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기자말]
"후회 때문에 넘어오는 거야. 나중에 가면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내가 그 때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매일 밤마다 괴로워해. 후회라는 게 그런 거야." (<시지프스> 4회, 서해)
"자식이 부모한테 쏜 화살들은 한 발도 예외없이 후회가 되죠. 후회할 짓 하지 마요. 후회는 현실에서 겪는 가장 큰 지옥이니까." (<빈센조> 3회, 빈센조)
"평생동안 그 순간을 후회하면서 살아온 내게 또 후회할 일이 생길까 봐 두려웠어." (<안녕,나야> 3회, 하니)
 

한 달 전 나란히 시작한 세 편의 드라마 JTBC <시지프스>, tvN <빈센조>, KBS <안녕? 나야!>에 나오는 대사들이다. 장르도, 설정도, 분위기도 완전히 다른 세 드라마의 인물들은 이렇게 묘하게도 '후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시지프스>의 미래에서 온 사람들은 '후회'를 만회하려 과거로 오고, 주인공 태술(조승우)는 형 태산(허준석)과의 마지막 순간을 평생토록 후회하는 인물이다. <빈센조>의 변호사 차영(전여빈)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후회로 바벨 제약에 복수하려 나선다. <안녕? 나야!>의 37살 하니(최강희)는 자신의 무모함 때문에 아버지가 사망했다고 평생을 자책하며 스스로를 포기한 듯 살아간다.
 
도대체 '후회'란 무엇이길래, 이 세 드라마 속 인물들은  '후회'로 인해 괴로워하고 이를 만회하려 행동하는 걸까?
  
 <시지프스>의 태술(조승우)는 형과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후회로 스스로에게 분노하며 살아간다.

<시지프스>의 태술(조승우)는 형과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후회로 스스로에게 분노하며 살아간다. ⓒ JTBC

 
심리학에서의 후회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후회'는 과거에 다르게 행동했더라면 현재 상황이 더 나아질 수 있었음을 깨닫는 것이다. 흔히 후회를 감정의 한 종류로 생각하지만, 심리학에서 후회는 '만일 ~했었더라면 ~했을텐데'라는 '사후가정사고'의 하나로 본다. 사후가정사고는 과거의 어떤 시점을 떠올리며 실제 일어난 것과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사고과정이다. 현재의 결과가 불만족스러울 경우 사람들은 더 나은 가상의 시나리오와 비교하며 "그랬으면 좋았을 걸"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이 바로 '후회'다.
 
이런 사후가정사고, 즉 후회는 다양한 부정적 감정들을 일으키는데 대표적인 것이 분노와 절망이다. 그리고 후회를 통해 양산되는 이런 부정적 감정들은 삶에 대한 만족과 주관적인 안녕감을 낮추고, 때로는 신체적 질병을 유발하기도 한다.
 
세 드라마 속 인물들은 '후회'로 인해 촉발되는 분노와 절망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시지프스>의 태술은 자신을 위해 희생했던 형에 대한 후회를 자신에 대한 분노로 돌린 경우다. 그는 약물에 의존해 괴로움을 다스리며 살아가는데 1회 정신과 의사이자 친구인 서진(정혜인)이 "그 순간을 후회하냐"고 묻자 심한 감정적 동요를 일으키며 "생판 모르는 사람들한테는 웃고 떠들면서 정작 우리형 한테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 못했어"라며 분노한다. 자기 자신을 향한 분노는 그를 정신적으로 더욱 피폐하게 몰아간다.
 
<안녕? 나야!>의 하니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후회로 자신감과 생기를 모두 잃은 채 20년을 살아간다. 그저 하루하루 버티는 삶을 살아가며, 스스로를 위한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은 채 말이다. 그녀는 후회가 유발한 절망감에 사로잡힌 인물이다. <빈센조>의 차영은 아버지에 대한 후회에서 비롯한 분노를 복수로 이어가고, 빈센조의 생모는 이와는 반대로 자식을 버린 후회로 절망감에 빠져 살아간다. 그녀는 억울한 일도 바로잡으려 하지 않으며, 심지어 암이라는 병조차 자기 자신에 대한 벌로 받아들인다.
 
시간에 대한 태도 

  
 <빈센조>의 차영(전여빈)은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후회를 상대방에 대한 복수로 치환한다.

<빈센조>의 차영(전여빈)은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후회를 상대방에 대한 복수로 치환한다. ⓒ tvN

