽한 건 아니었다.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관련 댓글 여론 조작 사건인 일명 '드루킹 사건'을 특검이 조사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노회찬 의원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는 민 감독을 주저하게 했다. 불법 정치자금인지 충분히 따져볼 요소가 있었지만 노회찬은 비극적 선택을 했다.

민 감독은 "전 국민이 알고 있는 사안인 만큼 그의 죽음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많이 망설였다"며 "그의 추모 행렬을 보며 생각보다 일반 시민들이 그분에 대해 잘 있다는 걸 느끼고 죽음 자체는 다루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노회찬에 앞서 정치인 다큐멘터리로 소환된 사람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와 함께 자신이 주장하고 실현하고자 했던 가치와 삶의 불일치가 발견된 뒤 극단적 선택을 했다. 시민들이 나서서 추모하고 기렸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동시에 이런 정치인의 죽음은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어떤 모순을 건드리기도 한다.

보통 사람들의 위대한 힘

"세상이 나빠지고 좋아지는 건 어쩌면 몇 명의 악당이 있어서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동의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미디어 환경도 문제다. 적어도 노회찬이 살아 있을 땐 좌우 할 것 없이 자유롭게 토론했고 서로 그걸 즐겼던 것 같다. 근데 이젠 미디어가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그런 장을 잘 만들어주지 않는다. 사실 미디어 종사자라면 돈이 아닌 공익을 생각해야지. 근데 다들 그런 가치는 옆으로 제쳐 두고 있는 것 같다.

TV 토론 프로를 하는 건 결국 개인의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각자 분야에서 이런 노력이 쌓이면 세상이 바뀌는 것 같은데 2000년대에 비해 우리 사회를 사는 개인들이 많이 후퇴한 것 같다. 자신들이 하는 작은 선택에 기대를 안 하고 있지 않나 싶다. 정치인의 선택이 아닌 다수 시민들의 작은 선택이 중요하다. 스스로가 이 사회에 영향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많이 흐려진 것 같다."


민환기 감독은 노회찬이야말로 그런 시민들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끊임없이 그걸 알려주려 한 정치인 중 하나였다고 강조했다. "사람들이 본래 다들 품고 있는 선한 마음, 선한 의지를 발현할 수 있게 건드려 준 사람이었다"며 민 감독은 말을 이었다.

"우리 사회가 너무 경제적 조건 때문에 삶 자체가 결정되어 버리잖나. 노회찬은 그런 사회 말고 적어도 자신의 삶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사회를 원했던 것 같다. 그래서 세금 문제, 보육 문제 등에서 서민들의 경제적 부담은 국가가 덜어주고 대신 서민들로 하여금 미래를 꿈꾸게 만들어주는 사회를 만들고자 했다. 사실 다들 그걸 알고 있었고, 이뤄주길 바랐던 거지." 

지난해 7월부터 기획했던 이 프로젝트는 아직 진행 중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여러 인터뷰이 외에 감독은 추가로 노회찬에 대해 말해줄 사람들을 섭외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노회찬의 정치적 동지이자 아내였던 김지선씨, 그리고 심상정, 이정미 등 진보 운동을 함께 했던 이들이다. 이번 영화 촬영 땐 여러 이유로 등장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추가로 촬영해 편집을 다시 한다는 게 감독의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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