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레코드판을 통해 앨범을 발표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30여 년의 세월이 지나 음악을 듣는 수단이 LP에서 CD, CD에서 MP3, 다운로드에서 스트리밍으로 변하면서 앨범을 발표하는 수단도 점점 다양해졌다. 그리고 미니앨범이나 디지털 싱글 등 정규앨범이 아닌 방식으로도 신곡을 발표하는 상황이 생기면서 가수들의 정규 앨범 발매주기는 점점 길어지고 있다.

이제는 가수들이 3~4년 주기로 정규앨범을 발표하는 게 익숙한 시대가 됐지만 1980~1990년대에 활동했던 인기 가수들은 1년만 새 앨범이 나오지 않아도 팬들에게 오해를 사곤 했다. 실제로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하기 전에 활동했던 가수들은 1년에 앨범 2장을 발표하는 것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가수가 끊임없이 앨범을 발표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는 점은 노래하는 사람에게는 더할 수 없는 행복이다. 지적인 발라드가수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가늘고 긴' 롱런에 대한 바람을 감추지 않았던 이 가수는 어느덧 10년이 넘도록 매달 신곡을 발표하는 세상에서 가장 부지런한 뮤지션이 됐다. 지난 2010년 4월부터 올해 2월까지 매달 새로운 음악을 들려주고 있는 이 시대 최고의 감성 뮤지션 윤종신이 그 주인공이다.

공일오비로 데뷔, 솔로 가수로도 대성공
 
 윤종신은 2집 <너의 결혼식>을 통해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주목 받기 시작했다.

윤종신은 2집 <너의 결혼식>을 통해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주목 받기 시작했다. ⓒ 다날 엔터테인먼트

 
널리 알려진 것처럼 윤종신은 지난 1990년 공일오비 1집의 객원가수로 참여해 타이틀곡 <텅 빈 거리에서>를 포함해 3곡을 부르며 정식으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취미로 작곡을 했지만 가수에 대한 큰 꿈이나 목표가 없었던 윤종신은 우연히 참가한 교내가요제에서 금상으로 입상한 후 과동기로부터 서울대에 다니는 형제를 소개 받았다. 윤종신의 데뷔그룹이 된 공일오비와의 첫 만남이었다. 윤종신은 <텅 빈 거리에서>에서 맑고 고운 미성을 내세워 노래의 슬픔을 극대화했다. 

공일오비 1집을 통해 이름을 알린 윤종신은 이듬해 솔로 1집 <처음 만날 때처럼>을 발표했다. 정석원이 직접 프로듀싱을 하면서 5곡의 작곡에 참여했고 공일오비의 전신인 무한궤도의 리더 고 신해철이 <떠나간 친구에게>라는 노래를 윤종신과 듀엣으로 함께 불렀다. 하지만 윤종신이 공일오비의 객원가수가 아닌 솔로 가수로서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앨범은 2집부터였다. 

2집 타이틀곡 <너의 결혼식>은 당대 최고의 작사가 박주연이 가사를 쓰고 윤종신을 데뷔시킨 공일오비 정석원이 곡을 썼다(당시 작곡가인 정석원은 작사가 박주연에게 가사를 의뢰하면서 "누나,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가사를 써주세요"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 결과 전 여자친구의 결혼식을 보러 간 남자가 신부를 보며 '널 맡긴 거야, 이 세상은 잠시 뿐인걸'이라는 처절한 노래가 탄생했다. 

<너의 결혼식>이 성공하면서 '박주연 작사-정석원 작곡-윤종신 보컬'로 만들어진 애절한 발라드는 1990년대 초반 하나의 검증된 트렌드로 자리잡았고 이는 3집의 <오래 전 그날>까지 이어졌다. <오래 전 그날>은 <너의 결혼식>과 비교하면 비교적 담담한 정서를 담고 있다.

3집까지 정석원, 김형석 등 동료 뮤지션들과 함께 작업했던 윤종신은 1995년 4집 <공존>을 통해 홀로서기에 도전했다. 윤종신은 4집 앨범을 통해 10곡 중 8곡의 가사를 직접 쓰고 5곡의 작곡에 참여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더욱 키웠다. 윤종신 4집은 타이틀곡 <부디>와 유쾌한 가사의 후속곡 <내 사랑 못난이>가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고 60만 장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하며 윤종신 앨범 중 최고 수치를 기록했다.

그리고 윤종신은 본인 못지않은 감수성을 가졌으면서 그 이상의 음악적 전문성을 보유한 적임자를 발견한다. 그렇게 윤종신은 유희열과 함께 5집 '우(愚)'를 만들어 1996년 4월 세상에 공개했다. 

유희열과 만든 윤종신 최고의 역작
 
 윤종신은 '1대 음악 노예' 유희열과 함께 작업하며 최고의 시너지를 만들었다.

