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복> 포스터

영화 <서복> 포스터 ⓒ CJ ENM

 
영화 <서복>은 <불신지옥>, <건축학개론>을 연출한 이용주 감독의 9년 만의 신작이다. 전작들과 장르는 다르지만 '감성'을 매개한 철학적 메시지가 비슷하다. 영화는 화려한 볼거리보다는 밀도 있는 주제를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 2020년 12월 극장 개봉을 목표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개봉을 미루다 2021년 4월 15일 OTT 티빙과 극장에서 동시 공개됐다.
 
<서복>은 극장과 OTT에서 동시에 상영하는 일종의 실험을 택했다. 극장 개봉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지만 상황이 어려워 넷플릭스로 간 한국 영화와 다른 노선을 택한 것이다. <사냥의 시간>, <콜>, <승리호>, <낙원의 밤>은 극장에서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었는데, <서복>은 그 점을 극복했다. 극장과 OTT의 공생 관계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고도 할 수 있다. 때문에 <서복>의 성적은 중요한 데이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복제인간을 다룬 최초의 한국 영화에 거는 기대도 크다. 한국표 복제인간 이야기를 공유와 박보검이 어떻게 풀어낼지가 관건이다.
 
'왜'라는 존재의 물음
  
 영화 <서복> 스틸컷

영화 <서복> 스틸컷 ⓒ CJ ENM

 
복제인간 서복(박보검)은 항상 '왜'라는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태생과 목적을 알고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인간에게 궁금증을 품었다. 죽음은 영원히 잠드는 것이라고 배웠는데, 사람들은 오늘 하루 잠자리에 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걸까. 그런 그는 죽는 것도, 영원히 사는 것도 두렵기만 하고 뭘 믿어야 할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서복은 온종일 검사를 받고 밥 먹고 책을 읽으며 평생을 실험실에서 살았다. 남는 시간에는 운명을 고민하며 사유로 채워나갔다. 생각할 시간이 많은 만큼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질문으로 상대방을 당황케 만든다. 그는 기헌과 선문답을 주고받으며 실험실에서 배우지 못한 세상을 마주한다.
 
한편, 기관은 비밀 프로젝트가 노출되자 서복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려 하던 중 과거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고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하던 정보국 전직 요원 기헌(공유)을 투입한다. 기헌은 3년 전 동료를 잃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시한부다. 어쩌면 그가 이송 임무를 맡은 것은 예견된 결과였다. 그렇게 작전이 시작되고, 서복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려던 중 예기치 못한 사고를 만나 위험에 처한다. 둘은 가까스로 탈출하지만 무엇을 쫓고 무엇을 믿어야 할지 은폐된 진실 앞에서 갈등하게 된다.
 
죽음으로 가까워진 삶의 의미
  
 영화 <서복> 스틸컷

영화 <서복> 스틸컷 ⓒ CJ ENM

 
<서복>은 이용주 감독이 연출한 <불신지옥>의 확장판이라 봐도 좋다. '두려움'이란 감정을 복제인간으로 대체했을 뿐 <불신지옥>에서 귀신 들린 소녀 소진이 쫓던 증명할 수 없는 믿음이 이어진다. 줄기세포와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들어진 실험체, 서복이란 이름도 불로초를 찾아 나선 진시황의 신하 이름에서 착안했다. 인간에게 없는 새로운 유전자를 가진 존재이자 인간도 복제인간도 아닌 새로운 종이라 불린다. 철저히 인간 영생을 위한 결과물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원인 모를 부작용이 특별한 기운을 만들어 냈다. 뇌파를 이용해 자기장을 형성한 힘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된 서복은 염력을 가졌다.
 
그래서 서복은 이중성의 상징이자 죽음마저 정복하려는 인간 욕심의 결정체다. 인간에게 있어 무기를 들게 하는 본질은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다.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끝이 있어서이고, 영생을 꿈꾸는 인간에게 죽음은 가장 큰 무기가 될 수 있다. 죽음을 극복하려는 인간은 서복을 통해 추악한 민낯을 마주 본다. 오로지 살기 위해 서복을 지켰던 기헌은 그 욕망의 첫 번째 목격자인 셈이다.
 
영원히 사는 존재는 인간에게 축복과 재앙을 동시에 줄 수 있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원자폭탄과 비슷하다. 생명 연장 열쇠가 될 수도 있지만 다 같이 멸망하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은 삶을 유지하는 원동력이 된다. 한정된 시간 속 매번 죽음을 예감하기 때문에 삶을 살아갈 의지를 다지는 것이다. 만약 인간이 무한히 살아갈 수 있다면 현재의 소중함을 잊고 오직 쾌락만 남게 된다.
 
느릿한 서사, 진부한 연출이 아쉬워...
  
 영화 <서복> 스틸컷

영화 <서복> 스틸컷 ⓒ CJ ENM

 
<서복>은 죽지 않는 생명체와 죽음을 앞둔 한 남자가 만나 떠나는 로드무비이자 버디무비다. 공유와 박보검 두 스타의 만남으로 일찌감치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삶과 죽음, 끝과 영원 사이에서 갈등하는 배우간의 케미는 섞이지 않고 겉돌기만 한다. 조연으로 등장하는 조우진, 장영남, 박병은 등의 쓰임새도 파편적이라 단조롭다.
 
무해한 외형의 파괴적인 능력을 갖춘 서복과 다부진 체격과 달리 곧 죽을 운명의 기헌, 두 사람의 어색한 거리감은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후반부에 다다라 드디어 기헌이 바라던 '형'으로 불리지만 이마저도 요동치는 감정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상황에 맞게 쓰인 도구적인 감정은 미처 관객의 감정이입을 돕지 못하고 휘발되어 버린다.
 
막대한 자본을 들였을 장면은 '굳이'라는 말이 생각날 만큼 계륵이었다. 비싼 레스토랑에 갔는데 이도 저도 아닌 음식을 먹은 것 같은 심심한 기분이 밀려왔다. 삶과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깊이감과 휴머니즘이 실종된 한국형 <엑스맨>이 되어버려 아쉽기만 하다. 도망치라는 기헌의 읍소에 어디로 가야 하냐고 묻던 서복의 애잔한 얼굴이 갈 곳 잃은 관객의 마음을 대변한다.
 
"도망쳐!"
"어디로요? 아시잖아요. 저는 갈 곳이 없어요."
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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