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부터 SKY TV에서 방송되는 웹 드라마 <가시리잇고>에서는 음악가 박연(찬희 분)이 600년을 뛰어넘어 2021년에 환생하는 장면이 나온다. KT Seezn을 통해 미리 공개된 이 드라마 1회 후반부에서, 박연은 아르바이트 연주자 민유정(박정연 분)이 가야금을 튕기는 동안 2021년으로 튀어나온다. 갓에 도포 차림을 한 그는 가야금을 연주하던 캐주얼 복장의 민유정을 깜짝 놀라게 만든다.
 
 SKY 드라마 <가시리잇고> 관련 이미지.

SKY 드라마 <가시리잇고> 관련 이미지. ⓒ SKY

 
우륵·왕산악과 함께 한국 3대 악성으로 추앙되는 박연은 자기 시대보다는 대한민국 시대에 훨씬 나은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조선시대 사람들도 그의 음악적 업적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 시대처럼 거의 모든 대중이 그의 이름을 알지는 못했다. 대한민국 시대의 대중은 그의 음악을 이해하지는 못해도, 그가 세종대왕과 함께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는 점만큼은 잘 알고 있다.
 
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이 대중음악을 통제한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또 일본제국주의가 안익태·홍난파 같은 음악인들을 앞세운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정치권력들은 음악에 대해 고도의 관심을 기울여왔다.
 
박정희·전두환·일본제국주의와 차원을 달리하는 여타의 정치권력들도 마찬가지였다. 음악에 대한 국가권력의 관심은 어느 시대나 다 지대했다. 대체적으로, 정치권력들은 빠른 템포나 격정적인 음악이 유행하는 것을 경계했다. 그것이 대중 심리에 미칠 영향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고대로부터 국가권력이 음악과 정치의 상관성에 주목했다는 점은 강태공의 병법서일 수도 있는 <삼략>에서도 나타난다. <육도>와 함께 <육도삼략>으로 통칭되기도 하는 이 책은 "백성이 몸을 굽히게 하려면 예법으로 다스리고, 백성이 마음으로 복종하게 하려면 음악으로 다스려야 한다"며 예(禮)와 악(樂)의 정치적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연이 이룬 음악적 업적

강태공 같은 병법가만 그런 말을 한 게 아니었다. 맹자 같은 유가도 동일한 말을 했다. <맹자> 공손추 편에는 "예법을 보면 나라의 정치를 알 수 있고, 음악을 들으면 군주의 덕을 알 수 있다"는 문장이 있다. 음악이 국정 운영을 이해하는 바로미터라고 말한 것이다.
 
박연은 프리랜서 음악가가 아니었다. 그는 조정에 고용된 샐러리맨이었다. 조선 건국 14년 전인 1378년 출생한 그는 27세 때이자 태종 임금 때인 1405년에 과거시험에 급제했다. 그 뒤 집현전이나 예문관 같은 관청에 근무하면서 국가적인 음악 사업에 참여했다.
 
유교적 소양을 갖고 '조정 샐러리맨'으로 근무하면서 음악 활동을 했기 때문에, 그 역시 강태공이나 맹자와 비슷한 시선으로 음악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가 이룩한 음악적 업적은 기본적으로 왕조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중앙대 국악대학장을 역임한 음악학자 전인평의 <새로운 한국 음악사>는 "박연은 당시 정치 지도이념인 유학사상을 음악에 적용하여 예악사상의 구현에 노력"했다고 한 뒤 "박연의 관심은 악조를 예악(禮樂) 사상에 의한 이데올로기적 악조 이론으로 개혁하는 것이었다"고 평가한다. 박연의 음악 활동이 유교 이데올로기 강화를 지향했다는 설명이다.

조선시대 박연에 대한 평가가 박했던 이유
 
 SKY 드라마 <가시리잇고> 관련 이미지.

