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이게 정말 나야?'

아마도 한 번쯤은 이런 탄식을 내뱉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책상 정리를 하다 몇 해 전 사진을 찾아냈을 때, 때로는 며칠 전에 찍은 증명사진을 들여다보면서도 우리는 종종 '나의 모습'에 놀라곤 한다. 분명 그 사진을 찍었던 기억은 있는데 사진에 담긴 내 모습은 어색하고 낯설기만 하다. 그런데 실제로 과거의 내가 내 옆에 있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KBS <안녕? 나야!>는 이런에서 질문에서 시작한 드라마다. 마트에서 제품 판촉을 하는 37세 하니(최강희)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17세의 하니(이레)가 나타난다.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무척이나 혼란스러워하면서도 하니는 과거에서 온 나와 함께 지낸다.

"어떻게 이렇게 구려졌냐"고 막말하는 17세의 나와 살아가면서 하니는 자신의 모습을 직면한다. 그리고 조금씩 달라진다. 억울한 일에도 "미안하다"만 연발해왔던 것을 멈추고, 삶의 생기를 되찾더니 마침내 "나 진짜 열심히 살 거야. 전처럼 도망치지도 않고 피하지도 않고 나한테 주어진 시간 최선을 다할 거야"(9회)라고 다짐하기에 이른다.
 
도대체 20년 전의 나를 만난 하니의 내면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무엇이 하니를 변하게 한 걸까? 하니의 마음을 따라가면서 '수용전념치료'에서 이야기하는 세 가지 자기 인식의 방법이 떠올랐다.

개념화된 자기
  
 과거의 나와 만나 자기 자신으로 되찾아 가는 과정을 그린 KBS <안녕? 나야!> 의포스터

과거의 나와 만나 자기 자신으로 되찾아 가는 과정을 그린 KBS <안녕? 나야!> 의포스터 ⓒ KBS

 
헤이즈(Steven C. Hayes)와 스미스(Spencer Smith)는 수용전념치료를 대중에게 알린 책 <마음에서 빠져나와 삶 속으로 들어가라>에서 세 가지 자기 인식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그 첫 번째는 '개념화된 자기'다. 이는 스스로를 '나는 ~다' '나는~하다' 라고 규정지으며 '나는 누구예요'라고 소개하는 바로 그 자기다. 우리가 흔히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때 생각해내는 자기로 종종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나는 우울하다' '나는 친절하다' '나는 교사다'
 
이렇게 자기 자신을 규정짓는 표현들은 나에 대해 모호한 느낌을 줄여준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개념화된 자기로 스스로를 표현해낼 수 있을 때 심리적 안정감을 느낀다. 하지만 헤이즈와 스미스는 바로 이 '안정감'이 '숨막힘'을 선사하게 된다고 경고한다.

사람들은 언어로 명명한 대로 이해하려는 '인지적 융합' 본능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자기 자신을 언어로 표현한 순간 자신도 모르게 이 표현과 자기 자신을 일치시켜 버리게 된다. 즉, 언어로 명명하는 것을 자신의 전부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럴 때 자신의 다른 면은 보지 못한 채 언어에 갇혀 '숨 막히게' 살아가게 된다.
 
'나는 우울하다'고 명명한 사람은 그렇게 말함으로써 우울하지 않은 순간의 경험은 무시한다. 때문에 점점 더 우울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긍정적 개념인 '나는 친절하다'로 나를 규정짓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친절한 사람도 매 순간 모든 이들에게 친절할 수는 없다. 하지만, '친절하다'는 자기 개념이 강한 사람들은 이 개념대로 살아가고자 분노와 거절이 필요한 순간에도 친절하기 위해 애쓰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는 자기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나는 교사다'라며 직업이나 특정 역할로 자신을 개념화한 사람은 지나치게 이 역할에만 집중한 나머지 자신에게 주어진 다른 역할에서 오는 즐거움을 만끽하지 못한다. 이처럼 개념화된 자기에 갇혀있을 때 사람들은 자신을 편협하게 바라보게 된다.
 
37세의 하니가 바로 이랬다. 하니는 '아버지를 죽게 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린 나머지 '나는 무가치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규정짓는다. 때문에 부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친언니가 자신을 함부로 대해도 그저 '미안하다' '잘못했다'만 연발하며 스스로를 포기하듯 살아간다. 밝고, 당당하고, 정의감 넘치는 자신의 모습은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말이다.
 
지속적인 자각과정으로서의 자기
 
이렇게 부정적 자기 개념에 사로잡혀 살아가던 하니에게 갑자기 나타난 17세의 하니는 그야말로 '지금 여기'에 충실한 아이다. 과거에서 현재로 시간 이동을 한 황당한 일을 겪으면서도 17세의 하니는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부정하지 않는다. 새로운 경험들에 마음을 열어 놓고 그 순간순간을 즐기며 작은 일에도 크게 웃으며 행복해한다.
 
17세 하니가 보여주는 이런 태도가 두 번째 자기인식인 '지속적인 자각과정으로서의 자기'다. 이는 지금 여기서 어떤 것을 경험하고 느끼는 나의 상태 자체를 '나'라고 인식하는 것으로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나는 지금 이것을 느끼고 있다.' '나는 지금 저것을 생각하고 있다.' '나는 지금 이것을 기억하고 있다.'
 
