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바쁜 엄마를 대신해 날 키워준 건 할머니였습니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도 화내기보다는 감싸주는 쪽을 택한 할머니의 사랑은 내 성장의 자양분이었습니다. 내가 결혼해 아이를 낳자 엄마는 이따금씩 아이를 돌봐주면 한없는 사랑을 주고 있습니다. 나의 엄마가 우리 아이에겐 내 기억 속 할머니와 같은 모습이겠지요. 누구에게나 할머니·엄마하면 떠오르는 추억이 있을 것입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할머니·엄마를 떠올리며 감사의 마음을 전해보는 건 어떨까요. [편집자말]
"정말 벙어리야? 그럼, 엄마처럼 잔소린 안 하겠네."
 
엄마 손에 이끌려 외할머니 댁으로 가고 있는 일곱 살 상우의 입에서 나온 말. 얼마나 철없고 버릇없는 녀석일지 대번에 짐작이 간다. 아니나 다를까, 상우는 처음 본 할머니를 "벼엉~신!"이라 놀려대고, 쓰다듬으려는 할머니의 손을 피하며 "히익! 더러워!" 한다.
 
영화 <집으로>에서 상우가 맡겨진 할머니집은 기차 타고 버스 타고 그러고도 한참이나 산길을 굽이굽이 걸어 들어가야 하는 외딴 시골이다. 롤러블레이드를 탈 만한 장소 따위 있을 리 만무하고, 게임기에 맞는 배터리도 구할 수 없으며, 피자나 햄버거 대신 온통 초록만이 가득한 그곳에서 개구쟁이 상우는 할머니와 기막힌 동거를 시작한다.
 
머리가 희고 허리가 굽도록 할머니가 살아오신 깊은 산골, 일곱 살 평생 상우가 자란 도시, 이 상반된 배경에다 할머니는 말을 하지도 글을 읽지도 못하신다. 여기서 비롯된 어긋남은 종종 상우의 심술보를 터뜨리고 할머니는 영문을 모른 채 미안하기만 하다.
 
이발하는 날, 상우가 이마에 엄지와 검지를 갖다대며 "요만큼!"이라고 하자 "요기까지!"로 알아들은 할머니는 시대를 한참이나 앞선(<집으로>는 2002년 첫 개봉) '박새로이' 헤어스타일을 선사하고 만다. 자르라는 데까지 정확히 잘라줬는데 "조금만 자르랬잖아!"라며 울음 터뜨리는 상우의 마음을 알 길 없는 할머니는 고개만 갸우뚱.
 
 영화 <집으로> 스틸이미지.

영화 <집으로> 스틸이미지. ⓒ (주)팝엔터테인먼트

 
뭐가 먹고 싶냐는 질문에 사진도 보여주고 "꼬꼬댁~" 흉내도 내며 열심히 프라이드 치킨을 설명했건만, 할머니는 생닭도 아닌 무려 살아있는 닭을 사다가 정성껏 푸욱 삶아 내놓으셨다.
 
"이게 무슨 켄터키 치킨이야. 치킨이라고 했잖아! 후라이드! 누가 물에 빠뜨리래?"
 
고대하던 프라이드 치킨을 먹지 못해 슬픈 상우와 또 한번 어리둥절하기만 한 할머니.
 
일곱살 손자에 찾아온 변화

하지만, 배터리 살 돈을 받아내지 못한 화풀이로 요강을 걷어차 깨뜨리고, 할머니의 하나뿐인 고무신을 숨겨 돌산을 맨발로 다니시게 하는가 하면, 급기야 할머니 머리에 꽂혀 있던 비녀를 훔치는 등, 일곱 살이 할 수 있는 온갖 악행(?)을 저지르던 상우에게도 스물스물 변화가 인다.
 
말린 나물 팔아 닭 사러 나갔다가 비에 홀딱 젖어 돌아오신 할머니는 다음날 끙끙 앓아 누우셨다. 배고픔에 잠이 깨 매몰차게 거절했던 닭백숙을 슬며시 집어들고는 무척이나 맛나게 먹어 치웠던 상우의 눈에 그런 할머니가 들어온다.
 
할머니 발이 나오지 않도록 이불을 꽁꽁 여미고 머리에 젖은 수건까지 올려드린다. 비녀 대신 꽂혀있던 낡은 숟가락을 빼 서툰 손길로 다시 비녀를 꽂아넣는다. 부엌에서 한참을 낑낑댄 뒤 밥상을 들고 와서는 "아침, 아니 점심 먹어!" 하는 상우의 지친 미소가 예쁘다.
 
버릇없는 행동에도 화 한번 내는 법 없고, 언제나 오히려 미안해하며, 주기만 하는 할머니의 사랑이 상우에게 스며들지 않았을 리 없다. 상우의 마음을 몰캉몰캉 변화시킨 건 훈계나 가르침이 아닌 할머니의 일방통행 사랑이었다.
 
나물 판 돈으로 상우에게 운동화를 사주고 짜장면을 사 먹이시면서는 물만 드시던 할머니, 그러고 나서도 또 먹고 싶은 거 없냐 묻고 또 묻는 할머니, 배터리 사라고 게임기 밑에 꼬깃꼬깃 천원짜리 두 장을 넣어두신 할머니, 다친 상우에게 굽은 허리로 허둥지둥 다가가 눈물 닦고 어루만져 주시는 할머니에게 누구라서 마음을 열지 않을 수 있을까.
 
장바닥에서 사람들에게 손짓하며 나물 파는 할머니의 모습을 본 상우는 그렇게 찾던 배터리 가게를 그냥 지나친다. 내일 먹으려고 아껴둔 초코파이를 슬쩍 할머니 장바구니에 집어넣더니 씨익 웃는다. 그리고, 자신이 돌아가면 혼자 남을 할머니가 걱정돼 애가 타기 시작한다.
 
