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밤> 자켓 사진 <슈퍼스타K3> 에 함께 출연하지 못한 군조가 합류해 5인조가 된 울랄라세션의 첫 싱글 <아름다운 밤> 자켓 사진.

▲ <아름다운 밤> 자켓 사진 <슈퍼스타K3> 에 함께 출연하지 못한 군조가 합류해 5인조가 된 울랄라세션의 첫 싱글 <아름다운 밤> 자켓 사진. ⓒ 스톤뮤직 엔터테인먼트

 
8년 전 이맘때쯤, 가수이자 댄서였던 뮤지션 한명이 세상을 떠났다. 2011년 방영된 Mnet <슈퍼스타K3> 에서 우승을 차지한 그룹 울랄라세션의 리더 임윤택 씨였다. 울랄라세션을 결성하고 무명시절부터 멤버들을 이끌어왔던 그는 멤버들과 팬들에게는 정신적 지주와 같았다. '임단장'이라고 불렸던 그는 자신의 역할에 애정을 보이며, 음악활동을 이어갔고 그 열정은 위암 판정도 막을 순 없었다.

<슈퍼스타K> 1년 전 위암 4기 판정을 받은 임씨는 항암치료를 받으며 프로그램에 출연, 우승을 차지했고 이 후 멤버들과 함께 정규앨범 발매와 전국투어 콘서트까지 소화해내며 바쁜 활동을 했다. 그리고 2013년 2월 11일 33살의 짧은 인생을 마감했지만 여전히 음악팬들 사이에서 그는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낳은 딸(2012년생) 이 초등학교 3학년이 될 만큼 긴 시간이었지만, 여전히 음악팬들 사이에서 임윤택은 회자되고 있다.

10년의 무명 세월이 만든 '울랄라세션' 

'단장' 임윤택의 시작은 댄서였다. 20대 때부터 언더그라운드에서 댄서로 활동해온 임 씨는 2004년 울랄라세션을 결성했다. 울랄라세션의 원년멤버인 군조는 임윤택과 함께 언더그라운드에서 실력 있는 댄서로 이름을 날렸고, 박승일은 임윤택으로부터 춤을 배우던 제자의 친구로 그와 함께 활동하게 된다. 임윤택과 10살 이상 나이차이가 났던 박광선은 초등학생 때부터 임윤택의 공연을 보러온 팬이었고, 김명훈은 박승일의 지인 중 1명으로 임윤택이 공연하던 클럽 보일러실에서 매일 노래 연습을 하던 중 임윤택과 인연이 닿아 함께하게 되었다. 

<슈퍼스타K3> 에 출연하기 전까지 울랄라세션은 주로 언더그라운드 클럽 무대에서 활동하며 그룹을 유지했다. 그들이 처음 선 무대는 미사리였다. 통기타 가수들로 대표되는 어쿠스틱 음악들이 주류를 차지하던 미사리의 무대에서 춤을 추며 강렬한 클럽 음악을 선보이던 울랄라세션은 '이단아' 였다. 3명 이상 무대에 오르는 걸 허락하지 않던 출연 관례 때문에 무대 출연도 쉽지 않았다. 멤버들을 포기할 수 없었던 임윤택은 '3명 출연분을 받아도 좋으니 5명이 무대에 올라가게 해달라' 며 합의를 본 뒤 함께 무대에 올라갔다. 미사리에서의 공연 횟수가 늘어나며 그룹의 매니아 팬층이 늘어나며 1달에 2번 이상 미사리 무대에 오를 정도로 인기가 높아졌다.

특히 빚을 내서 발매한 그들의 첫 음반이 실패하며 멤버들은 빚을 갚기 위해 각종 무대에 닥치는 대로 서며 돈을 벌었다. 술집에서 노래를 부르다 취객이 던지는 술병에 크게 다칠 뻔 했다는 무명시절의 일화는 이젠 유명하다. 무명 시절 수 없이 거쳐온 무대 경험은 훗날 그들이 메이저 무대에서 탄탄한 실력으로 대중들에게 자신들을 입증할 수 있는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다.
 
임윤택 임윤택은 2013년에, 에바 캐시디는 1996년에 요절한 가수이자 동시에 이들이 세상을 등진 나이가 33살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참, 33살에 요절한 가수이자 동시에 이들의 생명을 앗아간 게 암이라는 공통점도 보인다.

