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들은 언제나 새로운 재미를 찾아 헤맨다. 그래서 때로는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말투나 평소엔 거의 쓰지 않는 표현들이 인터넷 상에서 크게 유행하곤 한다. 그리고 이런 밈(인터넷에서 유행하는 특정한 콘텐츠와 문화요소)들은 그들만의 언어로 일시적으로 소비되다 끝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일상생활로 전파돼 인터넷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익숙하게 쓰는 신조어로 굳어질 때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탕수육 부먹 vs. 찍먹'은 과거엔 인터넷상에서만 벌어지던 논쟁이었지만 현재는 여러 가지로 파생되면서 고민스러운 2가지 중 하나를 고르는 '밸런스 게임'이 하나의 놀이문화로 자리 잡았다. 2019년에는 인터넷에서 영화 <타짜>가 재조명되면서 배우 김응수가 연기한 곽철용의 대사들이 큰 인기를 끌었는데 이 덕분에 배우 김응수는 CF를 찍고 드라마 주연으로 캐스팅되는 등 '제2의 전성기'를 활짝 열었다.

지난 1991년 데뷔해 올해로 데뷔 30주년을 맞는 이 중견가수 역시 인터넷 밈의 희생양(?)이 된 적이 있다. 생목으로 노래하는 특유의 창법을 쓰는 가수이자 최근 젊은층 사이에서 '숲튽훈(한글 김과 장을 한자로 표현한 것)'이라는 캐릭터로 재조명된 김장훈이 그 주인공이다. 하지만 김장훈을 그저 '숲튽훈'으로만 기억하는 젊은 대중들은 그가 1990년대 후반 상당히 잘 나가는 발라드 가수였다는 사실은 미처 알지 못할 것이다.

콘서트 통해 간신히 연명하던 언더그라운드 가수
 
 김장훈은 1집 앨범을 발표한 지 두 달 만에 단독콘서트를 열 정도로 공연에 남다른 열의를 보였다.

김장훈은 1집 앨범을 발표한 지 두 달 만에 단독콘서트를 열 정도로 공연에 남다른 열의를 보였다. ⓒ 서울음반

 
중학교 때까지 스스로를 문제아였다고 밝힌 김장훈은 고교 시절 음악을 시작하면서 어머니 지인의 아들인 김현식을 만나게 된다. '언더그라운드의 황제'였던 김현식은 친한 동생 김장훈이 노래를 할 수 있는 무대를 주선해 줬고 덕분에 김장훈은 데뷔 전 적잖은 무대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김장훈을 잘 챙겨 주던 김현식은 1990년 11월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났다.

김현식 작고 후 가수 지망생 김장훈은 여러 시상식에서 김현식 대신 <내 사랑 내 곁에>를 부를 인물로 선정됐다. 하지만 김장훈은 김현식의 이름을 팔아서 자신이 주목을 받고 인기를 얻는 것은 고인을 모독하는 행동이라고 판단해 방송을 무단으로 펑크냈고 이 때문에 수 년 동안 방송 출연을 하지 못했다. 

김장훈은 1991년 9월 정규 1집을 발표하며 가수로 데뷔했다. '어떤날'의 베이시스트 조동익과 빛과 소금의 박성식, 젊은 천재 뮤지션으로 이름을 날리던 김현철 등이 참여했다. 훗날 토이로 데뷔하는 유희열이 만든 <햇빛 비추는 날>도 이 앨범에 들어 있다. 당시 유희열은 김장훈이 결성한 밴드 '한국사람'의 멤버였는데 김장훈은 유희열과의 소개팅(?) 자리에서 "나 들국화보다 음악 잘한다"는 말로 설득해 유희열을 건반 주자로 영입했다.

하지만 이전 무단 펑크 사건 때문에 방송에 나갈 수 없었던 김장훈의 데뷔 앨범은 몇몇 마니아들에게 호응을 얻었을 뿐 일반 대중들의 사랑을 받진 못했다. 김장훈은 이에 굴하지 않고 1993년 시나위의 리더 신대철과 손을 잡고 2집 앨범을 발표했다. 신대철이 타이틀곡 <이제야>를 포함해 3곡에 참여한 앨범답게 난이도가 어려운 노래들이 많이 들어있다.

김장훈은 1996년 3집 앨범을 발표하며 처음으로 자작곡 <노래만 불렀지>를 타이틀로 내세웠다. 김장훈의 3집 앨범에는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긴 <노래만 불렀지>를 포함해 무려 5곡의 자작곡이 들어있고 더 클래식의 김광진과 김민종의 히트곡을 만들었던 작곡가 서영진 등이 참여했다. 2집까지 철저한 무명이었던 김장훈이라는 가수가 대중들에게 서서히 알려진 시점이기도 하다.

방송출연을 할 수 없었던 김장훈이 꾸준히 앨범을 내고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었던 비결은 역시 콘서트였다. 1991년 9월에 1집 앨범을 내고 두 달 후인 11월부터 단독 콘서트를 열었던 김장훈은 방송 출연이 가능해질 때까지 크고 작은 무대에서 무려 500여 회에 걸친 콘서트를 개최했다.

하지만 김장훈이 앨범 발표와 공연을 반복하던 사이 그의 집안은 매우 힘들어졌고 김장훈은 가세를 세우기 위해 자신의 고집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김장훈은 몇 가지 원칙을 세우고 4집 앨범을 준비했다. 그렇게 김장훈이 대중지향적인 가수가 되기로 결심한 4집 앨범은 1998년 2월에 발매됐다.

