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오브 라만차>와 세 번째 재회, 배우 서영주 지난 4월 21일 늦은 오후, 공연 시작 직전의 충무아트센터에서 <맨 오브 라만차>의 배우 서영주를 만났다. '라만차의 기사'가 되기를 꿈꾸는 그는, 이번에도 '도지사' 역을 맡아 세르반테스의 작품에 감화되어 변화하는 인물을 맡는다. 극중극에서는 '여관주인'을 맡게 된다.

▲ '라만차의 기사'가 될 준비 “지금 주연하는 배우들이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던데요? (웃음) 저는 운동도 계속 하고 있고, 관리도 계속 하고 있고, 몸무게도 아주 똑같이 유지하고 있으니까요. 항상 준비하고 있는, 준비되어 있는 배우입니다. (웃음)” ⓒ 곽우신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는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원작으로 삼은 작품이다.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지하감옥으로 끌려온 세르반테스는, 정식 재판에 앞서 감옥 속 죄수들로부터 또 하나의 재판을 받게 된다. 이들의 허락 없이는 마음대로 들고 나갈 수 없는 감옥. 그곳에서 '도지사'로 불리는 한 남자 죄수는 귀족이자, 시인이자, 극작가이자, 세금 공무원인 세르반테스에게 관심을 보인다. 세르반테스는 "이상주의자, 엉터리 글쟁이, 답답할 정도로 고지식한 인간"으로 기소되고, 세르반테스는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공연'의 형태로 변론을 해보겠다고 한다.
 
본 법정의 재판장인 도지사는 이 지하감옥에서 세르반테스가 원하는 대로 공연을 펼칠 수 있도록 허락한다. 세르반테스는 각 죄수들에게 배역을 하나씩 선물한다. 날카롭고 차가워 보이던 도지사에게는 '친절한 주막집 주인'을 연기해달라고 부탁한다. 도지사가 연기하는 극중극의 여관주인은 싫은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조금 수다스럽고 따뜻한 전형의 인간이다. 돈키호테가 "영주님"이라고 부르며 하는 말에 맞장구를 치며 그에게 필요한 것들을 군말 없이 해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여관주인이 돈키호테의 부탁을 들어준 건, 돈키호테의 행위가 정말로 숭고하고, 무너진 '기사도'가 가치 있다고 믿어서가 아니다. 악이라는 것은 호락호락하게 없어지는 것이 아니니, 이제 그만 하면 안 되겠느냐고 돈키호테의 안위를 염려하기도 한다. 그것은 마치 도지사가 세르반테스를 보는 시선과 비슷하다. 하지만 도지사는 여관주인을 연기하며, 돈키호테를 바라보며, 세르반테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그의 변론에 감화된다. 도지사는 종교재판을 받기 위해 지하감옥 밖으로 걸어 올라가는 그에게 '불가능한 꿈(Impossible Dream)'을 불러주기 위해 앞으로 나서는 인물 중 하나가 된다.
 
오는 16일,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맨 오브 라만차>. 폐막을 앞두고, 배우 서영주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 글은 그와 지난 4월 말, 공연을 앞둔 극장 로비에서 만나 나눈 이야기이다.  

도지사 그리고 여관주인
  

<맨 오브 라만차>와 세 번째 재회, 배우 서영주 지난 4월 21일 늦은 오후, 공연 시작 직전의 충무아트센터에서 <맨 오브 라만차>의 배우 서영주를 만났다. '라만차의 기사'가 되기를 꿈꾸는 그는, 이번에도 '도지사' 역을 맡아 세르반테스의 작품에 감화되어 변화하는 인물을 맡는다. 극중극에서는 '여관주인'을 맡게 된다.

