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방송된 KBS2 월화드라마 <달이 뜨는 강>의 한 장면

지난 9일 방송된 KBS2 월화드라마 <달이 뜨는 강>의 한 장면 ⓒ KBS2

 
지난 9일 방송된 KBS2 사극 <달이 뜨는 강>에서는 유명한 결혼 이야기가 나왔다. <삼국사기> 온달열전에 나오는 공주의 국혼이 그것이다.
 
온달열전에는 평강태왕(평원태왕)이 16세 된 공주를 5부 중 하나인 순노부 귀족과 결혼시키려 하자, 공주가 '어릴 적엔 온달의 아내가 될 거라고 하시더니 왜 식언을 하시냐'며 왕궁을 나가는 장면이 나온다.
 
이와 달리 지난 9일 방송된 <달이 뜨는 강> 제8회는 계루부 실력자 고원표(이해영 분)가 평강태왕(김법래 분)을 윽박질러 국혼이 추진되는 것으로 묘사했다. 아버지 고원표와 달리 왕실에 유화적인 고건(이지훈 분)은 그런 강압적 절차를 부담스러워하면서도 공주와의 혼인에 대해서는 내심 기대를 건다.
 
하지만 공주는 결사적으로 거부한다. 온달열전의 공주처럼 드라마 속의 공주도 아버지 명령을 정면으로 거역한다. 또 고건 면전에서도 싫은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출한다.
 
예전부터 공주를 마음에 두고 살아온 고건은 제8회 방송이 57분을 경과하는 부분에서 "이제 공주님의 낭군이 되겠습니다"라고 솔직히 털어놓는다. 공주는 고백을 다 들어놓고도 "못 들은 걸로 할게"라며 선을 명확히 긋는다.
 
그런 반응에 관계없이 고건은 자기 생각을 밀어붙인다. "제 청을 받아주십시오!"라고 의지를 불태운다. 공주는 "미안해"라고 말한다. "내 마음에 이미 다른 사람이 있어"라고 단호하게 의사를 표시한다. '싫다'보다 더 센 '딴 사람이 있다'는 대답으로 방어막을 친 것이다.
 
공주의 가출이라는 파국적 상황
 
 지난 9일 방송된 KBS2 월화드라마 <달이 뜨는 강>의 한 장면

지난 9일 방송된 KBS2 월화드라마 <달이 뜨는 강>의 한 장면 ⓒ KBS2


<달이 뜨는 강>은 공주와 온달이 이미 상당한 인연을 쌓은 상태에서 위와 같이 국혼이 거론됐다고 묘사한다. 하지만 한국인 대부분이 잘 아는 것처럼, 실제로는 공주와 온달이 일면식도 없는 상태에서 국혼 문제가 거론됐고 그로 인해 공주의 가출이라는 파국적 상황이 발생했다.
 
어릴 적부터 많이 듣기는 했지만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남자와의 결혼을 위해 고구려 공주는 왕족 신분을 버리고 무작정 가출했다. 그리고 그 남자를 찾아 나섰다. 실제 상황이 드라마보다 훨씬 극적이었던 것이다.
 
실제의 공주는 그처럼 파격적 행보를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치열한 설득 작업을 전개했다. 일면식도 없는, 머릿속에서 가상의 이미지로만 존재하는 남자와의 결혼을 위해 '파격 행보'와 더불어 '설득 작업'도 병행했던 것이다.
 
이 설득 작업은 가출 이전부터 있었다. 첫 대상은 신붓집 어른이자 자기 아버지인 평강태왕이었다.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 공주는 이를테면 '아버지 일언 중천금' 논리를 펼쳤다. 어렸을 때 습관적으로 들어온 '이렇게 울어대면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내겠다'는 아버지의 말을 상기시켰다.
 
온달열전에 따르면, 공주는 "지금 무슨 이유로 이전 말씀을 바꾸십니까?"라며 "필부도 식언을 하지 않으려 하는데, 하물며 지존이십니다"라고 따졌다. 열전에 적힌 것만 놓고 보면, 태왕은 논리적 대응을 하지 못했다. 그저 화를 내면서 "네가 내 명을 따르지 않는다면, 너는 결코 내 딸이 될 수 없다"며 아버지의 권위만 내세웠을 뿐이다. 그런 뒤 태왕은 "네가 갈 데로 가라"며 딸과의 논쟁을 끝내버렸다.
 
