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백>의 서은영 감독 인터뷰 이미지

ⓒ 리틀빅픽처스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이 수년간 꾸준히 발생하면서 이를 조명하는 영화들도 많이 등장하고 있다. 개봉 당시 많은 주목을 받으며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켰던 <도가니> <미쓰백>에 이어, 오는 24일 개봉을 앞둔 <고백> 역시 아동학대 문제에 대한 묵직한 메시지를 전한다. 18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모처에서 서은영 감독을 만났다.

영화 <고백>은 일주일 안에 국민 1인당 1천원씩 총 1억원을 모으면 유괴한 아이를 살려주겠다는 전대미문의 유괴 사건을 그린 작품이다. 

극 중에서 전 국민에게 양심 테스트를 요구하는 해괴한 유괴 사건이 방송에 보도된 날, 한 아이가 사라진다. 평소 보라(감소현 분)가 아버지로부터 학대 당하고 있다고 주장하던 사회복지사 오순(박하선 분) 역시 그날 이후 자취를 감춘다. 영화는 이를 통해 우리 사회 아동학대 문제의 현실과 그 심각성을 전면으로 다룬다. 평소 아동학대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서은영 감독은 "사회 고발성 영화를 만들겠다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고 말했다.

"일찍부터 아동학대를 주제로 한 사회 고발성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일단 천원 유괴사건이라는 요소와 사건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회 문제들이 연달아 드러나는 구성으로 (시나리오를) 시작했다. 천원 모금이라는 게 사람들 관심의 척도가 되지 않나. 그게 아동학대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의 척도이기도 하고. 그게 주제와 맞물린다고 생각했다.

(아동학대 문제에는) 꾸준하게 관심을 갖고 있었다. 영화하는 입장이니까, 영화로 찍고 싶었다. 무엇보다 스스로 날이 서 있는 상태에서 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게 사람 일이라는게 어떻게 될 줄 모르지 않나. 그래서 빨리 만들어야겠다 싶더라. 오래 전에 (시나리오를) 썼다. 여전히 아동학대 사건은 계속되니까, 영화를 통해서라도 지속적인 관심이 더 이어졌으면 좋겠다."


문제의 심각성을 관객들에게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폭력적인 장면을 더 폭력적으로 연출한다는 비판은 이러한 사회고발성 영화들이 흔히 듣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고백>에는 직접적인 폭력 장면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아이에게 남겨진 상흔과 주변 상황,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할 뿐이다. 서은영 감독 역시 "특히 아이를 대상으로 한 폭력이기 때문에 더 조심스러웠다"고 말했다. 

"폭력이 폭력을 낳는 것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는 영화이지 않나. 이 영화에서는 직접적으로 폭력을 가하지 않는 게 최대 목표였다. 사람들이 상상하는 게 더 무서우니까. 관객들로 하여금 그런 상상을 하게끔 만들어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관객이 자연스럽게 인식할 수 있다. 아이를 학대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아도 영화적인 연출이나 그림을 통해 알게 만들면 되는 거니까."

이러한 서은영 감독의 소신은 촬영 현장에도 고스란히 구현됐다. 특히 아동학대 피해자를 연기해야 하는 아역배우 감소현에게 트라우마가 남지 않도록 하기 위해 조심했다고. 서은영 감독은 "이 역할(아동학대 피해자)을 하는 배우가 '보라'가 될 필요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서 감독은 배우의 부모님에게도 '아이가 집에서 연기 연습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달라'는 부탁을 했단다.

"이 역할을 하는 배우가 보라가 되길 바라지 않았다. 아이에게 잔상을 남기지 않게 하자. 소위 말하는 메소드 연기라는 게 있지 않나. 그 역할에 심취해서 연기하는 게 아니라, 놀이로서 연기를 하게 하자고 생각했다. (감소현의) 부모님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집에서도 연기 연습을 절대 하지 말고 시나리오를 열심히 공부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그냥 현장에 와서 연기하고, 그 친구와 놀아주는 스태프가 따로 있었는데 그 언니와 놀고, 연기하다가 집에 가는 식으로. 그게 오히려 배우에게 자유로운 연기가 나오게 하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이 역할이 뭔지는 알고 있지 않나. 그런 점에서 무섭기도 했다. 이 장면이 어떤 장면인지만 이야기해주고, 상황 전체를 주지시켜주지 않으려 했다." 
 
 영화 <고백>의 서은영 감독 인터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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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아동학대 피해자 보라를 보여주는 방식 역시 그동안의 아동학대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들과는 결이 달랐다. 극 중에서 보라의 학교 선생님은 "보라가 가끔 섬뜩한 행동을 할 때가 있다"고 말한다. 이는 반 친구의 서예 실력을 질투하거나, 거짓말로 친구를 곤경에 빠트리는 보라의 장면으로 이어진다. 서은영 감독은 "이 영화에서 가장 고민을 많이 한 지점"이라고 털어놨다.