▲ 1인 2역, 도지사와 여관주인 “제가 대본을 처음 봤을 때, ‘아, 이거를 완전히 확실하게 대비가 되게 하면 훨씬 더 관객 분들이 더 지루하지 않고 재밌게 보실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쨌든 이게 1인 2역의 극중극 형식이잖아요. 도지사를 그대로 가져가서 여관주인을 한다는 건 너무 밋밋할 것 같아서, ‘차라리 완전히 반대되게 해야 되겠다’라고 캐릭터를 만들었죠.” ⓒ 곽우신

 
배우 서영주는 이번이 <맨 오브 라만차>와 세 번째 만남이다. 지난 2012년을 시작으로 2013~2014 시즌에 이어 이번 시즌에도 '도지사'에 복귀했다. 수없이 소화한 작품, 소화한 인물의 이야기를 이 관록의 배우가 자유분방하게 풀어놓을 줄 알았다. 하지만 오히려 그는 자신이 답변하는 것에 대해 굉장히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연출이나 작가의 영역에 혹시나 자신의 해석이 덧대어질까봐 경계하는 눈치였다. 세부적으로 전사를 짜기보다는, 무대 위 자신에게 주어진 순간에 더 최선을 다하는 스타일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내세우기보다 작품과 작품을 둘러싼 주변의 여러 환경을 최대한 존중하려고 애썼다. 그를 지금 이 자리까지 버티고 있게 해준 것은 단단한 발성, 디테일한 표현력, 재치 있는 애드리브뿐만 아니라, 이처럼 작품과 주변 동료들에 대한 '존중'의 태도도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그런 그에게 '도지사'는 자신이 색칠해야 할 빈칸이 꽤 많은 인물이었다.
 
"처음에 간수, '캡틴'이라는 자가 세르반테스를 끌고 내려올 때,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도둑이나 살인자들이다'라고 하잖아요. 텍스트상 정보는 그거 밖에 없어요. 그 감옥 내에서 도지사는 어떻게 우두머리가 되었을까? 연출한테도 도지사가 이 감독의 우두머리라는 것 말고는 구체적으로 들려준 게 없어요. 영어 대본에도 보면 이름은 없고 그냥 '거버너(governor)'라고 나와요. 제가 생각을 해봤을 때는, 적어도 감옥은 힘, 무력, 권력, 돈 등이 우선시되는 곳이니까, 감옥 내에서 '짱'을 하려면 도지사도 무언가 그런 게 있었겠죠.
 
도지사는 감옥에 들어온 지 굉장히 오래 되었다고 가정해요. 어쨌든 감옥에서 '넘버 원'이기 때문에, 언제 나갈지 기약도 없죠. 제 나름대로의 합리화를 하자면, 너무 무료했겠죠. 나의 무료함을 방해하는 것들, 시끄러운 것들이 들어온 거잖아요. 거기에 맞물려서 마침 처음 보는 귀족, 감옥에 들어오기 힘든 귀족이 들어오니까 호기심이 발동했겠죠. '아, 시간 때울 거리가 하나 들어왔다. 요걸 어떻게 한번 갖고 놀아야겠다' 그런 동기에서 시작을 하지 않았을까요?"

  

<맨 오브 라만차>와 세 번째 재회, 배우 서영주 지난 4월 21일 늦은 오후, 공연 시작 직전의 충무아트센터에서 <맨 오브 라만차>의 배우 서영주를 만났다. '라만차의 기사'가 되기를 꿈꾸는 그는, 이번에도 '도지사' 역을 맡아 세르반테스의 작품에 감화되어 변화하는 인물을 맡는다. 극중극에서는 '여관주인'을 맡게 된다.

▲ 마지막 '불가능한 꿈' 합창 “계속 돈키호테가 일련의 사건들을 내 눈 앞에서 연기하고 노래했기 때문에, 도지사도 감정이입을 했던 것 같아요. 감옥에 있던 죄수들이 다 동화가 되는데, 도지사도 그동안 계속 장난 식으로 하다가 마지막에는 같이 노래를 하는 거죠.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는 형제’라고 말하면서 노래를 하는 부분이, <맨 오브 라만차>에서 가장 압권인 부분이 아닐까요.” ⓒ 곽우신

 
극 속의 '도지사'와 극중극의 '여관주인'은 같은 인물이 연기하는 것인데도 정반대의 성격을 품은 인물이다. 세르반테스가 처음 등장했을 때 "죽이는 건 좋은데, 좀 조용히 죽이란 말이야"라며 화를 내던 도지사, 그가 "네네~ 기사님"하며 돈키호테에게 예를 갖추어 인사하는 여관주인을 별 불만 없이 연기할 수 있었던 건 무엇 때문일까? 서영주는 '약속'을 그 열쇳말로 골랐다.
 