"이건 아프다. 요건 보고싶다. 써봐. 다시이~ 에이참, 그것도 하나 못해? 할머니 말 못하니까 전화도 못하는데 편지도 못쓰면 어떡해. 많이 아프면 그냥 아무것도 쓰지 말고 보내. (울먹이기 시작한다) 그럼 상우가 할머니가 보낸 줄 알고 금방 달려올게. 응? 알았지? 흑흑흑~ 흐으윽~"
 
 영화 <집으로> 스틸이미지.

영화 <집으로> 스틸이미지. ⓒ (주)팝엔터테인먼트

 
이제 상우는 할머니를 위해 일곱 살 아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한다. 눈이 침침한 할머니를 대신해 바늘마다 전부 실을 꿰어놓는다.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 전 할머니에게 내민 카드 뭉치에는 비뚤배뚤 글씨와 함께 할머니 그림이 그려져 있다.

아파 누운 그림 밑에는 대문짝만한 글씨로 '아프다' 라고, 눈물 짓는 그림 밑에는 '보고십다(맞춤법은 틀렸지만)' 라고 적었다. 할머니가 보내기만 하면 되도록 주소도 미리 적어두었다. '할머니가 상우한테, 상우에게 바드세요' 크레파스로 꾹꾹 눌러적은 글씨가 뭉클하다.
 
할머니는 상우가 따갑다며 손을 뿌리쳐도, 왜 이제 오냐고 타박해도, 배터리 사줄 돈이 없어도 매번 가슴을 문질렀더랬다. 이번에는 상우가 떠나는 버스 뒤창에서 할머니를 향해 처음으로 가슴을 문지른다. "미안해"라고.
 
아낌없이 주던 우리 할머니

내게도 있었다. 꼭 상우 할머니처럼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았던, 늘 미안해하던 우리 할머니.
 
나는 우리 할머니처럼 먹으란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먹을거리를 잔뜩 준비해놓고는 눈만 마주치면 먹으라고 하셨다. 안타까운 얼굴로 자꾸만 "먹으라우, 더 먹으라우~" 하시는 바람에, 한창 살 빼고 싶던 이십대의 나를 곤란하게도 하셨던 할머니.
 
할머니가 우리집에 다녀가신 날이면 보물찾기 한판이 벌어지곤 했다. 집에 도착하시고 나서야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어디어디를 보라고 하셨다. 그곳엔 빠듯한 살림살이로 고생하는 딸을 향한 안쓰러운 마음이, 한푼 두푼 모아 마련했을 작은 돈뭉치가 놓여 있었다.
 
할머니의 베푸는 마음은 가족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엄마는 어릴 적 늘 두세 명의 객식구들과 함께 지냈다고 한다. '삼촌, 이모' 등으로 불리어서 먼 친척인 줄 알았지만, 훗날 알고보니 모두 남이었다고. 피난민 출신인 할머니 할아버지께서는 처지가 딱한 사람이 북에서 왔다고만 하면 모두 거두어들이신 것이다. 엄마 기억으로는 단 한번도 객식구 없이 살아본 적이 없다시는데, 그 긴 세월 열 명이 넘는 식구들의 끼니를 챙기는 것은 가녀린 우리 할머니 한 분의 몫이었으리라.
 
그때 객식구로 머물렀던 어떤 분들은 아직도 연락하며 진짜 친척처럼 지낸다. 그분들에게 우리 조부모님은 지난했던 강을 건널 수 있게 손 내밀어준 은인인 것이다.
 
형편이 어려웠던 어느 시절엔 할머니께서 행상을 다니셨단다. 자그마한 체구에 물건을 이고지고 팔러 다니는 일이 어찌 고단하고 서럽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장을 보실 때면 "시장에서 물건값 깎는 거 아니다"라며, 오히려 상인들에게 덜 담으라고 더 받으라고 하셨단다. 엄마는 시장 사람들 모두 그런 할머니를 존경했다고 하셨다.
 
나는 우리 할머니처럼 "내 탓이오"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집안에 물건이 없어져도 내 탓, 자식들 사이에 다툼이 생겨도 내 탓, 딸이 남편 때문에 속을 끓여도 내 탓, 도무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일에서도 재주놓게 '내 탓'을 찾아내셨다. 할머니가 늘 당신 탓이라고 하시니 정작 당사자들은 머쓱해지기 일쑤였다.
 
나는 할머니처럼 작은 일에도 쉽게 감동하고 고마워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눈이 어두워 찬송가 가사가 잘 안 보이신다길래 큰 글자로 인쇄해드렸더니 아이처럼 함박 웃으며 고마워하시던 할머니. 명절에 온가족이 모여 하하호호 즐거웠던 자리에서 한 마디 하시라 했더니 두 손 번쩍 들며 "행복합니다아~" 외치시던 귀여운 우리 할머니.
 
우리 할머니가 미슐렝 쉐프보다도 더 맛나게 만드셨던 주홍빛 물김치랑 유난히 탱글탱글했던 노란 계란찜. 그것 좀 배워둘 걸 그랬다. 주기만 하면서도 늘 미안해하는 상우 할머니를 보며 꼭 같았던 우리 할머니가 너무너무 보고싶은 날, 그래서 자꾸만 눈물나는 오늘 같은 날, 우리 할머니 손맛 떠올릴 수 있게 그것 좀 꼭 배워둘 걸 그랬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23년째 손 맞잡고 함께 걷는 한 남자, 그리고 꽃같고 별같은 세 아이들과 함께 캐나다 런던에 살고 있습니다.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