"폭력에 노출된 아이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인데, 이 영화에서 가장 고민을 많이 한 지점이었다. 아동학대 문제에서 순진무결한 어떤 피해자를 보여주는 영화들은 이미 많이 있었지 않나. 저는 다양하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아이에게 흠결을 주고 트라우마가 남는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를 다르게 표현했다. '내가 알고 있었던 피해자의 모습과는 다르네'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다. 

제일 조심스러웠고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순간까지도 조마조마했다. 그걸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정말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데 오히려 (영화제의) 관객들이 저보다 훨씬 폭넓게 이걸 바라봐주시더라. 이 선을 넘나드는게 저도 정말 무서웠거든. 영화를 보시면서 이상하다 생각할 수도 있고, 그런 것조차 편견일 수 있다고 생각하셨으면 한다. (피해자는) 다른 상황에 있는 거니까. 이런 걸 통해 사람들의 생각을 자극하고 싶었다."


극 중에서 오순을 비롯한 인물들은 중의적이거나 함축적인 대사를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다소 문어체적인 표현들도 자주 등장한다. 오순을 유괴범으로 의심하는 경찰 지원(하윤경 분)과의 대화 신이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서은영 감독은 "평소 비유적인 표현들을 좋아한다"면서도 "두 여성이 대화하는 장면을 많이 신경 썼다"고 설명했다.

"두 여성이 대화하는 장면에서, 낯선 사람들이 얘기할 때 서로 조심스러워지는 그런 상황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 영화가 장르적으로 치닫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표현하는 방식에서도 그런 결을 유지하려고 했다. 그런 점에서 여자 배우들이 직접 (마음 속에 있는걸) 말로 하는 게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비유적인 대사들, 일차원적이지 않은 대사들, 해석해보면 또다른 이면이 있는 그런 대사들에 많이 신경썼다."

한편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신예 서은영 감독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영화를 사랑하던 평범한 직장인 '시네필'이었다. 이날 인터뷰에서 그는 한예종에 입학하기 전 대기업 반도체 연구원으로 5년간 일했었다고 고백했다. 

"직장을 5년 다니고, 한예종으로 다시 들어갔지. 대기업의 반도체 연구원으로 일했다. 저는 휴대폰을 만들었는데 뭔가 만든다는 것에 대한 희열감이 굉장히 컸다. 내가 만든 건 아주 조그만한 칩이었지만. 그 와중에 힘든 회사생활을 영화를 통해 해소했다. 다들 그런게 있지 않나. 1년차, 3년차, 5년차가 고비라는 말. 나도 그런 과정들을 겪었다. 하지만 회사생활이 싫진 않았고 재밌었다. 그래도 채워지지 않는 게 있었던 것 같다. 영화를 좋아하는 3단계가 있다더라. 영화를 보고,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궁극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일. 저 역시 그 과정을 충실히 따랐다. 회사를 다니면서 블로그에 영화에 대한 글을 계속 썼다. 그러다보니 더 만들고 싶어지더라. 

내가 이공계 출신이기 때문에 이 영화의 구성이나 그런 것들을 더 잘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은 한다. 로직을 다루는 학문이었으니까. 또 사회생활을 해본 게 영화를 할 때도 도움이 되더라. 스태프들간 조율하는 것도 다 사회생활이라서. 그런 게 (직장인 출신 감독의) 이점이 아닐까."
 
 영화 <고백>의 서은영 감독 인터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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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휴가를 영화제에서 보냈다는 서 감독은 부산국제영화제에 자신의 영화가 걸리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서은영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영화 <초인>은 지난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우수한 독립영화에게 주어지는 대명컬처웨이브상을 수상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앞으로 사회고발성 영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 영화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부산영화제, 부천영화제를 매년 갔고 휴가를 다 영화제에서 소진할 정도였다. 언젠가 부산영화제에 내 영화를 걸어봤으면 좋겠다, 내가 관객이 아니라 영화를 소개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했었지. (한예종에서) 공부하면서 그 마음이 점점 커졌다. <초인> 때 부산영화제에 갔는데 그때 기억이 정말 너무 생생하다. 대기업에 합격했던 것보다 더 좋았지(웃음).

앞으로도 영화가 무얼 얘기하든 간에 사람들이 끝까지 보게 만들고 궁금하게 만드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그게 영화적인 재미니까. 그 지점을 계속 고민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2시간 동안 흥미있게 만들 수 있을까. 그러다 보면 재미있는 영화가 나오겠지. 다양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 다음엔 공포 영화도 생각하고 있다."
아동학대 고백 서은영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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