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5년부터 매년 '드림콘서트'라는 이름의 대형 공연이 열리고 있다. 그 시대 가장 잘 나가는 최고의 가수들이 총출동하는, 가수들에게는 '꿈의 무대'다. 코로나19로 관객을 초대할 수 없었던 작년에는 무관중으로 공연을 진행하고 온라인으로 중계하는 '온택트 콘서트'로 진행됐다. 작년을 제외하면 매년 수만 관객이 가득 찬 가운데 축제 분위기 속에서 공연이 열리지만 이 무대가 웃음과 환호 대신 아쉬움 섞인 눈물로 뒤덮인 해도 있었다.

때는 2000년 5월 20일 제6회 드림콘서트. 비록 당대 최고의 인기 아이돌이었던 H.O.T가 불참했지만 <육아일기>를 통해 최고의 주가를 올리던 god를 비롯해 신화, 핑클, 엄정화, 클론, 조성모, 원타임 등 인기가수들이 대거 출연해 무대를 빛냈다. 하지만 각 가수들의 상징색이 들어간 풍선으로 나뉘어야 할 잠실 올림픽 주 경기장의 관객석은 온통 노란 풍선 물결로 채워져 있었다.

드림콘서트가 열리기 불과 이틀 전, 전격 해체를 선언한 젝스키스가 드림콘서트를 은퇴 무대로 삼았기 때문이다. 평소 H.O.T의 기세에 눌렸던 젝스키스의 팬들은 그들의 마지막 공연을 보기 위해 잠실로 집결했고 8만 석 규모의 관객석 중 절반이 넘는 5만 석을 차지하며 젝키의 마지막을 눈물로 함께 했다. 음반 판매량이나 수상경력은 H.O.T에 미치지 못했지만 그 시절 젝스키스가 가요계에서 차지하던 비중은 어느 팀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SM엔터테인먼트에 대항했던 대성기획의 '+1' 전략
 
 1992년 대성기획에서 선보인 5인조 혼성그룹 잼은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92년 대성기획에서 선보인 5인조 혼성그룹 잼은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 디에스피이엔티

 
흔히 아이돌의 시초를 H.O.T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H.O.T가 현재 아이돌 문화의 출발점이 된 팀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수만 회장의 SM엔터테인먼트보다 댄스곡을 부르는 아이돌 그룹을 먼저 선보였던 회사는 따로 있었다. 바로 지금은 DSP미디어가 된 대성기획이다. 고인이 된 이호연 전 대표는 1980년대 초반부터 엔터업계에 뛰어 들어 소방차를 기획, 홍보해 인기가수로 만들었다.

1991년 대성 기획을 설립한 이효연 대표는 1990년대 초반부터 ZAM, 뮤 같은 일본 아이돌을 모티브로 한 혼성 댄스그룹을 차례로 선보였다. 잼과 뮤는 윤현숙, 김준희 같은 여성 멤버를 중심으로 인기를 얻었지만 팀의 수명은 그리 길지 못했다(윤현숙은 1730 출신의 이혜영과 함께 코코로, 김준희는 훗날 원투의 멤버가 되는 오창훈과 마운틴이라는 듀오를 결성해 가수 활동을 이어갔다).

대성기획은 1996년 2명의 10대 재미교포들로 구성된 '아이돌'이라는 남성 댄스 듀오를 선보였다. 1990년대 중반에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일본의 인기 만화에서 이름을 따온 아이돌의 데뷔곡이자 히트곡인 < BOW WOW >를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돌은 비슷한 시기에 활동하던 언타이틀, H.O.T 등에 가려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특히 H.O.T가 <캔디>를 통해 대박이 나면서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후 방황하던 소녀팬들을 단숨에 흡수했다. 

다급해진 대성기획에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이 때 생각해 낸 아이디어가 바로 'SM+1' 전략이었다. SM에서 선보이는 아이돌보다 멤버 수가 한 명 더 많은 팀을 데뷔시키는 것이다. 실제로 대성기획은 H.O.T보다 1명이 많은 젝스키스를 시작으로 S.E.S보다 1명이 많은 핑클, 신화보다 1명이 많은 클릭비까지 SM 아이돌보다 1명 많은 멤버 수의 팀을 차례로 데뷔시켰다(2005년에 데뷔한 SS501부터 DSP의 'SM+1' 전략은 폐기됐다).

대성기획은 하와이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리더 은지원과 메인보컬 강성훈, 강성훈의 초등학교와 중학교 동창이었던 리드보컬 고지용, 귀공자 같은 외모를 가진 과묵한 서브보컬 장수원, 그리고 부산에서 알아주는 고교생 춤꾼이었던 메인댄서 김재덕과 이재진을 모아 새로운 팀을 결성했다. 독일어로 6개의 수정이라는 뜻을 가진 젝스키스는 1997년 4월 그렇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신나는 댄스부터 절절한 발라드까지 있는 데뷔앨범
 
 젝스키스는 H.O.T의 후발주자였지만 H.O.T와는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젝스키스는 H.O.T의 후발주자였지만 H.O.T와는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 디에스피이엔티

 
젝스키스는 1997년 4월 <학원별곡>이라는 곡으로 데뷔했다. 공부와 성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의 절규를 담은 노래로 도입부의 심각한 '떼랩'에서 곧바로 이어지는 강성훈의 '아리아리요, 쓰리쓰리예 아주 아주 먼 길을 왔네 아리아리 공부 고개를 오늘도 넘어간다'라는 해맑은 솔로파트의 반전이 인상적인 곡이다.