이렇게 나 자신을 표현하는 것은 기술적이고 비평가적이다. 이런 자각은 지금 여기에서의 경험과 감정을 유연하게 받아들이게 하고 나에 대한 수용의 폭을 넓혀준다. 많은 심리학자들은 '개념화된 자기'에서 벗어나 변화하는 나의 느낌과 생각들을 기꺼이 경험하고 수용할 때, 보다 생생하게 지금 여기를 살아갈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37세 하니는 지금 여기에 충실했던 17세의 나의 모습을 보며 바로 이 '자각과정으로서의 나'를 인식하기 시작한다. 해고당한 슬픔과 분노를 노래와 춤으로 표현하고, 17세 하니가 즐거워하는 소소한 것들을 함께 하면서 패배적인 자기개념에서 서서히 벗어나 자신의 다양한 모습들을 알아간다.
 
하지만 지금-여기에서 변화하고 있는 나를 인지하는 일은 때로는 혼란을 가져오기도 한다. 다양한 감정의 소용돌이, 수시로 변하는 나의 모습을 인지할 때 우리는 종종 '일관된 자기'에 대한 느낌을 잃을 것 같아 불안해진다.
   
 37세 하니는 20년전의 나를 만나 자기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고, 스스로를 가둔 자기개념에서 벗어난다.

37세 하니는 20년전의 나를 만나 자기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고, 스스로를 가둔 자기개념에서 벗어난다. ⓒ KBS

 
관찰하는 자기
 
이 때 기억해야 할 것이 바로 세 번째 자기인 '관찰하는 자기'다. '관찰하는 자기'란 과거와 현재, 미래를 통틀어 변하지 않고 나를 인식하고 있는 자기를 말한다. 이는 언어로 표현하기가 어렵고,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아서 매우 낯설게 느껴진다. 하지만 '관찰하는 자기'의 존재를 자각하고 나면 변하지 않는 자기의 핵심에 닿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일기를 쓰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일기 속에 적힌 생각과 감정, 사건들을 경험하고 있는 것은 나이다. 하지만 지금 일기를 쓰면서 그 일기 속의 내 모습을 성찰하고 있는 나도 바로 '나'이다. 일기 속의 나를 관찰하고 있는 나는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져왔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나이다. '나를 관찰하는 나' '나의 경험과 생각과 감정들을 바라보고 조망하는 나' 이것이 바로 '관찰하는 자기'이다.
 
드라마 속 하니는 점점 이 '관찰하는 자기'에 눈을 떠간다. 하니는 17세의 자신을 관찰하며 여전히 같은 몸짓을 하고, 같은 취향을 지니고 있는 나를 인식한다. 주변 사람들의 "어쩜 이렇게 똑같니"라는 반응은 하니의 '관찰하는 자기'에 대한 인식을 촉진했을 것이다. 6회 물에 빠진 학생을 과자 봉지를 이용해 구하는 하니, 7회 위기에 처한 안소니(음문석)를 대신해 화장실 청소를 하는 하니와 어릴 적 유현(김영광)을 비롯한 친구들을 괴롭히는 자들을 물리쳤던 하니의 모습은 오버랩된다.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고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도왔던 '정의감'은 여전히 하니의 삶을 관통하고 있었다. 하니는 이처럼 겉모습은 변했지만 자신의 본질은 그대로임을 인식하게 된다. 8회 "왜 몰랐을까. 니가 그 시절 그 모습 그대로라는 걸. 여전히 당당하고, 여전히 멋지고, 여전히 반짝거리는 그 시절의 반하니"라는 안소니의 대사는 하니의 깨달음을 대신한 것이기도 했다.
 
헤이즈와 스미스는 '관찰하는 자기'를 인식하는 것은 지금-여기에서의 경험을 거리를 두고 바라도록 돕는다고 했다. 적당한 거리에서 나 자신을 조망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지금-여기에서 맞닥뜨리는 느낌과 생각들을 회피하지 않고 기꺼이 수용하며 그 의미를 생각해보게 된다.

마치 일기를 쓰면서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듯 말이다. 이는 고정되고 편협한 '자기 개념'에서 빠져나와 '지속적인 자각 과정으로서의 자기'를 활성화하도록 돕는다. 우리는 이를 통해 삶을 보다 더 생생하게 살아가며 나 자신을 통합시켜 갈 수 있다.
 
 정의감있고 언제나 당당하고 밝았던 17세 하니의 모습은 37세 하니의 모습안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

정의감있고 언제나 당당하고 밝았던 17세 하니의 모습은 37세 하니의 모습안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 ⓒ KBS

  
<안녕? 나야!>의 하니는 바로 이런 과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17세 하니와의 만남은 '자기개념'에서 빠져나와 '지속적으로 자각하는 자기'를 느끼게 하고, 나 자신을 조금 떨어져서 관찰하는 경험을 하게 했다. 그리고 이는 변해가는 모습 속에서도, 변치 않는 나의 핵심 즉 '관찰하는 자기'를 자각하게 해줬다. 때문에 하니는 "더 이상 그 애(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기"로 다짐하고 지금 여기에서 충실히 살아낼 수 있게 됐던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예전 사진 속의 내가 낯설게 느껴진다면, 그런 나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나, 즉 '관찰하는 자기'는 늘 변하지 않고 있음을 기억하자. 지금 나의 모습이 전과는 많이 다를지라도 이를 관찰하고 지켜봐 온 나라는 존재는 여전히 변하지 않은 그대로다. 관찰하는 나를 인식하고, 자기 자신을 적당한 거리에서 바라볼 수 있을 때 지금 여기에서의 나를 기꺼이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보다 충만하고 생생한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안녕? 나야!> 하니처럼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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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사람은 물론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하며 평등과 생명존중을 담은 글을 쓰고 소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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