 
이처럼 후회는 부정적 감정을 유발하고, 한 개인의 삶을 인생 전반에 걸쳐 피폐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하지만 모두가 드라마 속 인물들처럼 후회에 빠져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과거의 '후회스런' 순간에도 감사할 것을 찾고, 이를 통해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현재를 더욱 충실하게 살아가기도 한다. 이런 차이는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심리학자들은 후회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변인으로 '시간관'을 든다. 시간관이란 과거나 미래 등 특정한 시간대에 대한 지향 또는 시간에 대한 태도로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선호의 표현이다. 시간관은 비교적 안정적인 개인의 심리적 특징이지만, 자신의 시간관을 인식하고 지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는 우리가 공기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시간은 항상 흐르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관을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시간관은 크게 과거지향적, 현재지향적, 미래지향적 세 개의 시간관으로 나뉜다. 과거지향적 시간관은 다시 '과거긍정적 시간관'과 '과거부정적 시간관'으로 구분되는데 '과거긍정적 시간관'을 지닌 이들은 과거를 따뜻하고 감상적인 태도로 대한다. 반면, '과거부정적 시간관'은 과거를 부정적이며 혐오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현재지향적 시간관은 지금 이 순간에서 즐거움을 추구하는 '현재쾌락적 시간관'과 현재를 체념하듯 살아가는 '현재숙명적 시간관'으로 나뉜다. '미래지향적 시간관'은 다른 시간관과는 달리 단일요인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계획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현재에서의 만족을 지연시키는 태도를 말한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후회'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과거부정적 시간관'에 기반해 살아간다. 드라마 속 인물들 역시 그랬다. <시지프스>의 태술은 기술로는 미래를 지향하지만 마음엔 과거 속 자신에 대한 혐오가 가득 차 있다. 시간을 되돌려 미래에서 온 사람들 역시 과거의 부정적 사건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사람들로 묘사된다. <안녕? 나야!>의 하니는 몸은 37살 어른이 되었지만, 심리적으로는 17살 때 저지른 일에 대한 자책에서 한 발도 성장하지 못했다. <빈센조>의 빈센조 어머니 역시 그녀의 정신적 자리는 과거 자녀를 버린 그 시점에 머물러 있다. '후회'하며 살아가는 이 인물들은 현재를 살아갈지라도 충만히 누리지 못하며 미래도 희망하지 않는다. 과거 부정적 시간관에 기반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후회를 후회하지 않으려면

그렇다면 후회를 후회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심리학자들은 후회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시간관'에 균형을 잡는 것으로 후회를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균형잡힌 시간관'을 연구한 웹스터(Webster)에 따르면 과거의 긍정적인 면을 회상하고, 긍정적인 미래를 상상하는 것으로 시간관의 균형을 잡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균형잡힌 시간관'을 '과거와 미래 모두에 대해 생각하는 빈번하고 동등한 경향성'으로 정의하면서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을 유연하게 오갈 수 있는 인지적 유연성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했다. 그는 균형잡힌 시간관을 통해 더 많은 유능감, 삶의 만족,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빈센조>의 차영은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된 후회를 보다 나은 미래를 지향하면서 극복해가고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원망과 분노에 가득 차 있던 차영은 분노를 아버지를 그렇게 만든 자들에 대한 복수로 치환한다. 이 복수의 과정에서 아버지와 함께 했던 사람들을 만나며 아버지의 진정성을 이해한다. 과거의 아버지를 긍정적으로 지각하게 된 차영은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가기로 결심한다. 차영이 '후회'에 파묻히지 않고 행동할 수 있었던 건 이처럼 과거를 긍정하고, 미래를 지향하는 시간관으로의 전환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안녕? 나야!>의 하니 역시 17살 하니를 만나면서 달라진다. 이전까지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사건만 떠올리던 하니는 조금씩 '빛났던' 자신의 모습들을 기억해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은 되돌릴 수 없는 일임을 받아들인다. 반면, 자포자기하고 살아가는 자신의 현재와 미래는 바꾸어 갈 수 있음을 깨닫는다. 6회 하니는 "이제 더 이상 그 애한테 부끄럽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이는 후회에서 벗어나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는 다짐이었다. 하니 역시 과거부정적 시간관에서 벗어나 과거의 긍정적인 면을 기억하고, 미래지향적으로 관점을 옮김으로써 지독한 '후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반면, <시지프스>의 태술은 여전히 과거 형에 대한 후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해서 과거를 찾아나서며 헤매고 있다. 때문에 태술은 여전히 괴롭다.
  
 <안녕?나야>의 하니(최강희)는 17살 때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죄책감과 후회로 절망감에 빠져 지낸다.

<안녕?나야>의 하니(최강희)는 17살 때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죄책감과 후회로 절망감에 빠져 지낸다. ⓒ KBS

 
'후회'는 과거부정적 시간관에 기반을 둔 사후가정적 사고로, 분노와 절망 같은 괴로운 감정들을 유발한다. 하지만, 잠시만 멈춰 생각하면 '~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라는 후회하는 마음 속엔 '더 나은 삶을 원하는' 간절함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마음이 간절할수록 후회도 짙어진다. 그러니 '후회'로 인해 괴로울 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후회'의 이면에 담긴 진짜 마음이다. 그리고 과거에 내가 지녔던 힘, 긍정적인 나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것을 활용해 보다 나은 미래를 지향하며, 지금 여기서 해야 할 것을 하는 것이다. 그럴 때 '후회'는 '후회할 일' 이 아닌 '보다 나은 삶을 위한 디딤돌'이 될 수 있다. 
 
세 드라마 속 인물들의 행보가 '후회'를 '후회하지 않는' 결과로 이어지길, 그래서 시청자들에게 후회를 삶의 동력으로 활용하는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참고문헌>
이현주, 정남운(2020), 시간관과 주관적 만족의 관계에서 감사와 후회 그리고 정서의 매개효과 : 중년여성을 대상으로, 한국심리학회지 : 여성, 25(2)
이송희(2018). 반추와 우울의 관계에서 균형 잡힌 시간관의 조절효과. 청소년학 연구 25(2)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시지프스 빈센조 안녕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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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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