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작은 관심, 믿음, 뚝심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는 선한 나비효과가 될 수 있을까. 방송인 유재석은 그럴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지금도 그 믿음을 꾸준히 실천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국민 MC 유재석이 데뷔 30주년을 맞아 그동안의 방송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5일 방송된 tvN 예능 프로그램 <유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은 MC 유재석 데뷔 30주년 기념 특집으로 꾸며졌다.
 
  5일 방송된 tvN 예능 프로그램 <유퀴즈 온더 블록>(이하 유퀴즈)은 MC 유재석 데뷔 30주년 기념 특집으로 꾸며졌다.

5일 방송된 tvN 예능 프로그램 <유퀴즈 온더 블록>(이하 유퀴즈)은 MC 유재석 데뷔 30주년 기념 특집으로 꾸며졌다. ⓒ tvN

 
"엄청난 소회는 없다" 유재석다운 소감

유재석은 1991년 5월 5일에 제1회 KBS 대학개그제에서 입상하며 방송경력을 시작했고 정확히 데뷔 30주년을 맞이했다. <유퀴즈>는 유재석의 방송인생을 가까이서 함께 지켜봐 온 선후배 동료들을 손님으로 초대하며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오랜 세월 수많은 방송을 누비며 활약해 온 유재석이지만 주로 진행자로서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역할에만 익숙했던 그가 '이야기의 중심'이 된 것은 시청자들에게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유재석은 제작진과 팬들이 마련한 데뷔 30돌 기념 잔칫상을 받고 시작부터 쑥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대형 꽃다발을 선물하자 "마음은 감사한데 이런 거 싫다. 가지고 돌아가라"고 거부하여 웃음을 안기는가 하면 "미안하지만 (30주년이라고) 엄청난 소회가 있지는 않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열심히 제 앞에 놓인 일을 하며 한주 한주 살아가겠다"며 유재석다운 소감을 전했다.

이어 유재석의 지인들이 연이어 출연했다. 유재석을 예능 버라이어티로 이끌어 준 KBS2 <자유선언 토요일> PD였던 김석윤 감독은 전화 연결을 통해 유재석에게 메뚜기 탈을 처음으로 씌운 일화를 밝혔다.

김 감독은 유재석이 처음에는 메뚜기 탈을 쓰기 싫어했다고 이야기하면서 "당시 유재석이 아직 이휘재, 강호동, 남희석 같은 유명 MC가 아니어서 일반인들이 못 알아볼 수 있었다. 그래서 뭔가 캐릭터를 줘야겠다 싶어서 메뚜기 탈을 씌웠고, 그때부터 유재석이 대중들에게 각인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유재석은 "내 인생을 바꿔준 PD 중 한 명이 김석윤 PD"라며 "그 당시에 내 스스로도 나를 포기하려 했을 때 나를 버라이어티로 이끌어 주신 분"이라며 고마운 속내를 드러냈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유재석이 처음부터 방송에서 성공가도를 달렸던 것은 아니다. 대학개그제 입상으로 데뷔 초에 잠깐 주목받았지만 이후로 기나긴 무명생활이 이어졌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동기와 선배들이 스타가 되는 모습을 지켜봐야했고, 유재석은 부족한 개인기와 방송 울렁증으로 마음고생을 해야했다.

<유퀴즈>는 과거 유재석이 약 10년 전 MBC <무한도전>에서 자신의 방송인생을 돌아보던 장면을 다시 꺼냈다. 화면 속 유재석은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다. 방송이 너무 안되고 하는 일마다 어긋났을 때, 정말 간절히 기도했다. 한번만 기회를 달라고, 그러면 훗날 내가 잘됐다고 해서 마음이 달라지고 초심을 잃었을 때 어떤 가혹한 시련을 줘도 원망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다시 화면이 현재로 바뀌고 유재석은 "저 스스로에게 그런 이야기를 가끔한다. 정말 잘 견뎠다. 잘 버텼다고. 저도 열심히 했지만 제 주변의 동료들과 스태프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감사도 잊지 않았다. 

이어 유재석은 김석윤 감독과의 일화를 다시 회상하며 "제가 겪었듯이 '한 사람의 관심과 애정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늘 생각한다"고 고백했다. 유재석은 나태주 시인의 '풀꽃'에 나오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라는 구절을 인용하며 "김석윤 감독이 아니었다면, 그분의 생각에 동의해 준 제작진들이 아니었다면 저는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라고 겸손한 소회를 밝혔다.

