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에이프릴의 맏언니 윤채경은 '프로 데뷔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나이에 비해 경력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지난 2011년 일본에서 5인조 걸그룹 퓨리티로 데뷔했던 윤채경은 2016년 <프로듀스 101>에 참가했다가 16위로 I.O.I 멤버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탈락 5인의 프로젝트 걸그룹 I.B.I를 결성해 한시적으로 활동했고 <음악의 신2>에 출연하면서 이수민, 김소희와 함께 C.I.V.A를 결성했다가 2016년 11월 에이프릴에 공식 합류했다.

윤채경과 함께 I.B.I와 C.I.V.A의 멤버로 활동했던 김소희 역시 이에 못지않다. I.B.I와 C.I.V.A를 거쳐 KBS의 웹예능 <아이돌 드라마 공작단>에서 결성된 프로젝트 걸그룹 옆집소녀에 속했던 김소희는 2017년10월 솔로가수로 첫 미니 앨범을 발표했지만 큰 반응을 얻진 못했다. 첫 미니앨범 활동 이후 예능프로그램엔 자주 얼굴을 비쳤지만, 가수 활동은 원활하지 않았던 김소희는 2019년 10월 N.CH엔터테인먼트와 계약 후 걸그룹 네이처의 새 멤버로 합류했다.

이처럼 가수들 중에는 데뷔 첫 활동이 여의치 않을 경우 활동명을 바꾸거나 팀을 바꿔서 다시 데뷔를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억지로 활동을 이어가다가 대중들에게 고정된 이미지로 굳어지느니 차라리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데뷔하면 대중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록그룹 도그의 보컬로 활동하다가 이름을 바꾸고 솔로로 다시 데뷔해 큰 성공을 거둔 전천후 여성보컬 왁스처럼 말이다.

하지원과 비교돼 상처 받았던 데뷔 초기의 왁스
 
 왁스는 1998년 도그라는 록밴드의 보컬로 먼저 데뷔했다.

왁스는 1998년 도그라는 록밴드의 보컬로 먼저 데뷔했다. ⓒ 록레코드

 
가수 데뷔 전 학습지 방문교사로 일한 경력이 있는 왁스는 1997년 노희경 작가가 쓰고 손창민, 이영애, 고두심, 윤여정, 나문희, 강성연, 김현주 등 호화캐스팅을 자랑하는 드라마 <내가 사는 이유>의 OST를 부르며 데뷔했다. 당시 왁스가 부른 <잠든 너를 보며>는 이영애의 짝사랑 테마곡으로 쓰이며 시청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물론 그 때는 왁스도, 도그도 아닌 개명 전 본명인 조선미로 노래를 발표했다).

왁스는 1998년 록밴드 도그의 보컬로 합류하며 본격적으로 가수 커리어를 시작했다. 도그는 경쾌한 느낌의 <경아의 하루>와 애절한 록발라드 <집에 돌아오면>으로 활동했지만 당시 가요계는 <기다려 늑대>의 줄리엣이나 < Hey Hey Hey >, <일탈>의 자우림 등 여성보컬을 앞세운 밴드들이 비교적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결국 도그는 두 번째 앨범도 내지 못한 채 쓸쓸히 해체됐다.

그렇게 방황하던 왁스는 김건모 4집과 쿨 1,2집, 이정현의 데뷔 앨범을 프로듀싱했던 작곡가 최준영을 만나 솔로 가수로 앨범을 준비했고 2000년 11월 왁스라는 이름으로 재데뷔했다. 당시 왁스는 조성모와 김범수, SKY가 그랬던 것처럼 방송출연을 하지 않고 뮤직비디오로만 활동했다. 당시 <엄마의 일기> 뮤직비디오에는 떠오르던 신예스타 하지원이 출연했는데 하지원은 후속곡 <오빠>에서도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다. 

사실 왁스의 데뷔곡 <엄마의 일기>를 먼저 부른 원곡가수는 따로 있다. 바로 <선생님 사랑해요>와 <오락실>, <호기심> 등을 발표했던 세 자매로 구성된 한스밴드다. <엄마의 일기>는 <어머니의 일기>라는 제목으로 한스밴드의 2집 앨범에 실려 있는데 이 곡을 왁스가 1년 만에 리메이크한 것이다(마치 이장우 2집의 <널 만난 이후>를 S.E.S.가 1년 만에 < Oh, My Love >로 제목을 바꿔 리메이크한 것과 비슷했다).

하지원이 음악방송에서 <엄마의 일기>와 <오빠>의 립싱크 무대를 선보이면서 대중들 사이에서는 "왁스라는 신인밴드가 있는데 거기 보컬이 하지원이다"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따라서 실제 왁스가 무대에 올랐을 때 대중들이 하지원과 왁스가 다른 사람이라는 걸 눈치채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왁스는 1집 앨범을 통해 <엄마의 일기>와 <오빠>를 히트시키며 가요계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하지만 밴드 도그의 보컬 출신으로 대중들에게 완전히 신선한 얼굴이 아니었다는 점과 하지원이 출연한 뮤직비디오와 검증된 프로듀서 최준영의 그늘 속에서 인기를 얻었다는 점에서 가수 왁스가 과대평가됐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왁스는 2001년 8월 발표한 2집 앨범을 통해 자신에 대한 평가를 완전히 뒤집는데 성공했다.

애절한 목소리와 슬픈 뮤직비디오로 사랑 받은 2집
 
 왁스는 2집에서 애절한 발라드부터 신나는 댄스, 강한 록비트의 노래까지 다양한 장르를 소화했다.

