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상티넬> 메인포스터 영화 <상티넬> 메인포스터

▲ 영화 <상티넬> 메인포스터 영화 <상티넬> 메인포스터 ⓒ 넷플릭스

 
01.
중동의 테러리스트를 체포하기 위한 작전이 진행된다. 체포되지 않기 위해 몸을 숨긴 테러리스트는 자신의 아들을 볼모 삼는다. 대테러 부대의 부대원인 클라라(올가 쿠릴렌코 분)는 아들의 생사를 걱정하는 그의 아내에게 아이만큼은 해치지 않겠노라 약속하고 그의 은신처를 알아낸다. 작전은 목표로 하던 테러리스트를 제압하고 그와 함께 있던 아이의 신병까지 확보하며 순조롭게 진행된다.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롭다고 느껴질 정도로. 부대원 중 하나가 분리된 아이의 신체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기 전까지 말이다. '널 자랑스럽게 여기마, 신께서 상을 주실 거야. 얼른!' 아버지의 고함 소리를 들은 아이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자신의 오른손, 그 작은 손바닥 위에 숨겨져 있던 버튼을 누른다.
 
자살 폭탄 테러. 테러리스트인 아버지의 한 마디에 아이는 자신의 몸을 수색하던 부대원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지 알지도 못한 채 말이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아버지인 테러리스트에게 볼모로 잡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의 가장 충실한 부하 중 하나로, 같은 신을 믿는 동등한 신자 중 하나로 잘못된 걸음을 이미 걷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장면을 바로 눈 앞에서 지켜 본 클라라는 커다란 충격에 빠진다. 이 충격은 기존에 자신이 수행하고 있던 대테러 임무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을 정도. 그녀는 결국, 프랑스 본토로 전근을 오게 된다. 자신의 고향인 니스(Nice)를 지키는 상티넬(Sentinelle) 작전에 투입되게 된 것이다.
 
영화 <상티넬> 스틸컷 영화 <상티넬> 스틸컷

▲ 영화 <상티넬> 스틸컷 영화 <상티넬> 스틸컷 ⓒ 넷플릭스


02.
프랑스 어로 감시병을 뜻하는 상티넬(Sentinelle). 그 상티넬 작전은 실제 프랑스의 군사 작전으로 2015년 1월 12일에 개시되었다. 이들은 테러 위협에 맞서고 모든 공격을 예측하며 그 예측을 바탕으로 행동한다. 시민과 영토를 보호하기 위해서 창설된 상티넬 작전 부대는 민감한 지역을 미리 순찰하며 범죄 및 테러를 예방하며 현재도 매일 10000여 명의 군인이 동원될 정도라고 한다. 이는 실제로 프랑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테러 위협과 무관하지 않다.
 
영화의 배경이 프랑스 남부의 니스로 설정된 것 역시 2016년 7월 14일 발생하여 300여 명에 가까운 사상자를 낸 '니스 테러 사건'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니스는 바로 지난 해에도 시내에 위치한 성모 마리아 바실리카 성당 앞 광장에서 무슬림 남성이 흉기 테러를 저지르는 등 지속적인 테러 위협이 있어온 도시다. 이는 니스라는 도시 자체가 대표적인 휴양 도시이면서도 지정학적으로 지중해 인근에 위치해 있기 때문인데, 그만큼 영화의 핵심 소재 중 하나인 상티넬의 존재감을 확고히 드러내기에 좋은 무대로 여겨진 듯 보인다.
 
타이틀의 의미는 이렇게 설명할 수 있겠으나, 영화 전체적으로 볼 때 상티넬의 역할이 크게 부각되는 것은 아니다. 가령, 영화 <덩케르크>(2017, 크리스토퍼 놀란)에서 덩케르크 지역이 중심이 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는 의미다. 같은 의미라면 이 영화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분명 상티넬 작전이 되어 그들 전체의 이야기가 작품 속에서 펼쳐져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영화 <상티넬>에서 상티넬은 주인공인 클라라의 배경일 뿐, 이야기는 오롯이 그녀를 중심에 놓고 진행된다.
 
03.
그녀가 중동의 위험한 작전 지역에서 벗어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게 된 것만으로도 행복해하는 가족들과 달리 클라라 본인은 상티넬로서의 첫 순찰부터 큰 어려움을 겪는다. 술에 취해 여성을 폭행하고 있는 남성을 발견하고는 테러리스트를 제압하는 듯한 반응을 보이고, 도시 내 시민들의 일상적인 행동에도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그녀의 동료들 역시 정체를 알 수 없는 가방이나 의심이 되는 상황에서는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다만, 클라라만큼은 아니다. 그녀는 혼자 여전히 테러 발생 지역에 놓여 있는 듯 행동한다.
 