"그 당시 중세 유럽에서 술집과 여관을 같이 하는 직업이 흔치는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예를 들어서, 가게에 경호원들도 항상 있었다고 들었거든요. 그런데 이 여관주인은 도지사가 연기하는 인물이죠. 세르반테스가 도지사에게 '친절한 주막집 주인을 연기해 주시겠습니까?'라고 하자 도지사가 '너 사람 잘 봤다'라고 약속하죠.
 
사실은 극중극의 여관주인은 도지사가 그 '약속'을 이행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나 같으면 한번쯤 극중극에서 빠져 나와서 성질을 낼 것 같은데…. (웃음) 마치 여관주인도 돈키호테에게 정원에서 동 트기 전에 기사 책봉을 싹 다 해드린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그 약속을 지키는 것처럼요. 대사 중에 제일 여관 주인을 제일 잘 알 수 있는 대사는 '미친 사람도 신의 자식이에요'라고 생각해요. 누가 봐도 우스꽝스럽고 미친 사람 같지만, 여관 주인은 그를 받아들이죠. 귀찮은 건 싫어하지만 기본적으로 따뜻한 정서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시간을 때우기 위한, 그저 재미를 위한 작업이었던 극중극 연기는 후반부로 달려갈수록 죄수들에게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지하감옥이라는 현실은 때때로 죄수들을 극중극에서 흔들어 깨워 강제로 척박한 지옥으로 소환한다. 그러나 돈키호테가 거울의 기사에게 쓰러진 채 극이 끝나 버리자, 도지사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거칠게 외친다. 그가 지금까지 보아오고 연기한 작품은 여기서 이렇게 끝나면 안 되는 것이었다.
 
"거울의 기사 신이 끝난 다음에 돈키호테가 쓰러지잖아요. 그런데 그 타이밍에 딱 간수가 위에서 '세르반테스 출두 준비'라고 하죠. 도지사 입장에서는 그 동안 극을 계속 진행해 오는 과정에서 계속 돈키호테한테 이입되었잖아요. 돈키호테가 당하기도 하고, 또 돈키호테가 좋은 일도 하고, 한 여자를 흠모하는 걸 다 봐왔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갑자기 화장실 갔다가 그냥 나온 것처럼 끝나버린 것 자체에 대해서 굉장히 불만이었겠죠. 도지사는 막연하지만 더 멋진 결말을 바라고 있었을 겁니다. 세르반테스한테 어떻게 해서 더 좋은 쪽으로 끝을 낼 수 있을지 고민했겠죠."
 

그는 세르반테스의 변론이 실패했다고 말하며 그 원고를 불구덩이에 던져 넣으려고 한다. 바로 그때, 세르반테스는 즉흥의 형태로 극을 마무리하겠다고 나선다. 그렇게 마무리 된 극중극 덕분에 원고는 무사히 다시 세르반테스의 손으로 돌아온다. 도지사는 그 원고를 돌려주며 이제 여기에 뭐가 있는지 알 것 같다고 말한다. 배우 서영주에게, 도지사가 원고를 불태우려던 그 행위는 더 멋진 결말을 위한 행동이었다.
 
배우와 배우의 호흡, 관객과 관객의 호흡
  

<맨 오브 라만차>와 세 번째 재회, 배우 서영주 지난 4월 21일 늦은 오후, 공연 시작 직전의 충무아트센터에서 <맨 오브 라만차>의 배우 서영주를 만났다. '라만차의 기사'가 되기를 꿈꾸는 그는, 이번에도 '도지사' 역을 맡아 세르반테스의 작품에 감화되어 변화하는 인물을 맡는다. 극중극에서는 '여관주인'을 맡게 된다.

