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방영된 SBS 신년특집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의 한 장면.  트로트 작곡을 두고 인간과 AI의 치열한 경쟁이 펼쳐졌다.

지난 14일 방영된 SBS 신년특집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의 한 장면. 트로트 작곡을 두고 인간과 AI의 치열한 경쟁이 펼쳐졌다. ⓒ SBS

 
인공지능(AI)과 각 분야 인간 최고수가 세기의 승부를 벌이는 SBS 신년특집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이하 'AI vs 인간')이 이번엔 흥미진진한 작곡 대결을 펼쳤다.  

지난 4회에 걸쳐 가창, 골프, 프로파일러, 증권 투자 등 다양한 분야의 AI와 인간 전문가가 치열한 공방전을 치른 <AI vs. 인간>는 상상을 초월하는 인공지능 기술력으로 시청자들에 경이로움을 선사한 바 있다.  

지난 14일 방영된 최종화(5회)는 안창욱 광주과학기술원(GIST) 대학원 교수팀이 개발한 AI 작곡가 EVOM(이봄)과 44년 음악 경력을 지닌 김도일 작곡가의 트로트 신곡 대결로 꾸며져 색다른 재미를 줬다.

​현재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도 등록되어 있는 EVOM은 클래식, 뉴에이지뿐만 아니라 트렌디한 팝 음악까지 만들만큼 놀라운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반면 예능 <놀면 뭐하니?>를 통해 시청자들에게도 친숙한 김도일은 '작곡 자판기, 3분 작곡'이란 애칭으로 불리울 만큼 즉석에서 다양한 트로트 곡을 만드는 인물이기에 이들의 대결은 여러 면에서 흥미로웠다.

100일 동안 트로트 학습 나선 작곡 AI​
 
 지난 14일 방영된 SBS 신년특집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의 한 장면.

지난 14일 방영된 SBS 신년특집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의 한 장면. ⓒ SBS

 
<AI vs. 인간> 작곡대결에선 총 100일의 준비 기간을 거쳐 각각 하나씩의 '삼바 트로트' 신곡을 만들고 이를 실제 인간 가수가 부른 후 마음에 드는 곡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마련되었다. 마이너한 감성의 피아노 연주곡에 강점을 보인다는 작곡 AI, 수천곡을 만들어 온 인간 작곡가 모두에게 트로트 분야에서도 비교적 마이너 장르에 속하는 삼바 트로트 만들기는 제법 까다로운 숙제였다.  

이번 방송에서 소개된 작곡 AI 'EVOM'의 구동 방식은 기존 AI들과는 다소 다르다. 단순히 기존 곡을 대량으로 학습해서 작곡하는 방식이 아니라 음악 이론을 수식화해 AI에게 학습시켜 스스로 진화하게끔 만들어 인간과 가장 유사한 방식으로 창작하게 하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발견된 문제점을 인간(개발자)이 판단하고, AI에 피드백을 반영시켜 곡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다.

​반면 AI에 맞선 김도일의 작업 방식은 우리가 알고 있던 작곡가들의 창작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작업실에 파묻혀 건반과 기타를 직접 연주하고 열번이고 또 고치는 등 기존 초스피드로 이뤄지던 본인의 방식에서 탈피해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였다. 이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유쾌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투박하지만 정감 있는 음악 vs 정교하게 목표 도달한 AI 
 
 지난 14일 방영된 SBS 신년특집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의 한 장면.

지난 14일 방영된 SBS 신년특집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의 한 장면. ⓒ SBS

 
​녹화 당일 '텔레파시', '사랑은 24시간'이라는 신곡이 소개됐다(아직 AI가 작사 분야까지 총괄하지는 못하는 관계로 작사는 작사가의 손을 빌려 완성됐다). 양쪽에서 만들어진 곡을 들어본 패널들의 견해는 대체로 일치한 편이었다.  

김이나 작사가와 김상욱 교수는 '텔레파시'가 사람이 창작한 곡이라면 '사랑은 24시간'은 AI 작품이라는 평을 내놨고, 그들의 예측대로 '사랑은 24시'는 AI가 탄생시킨 음악이었다.

​"인간의 마음을 더 긁는 것이 인간의 곡이라고 생각된다"(김이나), "사랑은 24시간은 삼바라는 주어진 목표를 향해 최선의 전략을 짠 느낌이다"(감상욱)라는 표현처럼 방송을 통해 소개된 두 곡의 차이는 확연했다.

'텔레파시'가 투박한 감성을 지닌 멜로디를 들려준 데 반해 '사랑은 24시간'은 기존 트로트에선 접하기 힘든 세련된 선율을 담으면서 대조를 이뤘다. 최종 선택은 가창자인 가수의 판단에 맡겨졌고 2곡을 연달아 소화한 홍진영의 결정은 '텔레파시'였다. 결과는 인간의 승리.

하지만 AI가 만든 '사랑은 24시간'이 맘에 들었다는 시청자들의 의견도 적지 않았고 승패 결정은 전적으로 사람들의 취향 차에 따른 것이기에 실제론 박빙의 접전으로 봐도 무방했다. AI가 전통 트로트 고유의 거칠지만 순박한 정서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최신 유행 음악의 흐름을 적극 반영한 작업물을 내놓았다는 점은 크게 주목해볼 만했다.

트로트 작곡 AI의 패인은 '데이터 부족'
 
 지난 14일 방영된 SBS 신년특집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의 한 장면.

지난 14일 방영된 SBS 신년특집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의 한 장면. ⓒ SBS

 
​"기존 삼바 트로트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몇 십만 곡의 데이터가 필요했기에 그 양이 부족했다." (안창욱 교수)

​<AI vs. 인간> 트로트 작곡 대결에서 AI가 패한 이유로는 결국 데이터 부족을 꼽을 수 있다. 스스로 학습하고 진화한다고 소개되긴 했지만 작곡 AI가 원활하게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선 결국 다량의 데이터 확보가 중요했다. 이는 방송에 출연한 'EVOM' 개발자 안창욱 교수도 인정한 부분이었다. 즉, 반대로 해석한다면 댄스 또는 록 음악처럼 훨씬 방대한 양의 자료 확보가 수월한 장르의 작곡이었다면 전혀 다른 결과로 연결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현재의 기술 발전 속도라면 불과 몇 년 이내에 음악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도 AI기술을 활용해 신곡을 만드는 일이 가능해질 것이다. 그럼에도 중요한 사실이 있다. AI 기술이 아무리 진일보한다 하더라도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느냐의 선택은 여전히 인간에게 달려 있다는 점이다.    

"그의 등장처럼 새로운 형태의 패러다임을 만드는 것은 인공지능에게 아직 어려운 일이 아닐까? 새로운 트렌드를 개척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김상욱 교수)
   

이는 방송 중간과 말미에 언급된, 서태지를 예로 든 김상욱 교수의 지적과도 일맥상통한다.​ 인간의 능력을 축소시키기 보단 더욱 확장시켜주기 위한 보완적 수단으로 AI를 활용한다면 더욱 발전된 모습의 음악, 미술 작품을 만나볼 수 있지 않겠는가.  

지난 5주에 걸쳐 마련된 <AI vs 인간>은 이름은 익숙했지만 아직 멀게만 느껴졌던 AI 기술에 대한 쉬운 이해를 돕고 고민하게끔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기획물으로 평가할 만하다. 앞으로도 이와 같은 프로그램 제작이 더욱 활발히 이뤄지길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필자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jazzkid 에도 수록되는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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