젝스키스는 은지원과 이재진,김재덕을 블랙키스, 강성훈과 고지용, 장수원을 화이트키스로 구분했는데 데뷔곡 <학원별곡>은 블랙키스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은 곡이었다. 실제로 강성훈 파트를 제외하면 <학원별곡>은 대부분 랩으로 구성돼 있어 솔로파트가 없는 고지용과 장수원은 무대에서 수시로 나오는 '떼랩'에만 수줍게 참여했다.

1998년에 발표된 3.5집의 히트곡인 <커플>에서 단독 분량이 전혀 없는 김재덕은 <학원별곡>에서 리더인 은지원과 메인보컬 강성훈 못지 않은 비중을 자랑한다. 특히 <학원별곡> 댄스 브레이크에서 갑자기 뒷목을 잡고 쓰러지는 파격적인 '백다운 댄스'를 선보여 청소년들을 경악시키기도 했다. 당시 남학생들은 체육시간에 매트리스를 2장씩 깔고 김재덕의 시그니처 댄스를 따라하다가 심한 목 통증에 시달리곤 했다.

하지만 1집에서 젝스키스라는 팀을 세상에 알린 대표 히트곡은 역시 <사나이 가는 길(폼생폼사)>이었다. <폼생폼사>에서 젝스키스는 블랙키스(은지원, 김재덕, 이재진)와 화이트키스(강성훈, 고지용, 장수원)로 멤버를 나눠서 의상부터 파트까지 철저하게 구분했다.

멜로디는 신나지만 가사는 슬픈 댄스곡 <연정>은 랩과 보컬이 모두 가능한 리더 은지원의 개인기에 상당 부분 의존한 곡이다. 1, 2절의 도입부 랩을 시작으로 '기다릴게요 내가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돌아와요 워우어~'라는 고음파트까지 모두 은지원이 소화한다. 고지용과 장수원은 <학원별곡>에 이어 <연정>에서도 개인파트를 받지 못했다.

젝키 앨범에서 흔치 않은 발라드 <기억해줄래>는 활동 당시에는 1집과 2집 사이의 공백기를 이어주는 노래 정도로만 쓰였다. 하지만 <기억해줄래>는 젝스키스의 마지막 무대였던 2000년 드림콘서트에서 마지막 곡으로 불렀던 노래로 팬들에게는 의미가 남다르다. '나 안녕이라는 말로 너를 떠나겠지만은 기억해 줄 수 있니 우리 서로 사랑한 것을'이라는 강성훈의 마지막 목소리가 나왔을 땐 노란 풍선을 든 5만 명의 팬들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2016년 재결합 후 4인조로 활발하게 활동 중
 
 젝스키스는 지난 5일 유희열이 만든 신곡 <뒤돌아보지 말아요>를 발표했다.

젝스키스는 지난 5일 유희열이 만든 신곡 <뒤돌아보지 말아요>를 발표했다. ⓒ KBS

 
젝스키스는 1집 이후 <기사도> <로드 파이터> <무모한 사랑> <커플> <컴백> 등을 히트시키며 H.O.T와 함께 1990년대 후반 가요계를 대표하는 아이돌 그룹으로 군림했다. 1998년에는 젝스키스 멤버들이 주연을 맡은 영화 <세븐틴>이 제작되기도 했다. 물론 세기말을 지배했던 H.O.T의 영향력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그 시절 'H.O.T에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팀'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만으로도 젝스키스의 존재감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2000년 드림콘서트를 끝으로 뿔뿔이 흔어진 젝스키스는 해체 후 은지원, 강성훈, 이재진은 솔로로, 김재덕과 장수원은 J-walk라는 팀을 결성해 활동했다(장수원은 제이워크의 메인보컬을 맡으며 드디어 분량의 한을 풀었다). 고지용만 유일하게 젝스키스 해체 후 연예계를 떠나 개인사업을 하며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그렇게 젝스키스는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의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등 팬들에게 영원한 추억으로 남는 듯 했다.

하지만 젝스키스는 지난 2016년 4월 <무한도전-토토가2>를 통해 해체 후 16년 만에 재결합해 전성기를 연상케 하는 멋진 무대를 선보이며 팬들을 감동시켰다(<무한도전>에서는 과거 '게릴라 콘서트'의 형식을 도입해 멤버들을 더욱 긴장시켰다). 비록 6명의 완전체로 공연은 하지 못했지만 고지용이 <기억해줄래> 무대를 통해 무대에 깜짝 등장하며 완전체 무대를 선보였고 젝스키스의 대표곡 <커플>까지 함께 불렀다.

젝스키스의 무대는 일회성에 그치지 않았다. <토토가2> 공연 후 YG엔터테인먼트와 계약한 젝스키스는 2017년 <아프지 마요>와 작년 < All For You >로 4번이나 순위프로그램 1위를 차지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비록 16년이라는 긴 공백이 있었고 2018년 강성훈이 팀을 떠나면서 이제 4명만 활동하고 있지만 올해로 데뷔 25년 차가 된 젝스키스는 현존하는 최장수 아이돌로 여전히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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