윤종신은 '1대 음악 노예' 유희열과 함께 작업하며 최고의 시너지를 만들었다. ⓒ 다날 엔터테인먼트

 
흔히 정규 앨범들은 타이틀곡과 후속곡, 그리고 그 외의 수록곡들로 구성된다(최근엔 후속곡 없이 곧바로 리패키지 앨범이 나오는 경우가 많지만). 하지만 윤종신은 5집 앨범을 통해 기존의 앨범 구성 방식을 과감히 버렸다. 윤종신 5집은 1번부터 9번 트랙까지 어리석은 한 남자의 사랑이야기로 꾸며진다. 따라서 윤종신 5집의 가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귀 기울여 들으면 마치 한 편의 멜로 영화나 연애소설을 본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1번 트랙이라는 이유로 졸지에 5집의 타이틀곡이 된 <환생>은 사랑에 빠진 우(편의상 가사 속 주인공을 '우'라고 하자)의 설렘을 담은 곡이다. 그녀가 권해준 음악을 흥얼거리며 그녀를 만나러 간 우는 그녀에게 첫 눈에 반했다. <환생>은 노래 전반에 깔리는 조규찬의 코러스가 돋보이는 곡이다.

하지만 그토록 예쁘고 사랑스러운 그녀가 우에게 쉽게 넘어올 리 없다. 이 앨범에서 유일하게 윤종신이 아닌 유희열이 작사·작곡한 2번트랙 <여자친구>는 짝사랑에 빠진 우의 마음을 표현한 노래다.

혼자만의 짝사랑에 지친 우는 드디어 3번트랙 <의지>를 통해 드디어 그녀에게 고백하기로 결심한다. 평소에는 끈기 없는 게 약점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자존심 따윈 버리고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전략으로 그녀의 마음을 훔치기로 다짐한다. <의지>와 4번트랙 < Club에서 >는 윤종신의 대원외고 동창이자 성시경의 <희재>, 조용필의 <걷고 싶다> 등을 작곡한 프로듀서 MGR이 작곡과 편곡에 참여했다.

우의 용기 있는 고백으로 우와 그녀는 드디어 연인이 됐고 4번 트랙 < Club에서 >를 통해 무도회장에 놀러 갔다. 클럽에는 예쁜 여성들이 많았지만, 우에겐 그녀만 보인다. 우는 이 행복이 오래도록 가길 원했지만 모든 새드 무비엔 방해꾼이 등장한다. 이 앨범에선 막장 드라마의 단골손님인 그녀의 어머니가 등장한다.

5번 트랙 <너의 어머니>에서 그녀의 어머니는 우 같은 (형편없는) 놈에게 딸을 내줄 수 없다며 훈계를 하신다. 좀 강하게 나오면 반항이라도 해볼 텐데 마치 어린아일 다루시듯 자상하시다. 우는 만족하신 듯 미소 짓는 그녀의 어머니를 차마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 평소 이 노래를 거의 부르지 않는 윤종신은 지난 2018년 '부르지 않은 노래'라는 타이틀의 콘서트를 통해 <너의 어머니>를 라이브로 불렀다.

<아침>-<일년>-<오늘>로 이어지는 '궁상 3종세트'
 
 윤종신 5집은 전반부와 후반부의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윤종신 5집은 전반부와 후반부의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 다날 엔터테인먼트

 
우와 그녀를 떼어 놓으려는 어머니의 작전(?)은 성공을 거뒀다. 그녀가 우에게 이별을 통보한 것이다. 윤종신 5집도 그렇게 반환점을 돈다. 행복했던 'Sweet Day'가 끝나고 청승이 난무하는 'Hopeless Day'가 시작된다. 'Hopeless Day'는 일반 대중들은 물론 윤종신의 팬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나뉘는 챕터로 앞으로 나올 세 곡이 좋게 들린 사람은 윤종신의 다른 발라드에도 쉽게 적응할 수 있다.

'Hopeless Day'의 시작을 알리는 6번 트랙 <아침>은 그녀와 헤어진 다음날 아침을 의미한다. 전날 술을 잔뜩 마신 우는 머리보다 더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습관처럼 그녀에게 전화를 걸다가 헤어진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수화기를 내린다. 그리고 아직 속이 쓰린 상태에서 다시 술 약속을 잡는다. 그녀의 존재를 모르는 '옛친구'여야 한다. 이별의 아픔을 술로 달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크게 공감할 수 있는 노래다.

우의 기억은 그녀와 헤어진 그날에 멈춰 있는데도 야속하게 시간은 자꾸 흐른다. 7번 트랙 < 1년 >은 그녀와 헤어진 지 1년째 되는 날을 다룬 곡이다.

<너의 어머니>에서 그녀의 어머니가 신스틸러로 출연했다면 < 1년 >에서는 우의 아버지가 카메오로 등장한다. 술만 드시면 그녀가 보고 싶다며 눈치 없이 우의 상처를 긁으신다. 그리고 노래는 '그대 1년은 어땠나요 나보다는 편했기를 바래요. 나처럼 초라해지면 안돼요. 계속 아름다워야 해요'라는 윤종신 특유의 '그녀 걱정하기'로 마무리된다.