▲ <맨 오브 라만차>가 좋은 작품인 이유 “처음에 제가 2012년도에 연습실에서, 마지막에 알돈자가 침대에 누워있는 알론조 키하나에게 자신을 못 알아보고 할 때 ‘나를 좀 제발 알아봐줘요’하고 둘시네아 노래를 부르잖아요. 그 신에서는 정말 연습실에서도 눈물이 엄청 났었거든요. 그 당시에는, 요즘에는 안 나지만…. (웃음) 처음에 딱 연습에 임했을 때, 연습실에 있는 배우 전부가 다 그 신에서 울대가 올라오는 경험을 했었죠. 그때 ‘아, 정말 좋은 작품이구나’ 느꼈어요.” ⓒ 곽우신


 
무대 위에서 그는 적절한 애드리브와 함께 공연 전체에 생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충실히 소화한다. 대사에 없지만 이제는 대사보다 더 대사처럼 붙어버린 애드리브도 있고, 즉석에서 나오는 애드리브도 존재한다. 다른 주연 배우들과의 '티키타카'도 언제나 유쾌하다. 배우 조승우가 장갑 낀 손을 거의 자신의 목젖에 닿을 때까지 들이밀었을 때, 배우 류정한이 갑자기 무대 위에서 '영주영주'하고 외칠 때, 그는 순간 당황하면서도 이를 극적 재미로 만들어 관객들에게 또 하나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컨디션이 안 좋거나 조금 그런 날,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대사를 할 때가 있는 걸 간혹 느껴요. 저는 그게 너무 싫어요. 정말 제가 배우로서 제일 금기시 하는 게 그거거든요. 그래서 항상 이 공연을 처음 하는 것처럼 자꾸 생각하려고 계속 리마인드해요. 그리고 매일매일 똑같은 대사를 하더라도, 말투가 다르고, 억양이 다르고, 그 다음에 약간씩 대사도 다르고 눈빛도 다르고…. 거기에 맞춰서 마치 처음 듣는 대사, 처음 듣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연기를 해야, 훨씬 더 살아 있는 연기가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평상시에 많이 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항상, 오늘 처음 하는 공연처럼 하려는 노력을 많이 하고 있어요.
 
예전 같으면, 저보다 선배들이 있고, 선생님들이 계셨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웃음) 예전에 공연은 짜인 대로, 정해진 호흡대로만 하는 거였어요. 호흡을 딱 맞춰 놨는데, 얘가 애드리브를 이렇게 해? 그럼 또 다른 배우는 이렇게 맞춰 줘야 하고, 그런데 어떤 배우는 그대로 하던 대로 할 수도 있고… 그러면 흐름이 이상해지기 시작하는 거죠. 그래서 그렇게 했다가는 선생님들한테 혼났어요. (웃음) 그런데 요즘에는 그런 게 아니잖아요? 연기 트렌드도 바뀌고 있는 것 같아요. 그날그날에 상황에 맞게 대사도 뉘앙스를 바꿔 줘야, 훨씬 더 공연이 살아있게끔 느껴지는 것 같아요."


무대 위 배우와 배우의 호흡이 중요한 것처럼, 그 서로의 호흡과 박자와 노선의 합을 맞추어가며 공연은 매번 같으면서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각자 다른 것들의 호흡과 소통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하모니이다. 배우 사이의 호흡이 중요한 만큼, 배우와 관객의 호흡도 중요하다.
 

<맨 오브 라만차>와 세 번째 재회, 배우 서영주 지난 4월 21일 늦은 오후, 공연 시작 직전의 충무아트센터에서 <맨 오브 라만차>의 배우 서영주를 만났다. '라만차의 기사'가 되기를 꿈꾸는 그는, 이번에도 '도지사' 역을 맡아 세르반테스의 작품에 감화되어 변화하는 인물을 맡는다. 극중극에서는 '여관주인'을 맡게 된다.