SKY 드라마 <가시리잇고> 한 장면. ⓒ SKY

 
그렇게 조선왕조를 위해 열심히 활동했고 또 상당한 평가를 받기는 했지만, 조선시대에는 그가 지금처럼 높은 평가를 받기 힘든 이유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그에 대한 평가가 세종대왕에 대한 평가와 연동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
 
박연은 자기 음악을 한 게 아니라 세종의 음악 사업을 보조했다. 그래서 그에 대한 평가는 세종에 대한 평가와 일정부분 연동될 수밖에 없었다. 세종이 어떤 평가를 받느냐에 따라 그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 있는 구도가 존재했던 것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세종을 지금처럼 숭상하지 않았다. 세종이 대한민국 시대의 존경을 받는 것은 이 시대 사람들이 한글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한자를 사용하던 시대의 사람들은 그를 그렇게까지 존경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조선시대에도 세종에 대한 존경심은 존재했다. 그가 동북방 여진족을 제압해서 국경을 안정시키고 과학·음악 등의 문물제도를 발달시킨 사실은 조선시대에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를 높이 칭송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음력으로 효종 4년 7월 2일자(양력 1653년 8월 24일자) '효종실록'에 따르면, 정승급인 이경여가 '세종시대에는 궁녀가 100명을 넘지 않을 정도로 왕실이 검소했다'며 세종을 칭송하는 장면이 나온다. 왕실 비용을 줄임으로써 조세부담을 덜어줬다는 뜻에서 그렇게 평가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 시대의 평가는 지금의 평가에는 절대로 미치지 못했다.
 
세종이 지금 같은 존경을 받지 못했다는 점은 그의 아들이 세조로 불리는 사실에서도 느낄 수 있다. 숙종의 아들이 영조인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아버지는 종(宗)인데 아들은 그보다 높은 조(祖)로 불리는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세종과 세조 부자처럼, 앞글자가 똑같은 상황에서 아버지는 '종'이고 아들은 '조'인 경우는 드물었다. 조선시대 관념으로 보면, 이것은 아들을 불효자로 만드는 일이 될 수도 있었다. 아들이 아버지보다 높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드러내는 일이 될 수도 있었다. 이런 상황이 출현한 데에도 세종에 대한 평가가 상당 부분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예종 즉위년 9월 24일자(1468년 10월 9일자) <예종실록>에 따르면, 세종의 아들인 수양대군이 왕으로 있다가 죽은 직후에 신하들이 합의한 수양대군의 묘호(사당 내에서의 칭호)는 신종·성종 같은 칭호였다. 세조라는 묘호를 주장한 쪽은 수양대군의 아들인 예종이다. 신하들은 '세종이 이미 있기 때문에 세조라는 묘호를 쓰기 힘들다'고 주장했지만, 예종이 밀어붙이는 바람에 수양대군의 묘호가 세조로 결정될 수 있었다.
 
만약 세종이 지금 같은 존경을 받았다면, 예종이 세조 묘호를 고집하기도 힘들었을 것이고 신하들이 쉽게 물러설 필요도 없었을지 모른다. 세종이 지금만한 평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수양대군을 세조로 높이는 일이 별탈 없이 진행됐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세종에 대한 평가가 지금보다 낮았기 때문에, 세종을 도와 문화 사업을 벌인 박연 같은 신하들 역시 지금보다 높은 평가를 받기가 쉽지 않았다.
 
그랬던 박연의 인지도가 대한민국 시대 들어 높아졌다. 결정적 계기는, 1894년 동학전쟁(동학농민혁명)을 계기로 조선왕조가 대중의 신망을 잃고 양반의 권위가 함께 추락한 현상에서 찾을 수 있다.
 
언어나 문자의 힘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힘에 의존한다. 한자가 강했던 것은 한자를 쓰는 사람들의 힘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동학혁명을 계기로 양반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 이에 따라 양반이 쓰던 한자도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 상황은 동학혁명 이후에 청년 주시경(1876~1914)이 한글 대중화에 나서는 일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주시경은 양반의 권위가 추락한 틈을 놓치지 않고, 그간 사용빈도가 낮았던 한글을 대중의 문자로 활성화시키는 작업에 뛰어들었다. 그의 노력은 한글을 특권층의 문자가 아닌 대중의 문자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주시경의 업적은 한글을 개발한 세종이 뒤늦게 재평가되고 세종을 도운 박연 같은 신하들이 훨씬 높은 평가를 받도록 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 이로 인해 박연은 세종과 더불어, 한자 시대가 아닌 한글 시대에 더 큰 주목을 받게 됐다. 자기 시대보다는 나중 시대와 '궁합'이 더 맞게 된 것이다.
 
박연 입장에서는 자신의 음악적 업적이 오래 기억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한글 시대 사람들이 잘되기를 비는 수밖에 없다. 혹시라도 영어나 중국어 사용자들이 한국 문화를 주도하게 되면, 그의 업적은 아무래도 잊혀져갈 수밖에 없다. 비록 드라마 설정 속에서나마 한글 사용자들의 시대로 환생한 것은 그의 입장에서는 반갑고 즐거운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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