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이렇게 됐군요. 참 아쉽습니다. 마음속으로나마 당신을 열렬히 응원했는데, 정상을 목전에 두고 그만.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무대는 마지막까지 멋졌습니다.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나이 어린 친구들 틈바구니에서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단언컨대 당신은 그들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존재였습니다. 당신은 앞으로가 더 좋을 것입니다.
 
 JTBC <싱어게인> 한 장면.

JTBC <싱어게인> 한 장면. ⓒ JTBC

 
JTBC <싱어게인>. 사실 이런 프로그램이 있는 지도 몰랐습니다. 어느 날 저녁, 습관처럼 TV를 켜고 밥을 먹는데 화면에 조금 낯선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머리를 치렁하게 기른 범상치 않은 두 남자가 작은 건반 하나를 놓고 노래를 부르는 듯했습니다. 볼륨을 높였습니다. 아, 참고로 평소엔 소리를 완전히 죽이고 화면만 봅니다. 연로하신 어머님이 일찍 주무셔서지요.

당신들은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당신들의 노래는 당신들만큼이나 생소했습니다. 분명 라커처럼 보였는데 노래는 발라드였습니다. 록도 아니고 포크에 가까웠습니다. 어쨌든 당신들은 서로 다른 매력의 중저음으로 아주 묘한 하모니를 만들어 내고 있었습니다. 듣기에 나쁘지 않았지만 왠지 답답했습니다. 어딘가 꽉 막힌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당신들은 무언가 숨기고 있는 게 분명했습니다. 드러내지 않으려 안으로 삼키는 응어리진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그건 곧 폭발할 듯하면서도 쉬이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당신들은 대단한 인내심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그 강압된 평온을 끝까지 지켜내더군요.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정체를 드러내주기만 학수고대했던 저는 종국엔 허탈하기조차 했습니다.

당신들의 노래가 끝나고 진행자가 나와 나누는 대화를 듣고서야 알았습니다. 그건 일종의 오디션 프로그램이었고, 당신들은 거기서 처음 만난 사이며, 경연의 한 과제로 둘이 듀엣을 이뤄 남의 노래를 불렀다는 그 전모를 알게 된 겁니다. 그리고 홍일씨 당신은 정식으로 음반까지 낸 가수지만 아직 뜨지 못한 재야의 메탈고수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강렬한 야수성의 한 조각
 
 JTBC <싱어게인> 한 장면.

JTBC <싱어게인> 한 장면. ⓒ JTBC

 
당신의 첫 영상을 찾아 보았지요. 당신은 스스로를 정통 헤비메탈 가수로 소개하시더군요. 그러면서 임재범을 불렀습니다. 임재범이야 멋과 풍류를 아는 한국남성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 핏대 올려 따라해 봤던 인물이죠. 심사위원 어느 분의 말씀대로 당신은 차분하게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면서도 강렬한 야수성의 한 조각을 슬며시 보여주셨습니다. 

그럼 그렇지 했습니다. 제 눈은 정확했습니다. 당신의 목소리와 아우라는 제가 처음 본 방송의 선곡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애써 감추려했던 그 무언가는 아마도 '록 스피릿'이었겠지요. 어찌 그리 잘 아느냐고요? 선수는 선수를 알아보는 법. 저도 40년 외길, 메탈 마니아고 스쿨 밴드긴 하지만 어엿한 록 보컬리스트 출신이거든요.

당신은 그야말로 뼛속까지 로커입니다. 저변이 넓지 않은, 그래서 살이마저 힘겨울 수도 있는 메탈음악을 오래도록 고집하며 살아가는 당신은 이 시대의 장인이었습니다. 존경스러웠습니다. 그게 참 쉽지 않은 노릇이란 걸 알기에, 다른 많은 당신의 동지들이 생계를 위해 진작 음악을 포기하고 전혀 다른 삶을 사는 경우가 많다는 걸 잘 알기에 더 그랬습니다.

우린 한참 동안 목이 말랐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지금 이 세상은 아이돌의 댄스 음악과 트로트가 점령해 버렸습니다. TV며 모든 매체는 몇 안 되는 그들의 독차지입니다. 설 자리를 잃은 왕년의 로커들은 예능 프로그램으로 가고, 메탈기타 사운드는 댄스음악의 양념정도로만 쓰이는 게 우리의 슬픈 현실입니다.

그런 차에 정홍일씨가 짠 나타난 겁니다. 카우보이 부츠를 신고 펌 장발을 휘날리며 절규하는 당신의 모습에 세대와 성별 구분없이 환호해 주었습니다. 당신은 기분 나쁠 수 있겠으나 당신의 최종 순위는 사실 경이로운 것이었습니다. 록이, 메탈 사운드가 요즘 사람들에게 이렇게까지 먹힐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습니다. 당신은 그 미래와 가능성을 여실히 입증해 준 것입니다.

당신은 정말 큰 일을 해 내셨습니다. 그런 당신으로 인해 이 땅의 록이 다시 부활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 봅니다. 경연이 끝나자마자 경향각지의 은둔 고수들은 케이스에 모셔두었던 일렉기타며 장롱 속의 가죽 팬츠를 꺼내 손질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머지 않아 그들의 모습을 TV에서도 자주 보게 되지 않을까요. 상상만으로도 흐뭇합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당신과 함께했던 지난 한 달여의 시간은 정말 행복했습니다. 당신으로 하여금 제 안에 잠들어 있었던 열정이 다시 깨어났습니다. 아, 그렇다고 저도 어쭙잖게 음악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 삶의 전반에 대한 결연한 각오와 의지 같은 걸 새삼 다지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당신의 샤우팅은 나태와 매너리즘에 젖어 있는 저의 현재를 퍼뜩 깨워주었습니다.   

어디에선가 당신은 레인보우(Rainbow)의 디오(Ronnie James Dio)를 좋아한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멋있었던 분이죠. 전 지금도 산에 오르면 그분의 '맨 온 더 실버마운틴(Man on the Silver Mountain)'을 듣습니다. 오페라 가수를 능가하는 시원하고 거침없는 성량과 강력한 파워는 정말 최고죠. 그 까탈스러운 리치 블랙모어(Richard Hugh Blackmore)도 인정하지 않았던가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 당신은 화이트 스네이크(White Snake)의 데이비드(David Coverdale)를 연상케 합니다. 굵고 묵직하면서도 블루지한 느낌의 음색이 특히 그렇습니다. 그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아티스트이기도 합니다. 그의 대표곡 중 '히어 아이 고 어게인(Here I go Again)'이란 곡이 있습니다. 가사가 참 멋집니다. 그 중에서도 후렴구가 예술이죠.

"An' I've made up my mind, I ain't wasting no more time. But here I go again, here I go again."
 
맞습니다.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할 순 없습니다. 다시 시작입니다. 비록 우리의 미래는 불투명할지라도 결코 포기해선 안 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계속 가야 합니다. 29호 홍일씨, 당신의 꿈을 향한 도전과 걸음을 멈추지 마십시오. 그 꿈은 제 것이기도, 록을 사랑하는 모두의 것이기도 합니다. 당신은 해낼 수 있습니다. 당신의 마지막 기원처럼 태양은 매일 새롭게 뜹니다. 당신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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