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수정 : 2월 2일 오전 9시 45분]

JYP 박진영은 꾸준히 자기 노래를 발표하는 현역 가수이자 1990년대 후반부터 god와 비, 원더걸스, 2PM, 미스에이, 트와이스, 갓세븐, 잇지 등을 키워낸 음반 제작자로도 유명하다. 가수 겸 예능인 하하도 <런닝맨>을 비롯한 많은 예능프로그램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홍대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이기도 하다. 그 밖에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거나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는 연예인은 일일이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한편 전람회의 베이시스트 서동욱은 전람회 해체 후 학업을 계속해 대기업에 입사했다가 현재는 위생용품전문기업의 이사직을 역임하고 있다. 여행스케치 3집에서 <옛 친구에게>라는 노래를 불렀던 문형석은 건축설계일을 하고 있고 <작별>, <서방님>, <오래오래> 등을 불렀던 가수 이소은은 2012년 미국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 미국 현지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며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이들은 연예인과 다른 직업을 병행하는 경우도 있고 아예 연예인 생활을 정리하고 제2의 삶을 사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또 다른 케이스다. 전업 뮤지션도 아니면서 한 번 들으면 알만한 히트곡들을 대거 만들고 불렀으며 50세를 훌쩍 넘긴 나이에 음악에 전념하기 위해 펀드매니저 겸 애널리스트라는 안정된 직업을 포기하기도 했다. '더 클래식'이라는 팀으로 더욱 유명한 감성뮤지션 김광진이 그 주인공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음악을 잘하는 금융인 
 
 김광진은 솔로 1집 수록곡 중 4곡을 1998년에 발표한 솔로 2집에 다시 실었다.

김광진은 솔로 1집 수록곡 중 4곡을 1998년에 발표한 솔로 2집에 다시 실었다. ⓒ 한국음반산업협회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치며 음악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온 김광진은 안타깝게도(?) 공부까지 잘하는 바람에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김광진은 가수에 뜻이 있던 여느 대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연세대 재학시절 강변가요제와 대학가요제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예선 탈락의 쓴 잔을 마셨다. 그러던 1985년, 김광진은 모교의 '100주년 기념 교내 가요제'에 출전했는데 이 대회에서 덜컥 1위를 차지했다.

일개 대학교의 교내 가요제라고 해서 시시하게 생각하면 곤란하다. 당시 이 가요제에서 김광진에 밀려 2위에 오른 인물은 바로 80년대 후반 큰 인기를 끌었던 포크그룹 동물원의 리더 김창기(현재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다)였고 3위는 바로 '민중가요의 서태지(물론 서태지보다 연배는 한참 높다)' 안치환이었다. 그만큼 김광진이 참가했던 연세대 100주년 기념 가요제는 훌륭한 뮤지션들을 대거 배출한 수준 높은 대회였다는 뜻이다.

연세대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김광진은 미시건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국내에서 가장 잘 나가는 증권사에 입사했다. 하지만 금융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했다고 해서 김광진의 음악적 재능과 열정이 갑자기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김광진은 1991년 한동준 1집 타이틀곡 <그대가 이 세상에 있는 것만으로>를 작사·작곡하며 가요계에 발을 들였다(김광진은 1995년 한동준 3집의 <사랑의 서약>도 작사·작곡했다).

김광진은 1992년 가수로 나서 솔로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김광진 1집 타이틀곡 <멀리 있어도>는 발매 당시 크게 주목 받지 못했지만 훗날 이승환이 <흑백영화처럼>이란 제목으로 가사를 바꿔 리메이크하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재미 있는 사실은 당시 김광진의 소속사가 그 유명한 SM엔터테인먼트였다는 점이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이수만 대표가 포크가수 출신이었기 때문에 어쿠스틱 뮤지션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가수로서의 첫 발이 여의치 않았던 김광진은 다시 회사를 다니며 작곡가로서의 활동을 병행했다. 그 때 나온 대표곡이 바로 이승환 3집의 <내게>와 <덩크슛>이었다(심지어 <덩크슛>의 주문 '야발라바히기야 모하이마모하이루라'의 가사도 김광진이 썼다). 3집에서의 협업을 통해 김광진이라는 훌륭한 뮤지션을 재발견한 이승환은 그에게 가수로서의 재도전을 권유했다. 김광진 역시 노래에 대한 미련이 남은 것은 마찬가지.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솔로 앨범을 다시 내기가 부담스러웠던 김광진은 솔로가 아닌 팀으로 활동할 것을 원했고 편곡가이자 키보드 연주자로 활동하던 후배 박용준과 팀을 결성했다. 그렇게 두 싱어송라이터 김광진과 박용준이 의기투합하고 이승환이 제작에 참여한 '더 클래식'의 첫 번째 앨범은 1994년 6월 대중들에게 첫 선을 보였다.