▲ 가장 좋아하는 장면 “재미있는 장면도 많고 감동적인 장면도 많지만…. 두 개 정도? 처음에 돈키호테가 주막집에 찾아와서 알돈자를 보고 둘시네아라고, 자기가 사랑하는 나의 흠모하는 여인이라면서 ‘둘시네아’ 노래를 부르는 장면, 그리고 마지막에 알돈자가 돈키호테가 침대에 누워있을 때 부르는 ‘둘시네아 리프라이즈’. 그게 참 좋은 것 같아요. 다 둘시네아네? (웃음)” ⓒ 곽우신

 
<맨 오브 라만차>는 작품이 메시지를 표현하는 방식에 대해 여러 논쟁과 비판이 따라붙었던 작품이다. 비판에 직면할 때마다, 이 작품은 매번 조금씩 변화를 주어가며 관객에게 나름의 답을 내놓았다. 그 답이 또 다른 비판을 불러왔을 때도 있고, 다른 종류의 논쟁을 불러일으킨 적도 있지만, 어쨌든 이 작품은 관객의 목소리에 귀를 닫지 않은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개인적인 생각은, 극은 극으로 봐 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요.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있잖아요. 저희도 변하고, 관객 분들도 변하고, 모두가 다 변하는 과도기에 있는 것 같아요. 관객이 변하고 있고, 그런 변화가 주류라고 하면, 저는 거기에 맞추는 게 또 맞다고 생각해요. 일단 저희는 기본적으로 관객 분들이 오셔야 계속 이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관객 분들 없이는 저희는 무의미한 존재들이니까요. 그런 관객 분들께서 불편하게 느끼신다면 맞춰 드리는 게 맞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예를 들자면, 그 전 작품인 <스위니 토드>에서도 제가 터핀 판사 역을 할 때, 혼자 웃통을 벗고 채찍질을 하면서 변태 성욕을 채우는 인물이었죠. 성폭행하는 신도 나오고요. 제가 예전에 다른 인터뷰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던 것 같은데, 그 캐릭터를 만들면서도 고민을 많이 했어요. 디테일한 연출 디렉션이 있던 건 아니었거든요. 물론 제가 기본적으로 평상시에 성격이 예민하다보니, 몸매를 계속 유지를 안 하면 못 견뎌요. 그런데 그런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관객 분들에게 덜 부담스럽게 보일 수 있는 방법이 뭔지 고민해서 몸을 만든 거예요.
 
또 이게 그 연기를 그냥 생으로 해버리게 되면 관객들 보시기에 정말 역겨울 것 같아서, 머리도 완전히 탈색을 했죠. 터핀 판사가 현실의 인간처럼 느껴지면 안 되니까요. 현실적으로 보이는, 옆집 동네 아저씨가 나와서 하는 것처럼 보이면 저라도 '저 신 당장 빼라'라고 그랬을 것 같아요. 그래서 조금이나마 관객 분들에게 부담이 덜 되게 보이게끔 했었죠. 그래서 아마, 이제 터핀 판사는 저 아니면 하기 힘들 거예요. (웃음) 새로 하시는 분은 굉장히 힘들 걸요?"
 

배우의 욕심, 선배의 욕심
  

<맨 오브 라만차>와 세 번째 재회, 배우 서영주 지난 4월 21일 늦은 오후, 공연 시작 직전의 충무아트센터에서 <맨 오브 라만차>의 배우 서영주를 만났다. '라만차의 기사'가 되기를 꿈꾸는 그는, 이번에도 '도지사' 역을 맡아 세르반테스의 작품에 감화되어 변화하는 인물을 맡는다. 극중극에서는 '여관주인'을 맡게 된다.

▲ 실제 서영주는 어느 쪽에 가깝나? “아니 뭐 도지사 성격도 가끔 나오기도 하고, 여관 주인도 가끔 나오기도 하고, 그렇죠 뭐. 살다 보면…. (웃음) 원래 가지고 있는 건 그냥 집에 있는 것 좋아하고, 귀찮은 거 싫어하는 편인 것 같아요. 많이 활발하지는 않습니다.” ⓒ 곽우신

