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스트맨> 스틸 컷

영화 <더스트맨> 스틸 컷 ⓒ (주)트리플픽쳐스

  
트럭 뒷면에 커다랗게 그려진 기도하는 손. 새까맣게 낀 먼지를 활용한 이 그림은 단번에 SNS 인기 게시물로 떠올랐다. 사람들은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이 누군지 알고 싶어하지만, 작가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도시 곳곳에 점점 먼지 그림이 늘어날 뿐이다. 

오는 7일 개봉을 앞둔 영화 <더스트맨>은 스스로 떠도는 삶을 택한 태산(우지현 분)이 길에 그림을 그리는 미대생 모아(심달기 분)를 만나 상처를 치유하고 희망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극 중에서 태산은 2년 전 뜻하지 않게 일어난 사고를 잊지 못하고 2년째 서울역에서 노숙 생활 중인 인물이다. 삶의 의지도, 의욕도 잃은 듯한 그는 삼촌이라고 부르는 노숙인 김씨(민경진 분)와 자신을 친형처럼 따르는 발달장애인 도준(강길우 분)을 돌보는 게 유일한 목표처럼 보인다. 뚜렷한 수입도 없다보니 길에서 목숨을 부지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공터에 주차하는 차량들에 주차비를 갈취해 끼니를 해결하고, 너무 추운 날에는 재개발을 앞둔 상가 건물에 숨어서 자는 식이다.

그러던 어느 날 태산은 몰래 벽화를 그리는 미술학도 모아를 만나게 되면서 조금씩 삶에 변화를 맞는다. 허가받지 않고 벽에 그림을 그리다가 경찰에게 쫓기던 모아는 샛길을 알려준 태산 덕분에 위기를 모면한다. "열심히 그린 그림이 지워져서 어떡하냐"며 아쉬워 하는 태산에게 모아는 "어차피 지워질 그림이라서 열심히 그린 것"이라고 대답한다. 지저분 했던 벽에 그림을 그리고 나면 경찰들이 와서 그림을 지우니까, 결과적으로 벽이 깨끗해진다는 것. 이날의 만남을 계기로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진다.

이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더스트 아트'다. 뿌옇게 쌓인 먼지를 닦아내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는 더스트 아트는 모아의 말대로 곧 지워질 그림이다. 그러나 태산은 모아를 만난 이후 세밀하고 정성스럽게 먼지 그림을 그린다. 금방 지워지는 그림이라도 그리는 것 만으로 의미가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졸업 전시회를 앞두고 고민에 빠져있던 모아 역시 태산에게서 영감을 얻어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간다. 모아와 태산은 더스트 아트를 통해 교감하며 점점 가까워진다.

러시아의 더스트 아티스트 프로보이닉의 '기도하는 손' 그림에서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떠올렸다는 김나경 감독은 프로보이닉을 직접 섭외해 자신이 느낀 감동을 관객들에게 전한다. 영화에는 다양한 더스트 아트 작품들이 등장하는데, 특히 마음의 문을 닫고 있던 태산이 더스트 아트로 세상과 소통하는 장면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뭉클한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영화 <더스트맨> 스틸 컷

영화 <더스트맨> 스틸 컷 ⓒ (주)트리플픽쳐스

 
서로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위로하는 두 사람은 언뜻 로맨스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앞서 시사회에서 김나경 감독은 "우리 영화는 멜로 영화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영화에서 역시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것 이상으로 명확한 관계 진전은 그려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영화를 보는 관객 입장에서 두 사람을 멜로 관계로 해석할 여지는 있어 보인다. 

한편 <더스트맨>은 노숙인과 장애인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이들의 열악한 현실을 고발하기 보다는 따뜻한 휴머니즘을 보여주는 것에 더 집중한 영화다. 그럼에도 극 중 인물들이 노숙자에 대해 이야기 하는 대사라든가, 장애인 도준이 살아가는 방식을 그린 장면 등에서 사회적 약자를 대상화 하지 않기 위한 고민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이번 영화는 앞서 단편 <내 차례> <지금 당장 보건증이 필요해!> 등을 통해 주목받았던 충무로 신예 김나경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기도 하다. 

"먼지처럼 보이지 않는 존재에게도 각자 이야기가 있어요."

영화는 태산을 통해 관객들에게 이런 말을 전하려 하는 듯하다. 세상을 등졌던 태산이 다시 용기낼 수 있었던 것은 결국 누군가의 관심이었다. 언제나 가까이에 있지만 잘 보이지 않는 먼지처럼, 우리 주변에 늘 존재하는 사회적 약자들을 이대로 외면해선 안 된다는 것. 날씨가 부쩍 따뜻해진 봄에 우리가 되새겨야 할 메시지가 아닐까.

한 줄 평: 황사와 미세먼지 사이에서 꽃피는 휴머니즘
별점: ★★★(3/5) 

 
영화 <더스트맨> 관련 정보

감독: 김나경
출연: 우지현, 심달기, 강길우, 민경진
제작: 한국예술종합학교
배급: (주)트리플픽쳐스
러닝타임: 92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21년 4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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