공주의 설득은 태왕을 논리적 궁지로 모는 데는 성공했지만, 애초에 원했던 결과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태왕을 감복시키기보다는 분노케 했고, 이는 그 자신의 출궁을 초래했다.
 
온달 집을 수소문해 찾아간 평강공주

신붓집 어른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 그는 이번에는 신랑집에 대한 설득에 들어갔다. 열전에 따르면, 고급 패물 수십 개를 팔목에 찬 채로 그는 궁문을 나섰다. 보따리 챙길 겨를도 없었던 모양이다. 행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그런 모습으로 그는 온달 집을 수소문해 찾아갔다.
 
그런데 그 집에서 그는 설득을 하기보다는 당하는 상황에 처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온달 어머니는 손님한테서 나는 향기를 근거로 "필시 천하의 귀인일 것"이라며 "누구의 속임 때문에 이곳에 오시게 되셨소?"라는 말로 공주의 의욕을 떨어트렸다.
 
온달 어머니는 손님이 자기 아들에게 예사롭지 않은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공주에게 자기 아들이 배고픔을 참지 못해 느티나무 껍질을 벗기려 산에 올라갔노라고 이야기해줬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자기 집의 경제 상태를 한번 더 강조한 것이다.
 
온달 어머니뿐 아니라 온달의 반응 역시 다르지 않았다. 온달열전에 따르면, 어머니보다 늦게 공주를 접한 온달은 어머니 이상으로 공주를 밀어냈다. "이는 어린 여자가 할 일이 아니다"라며 "필시 사람이 아니라 여우 귀신일 테니 내게 다가오지 말라"고 딱 잘라 말했다.
 
 지난 9일 방송된 KBS2 월화드라마 <달이 뜨는 강>의 한 장면

지난 9일 방송된 KBS2 월화드라마 <달이 뜨는 강>의 한 장면 ⓒ KBS2

 
이렇게 설득을 하기는커녕 도리어 설득을 당하게 된 공주는 일단 뒤로 물러섰다. 아버지를 상대할 때는 논리적 공격을 퍼붓던 그가 온달 모자 앞에서는 수세적 상황에 내몰리다가 후퇴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멀리 물러서지는 않았다. 그 집 사립문 밖으로 나간 뒤, 거기서 주저앉았다. 그 상태로 그날 밤을 묵었다. 그런 뒤 다음날 아침 다시 들어갔다. 두 모자를 앞에 놓고 자초지종을 상세히 설명했다.
 
전날에는 수세적 상황에 처했던 공주가 이날은 공세 모드를 보였다. '귀신아 물러가라'는 식으로 반응했던 온달은 전날보다 누그러졌다.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이며 주저주저할 뿐이었다. 한편, 어머니는 '우리 집은 너무 가난해서 귀인이 살 곳이 못 된다'며 전날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평강공주가 온달 모자를 설득할 수 있었던 이유

이 상태에서 공주는 설득의 포인트를 한 군데로 집중했다. 온달 어머니가 강조하는 경제력에 관한 부분을 중점적으로 거론했다. 재산은 중요하지 않다는 논리로 두 모자의 마음을 흔들었다.
 
공주는 곡식이 한 말만 돼도 방아를 찧을 수 있고 천이 한 자만 돼도 재봉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 뒤, "꼭 부귀해진 뒤에야 함께 살 수 있는 것입니까?"라는 말을 던졌다. 그 시대 특권층에게서 듣기 힘든 말이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온달열전에 적힌 것만 놓고 보면, 그것이 결정타가 된 듯하다. 온달 모자의 반론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지금보다 훨씬 더, 신분과 가문과 재산이 배우자 선택의 기준이었던 시절이다. 그런 시절에 공주는 그따위가 뭐 그리 중요하냐고 역설했고, 이것이 신랑집의 마음을 돌리는 데 결정타가 된 듯하다.
 
자기 집안을 설득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신랑집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 공주는 팔목에 차고 온 귀금속들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것을 팔아 집·농지·우마 및 각종 기물을 구입했다. 또 노비도 확보했다. 공주와 온달 그리고 시어머니의 동거는 그렇게 시작됐다.
 
<달이 뜨는 강>의 공주 국혼은 거대한 정치적 음모와 맞물려 돌아간다. 그런 음모에 맞서 공주는 자기의 길을 추구한다. <삼국사기> 온달열전에는 그런 음모가 드러나지 않는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가상의 이미지로 존재하는 일면식도 없는 남자와의 결혼을 위해 공주가 전개한 치열한 설득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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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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