▲ 임윤택 임윤택은 2013년에, 에바 캐시디는 1996년에 요절한 가수이자 동시에 이들이 세상을 등진 나이가 33살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참, 33살에 요절한 가수이자 동시에 이들의 생명을 앗아간 게 암이라는 공통점도 보인다. ⓒ 이정민

 

2010년 9월, 임윤택은 공연 후 위에 복통을 느껴 병원을 찾았다가 위암 판정을 받는다. 그는 자신의 암 발병 사실을 언급하길 꺼렸지만 그와 학창시절부터 함께했던 매니저가 자신의 SNS에 임 씨의 암투병 사실을 알렸고, <슈퍼스타K3> 예선에 출연한 임윤택이 스스로 밝히면서 대중에게 알려졌다.

임윤택은 상태가 악화되기 전에 대중들에게 자신들의 음악을 보여줘야겠다는 의지로 오디션 프로 출연을 결정했다.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내 '위암을 극복하고 무대에 선 승리자' 라는 타이틀이 따라붙었지만 정작 그는 위암이라는 질병으로 자신을 동정해주는 프로그램의 진행방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제작진과 충돌을 빚으며 위암 투병 사실이 방송에 나가는 걸 반대했다는 임윤택은 더욱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얻었다는 말에 기뻐하기도 했다.

울랄라세션은 프로그램 내 최대의 화제로 떠올랐다. 예선 첫 라운드부터 심사위원들에게 "준비된 프로"라는 최고의 극찬을 받았다. 특히 단순한 가창자이자 댄서가 아닌 직접 무대의 구성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임윤택의 기획성도 프로그램의 화제거리 중 하나였다. 생방송 무대마다 한 편의 연극 혹은 뮤지컬을 연상시키는 화려하면서도 고유의 스토리가 담겨 있는 무대연출은 울랄라세션만이 가진 특이성으로 자리잡았다.

병원 치료를 위해 몇 차례 연습을 빠지기도 했던 그였지만 그는 항상 무대에서 준비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달의 몰락', 'Open arms', '미인', '난 행복해', '너 때문에' 등 생방송 무대에서 선보였던 경연곡들에서 임윤택은 절절한 사랑을 노래하던 발라더로, 언더그라운드 클럽을 주름잡던 댄서로, 노래의 가사와 스토리를 표현하는 예술가로 변신했다. 음악과 함께 다양한 모습으로 변하는 임윤택은 많은 음악팬들에게 수준 높은 감동을 선사했다.

다양한 무대 중에서도 많은 음악팬들이 꼽는 울랄라세션의 최고의 무대는 바로 이승철의 '서쪽 하늘'이다. 2009년 작고한 영화배우 장진영이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청연>의 OST다. 공교롭게도 장진영 역시 임윤택과 같은 암으로 투병생활을 하다 별세했다. 임윤택은 인터뷰를 통해 선곡 과정을 설명하며 "배우가 몸을 망치면 연기를 못 한다는 생각에 항암치료를 포기했던 장진영의 상황을 듣고 이 노래에 마음이 갔다. 지금 내 상황도 이렇다"며 무대를 앞두고 포기할 수 없는 자신의 절박한 감정을 표현했다. 

<서쪽 하늘> 을 불렀던 무대에는 울랄라세션 멤버들을 위한 발판이 놓여있었다. 4명의 멤버가 올라간 발판의 위치는 전부 달랐고, 그중 임윤택은 가장 낮은 위치의 발판 위에 서 있었다. 나머지 3명의 멤버들이 임윤택의 건강이 완쾌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하늘과 가장 낮게 떨어진 위치에서 그가 노래할 수 있도록 무대장치를 구성했다. <서쪽 하늘> 을 부르는 동안 임윤택과 나머지 멤버들은 단순한 음악이 아닌 감정을 노래했다.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고음을 내지르는 멤버들의 모습은 노래가 아닌 절규를 연상시키기도 할 만큼, 그들은 이 곡을 자신들의 숙명을 노래하듯 온 힘을 다해 노래했다. 

