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드라마 <괴물> 배우 여진구 인터뷰 이미지

ⓒ 제이너스 이엔티

 
"이제는 연기를 좀 더 즐길 수 있게 된 것 같다."

늘 믿고 보는 배우로 손꼽히는 여진구에게 또 하나의 '인생 캐릭터'가 탄생했다. 지난 10일 종영한 JTBC 드라마 <괴물>에서 여진구는 밀도 높은 감정 연기로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아버지의 민낯을 목도하면서 혼란과 고뇌를 오가기도 하고, 실체 없는 괴물들을 향한 분노와 광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양 극단의 감정을 세밀하게 표현해낸 여진구의 연기는 시청자들이 자연스럽게 극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들었다. 드라마가 종영한 후 여진구에게 호평이 쏟아진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13일 오후 화상으로 만난 여진구는 "(<괴물>을 통해) 제 연기 스타일에 약간의 믿음이 생겼다. 많은 칭찬을 받은 작품이었고 앞으로 연기를 어떻게 해야겠다는 확신을 갖게 돼, 너무 좋은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감독, 작가, 배우 모두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는 평가를 얻은 <괴물>은 20년 만에 다시 살인 사건이 발생한 문주시 만양읍에서 괴물을 잡기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되어버린 두 경찰을 그린 작품이다. 여진구는 차기 경찰청장 후보인 아버지를 둔 엘리트 경찰 한주원으로 분했다. 

드라마 초반부, 서울청 외사과에서 시골 만양 파출소로 발령 받은 한주원은 만양 사람들과 사사건건 부딪힌다. 20년 전 살인사건 용의자였던 이동식(신하균 분)을 의심하고 그를 감싸주는 만양 사람들을 경계하기도 한다. 여진구는 "처음부터 날이 서 있는 사람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반감도 있고, 주변 인물을 전혀 믿지 않고 본인조차 믿지 않는 사람. 그래서 (시청자들의) 반감을 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그게 한주원의 중요한 포인트가 아닐까. 인물이 점점 변화할 거니까. 이랬던 사람이 어떻게 변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주요했다. 저도 재미있게 연기했던 캐릭터"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시청자분들은 후반부에 주원의 어릴 적 얘기도 보시고 그러면서 (캐릭터에) 몰입해주셨겠지만, 저는 처음부터 주원의 상처를 알고 있었지 않나. 편견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만나보지도 않고 어떤 삶을 살아온지도 모르는 사람까지 미리 구분지어 놓고 판단해버리는 사람. 만양 사람들같은 사람들을 그동안 만나지 못한 인물이기도 하다. 경찰대에서 끊임 없는 경쟁 속에 버텼고 외사과에서도 배척 당하면서 살았는데, 만양에서 처음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을 느낀 거다. '왜 나를 궁금해하지? 왜 나를 신경쓰지? 내가 뭐라고.' 이런 건 그동안 제가 연기해본 적 없는 인물이라 더 호기심이 생겼다."
 
 JTBC 드라마 <괴물> 배우 여진구 인터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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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과 한주원은 극 중에서 날카롭게 대립하기도 하고, 때로는 공조하기도 하면서 20년 전 살인사건의 진실을 찾아나간다. 강민정(강민아 분)을 납치·살해한 강진묵(이규회 분)부터 20년 전 이유연을 차로 치고 달아난 한기환(최진호 분)과 박정제(최대훈 분)까지, 모두 두 사람의 공조로 밝혀낸 범인들이었다. 드라마 밖에서도 여진구와 신하균은 공조는 이어졌다고.

여진구는 신하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며 "늘 감탄스러운 연기를 보여주셔서,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강의를 받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3회에서 한주원이 만양 파출소에 휴직계를 신청하고 이동식과 대화하는 장면을 꼽았다.

"현장에서 그(신하균의) 연기를 보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주차장에서 이동식이 한주원에게 웃음을 보인다. 그걸 보고 주원이 '웃어?'라며 처음으로 (동식의) 도발에 넘어가는 장면이었다. 그 장면에서 제 생각보다 (감정이) 더 격하게 나왔던 것 같다. '이래도 되나?' 싶었는데 그땐 정말 이동식이 너무 얄미워 보였다(웃음). 저도 모르게 (신하균에게) 좀 더 가까이 들이대고 그렇게 되더라. (촬영하기 전) 생각과 다르게 신하균 선배와 현장에서 호흡을 맞추면서 감정이 세지거나 약해지는 게 재미있었다."

결국 끔찍한 일을 저지른 범인들은 모두 죗값을 받았지만 <괴물>이 말하는 '괴물'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드라마 포스터에도 '괴물은 누구인가. 너인가. 나인가. 우리인가'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여진구는 "연기하면서 이 말을 많이 생각했다"며 "본인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에게 얼마든지 피해를 끼칠 수 있는 사람들은 전부 괴물이라고 느꼈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 속의 동식과 주원도 결국 괴물의 범주에 속해 있는 사람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괴물>의 마지막 신은 특히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성인 실종자를 향한 관심을 촉구하는 내레이션으로 마무리 된 이 장면은 드라마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한 부분이었다. 직접 그 문구를 읊었던 여진구는 "마지막회 대본의 내레이션을 보면서 그동안 얼핏 지나가면서 봤던 수많은 실종 전단지나 현수막이 떠오르더라.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늘 실종자 가족분들의 아픔이 있었는데, 왜 그렇게 신경을 못 썼을까 생각하게 되고 반성하게 됐다. 죄송스러운 마음도 들었고 주위를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더라. 마음에 많이 남는 엔딩이었다"고 소회를 전했다.
 
 JTBC 드라마 <괴물> 배우 여진구 인터뷰 이미지

ⓒ 제이너스 이엔티

 
2005년 아역 배우로 데뷔해 17년 차 배우가 된 여진구는 이번 <괴물>을 "자신을 믿게 만들어 준 특별한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그동안 수많은 작품에서 연기력을 인정 받아왔지만 그에게도 연기가 어렵게 느껴지던 시간이 있었단다. 여진구는 "연기가 어려워서 차라리 빨리 30대가 됐으면 좋겠다고 바라기도 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한때는 연기가 많이 어려웠다. 연기하는 게 재밌고 다른 사람이 되는 걸 즐겼는데, 그게 한동안은 어려워지더라. 사람을 풀어내고, 이 감정을 풀어서 표현해야 한다는 게 (어려워서) 현장 가기가 무서웠던 적도 있었다. 드라마 <왕이 된 남자> <호텔 델루나>로 조금씩 답을 찾아나가기 시작했는데, <괴물>은 제게 믿음을 준 작품이다. <괴물> 덕분에 제가 좀 더 저를 믿을 수 있게 돼서 지금은 행복하다. 사실 20대에는 그런 믿음을 갖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 시행착오를 많이 겪고 나서 30대가 되면, 다시 연기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많이 했다. 그래서 30대가 얼른 왔으면 좋겠다고 바라기도 했었다. 지금은 다시 연기를 즐길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꿈같기도 하고 행복하다."
괴물 여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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