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 ⓒ 전주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가 경쟁부문 선정작 중 한 작품을 감독의 국적을 이유로 돌연 선정을 취소해 논란이 일고 있다. 

단편영화 < Save The Cat >을 연출한 허지예 감독은 <오마이뉴스>에 "지난 12일, 전주영화제로부터 한국단편경쟁 본선에 선정됐다는 기분 좋은 소식을 들었다가 국적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됐다"라며 "국적을 묻는 질문에 (출품) 서류에 기재한 대로 홍콩이라고 답했다가 규정상 한국 국적인 감독이 선정 대상이라는 말을 들었다"라고 전했다. 

"배제적인 규정, 부당하다"

허지예 감독에 따르면 전주영화제 측은 13일 그에게 해당 부문 선정 취소를 통보하며, 비경쟁 부문인 코리아 시네마스케이프 부문으로 초청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허 감독은 "한국에서 제작하고, 한국어 대사로 이뤄진, 제 국적만 제외하고 보면 한국영화로 받아들여질 작품이 한국단편경쟁에 선정될 수 없다는 전주 측 입장에 실망감을 표했다"며 "한국경쟁 및 한국단편경쟁, 코리아 시네마스케이프 부문은 한국영화를 위한 자리인지, 한국 국적 감독을 위한 자리인지 묻고 싶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기고 영화제 측 제안을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한국에서 영화를 만들 제작자로서 부당한 이유로 배제되는 경험을 다신 하고 싶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허지예 감독은 3년 전인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 때 이미 <졸업>이란 작품으로 한국영화 장편 경쟁 본선에 올라 유니온투자파트너상을 받은 바 있다. 당시에도 허지예 감독의 국적이 홍콩이었음에도 경쟁 부문에 선정됐고, 다른 작품과 함께 관객을 만났다. 

허 감독은 "이 사실을 전주 측에 말씀드렸으나 '그때와 지금의 담당자가 달라졌고, <졸업>은 학생영화였기에 융통성 있게 선정한 것 같다'는 황당한 답변을 들었다"라며 "전주영화제가 선정한 감독의 국적이 규정과 맞지 않았을 때 컴플레인 받은 사례가 있고, 이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게 영화제의 입장이었다. 출품자격에 '한국 국적을 가진 감독'이라는 배제적 규정을 요건으로 갖춘 몇몇 영화제들은 이 규정이 얼마나 부당한지 인지해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자신을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다문화 가정 2세라고 소개한 허지예 감독은 부친이 홍콩인이고, 그에 따라 홍콩 국적을 가졌지만 그간 쭉 한국에서 공부해왔다. 최근까지 5편의 영화를 만들었고, 모두 국내 영화제에서 한국영화로 인정받고 경쟁 부문에 선정되었다. 
 
 지난 19회 전주영화제에서 <졸업>으로 한국장편경쟁 부문 본선에 오른 허지예 감독. 해당 작품은 신인감독상에 해당하는 유니온투자파트너상을 받았다.

지난 19회 전주영화제에서 <졸업>으로 한국장편경쟁 부문 본선에 오른 허지예 감독. 해당 작품은 신인감독상에 해당하는 유니온투자파트너상을 받았다. ⓒ 전주국제영화제

 
국적 문제 지적에 사이버불링까지

이에 대해 전주영화제 관계자는 16일 오전 <오마이뉴스>에 "(허지예 감독이 상을 받은 때는) '한국영화'라는 기준만 있었는데 21회 영화제(2020년) 직전에 '한국 국적을 가진 감독'으로 바뀐 것"이라며 "한국영화라고만 기준을 잡으니 외국인이 한국에서 찍은 영화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등 출품 대상과 자격 요건에 문제를 제기하는 흐름이 있어서 바뀌게 됐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다보니 허지예 감독 등 다문화 가정과 유학생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 올해는 이미 공지까지 했기에 갑자기 바꿀 수 없으니 감독님께 양해를 구했고, 코리아 시네마스케이프 부문을 제안드렸다"라며 "규정 문제는 올해 영화제가 끝나고 개편하려고 한다"라고 알렸다. 한국 영화의 규정을 명확하게 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일이라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16일 오후 통화에서 허지예 감독은 "사무처장님이 오전에 전화주셔서 해당 규정이 만들어진 경위를 자세히 말씀주셔서 납득은 되고, 마음은 좀 편해졌지만 영화제 측에 제가 출품 규정을 잘못 이해한 게 아니라는 식의 입장 표명을 요청 드려서 기다리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 사안을 공론화하는 과정에서 허지예 감독은 일종의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 온라인상 집단 따돌림과 괴롭힘)까지 당하는 중이었다. SNS에 전주국제영화제와 소통한 상황을 알리는 허 감독 글에 '트랜스 한국인이다', '한국 국적으로 귀화했어야 한다' '홍콩 국적이니 세금은 제대로 내는 건가'는 등의 댓글이 달리고 있는 것이다. 

허 감독을 지지하는 반응 또한 있었다. 한 사용자는 '<미나리>가 미국 영화로 인정 못받는 걸 비웃을 때가 아니었다'며 안타까워 했고, 다른 사용자 또한 '국적 문제 운운하는 다른 사람들은 <미나리>가 외국어영화상 받은 게 부당하다는 글엔 엄청 동의를 표했을 것'이라 비판했다.

한편 올해로 22회째인 전주영화제는 지난 12일 한국경쟁 상영작 10편을 공개하며 성소수자, 인권 문제를 조명하고 있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허 감독의 사례 등으로 배타적인 작품 선정 규정 개정에 대한 목소리 또한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전주국제영화제 허지예 홍콩 미나리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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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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