정신적으로 매우 지쳐있는 상태라고 할까. 밤마다 악몽에까지 시달리며 예민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녀는 불법 마약에까지 손을 대고 만다. 정신과 상담 및 정상적인 약물 복용 등 상황을 개선시킬 정상적인 방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자신의 눈 앞에서 자살 폭탄 테러를 목격했다는 것, 반드시 아이만큼은 무사히 데려오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 등의 빛 바랜 무게들이 그녀를 좀먹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다섯 개 언어를 할 줄 알고, – 여담이지만, 클라라 역을 맡은 올가 쿠릴렌코는 실제로 다섯 개 언어를 구사할 줄 안다고 한다.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다 - 수석 졸업까지 한 자신이 지금은 겨우 순찰 업무나 맡고 있다는 사실 또한 클라라를 무력하게 만들었을 테다.
 
본인의 삶도 제대로 가누기 어려운 상황에서 더 큰 문제가 벌어진다. 동생 타니아(마릴린 리마 분)가 두 사람이 함께 찾은 클럽에서 연락도 없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클라라가 충동적으로 하룻밤을 보내는 동안 동생은 자취를 감추고,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이 다음날 오전에 해변에서 성폭행을 당한 채로 발견된다. 뇌부종으로 인한 혼수상태. 수술도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클라라는 동생의 사건 배후에 놓인 인물을 찾아 나선다.
 
영화 <상티넬> 스틸컷 영화 <상티넬> 스틸컷

▲ 영화 <상티넬> 스틸컷 영화 <상티넬> 스틸컷 ⓒ 넷플릭스


04.
이후 중후반부의 내용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범위 내에서 큰 변용없이 진행된다. 동생의 사건을 두고 그 배후를 찾아 복수를 하기 위한 주인공의 여정이랄까.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장소를 중동에서 프랑스 니스로, 프랑스 니스 도시 전체에서 레오니트 카드니코프(마이클 나보코프 분)라는 인물의 별장으로 점차 축소시켜 나간다는 점이다.

이는 작품의 러닝타임이 80분으로 짧은 것과 유의미한 연관이 있어 보이는데, 장소의 축소를 통해 이야기의 볼륨이 지나치게 커지는 것을 억제하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작품에 따라 액션 장면을 밀도 있게 구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동일한 방법을 활용하기도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액션 장면의 비중이 의외로 높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동생의 사건을 일으킨 범인의 존재를 확정하는 지점에서 미약하게나마 조금 틀어내는 부분이 있기는 하나 그 과정이 특별하지는 않다는 점에서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그 소재를 오래 안고 가지 못하고 레오니트의 대사를 통해 모두 소진해 버리는 모습은 조금 허탈하다. 레오니트의 아들이자 처음의 용의자였던 이반이라는 인물과의 관계, 두 사람이 머물며 사건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이 가능하게끔 했던 별장의 설정 등과 조금 더 긴밀하게 구성되어 후반부까지 잘 끌고 갔으면 조금 더 긴장감 높은 스릴러와 액션의 비중이 적절히 섞인 작품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의 전체적인 구성이 이와 유사하다. 하나 하나 별개의 것으로 놓고 보면 흥미로운 구석이 분명히 존재하나, 그 포인트를 제대로 살려내거나 오래 이끌고 나가지 못한다는 점이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05.
대부분의 영화가 그러하듯 이 작품 <상티넬>에도 여러 신(Scene)의 의미를 이어보려는 노력은 존재한다. 기억에 남는 것은 단 하나, 초반부에 등장하는 폭탄 자살 테러의 부자(父子)와 후반부에 등장하는 카드니코프 부자(父子)의 모습이다. 간단히 이야기 하자면, 일그러진 부성애에 대한 것이랄까. 감독의 의도가 분명히 담겨있는 것처럼 느껴지며 어떤 중요한 의미를 담을 수 있을 것 같은 한 쌍의 장면이지만 여기에도 다소간의 아쉬움은 남는다. 그것이 옳든 아니든, <상티넬>의 주된 내용이 부성애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점. 영화의 메인 스트림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되려, 영화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폭풍이 지난 뒤의 새 바람이 되고 싶다'와 엔딩 장면을 더 긴밀하게 연결시킨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지금도 누군가를 지키고 있을 상티넬의 실제 인물들과 영화 속 클라라, 타니아 자매의 이야기도 훨씬 더 풍부하게 피어났을 것이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이름이라는, 상티넬(Sentinelle)의 의미와 더불어.
영화 넷플릭스 상티넬 올가쿠릴렌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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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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