4집 <나와 같다면>-<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연속 히트
 
 김장훈은 4집에서 발라드 위주의 음악을 하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김장훈은 4집에서 발라드 위주의 음악을 하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 동아기획

 
지난 1995년 최고의 작사가 박주연이 가사를 쓰고 고운 미성을 가진 신인가수 박상태가 <나와 같다면>이란 곡으로 데뷔했다. 하지만 박상태의 <나와 같다면>은 당시 댄스곡이 중심이던 가요계의 심한 경쟁을 버티지 못하고 쓸쓸하게 잊히고 말았다. 김장훈은 약 3년 전 대중들의 큰 사랑을 받지 못했던 <나와 같다면>을 리메이크해 4집 타이틀곡으로 들고 나오는 쉽지 않은 모험을 단행했다.

4번째 앨범을 내는 기성가수가 나온지 3년도 되지 않은 신인가수의 노래를 리메이크해 타이틀곡으로 들고 나오는 것은 자칫 무리수가 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김장훈의 전략은 대성공이었다. 1절에서 저음으로 후렴구를 부르며 분위기를 잡다가 2절에서 고음을 내지르며 감정을 폭발하는 김장훈의 창법은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나와 같다면>은 2011년 <나가수>에서 김연우에 의해 불려지며 또 한 번 명곡임을 입증했다).

하지만 김장훈이 한창 타이틀곡 <나와 같다면>으로 활동할 때 라디오를 중심으로 <나와 같다면>보다 더 많이 흘러 나오면서 더 많은 사랑을 받은 곡이 있었다. 바로 유영석이 곡을 쓰고 박화요비의 < Lie > 가사를 쓴 이상호 작사의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였다.

절제된 감정선에 난이도도 그리 높지 않은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는 김장훈이 부를 때도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리메이크도 자주 됐고 경연 프로그램에서도 유난히 자주 쓰였다. 김연우는 컴필레이션 앨범 'Mind Bridge'에서, 김건모는 유영석 20주년 기념 앨범에서 각각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리메이크했고 개그맨 김진수와 가수 장혜진, 버블시스터즈의 영지, 유튜브 크리에이터 대도서관은 <복면가왕>에서 이 노래를 불렀다.

김장훈은 살벌했던 군부독재 시절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구전가요 <사노라면>을 4집 앨범을 통해 리메이크했다. 이 노래는 김장훈뿐 아니라 이승환과 이소라, 윤도현, 리아 등 동료가수들과 함께 불렀다. 물론 <사노라면>은 김장훈 이후에도 크라잉넛이나 싸이 등 많은 가수들에 의해 다시 불려졌지만 김장훈처럼 공연마다 <사노라면>을 빠짐 없이 부르며 애착을 보인 가수도 드물다.

<나와 같다면>과 <사노라면>도 리메이크곡이지만 김장훈은 자신의 초창기 앨범에 실렸지만 빛을 보지 못했던 노래들을 4집에 다시 실었다. 1집에 들어 있던 <햇빛 비추는 날>과 <늘 우리 사이엔>, <내일로>,  2집에 수록된 <예전처럼> 등이 대표적이다. 8번 트랙 <떠나가 버렸네>는 김현식 3집 수록곡을 리메이크한 노래로 4번트랙 이후에는 김장훈의 인디 시절 정서가 깊게 담겨 있다.

인간형 로봇 '휴보'를 빌려 공연하는 '콘서트 장인'
 
 김장훈은 여러 논란들과는 별개로 여전히 무대에서는 언제나 진심을 다해 노래하는 가수다.

김장훈은 여러 논란들과는 별개로 여전히 무대에서는 언제나 진심을 다해 노래하는 가수다. ⓒ KBS 화면캡처

 
김장훈은 4집 앨범을 계기로 대중친화적인 가수로 거듭났고 1999년에 발표한 5집 앨범에서 <슬픈 선물>과 <오페라>를 차례로 히트시키며 인기가수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특히 <슬픈 선물> 뮤직비디오에서는 지금은 세상을 떠난 배우 고 이은주의 신인 시절 모습을 볼 수 있다. 4집의 성공으로 김장훈 5집에는 4집에 참여했던 유영석, 이동원 외에도 김형석, 박진영, 윤종신 등 인기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했다.

김장훈은 2000년에 발표한 6집 타이틀곡 <혼잣말>로 2001년 2월 <뮤직뱅크>에서 1위를 차지하며 데뷔 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지상파 순위프로그램 1위를 차지했다. 유희열이 에로영화 <애마부인>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후속곡 <난 남자다> 역시 <혼잣말> 못지않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김장훈은 이후 윤종신의 <고속도로 로망스>, 김원준의 < Show >, 젝스키스의 <커플> 등을 리메이크하며 리메이크에 대한 관심도 잊지 않았다.

김장훈은 콘서트에서 여러 퍼포먼스를 보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지난 2006년 12월 카이스트 연구진과 산업자원부를 설득해 카이스트에서 개발한 인간형 로봇 휴보를 빌려 콘서트를 했던 일은 공연계에서도 획기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이처럼 김장훈은 특유의 창법과 가창력 때문에 대중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가수이고 각종 기행과 사건·사고로 '기부천사' 이미지마저 많이 퇴색됐다. 하지만 김장훈은 자신을 희화화한 '숲튽훈'이라는 밈을 쿨하게 받아들이고 오히려 이 캐릭터를 콘서트 홍보에 적극 활용했다. 이처럼 공연과 무대에 대한 김장훈의 열정과 진심 만큼은 그 어떤 가수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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