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편집자말]
 전주국제영화제 타이틀

전주국제영화제 타이틀 ⓒ 전주국제영화제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남자친구 종훈이 세상을 떠난 지 벌써 2년. 수현(강진아 분)은 아직 그를 잊지 못한다. 종훈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던 갤러리를 찾아다니는 것은 물론, 그와 함께 지내던 집을 비워달라는 집주인의 말에도 선뜻 그렇게 하겠다는 말을 하지 못한다. 혼자 살기에는 분명히 큰 집이기도 하고, 매달 나가는 월세가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와 함께 나눈 기억이 배어있는 공간을 떠나기가 망설여진다. 이 공간마저 정리하고 나면 종훈이 정말로 곁을 떠나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종훈을 잊지 못하는 것은 수현만이 아니다. 생각지도 못한 사고로 허망하게 아들을 먼저 떠나 보낸 그의 어머니(변중희 분) 역시 아직 아들에 대한 기억에 매인 채로 살아가고 있다. 심지어는 아들이 저승에서 혼자 외로워하지 않을 수 있도록 영혼결혼식을 시켜줄 것이라 마음을 먹는다. 그것도 생전에 얼굴 한번 본 일이 없는, 지금은 역시 세상을 떠난 생면부지의 여성과 함께 말이다. 아들을 모신 사찰의 주지 스님이 그녀의 생전 인품과 심성을 잘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들이 살아 있을 적에는 딸처럼 생각했다는 수현의 입장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다. 그녀의 사정에 대해서는, 아들과 결혼을 한 사이도 아닌데 무슨 상관이냐는 태도다.

02.
두 사람 사이에 종훈의 동생인 지훈(감승민 분)이 있다. 그는 두 사람의 마음을, 양쪽 모두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다. 형과 수현이 어떤 모습으로 사랑을 만들어 왔는지 직접 지켜봐 온 인물이자, 자신의 어머니가 어떤 성향의 인물인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정도의 판단력을 가진 인물.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둘 중 어느 세계에도 섣불리 먼저 뛰어들거나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줄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기도 하다. 수현과 어머니 또한 각자의 입장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선택들을 꺼내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두 번째 장례>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화가 종훈의 두 번째 기일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감독은 철저히 종훈의 죽음 이후에 벌어지는 이야기들에 집중한다. 한 대상이 어떤 연유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는지, 또 그가 어떤 삶을 만들어 왔는지와 같은 문제들을 직접 드러내는 일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종훈이 떠난 후에 남겨진 이들의 사정에 초점을 맞춘다.

종갓집 종손이자 큰아들을 잃게 된 어머니와 식을 올린 것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연인 수현, 그리고 두 사람의 경계에 서 있는 동생 종훈이 바로 그 대상이다. 영화는 이들이 종훈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시간을 통해 각자가 부딪히게 되는 현실적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고, 추모의 대상을 정리하는 과정이 누구의 사정에 의해 이루어지게 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제 22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두번째 장례> 스틸컷

제 22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두번째 장례> 스틸컷 ⓒ 전주국제영화제


03.
'어머니, 저도 생각해 주셔야죠.'

영화 속 주된 갈등은 역시 수현과 종훈의 어머니 사이에서 발생한다. 저승에서라도 외롭지 않게 해주겠다며 알지도 못하는 여성의 영혼과 자신의 아들의 영혼을 결혼시키려는 종훈의 어머니를 수현은 이해할 수 없다. 그런 수현에게 산 사람은 산 사람들끼리 살아가야하는 거라며 지금은 이래도 시간이 더 지나면 종훈을 잊어버리게 될 것이라 타이르는 종훈의 엄마. 이런 식으로 자신의 선택이 종훈과 수현 모두를 위해서라고 말하는 종훈의 엄마이기에 수현은 마음이 더욱 복잡하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금, 살아 생전 종훈의 뜻대로 되고 있는 것은 사실 거의 없는 상태다. 자연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어했던 종훈은 지금 대리석으로 만든 좁고 갑갑한 납골당에 갇혀있고, 기부 되기를 바라던 그의 유작들 역시 가족들의 소유로 남게 된 상황. 사후 그의 모든 것에 대한 처분이 이제 아무런 의견도 낼 수 없는 종훈의 뜻이 아니라 그를 가장 위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지는 가족의 뜻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수현은 같은 맥락에서 지금 종현의 어머니가 하고자 하는 영혼 결혼식 역시 누가 좋자고 하는 일인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물론, 어떤 누구의 의견을 따른다고 한들, 종현의 진짜 마음을 헤아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최근까지 그의 곁에서 그의 삶을 함께 나누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종훈의 뜻을 이해해 왔던 수현의 의견은 그녀가 종훈의 법적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상황을 지켜보기만 해야하는 그녀의 마음은 타들어가기만 한다. 법적으로도 그녀는 종훈이 생전에 잃어버렸던 유실물을 찾아오지 못한다. 자신이 종훈에게 선물했던 지갑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04.
알지도 못하는 여자에게 남자친구의 영혼을 양보해야 하는 상황은 조금씩 다가오고 그 무엇으로도 연인에 대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길이 없게 되자 수현은 종현의 납골함을 들고 생전에 그가 좋아했던 바다로 향한다. 이 행위는 수현에게 있어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하나는 자신이 그의 유골함을 꺼내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 대상이라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는 과정이다.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의 뜻이 종훈의 뜻과 가장 가까울 것이라는 믿음을 증명하는 과정인데, 두 가지 모두는 정식적인 절차를 거쳐서는 분명 또다른 거부와 저항에 부딪히게 되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수현의 상처로 여겨질 수도 있다.

'오빠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이게 다야. 그냥 바람 쐬게 해주는 정도.'
 
 제 22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두번째 장례> 스틸컷

제 22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두번째 장례> 스틸컷 ⓒ 전주국제영화제


05.
어쩌면 수현의 마지막 행위는 종훈을 정말로 떠나 보내는 과정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결국 그 뜻을 막지는 못했지만 남자친구의 2주기 추모식이자 영혼 결혼식이 열리는 자리에 참석한 수현은 자신이 선물했던 지갑과 자신의 얼굴이 그려진 그의 작품이 불에 태워지는 모습을 그저 지켜만 본다.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했던 처음의 황망한 이별과는 다른, 자신의 의지와는 반대되지만 지금의 차분한 이별. 마침 연락 온 집주인의 재촉 문자에 그녀는 그렇게 하겠다는 말로 그 마음을 대신한다.

두 사람은 분명히 사랑했다. 누구보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을 것이고, 누구보다 더 깊은 속을 나누며 삶을 함께 쌓아갔을 테다. 두 사람의 이별은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었고 남자의 불행한 운명으로 인한 강요된 결과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으로 여자는 이제 남자에게서 아무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이 영화는 그런 이야기다. 사라진 존재를 추모하는 일이 언제나 아련하고 따뜻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 살아있는 자들의 관계가 때로는 더 멀고 날카로울 수 있다는 이야기. 이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와의 거리보다 더.
영화 전주국제영화제 두번째장례 김태경 강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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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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