그녀와 헤어진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8번 트랙 <오늘>은 우와 그녀가 헤어질 때 했던 약속의 날이다. 우와 그녀는 많은 시간 흘러 편한 추억으로 남게 되면 헤어진 그 자리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 헤어진 순간부터 한 번도 그녀를 잊은 적 없는 우는 일찌감치 나와 그녀를 기다린다. 그녀가 좀 늦어도 외출 준비가 늦어질 나이가 됐다며 이해하지만 그녀는 끝내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처음으로 우와의 약속을 어긴 것이다. 

결국 우는 그녀를 잊기로 결심한다. 서둘러 새로운 여자를 만났고 그 사람과 결혼을 약속했다. 이 앨범의 마지막 트랙이자 슬프고도 처절했던 '우' 스토리의 결말 <바보의 결혼>이다. 식장에 들어가는 우의 마음은 복잡하다. 눈 앞의 그녀를 위해 살 거라고 수없이 다짐했지만 자꾸 그녀가 떠오른다. 우는 결혼식장에서 부디 그녀와 두 번 다시 마주치지 않기를, 혹시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모습 너무 많이 변해서 서로 알아 볼 수 없기를 기도한다.

윤종신은 5집 앨범을 통해 특유의 정확한 발음에 실은 '정직한 보컬'로 우의 이야기를 전했다. 만약 윤종신이 기교가 많고 변화무쌍한 보컬이었다면 앨범 전체를 감싸고 있는 우의 감성이 대중들에게 정확히 전달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윤종신은 5집 앨범을 통해 공일오비 객원가수라는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 솔로 아티스트로서 완전히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30년 넘게 꾸준히 활동한 부지런한 뮤지션
 
 윤종신은 '월간 윤종신'을 통해 매달 끊임 없이 신곡을 발표하고 있다.

윤종신은 '월간 윤종신'을 통해 매달 끊임 없이 신곡을 발표하고 있다. ⓒ KBS 화면 캡처

 
윤종신은 그 해 11월 베스트 앨범의 성격이 강한 6집 앨범을 발표하고 군에 입대했고 그 곳에서 하림을 만났다(하림과의 인연은 프로젝트 그룹 신치림까지 이어진다). 그 사이 유희열은 토이 2집 앨범의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을 통해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뮤지션으로 성장했다.

군복무를 마친 윤종신은 1999년 <배웅>이 담긴 7집 '후반'을 발표했지만 IMF 금융위기와 아이돌 중심으로 재편된 가요계의 흐름 속에서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윤종신은 2000년에 발표한 8집에서도 <애니>와 <잘했어요>, <모처럼> 같은 발라드에 집중하며 슬픈 노래를 부르는 발라드 가수의 이미지가 더욱 굳어졌다. 하지만 윤종신은 2001년 여름 9집 앨범을 통해 데뷔 후 처음으로 큰 변신을 시도했다.

윤종신 9집에는 타이틀곡 <해변 무드송>을 비롯해 김장훈이 리메이크했던 <고속도로 로망스>, <바캉스 매니아>처럼 밝고 신나는 곡들이 대거 수록됐다. 그 중에서도 <팥빙수>는 현재까지 여름을 대표하는 계절송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윤종신은 2007년부터 <라디오스타>와 <패밀리가 떴다> 등에 출연하며 본격적으로 예능인의 길에 들어섰다. 윤종신은 2008년 정규 11집을 끝으로 기존의 앨범 발매 방식을 멈추고 2010년부터 '월간 윤종신' 프로젝트를 통해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연말에 월간윤종신 수록곡을 모아 정규 앨범으로 발표한 윤종신은 현재 '21집 가수'가 됐다).

윤종신은 지난 2017년 '50대가 되기 전에 젊은 감성의 처절한 발라드를 불러보자'는 생각으로 발표한 노래 <좋니>가 차트를 역주행하며 크게 히트했고 데뷔 27년 만에 처음으로 순위 프로그램 1위를 차지했다. 윤종신은 <좋니>로 2017 MAMA 베스트 보컬 퍼포먼스 남자 솔로상, 골든디스크 디지털음원 본상, 서울가요대상 최고음원상 등을 휩쓸며 90년대에도 누려보지 못한 뒤늦은 전성기를 누렸다.

그는 유쾌하고 가벼운 이미지 때문에 가끔 음악인으로서 실력까지 폄하될 때가 적지 않다. 하지만 윤종신은 일상의 작은 부분을 가장 잘 담아내는 작사가이자 감성적인 멜로디를 쓰는 작곡가, 그리고 자신이 만든 음악의 감성을 누구보다 잘 표현해 내는 보컬리스트다. 성시경의 <거리에서>나 김연우의 <이별택시> 등 윤종신이 다른 가수에게 줘서 히트한 노래도 한두 곡이 아니다.

슬픈 발라드를 전문으로 만들고 부르는 뮤지션 윤종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가 예능에 출연해 가벼운 농담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깎아 먹는 것을 우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중들이 윤종신이라는 가수를 잠시 잊고 있을 때도 윤종신은 꾸준히 새 음악을 만들고 발표하고 있다. 부디 지난 30년 동안 한결같이 이어졌던 윤종신 특유의 근면·성실이 앞으로도 계속 변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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