5개월의 경연 끝에 울랄라세션은 버스커버스커와의 결승전에서 승리하고 우승을 차지한다. 눈물을 흘리며 우승의 감격을 맛보던 멤버들은 영광을 모두 임윤택에게 돌렸다. 위암이라는 병마와 싸워가며 함께했던 그의 모습을 지켜봤기에 그들이 임윤택으로부터 얻었던 감동은 컸다. 울고 있는 멤버들 옆에서 그는 담담하게 수상소감을 말한다. 수상금 5억을 어디에 쓸 것이냐는 MC 김성주의 질문에 그는 함께하는 시간동안 돈 문제로 한번도 다툰 적이 없다며, 멤버들의 끈끈한 우애에 대해 이야기했다. 

'임단장' 임윤택, 그리고 이별

<슈퍼스타K3>를 통해 꿈의 무대에서 정상이 된 그들은 이전처럼 다시 노래하기 시작했다. 물론 미사리와 각종 언더 무대를 전전하던 과거와는 좀 달랐다. 그들의 앞에는 그들의 음악을 듣는 몇십명의 팬들이 아닌 수만명의 사람들이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환호하고 있었고, 그들의 음악적 행보는 모든 이들의 관심사가 되었다. 출산으로 오디션에 함께 출연하지 못했던 군조가 다시 합류하여 5인조가 된 울랄라세션은 2012년 5월 싱글 <아름다운 밤> 을 발매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오디션에서 심사위원으로 인연을 맺은 싸이가 작사, 작곡한 그들의 노래는 울랄라세션이 보여준 퍼포머로서의 기술이 모두 들어간 집합체였다. 그들은 전국투어 콘서트 '울랄라 THE Beginning'까지 성공적으로 마치며 음악적 성장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그는 어느 순간부터 근거 없는 비난의 대상이 됐다. 음반 활동과 전국 투어 콘서트, 여러 방송 출연을 차질 없이 소화하는 그의 모습에서 일부 대중들은 "위암 투병이 방송을 위한 조작이 아니냐" 며 비난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사는 물론 그의 SNS 계정에서도 악플이 발견될 정도로 비난의 수위는 높아졌다. 

<승승장구>에 출연한 임윤택은 "자신의 주치의가 그랬던 것처럼 아프다고 산에 들어가서만 살 수 없다.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며 그의 활발한 활동이 위암 환자라는 이유로 비정상적으로 여겨저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트위터에서 루머를 퍼트리며 악플을 달던 그들에게는 "악플 쓰는 사람들은 쪽지를 주면 콘서트 티켓을 사비로 예매해드리겠다. 그 분들에게 내가 노력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며 비난하는 사람들마저도 끌어안으려는 모습을 보여줬다. 무대와 음악, 그 두가지만큼 그에게 소중한 것은 없었다.

그는 2012년 7월 자필 에세이 <안 된다고 하지 말고 아니라고 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를 출판하며 자신의 삶을 대중에게 설명한다. 여러 강연에도 초청됐다. 그는 청소년들을 포함한 세상 사람들에게 '행복 전도사' 를 자처하며 많은 이에게 희망을 전하려 노력했다. 

그는 투병생활을 병행하며 방송활동을 이어왔다. 방송에서는 항상 밝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위암이라는 병마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꺼렸지만 그의 병마는 예상보다 심각했다. 울랄라세션이 스케줄을 소화할 때면 항시 의료진과 구급차가 대기하고 있을 정도였고, 종종 체력저하와 치료를 이유로 전국투어 콘서트나 행사에 불참하는 등 항상 위기 속에서 활동을 이어왔다. 

 
 그룹 울랄라세션의 맏형인 '임 단장' 임윤택이 위암 투병 끝에 향년 32세로 11일 오후 8시 30분께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영안실 특실이며 장례는 기독교식 4일장으로 진행된 뒤 14일 오전 발인에 이어 벽제 화장터에서 화장, 경기도 고양시 자유로 청아공원에 안치될 예정이다.

