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채록아 나도 무서워. 근데 나 매일 연습했다. 바보가 되어가는 이 머리가 아니라 네 말대로 몸이 기억하도록 하루도 안 쉬었어." (덕출)
"그냥 해요. 그냥 하자고요. 발레!" (채록)

 
발레리노가 되고픈 70세 할아버지와 한 번쯤은 날아오르고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스하게 그려내고 있는 tvN 월화드라마 <나빌레라>. 10회의 마지막 대사다. 방황하던 덕출(박인환)은 눈 오는 밤 홀로 연습한 발레를 채록(송강) 앞에서 연기한다. 덕출의 짧은 춤은 너무나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 그러자 덕출의 알츠하이머 증세가 심해지자 "발레를 그만두라"고 했던 채록이 "그냥 하자"고 말한다.
 
이 장면 속 덕출의 모습은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내 마음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덕출의 몸짓과 표정은 오랜 꿈을 이뤄내고 싶은 열망 그 이상이었다. 너무나 아련하고, 간절하고, 슬프면서도 기쁜 그의 표정은 그 어떤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깊고도 강렬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표정 속에서 알아낼 수 있었다. 9회 채록이 덕출에게 던졌던 질문 "대체 할아버지한테 발레는 뭔데요?"의 답을 말이다. 덕출에게 발레는 '꿈'이 아니었다. 그건 바로 '자기대상'이었다.
 
 tvN 월화드라마 <나빌레라> 스틸 컷

tvN 월화드라마 <나빌레라> 스틸 컷 ⓒ tvN

 
하인즈 코헛의 자기대상
 
'자기대상'은 자기심리학을 창시한 하인즈 코헛이 명명한 개념으로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내가 가치 있는 사람임을' 알게 하는 대상을 의미한다.
 
코헛은 육체적인 생존을 위해 물과 적절한 음식이 필요하듯, 심리적 생존을 위해서는 심리적 욕구에 반응해주는 공감적이고 지지적인 환경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았다. 아기가 태어났을 때 이런 지지적인 환경이 되어주는 대상은 주로 주양육자이다. 아기는 주양육자에게 생존에 필요한 환경을 제공 받음은 물론, 이들이 반영해주는 정서들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한 감각을 갖게 된다. 주양육자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것이다. 이처럼 심리적인 자양분을 제공하고 '내가 누구인지' 알게 하는 대상이 바로 자기대상이다.
 
코헛은 사람은 평생토록 자기대상을 필요로 한다고 했다. 끊임없이 '내가 누구며 가치 있는 존재'임을 확인받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유아기에는 주로 부모가 그 역할을 하지만, 청소년기가 되면 친구나 교사 혹은 자신이 존경하는 인물 등 자기대상의 폭이 넓어진다. 성인이 되면서는 연인이 자기대상이 되어주는 경우가 많다. 사랑하는 사람이 비춰주는 사랑스런 나의 모습을 통해 내 존재 가치를 확인받곤 하는 것이다. 자기심리학에서는 성숙한 자기대상을 갖춰가는 것을 심리적인 성장이라고 본다. 
 
기억해야 할 건 자기대상이 반드시 사람일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내게 의미있는 사상을 실천하거나 어떤 활동을 하면서 '내가 가치 있고,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면, 사상이든 활동이든 일이든 모두가 자기대상이 될 수 있다. 때로는 곁에 함께 있진 않지만, 나 자신을 비춰주었던 사람의 따스한 눈빛을 기억하는 것 역시 자기대상이 되어줄 수 있다. 삶의 가치를 깨닫게 해주었던 책이나 예술작품이 자기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다. 자기대상 되는 사람과 함께 있거나 그를 기억할 때, 혹은 그런 활동들을 실천할 때 우리는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자기대상으로서의 발레
 
<나빌레라>의 덕출에게 발레는 바로 이런 존재다. 덕출이 발레를 처음 만난 건 9살 때였다. 그 때 덕출은 한눈에 발레에 빠져드는데 아마도 그는 발레리노의 모습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에게 자기대상과 함께 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그런 그는 70세의 어느 날 친구의 장례식장에 다녀오다 '음악 소리에 이끌려' 발레 연습하는 모습을 엿보게 된다. 이는 덕출의 마음 깊은 곳에 발레는 여전히 자기대상으로 살아 있었음을 의미하는 장면이었다. 1회 장례식 장면서 덕출은 "눈물이 왜 안 나냐"는 다른 친구의 질문에 "늙으면 이별도 익숙해지니까"라고 덤덤하게 대답하지만, 아마도 덕출은 얼마 남지 않은 삶의 시간을 마음 깊이 느껴졌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남은 시간을 보다 생생하게 살아내고 싶은 욕구와 의지를 되살렸을 것이다. 덕출은 이날 채록이 발레하는 모습을 보며 '눈을 뗄 수 없었다'고 수첩에 적는다. 이는 처음 발레를 보았던 어린 자신의 모습과 오버랩 되고 그는 마침내 깨닫는다. '가치있고 생생하게' 살아내기 위해 발레를 해야 함을 말이다. 그리고 이를 실천에 옮긴다.
 