왁스는 2집에서 애절한 발라드부터 신나는 댄스, 강한 록비트의 노래까지 다양한 장르를 소화했다. ⓒ 위지스

 
왁스가 뮤직비디오를 통해 대중들의 시선을 먼저 사로잡은 것은 2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왁스는 배우 신은경과 김영호, 유해진이 출연한 2집 타이틀곡 <화장을 고치고> 뮤직비디오를 통해 많은 대중들의 심금을 울렸다. 신은경과 김영호는 조성모 등 드라마 타이즈 형식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스타들에 비하면 크게 유명한 대스타는 아니었지만 진솔하고 애끓는 연기로 노래가 가진 슬픔을 극대화했다.

하지만 대중들이 더욱 놀란 것은 무대에 선 왁스를 보고난 뒤였다. 그는 1집 활동 때와 달리 발라드 가수로 완벽하게 변신해 노래에 몰입했다. 왁스의 <화장을 고치고>는 MBC <뮤직캠프> 3주 연속 1위, SBS <인기가요> 1위를 차지하며 2001년 가을의 '국민 이별송'으로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사실 왁스 2집에는 <화장을 고치고> 말고도 또 하나의 '더블 타이틀곡'이 있었다. 바로 1집의 <오빠>를 능가하는 빠른 비트의 노래 < Money >였다. 버거소녀로 유명한 양미라가 뮤직비오에 출연한 < Money >는 쉽고 재미 있는 가사를 통해 물질만능주의를 비판한 노래로 CRASH의 안흥찬이 랩 피처링에 참여했다. 왁스 역시 파격적인 의상으로 댄스 버전 뮤직비디오까지 찍었지만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지상파에서는 거의 활동하지 못했다.

비록 더블 타이틀곡이었던 < Money >로 제대로 된 활동을 하지 못했지만 왁스에게는 크게 아쉬울 게 없었다. 바로 후속곡이었던 발라드 <사랑하고 싶어>가 <화장을 고치고> 못지않게 많은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 신은경과 김영호는 <화장을 고치고>에 이어 다시 한 번 <사랑하고 싶어> 뮤직비디오에 동반 출연했는데 뮤직비디오 속 김영호는 <화장을 고치고>에 이어 또 다시 신은경 때문에 괜한 마음 고생을 한다.

1집에서 대중들에게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한스밴드의 <어머니의 일기>를 리메이크해 큰 재미를 봤던 왁스는 이번에는 1989년 크게 히트했던 장혜리의 발라드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를 리메이크했다. 록의 향기가 짙게 묻어 나는 신나는 분위기로 편곡된 왁스의 <내게 남은 사랑을 다 줄게>는 존댓말로 애절하게 부르는 원곡과 달리 시종일관 반말로 부르며 '걸크러시 매력'을 뽐냈다.

왁스 2집의 수록곡들은 대체로 밝은 분위기의 노래들이 많다. 7번트랙 <좋은 걸 어떡해>는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다는 왁스의 고백송이고 <아침식사> 역시 아무리 힘든 일도 사랑하는 사람과 이겨 내겠다는 결혼식 축가에 어울리는 희망적인 노래다. 왁스 2집은 2001년 가을과 겨울을 강타하며 70만장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했다.

'쉼표' 없이 꾸준히 활동하는 현재진행형 가수
 
 왁스는 지난 2018년 <슈가맨2>에 출연해 도그 시절 노래부터 왁스의 히트곡까지 모두 들려줬다.

왁스는 지난 2018년 <슈가맨2>에 출연해 도그 시절 노래부터 왁스의 히트곡까지 모두 들려줬다. ⓒ jtbc 화면 캡처

 
왁스의 인기는 월드컵이 열린 2002년에도 식을 줄 몰랐다. 왁스는 월드컵이 끝난 2002년 7월에 발표한 3집에서도 애절한 타이틀곡 <부탁해요>를 포함해 <지하철을 타고>, <아줌마>를 차례로 히트시키며 가요계를 대표하는 발라드 솔로가수로 자리 매김했다. 2003년에 발표한 4집 앨범에는 전 세대에 걸쳐 사랑 받은 '전설의 명곡' <황혼의 문턱>이 들어있고 김영호와 홍콩스타 관지림이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발라드 <관계>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데뷔 후 긴 공백 없이 빠르면 1년, 길어도 2~3년 주기로 꾸준히 신곡을 발표하고 있는 왁스는 2010년부터 드라마 OST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빛과 그림자>, <보고 싶다>, <기황후>, <엄마> 같은 인기드라마의 OST에 참여한 왁스는 지난 2018년 < SKY캐슬 >의 OST <쉼표(Comma)>를 불렀고 작년 KBS 주말드라마 <오!삼광빌라!>에 이어 올해는 임성한 작가의 신작 <결혼작사 이혼작곡>의 OST에 참여했다.

왁스는 지난 2018년 <슈가맨2>에도 출연해 오랜만에 대중에게 반가운 목소리를 들려 주기도 했다. 재미 있는 사실은, 당시 왁스가 히트곡이 많은 솔로가수 왁스의 노래를 슈가송으로 부른 것이 아니라 기억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밴드 도그의 <경아의 하루>를 슈가송으로 불렀다는 점이다. 물론 왁스는 <슈가맨>에서 <오빠>와<화장을 고치고>, < Money > 등 왁스로 발매했던 히트곡을 따로 부르며 대중들의 추억을 소환했다.

작년에도 새 싱글 <집으로 데려다줘>를 발표한 왁스는 2018년 5월 유튜브 채널을 오픈해 자신의 노래는 물론 동료 가수들의 노래를 커버하며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록보컬로 데뷔해 발라드 가수로 정상에 올랐고 성인 가요까지 소화할 수 있는 '전천후 여성 보컬' 왁스는 왕년의 인기가수가 아닌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현재진행형 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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