 
배우 서영주는 <맨 오브 라만차>를 "저에게 '영주영주'라는 별명을 준 작품"이라고 정의했다. 돈키호테에게 늘 "영주님"으로 불리는 여관주인을 연기하면서, 2012년도에 처음 생긴 별명이다. 그가 원래 돈키호테로 오디션을 봤다가 도지사에 낙점됐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하지만 그는 "그 전에는 언제나 배우 서영주, 서영주 배우님이었는데 '영주영주'가 생기고 나서는 참 고맙고 감사하다"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런 '영주영주'에게도 꿈이 있다. 이번 시즌 모든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공통적으로 "라만차의 기사가 되고 싶다"라고 목소리 높이고 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이야기하고 있다"라면서 웃어 보이는 그에게서, 데뷔 30주년임에도 여전히 연기자로서의 욕심과 꿈을 품고 있음이 느껴졌다. "앞으로 배우로서의 구체적인 목표나 계획은 없다"라고 하면서도 <맨 오브 라만차>의 돈키호테만큼은 꼭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 스스로 이 작품의 넘버 제목인 "불가능한 꿈"에 비유하면서도, "그 꿈을 꾸라는 게 이 작품의 메시지 아니냐"라며 포기하지 않았다. 그것은 배우로서의 건강한 욕심이기도 했고, 무대 제작 환경을 둘러싼 비판이기도 했다.
 
"항상 배우는 맡겨진 게 있으면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제가 그렇다고 해서 이 도지사 역할을 앞으로 몇 년을 더 할 수 있을지는… (웃음) 할 수 있을 만큼 해야죠! 그 만큼 관리도 잘 해야 겠지만요. '돈키호테'가 아니라 도지사로서도 불러만 주신다면 할 수 있는 만큼 할 겁니다.
 
다만, 아쉬운 건 있어요. 10년 전만 하더라도 조연에서 주연으로 올라올 수 있는 기회가 훨씬 많았어요. 제가 돈키호테를 자꾸 말씀드리는 것도, 제가 '영주영주'를 하다가 돈키호테를 하는 건, 저도 계속 꿈꿔 왔던 일이고, 관객 분들한테도 매일 먹던 게 아닌 다른 음식을 맛보는 기분을 드릴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인간승리 아닐까요? (웃음)
 
제가 <명성황후>도 초연 때부터 시작해서 오랫동안 해 왔던 작품인데, 처음에 시작할 때 제가 어렸기 때문에 앙상블부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고종을 맡은 게 10주년 때였어요. 제가 앙상블 할 때도 고종의 언더스터디였거든요. 그 고종 언더스터디를 쭉 해오다가 정식으로 고종을 맡고 나니까, 분장실에서 첫 공연 날 굉장히 울컥했던 기억이 있어요. 왕의 옷을 입고 거울을 보면서 '이야, 이게 10년이 걸렸구나!'라고 혼자 저한테 되뇌었어요. 그래서 아직 꿈을 잃지 않고 있어요. 작품의 메시지도 그렇잖아요? (웃음)
 
물론, 대극장 뮤지컬 시장의 특성상, 어떤 배우가 타이틀 롤을 맡았을 때 객석을 어느 정도 채워줘야 하죠. '잘 팔아야' 주연도 할 수 있는 건데, 저는 그게 안 되니까… 입장 바꿔 생각하면 제작자 마음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순전히 제 개인적인 욕심입니다만… 그래도 더 다양한 배우들에게 기회를 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충분히 이 작품은 나이가 있는, 경험이 있는, 잔뼈가 굵은 배우가 하면 더 풍성해질 수 있습니다. 아니, 횟수를 줄여도 좋으니까! 그러니까 딱 10회만 달라니까? 뭐 그런 얘기를 농담 삼아했죠. (웃음)"

 
배우 서영주는 어느덧 자신이 등을 바라보는 선배보다, 자신의 등을 바라보는 후배가 훨씬 많은 위치에 올라왔다. 그는 자신이 어떤 자리에 있는지는 분명히 자각하고 있었다. 자신이 어떤 길을 걷느냐가, 어떤 후배에게는 이정표이자 롤모델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가 주연에 욕심을 내는 데는 그런 이유도 포함되어 있다. 그는 스스로 좋은 선배가 아니라고 했지만, 최소한 좋은 선배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었다.
 
