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편집자말]
*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22회 전주국제영화제 타이틀

22회 전주국제영화제 타이틀 ⓒ 전주국제영화제



01.
세상 사람들이 다 같을 순 없잖아요.
그래서 삶이 아름답다고 하는거고.
 
수진(김소이 분)은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다. 평범하게 남자친구도 만나고 있지만, 결혼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고 아이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언젠가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도 있다. 아이를 낳는 것이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가장 큰 이기심이라고 말이다. 종족 번식을 위해 아무런 선택권도 없는 아이를 이 험한 세상에 던져 놓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주변에서 결혼과 출산과 같은 이야기들이 들려오기에 충분한 나이. 그냥 그런가 싶으면서도 그 화살이 자신에게로 향하면 마음이 금새 불편해진다.
 
 제 22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마이에그즈> 스틸컷

제 22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마이에그즈> 스틸컷 ⓒ 전주국제영화제


최근에는 냉동 난자 시술에 대한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미국에 사는 친구가 시술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최근에 들었다. 사람 일이라는 게 또 어떻게 될 지 모르니까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미리 해두는 거라고 한다. 가장 큰 압박은 역시 엄마(안민영 분)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뒤 당신의 유일한 소원이라며 제발 한 번만 해보라며 눈물을 보이면서까지 닦달을 했다. 

산부인과 의사가 냉동 난자 시술을 받는다는 내용의 시나리오를 쓰게 된 이유도 그런 배경에 있는 것 같다. 예술가의 창의적 행위는 주변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고 하지 않나. 일종의 호기심 혹은 반발심. 뭐 어느 쪽이든, 지금의 수진은 주변의 영향에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것 같다.

02.
영화 <마이에그즈>는 난자 냉동을 시도하는 젊은 여성 수진의 시간을 표현해 낸 작품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엄마의 강력한 의지와 권고로 인해 난자를 냉동하는 과정에 참여하게 되는 한 여성의 모습을 통해 첨예한 경계에 놓여 있는 문제들을 들여다 보고자 한다. 특히, 지금 당장 출산 계획은 없지만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난자 냉동을 시도하는 이들이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갈등과 문제들은 현실의 모습을 잘 반영했다. 또한, 임신이라는 하나의 문제를 놓고 갈등을 겪게 되는 모녀 사이의 모습은 세대 사이에 인식의 차이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발단이 되는 사건은 수진이 아이를 낳고 싶어하지 않는 상황에서 엄마가 난자 냉동을 권유하는 상황이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수진이 마음만 먹으면 피해가거나 부딪힐 수 있는 상황은 충분히 만들어질 수 있다. 오히려, 아빠의 이야기만 나오면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부분과 엄마의 진한 간절함이 수진의 마음을 흔들어 병원으로 향하게 되는 지점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점이다. 진정으로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라 최소한의 자식 된 도리, 부모의 뜻을 미약하게나마 받아들이고자 하는 마음이 이 영화의 시작인 것이다.
 
 제 22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마이에그즈> 스틸컷

제 22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마이에그즈> 스틸컷 ⓒ 전주국제영화제



03.
그렇게 찾아간 병원에서 수진은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전해 듣게 된다. 건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난소의 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많은 케이스라는 것. 난소의 나이가 46살로 보통은 10개의 난자를 채취하지만 현재로서는 5개만 채취할 수 있어도 다행인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난자를 채취해서 냉동하려면 하루라도 빨리 진행을 해야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이다. 처음에는 검사나 받아보자는 마음으로 찾은 병원이었지만, 정작 자신의 상태가 별로 좋지 않고, 시간이 촉박한 상황이 되고 보니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어떻게 해야하는 지, 무엇을 하면 좋은지 자꾸 묻게 된다.

사람 마음이란 게 그렇다. 모르면 또 모르고 지나간다고 하지만, 일단 어떻게라도 상황을 인식하게 되고, 주어진 기회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해진다. 이것은 자신이 원하고 아니고의 문제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다. 내가 하지 않겠다고 선택하는 것과 할 수 없게 되어버리는 상황은 다르지 않나. 같은 결과라도 두 이야기는 정말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된다.

호르몬 주사까지 받아와서 맞으려는 시도를 하고, 맥주를 마시자는 친구 은영(우연서 분)의 연락도 피한다. 자신이 난자 냉동을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변에 들키게 될까 마음도 졸이게 되지만, 일단 이 과정에 참여하기로 한 뒤에는 누구보다 진심이었던 수진. 결과는 예상보다 더 좋지 않다. 난자가 세 개 밖에 보이지 않는다.

04.
솔직히 나는 내가 버려질까 두려워요. 지금 여기도 좋은데 나는 밖에 나가서 엄마 옆에 있고 싶어요. 엄마가 헛기침을 해 줘요. 그럼 엄마도 내가 나오길 원하는 걸로 알게요.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거니까 안심할게요

세상을 구경하고 싶다는 난자의 목소리까지 듣게 되는 수진이지만, 세 개의 난자 중에서 실제 채취에까지 성공하는 건 그나마 하나뿐이다. 나머지 두 개가 공난포(난포 안에 난자가 없는 경우)였던 것이다. 정말 난자 냉동을 원한다면 다시 시도를 해야하는 상황이다. 시술로 인해 배는 아프고, 제대로 된 결과도 얻지 못하고. 애초에 마음에도 없던 일에 돈과 시간, 고통을 감내하고도 불안만 얻게 된 셈이다.

딸의 좋지 못한 소식에 마음이 상하는 건 엄마도 마찬가지. 이제 막 병원에서 돌아온 수진에게 엄마는 아쉬운 소리를 또 한번 늘어놓는다. 집안이 그런 집안이 아니고, 자신은 결코 그런 체질이 아니니 모두 수진이 잘못 되어서 그런 거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 마음이 되니, 이제는 수진이 하고 다니는 꼴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거적대기처럼 생긴 가방도 그렇고, 옷도 그렇고, 독립이니 뭐니 하며 하고 있는 영화 일도 모두 말이다.
 
이거 내 잘못 아니라니까
엄마 내가 원래 이래. 엄마 딸이 원래 이래.

수진의 속상한 마음도 두 배가 된다. 엄마가 눈물을 보여도, 아빠 이야기를 꺼내도 그냥 무시하고 지나갔더라면 아무런 일도 없었을 것을 왜 내가 그 말에 빈틈을 보여서 지금 이 상황까지 오게 되었을까. 하는 마음이다. 자신도 원망스럽고 엄마도 원망스럽다. 그렇다고 내가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니고 한번 밖에 없는 내 인생 그냥 내 뜻대로 살면 안 되나 싶기도 하고.
 
 제 22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마이에그즈> 스틸컷

제 22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마이에그즈> 스틸컷 ⓒ 전주국제영화제



05.
딸은 어쩔 수 없는 딸이다. 자신의 속도 상하지만, 엄마의 마음을 먼저 달래는 수진. 엄마의 막말에도 수진은 엄마를 미워하지 않는다. 딸이 딸인 것처럼, 엄마도 어쩔 수 없는 내 엄마니까.

흐드러진 꽃밭에서 재채기를 하는 수진의 모습이 마지막 장면에서 등장한다. 꽃가루 때문에 재채기를 하는 것처럼 표현되고 있지만 나는 어쩐지 그 장면이 난자의 목소리가 부탁했던 헛기침으로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마음에 조금은 변화가 있었을까? 그 마음이 수진의 의지에 따른 것이라면 아무래도 좋을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고 !
영화 전주국제영화제 마이에그즈 김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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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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