이런 덕출의 마음은 흔히 말하는 꿈을 이루고자 하는 열정과는 차원이 다르다. 꿈은 '되고자 하는 것'으로, 지금 여기서 생생히 머물기보다는 미래를 지향한다. 극 중 덕출의 사위인 영일(정희태)이 정치인이 되고자 하는 것은 지금 여기서 가치를 실천하거나 생생하게 살게 하기보다는 미래를 지향하는 꿈이라 할 수 있다. 꿈은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고, 때로는 자신의 한계를 수용하고 포기하는 것이 더 용기 있고 성숙한 행동인 경우도 많다. 하지만 자기대상은 다르다. 지금 여기서 그것과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내가 살아 있음을, 가치 있음을 느끼게 하는 존재인 자기대상은 포기할 수 없는 법이다.
 
때문에 덕출은 "발레가 자식들보다 더 소중해요?"(2회)라는 큰 아들 성산(정해균)의 말에도, "주책이냐"는 동네 사람들의 시선에도, "난 이렇게 늙고 볼품도 없는데 정말 주책인지도 모르겠어요"(7회)라는 자괴감 속에서도 결코 발레를 포기하지 않는다. 9회 자신의 발레를 '취미'로 폄하하는 이야기를 듣고도 "누가 뭐래도 상관 안 해. 포기도 안 해"라고 당당히 이야기하며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발레가 하나의 꿈이나 목표가 아닌 자기대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10회 덕출을 두고 고민하는 채록에게 채록의 친구 세종(김현목)은 "하지 말란다고 안 할 수 있는 게 아닌데"라고 말한다. 이는 발레가 할아버지의 자기대상이었음을 간파한 말이었다.
 
 tvN 월화드라마 <나빌레라> 스틸 컷

tvN 월화드라마 <나빌레라> 스틸 컷 ⓒ tvN

 
자기대상이 없는 삶
 
그렇다면 자기대상이 사라졌을 때 삶은 어떻게 될까? 드라마 속 호범(김권)은 자기대상을 잃은 사람의 절망을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어려운 가정에서 자란 호범은 아버지의 보험금으로 축구를 했을 만큼 축구에 대한 열정으로 살아온다. 그는 아마도 축구를 할 때 스스로가 가치 있고 살아 있다 느꼈을 것이다. 호범은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프로팀에 입단해 축구를 통해 경제적 문제도 해결하겠다는 야무진 계획도 갖고 있었다. 하지만 학교폭력 사건으로 인해 축구팀이 해체되고 호범은 더 이상 축구를 할 수 없게 된다.
 
그러자 호범은 삶의 의욕을 잃는다. 동네 패거리들과 어울려 당구장에서 하루를 보내며 스스로를 망쳐버린 그는, 자기대상을 잃은 분노를 엉뚱한 채록에게 쏟아낸다. 축구를 할 수 없게 된 폭력 사건을 채록의 아버지가 일으켰다는 이유로 말이다. 스스로를 포기하듯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자기대상을 상실한 사람의 분노와 슬픔을 매우 잘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는 채록을 통해 그리고 덕출과의 대화를 통해, 결정적으로 10회 채록의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 자기대상이 영원히 사라져버린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그리고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tvN 월화드라마 <나빌레라> 스틸 컷

tvN 월화드라마 <나빌레라> 스틸 컷 ⓒ tvN

 
10회 잠깐이지만 발레를 그만 둘 위기에 처했던 덕출 역시 단지 '꿈을 포기한' 것을 넘어 '모든 것을 잃은' 모습이었다. 방황하던 그가 끝내 생생하게 살아 있음을 느끼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친구의 묘소를 찾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애타게 찾는 아내 해남(나문희)의 전화마저 거절했던 그는 휴대폰 속 발레하는 자신의 사진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는다. 그리고 눈 내리는 밤 거리에서 짧은 발레 공연을 펼치며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의 표정과 몸짓이 그토록 감동적이었던 것은 아마도 이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열정을 가진 주인공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꿈을 실현하는 드라마는 종종 만나왔다. 하지만 <나빌레라>가 남기는 감동과 여운은 지금까지 보아왔던 드라마들과는 차원이 다르게 느껴진다. 아마도 이는 이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추구하는 것이 꿈을 넘어선 자기대상 즉, 성취해내기보다는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나빌레라>의 심덕출 할아버지는 매 회 간절한 몸짓을 통해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다.

당신의 자기대상은 무엇입니까?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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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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