유재석의 또 다른 고민

유재석은 누군가의 관심으로 얻었던 인생의 기회를 이제 또 다른 누군가에게 돌려주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그가 신인이나 후배들을 유난히 챙기는 이유에 대하여 "가끔 답답하다. 나만 방송을 이렇게 하면 되나. 내 일이 잘되면 내 역할을 다한 건가? 그렇다고 내가 코미디 프로그램을 만들 수는 없지 않나.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할지라도 관심을 가지는 것과 안 된다고 제쳐놓는 것은 천지 차이"라며 진지한 속내를 드러냈다. 

유재석이 오늘날 최고의 MC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 그리고 그가 방송에서 자신보다 주변을 먼저 배려하고 다른 출연자들이 돋보일 수 있도록 고민하는 방송철학이 어떻게 구축되었는지를 돌아볼 수 있었던 장면이었다.

조세호도 유재석과 관련된 미담을 이야기했다. "형이 저한테 차비로 10만 원을 준 일이 있다. 사실 그때 죄송했던 게 저는 형 결혼식 때 5만 원을 냈다. 미안해서 아예 안 갈 생각도 했었는데 밥값이 비싸다는 이야기를 듣고 축의금만 내고 밥을 안 먹고 나왔다'라고 밝혀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그 다음에 형을 만나서 축의금의 두 배나 되는 돈을 차비로 받으면서 생각했던 게 '이 사람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했다"고 고백했다. 이에 유재석은 "몰랐다. 조세호씨 결혼식 때도 (축의금을) 똑같이 하면 되지"라고 재치있게 응수했다.

어린 시절부터 단짝이자 <런닝맨>에서 오랫동안 호흡을 맞추고 있는 지석진도 출연했다. 지석진은 별도로 진행된 영상편지에서 그간 밝히지 못한 진솔한 속내를 고백했다. "우리가 철부지일 때 만났는데 어느새 중년이 됐다. 쉽지 않은 30년 수고 많았다. 나중에 은퇴해서 더 재밌게 놀자"라고 인사를 전했다.

인터뷰를 하다가 남다른 감회에서 감정이 복받친 지석진은 "(재석이와) 은퇴해서 다같이 어울리는 그런 장면을 떠올리니 너무 행복했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지석진은 "저희도 은퇴를 생각할 수밖에 없고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기대가 크다"며 "은퇴 이후의 삶도 더 멋지게 살 수 있도록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할 것 같다"고 다짐했다.

유재석과 과거 MBC <느낌표>로 호흡을 맞췄던 김영희 PD도 등장했다. 김 PD는 당시 유재석과 함께 했던 일화들을 회상하며 "유재석이 일인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물러날 줄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 PD는 "(진행자가)뭘 하겠다고 욕심을 부리면 자신도 프로그램도 잘 안 되고 안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유재석은 물러나고 뒤에서 받쳐주는 법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많았다"고 회상했다.

유재석은 <무한도전>이 초창기 좀처럼 인기가 없어서 폐지 위기를 겪던 시절 예능국장이었던 김영희 PD가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격려해줬던 일화도 공개했다. 김 PD는 "무한도전을 계속 지켜봤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단지 시청자들의 시청습관이 익숙해지지 않은 것 뿐"이라며 본인이 직접 편성책임자들을 설득하며 "다른 프로그램은 다 바꾸더라도 이건(무한도전) 안 바꾼다"고 선언했던 뒷이야기를 밝혔다.

김 PD은 훗날 유재석을 만났을 때 "걱정하지 말고 가, 내가 막아줄게"라며 든든한 신뢰를 드러냈다. 유재석도 "그 한마디가 큰 힘이 됐다"고 밝히며 "이렇게까지 해주시는데 이거 어떻게든 한번 해봐야겠다"고 전의를 다지게 됐다고 밝혔다.

이날의 <유퀴즈>는 유재석이라는 스타 방송인에 바치는 개인적인 헌사를 넘어, 한국 방송 예능사의 흥미로운 뒷이야기, 시청자들의 웃음을 주는 예능인들의 알려지지 않은 고충과 애환, 방송인의 사회적인 역할과 책임감에 대하여 돌아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웃음 이상의 의미가 있었던 시간이었다. 모처럼 개인의 고민과 철학을 진지하게 들려주는 유재석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것도 특별한 장면이었다. 

김영희 PD는 유재석의 롱런 비결에 대하여 "10년 넘게 1인자를 하고 있는데 남다른 노력이 있었을 것"이라며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본인이 겸손하기 때문이다. 겸손이 없으면 성실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유재석은 기나긴 힘든 무명 생활을 거쳐 스타의 반열에 오른 뒤에도, 자신의 초심과 정체성을 놓치지 않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우리가 유재석이라는 연예인이 살아온 삶에 감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재석의 성공이 단지 개인의 영광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방송계와 시청자들의 삶에도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유재석 유퀴즈온더블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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