그룹 울랄라세션의 맏형인 '임 단장' 임윤택이 위암 투병 끝에 향년 32세로 11일 오후 8시 30분께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영안실 특실이며 장례는 기독교식 4일장으로 진행된 뒤 14일 오전 발인에 이어 벽제 화장터에서 화장, 경기도 고양시 자유로 청아공원에 안치될 예정이다. ⓒ 사진공동취재단

 
결국 2013년 새해가 시작되면서 상태가 급격히 악화된 그는 입원치료에 들어갔다. 2013년 1월 15일, 2013 아시아 모델 시상식에서 울랄라세션은 인기가수상을 수상한다. 본래 임윤택은 몸 상태를 이유로 불참 의사를 밝힌 상태였으나 울랄라세션 멤버들이 수상할 때 깜짝 등장해 무대에 올랐다. 다른 멤버들과 달리 평상복 차림으로 참석한 그는 평소보다 야윈 모습으로 나타나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마이크 위치가 높다"며 평소의 재치를 잃지 않았던 그의 모습이었지만 그는 병마가 할퀴고 간 상처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의 열정도 병마의 빠른 진행을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행사는 임윤택이 대중 앞에 모습을 들어낸 마지막 행사가 되었다.

임윤택은 2013년 2월 11일, 향년 33세의 짦은 생을 마감했다. 평생 무대를 사랑하는 울랄라세션의 단장으로 남고자 했던 그의 바램은 너무 짧게 끝을 맺고 말았다. 그는 떠나는 그 순간까지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로했다. 임윤택의 생전 소속사였던 울랄라컴퍼니의 대표 이유진 씨는 그의 마지막 임종을 회상하며 "아내 이씨에게 '리단 엄마, 너무 슬퍼하지 마라, 울지 마라'는 말을 남겼다"며 마지막까지 사랑하는 아내와 사람들을 챙겼던 그의 배려를 회상했다. 그는 자신의 딸이 자신을 영원히 기억할 수 있도록 자신의 유골 일부를 목걸이에 담아 딸에게 선물하라는 부탁도 남겼다.

같이 동거동락했던 울랄라세션 멤버들의 오열과 그들을 아꼈던 많은 선후배들, 팬들의 조문으로 그의 마지막 길은 외롭지 않았다. 특히 울랄라세션의 데뷔곡을 작사, 작곡했던 싸이는 장례비용을 본인이 전액 부담하는 등 마지막까지 임윤택의 죽음을 애도하며 안타까워했고, 그의 결혼식에서 주례를 섰던 소설가 이외수 역시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조문했다. 

임단장, 그가 떠난 후

그가 떠난 지 8년의 세월이 흐른 현재까지도 임윤택은 수 많은 음악팬들에게 추억되고 있다. 그의 죽음 이후 울랄라세션은 멤버 교체 등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활동을 이어갔으나 울랄라세션의 음악적, 퍼포먼스적 컬러를 창조하고 무대에 적용시켰던 임윤택의 부재는 울랄라세션만의 독창성을 상실하게 만드는 안타까운 결과를 낳았다. 그의 별명 '임단장' 은 단순히 그가 스스로에게 붙힌 애칭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는 울랄라세션을 만들고 이끌었으며, 울랄라세션의 무대와 음악 안에 독창성을 불어넣었던 지휘자이자 단장이었다. 

그가 사망하고 2년 후인 2015년 8월, 아내 이예림 씨와 딸이 MBC 다큐프로그램 <휴먼 다큐 사람이 좋다>에 출연, 임윤택에 대한 못다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그가 투병생활에 사용하던 물품과 마지막 사진들을 태우며 눈물을 흘렸던 아내 이 씨는 "임윤택의 아내인 것이 고맙다. 리단이를 선물해주고 가서 고맙다. 나중에 남편을 만났을 때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나중에 만났을 때 잘 살고 왔다고 칭찬 받고 싶다"며 그에 대한 사랑과 감사를 표현했다. 

오디션에 출연해 스타가 된 수많은 가수들 중 그가 유독 많은 이들에게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이유는 그가 요절했다는 사실과 위암이라는 병마와 싸웠다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는 자신의 고통조차도 예술과 재치로 소화할 수 있었던 아티스트였으며, 그의 정성과 높은 음악성은 울랄라세션이라는 하나의 장르를 만들어냈다. 위암, 오디션 같은 인생사의 큰 사건보다 그에게 가장 중요했던 건 바로 긍정의 힘으로 이루어진 삶과 음악이었다. 그가 세상에 남기고 간 음악과 긍정의 힘은 오랜 시간이 지나 그에 대한 관심마저 희미해진 현재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명을 선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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