"제가 20대 때, 어떤 게 좋은 선배인지에 생각해본 적이 있었어요. 그때는 무대에서 제대로 보여주는 선배가 제일 좋은 선배라고 생각했어요. 사생활은 차치하고, 일단 현장에서 제일 제대로 보여주는 선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컨디션이 어떻든 항상 기본 이상을 유지할 수 있는 선배… 물론, 그 생각도 맞지만 요즘에는 생각이 바뀌었어요. 좀 더 주변을 아우르는, 아우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선배가 더 좋은 선배인 것 같아요. 저 스스로 그 부분이 많이 부족하다고 느끼고요. 아,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죠. 예전에는 극단적으로 송곳이었다면, 지금은 한 십자드라이버 정도? (웃음)
 
이 시국에 다행스럽고 감사하게도 지방 공연에 갔다 왔잖아요. 밖에서 음주는 못하니까, 대전에서 같은 숙소에 묵은 딱 4명이서 방에 모여서 간단하게 술 한 잔씩 하면서 이야기했어요. 다 저보다 동생들이었죠. 제 위로는 없으니까. (웃음) 그런데 한 친구가 '선배님, 아직까지 뮤지컬 쪽에서 이름도 있으시고 계속 무대를 지켜주시는 게 굉장히 대단한 것 같다'라고 말하더라고요. 그 당시에는 '닥쳐, 술이나 먹어' 그랬는데, 속으로는 고마웠죠. 좀 낯간지럽긴 하지만, 그냥 이때까지 계속 맡은 작업을 열심히 해 오는 와중에 여기까지 온 것인데… 많은 분께 감사한 마음으로 있죠. 30년이 됐다는 게 아직까지 믿기지 않는데, 그 30년을 계속 나름 활발하게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나름 스스로 대견하기도 하고 그래요."

 
이번 시즌 <맨 오브 라만차>는 우여곡절이 참 많았다. 당초 예정되었던 개막일이 코로나19 확산으로 계속해서 밀리게 됐다. 결국 간신히 개막 기회를 잡았지만 당초 예정되었던 공연 일정에서 3분의 2 가까이가 지난 뒤였다. 한 달가량만 간신히 채우고 다음을 기약해야 되나 싶다가, 극장을 옮겨 서울에서 한 번 더 공연할 수 있게 되었다. 작품을 사랑한 배우와 관객에게는 무척이나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이런 적은 저도 처음 겪고, 관객 분들도 처음 겪고, 제작사 분들도 다 처음 겪는 경험이다 보니까... 일단 기본적으로 너무너무 감사하고 고마워요. 한편으로는 거기에 따른 책임감도 더 느끼고요. 극장을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어려운 시국에 이렇게 공연을 좋아해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영주영주'를 만들어주신 관객 분들한테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객석에 띄어 앉기까지 하시면서, 이렇게 많이 채워 주시는 관객 분들이 정말 대단하고 감사드려요. 그렇기 때문에 공연 전에 풀어지더라도 항상 '보러 오시는 분들한테 밥값은 해야 되지 않겠느냐' 이렇게 우리들끼리 마음 다지고 파이팅 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계속 할 테니까 관객 분들도 계속 사랑해 주시기 바라요."
 

<맨 오브 라만차>와 세 번째 재회, 배우 서영주 지난 4월 21일 늦은 오후, 공연 시작 직전의 충무아트센터에서 <맨 오브 라만차>의 배우 서영주를 만났다. '라만차의 기사'가 되기를 꿈꾸는 그는, 이번에도 '도지사' 역을 맡아 세르반테스의 작품에 감화되어 변화하는 인물을 맡는다. 극중극에서는 '여관주인'을 맡게 된다.

▲ 관객이 극장을 나갈 때 "'행복'을 느끼면서 극장을 나가셨으면 더 이상 바람이 없겠어요. 감동도 하시고, 웃기도 하시지만, 공연이 완전히 끝나서 집에 돌아가실 때에는 정말 좋은 작품 하나 때문에 굉장히 마음 뿌듯해지고 행복해지는 그 경험을 갖고 가시면 좋겠습니다." ⓒ 곽우신


 

맨오브라만차 도지사 여관주인 서영주 영주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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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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