여의치 않았던 방송활동은 이승환의 홍보전략?
 
 직장생활 때문에 방송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더 클래식의 현실은 오히려 신선하고 색다른 홍보효과가 됐다.

직장생활 때문에 방송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더 클래식의 현실은 오히려 신선하고 색다른 홍보효과가 됐다. ⓒ 드림팩토리

 
더 클래식은 2명으로 구성된 팀이지만 트윈폴리오나 해바라기처럼 화음을 넣는 듀엣은 아니었고 봄여름가을겨울 같은 밴드도 아니었으며 듀스 같은 댄스듀오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렇다고 먼저 데뷔한 공일오비처럼 본격적인 객원가수제도를 도입하는 팀도 아니었다. 더 클래식은 두 멤버 김광진과 박용준이 나눠서 노래를 불렀고 제작자 이승환이 객원가수로 참여해 두 곡을 부르며 두 멤버의 부담을 덜어줬다.

대중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더 클래식 1집의 타이틀곡 <마법의 성>은 1집 앨범에 무려 3가지 버전으로 실려 있다. 김광진이 직접 부른 '오리지널 버전'과 김광진이 다니던 성당 성가대의 백동우가 부른 '키즈버전(백동우는 1997년 솔로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승환과 오태호, 이소라, 한동준, 장필순, 윤종신, 정석원, 유영석, 박승화 등 김광진, 이승환과 친했던 동료 뮤지션들이 함께 부른 '싱 투게더 버전'이었다. 

<마법의 성>은 김광진이 1990년대 초반 286컴퓨터 세대들에겐 전설처럼 기억되는 고전게임 <페르시아 왕자(2010년에 실사 영화로도 만들어졌다)>에서 영감을 얻어 가사를 썼다. 노래는 한 편의 동화를 연상케 하는 매우 아름다운 이야기지만 정작 <페르시아 왕자>의 원작게임은 칼로 적을 섬멸해 공주를 구해내는 매우 공격적인 게임이다.

하지만 더 클래식의 <마법의 성>은 대단히 동화적인 이야기를 다룬 노래로 미화되며 온 국민의 힐링송으로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특히 변성기가 채 지나지 않은 백동우의 '키즈버전'은 백동우의 예쁜 목소리와 어우러지며 노래의 순수함을 극대화했다. 노래가 나올 당시만 해도 백동우의 순수한 목소리 때문에 그의 성별을 구분하지 못하는 대중들이 있을 정도였는데 그런 백동우도 올해로 어느덧 42세가 됐다.

<마법의 성>이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을 당시에도 김광진은 여전히 증권사에 다니던 직장인이었다. 따라서 노래의 폭발적인 인기에도 불구하고 김광진의 직장생활 때문에 더 클래식은 본의 아니게 방송 활동을 최소화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이게도 대중들의 앨범 구매의지를 부추기는 계기가 됐다.

제대로 된 TV 활동을 할 수 없었던 더 클래식은 <마법의 성>을 이을 후속곡을 따로 정하진 않았지만 김광진이 부른 잔잔한 발라드 <서툰 이별>이 <마법의 성>을 이어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서툰 이별>은 고음을 내지르는 전형적인 후렴구 없이도 노래의 슬픔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곡이다. <서툰 이별>은 김광진도 개인적으로 애착을 가지고 있는 곡으로 1998년에 발표한 솔로 2집에 다시 수록하기도 했다.

제작자 이승환은 두 곡의 객원보컬로 참여했는데 역시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곡은 < Jerry Jerry Go Go >였다. 이승환이 마치 본인 노래처럼 부르고 다니고 (더 클래식 멤버가 출연하지 않는) 뮤직비디오까지 제작하는 바람에 당시 이 곡을 이승환 앨범에서 찾는 사람도 많았다. 이 곡은 위대한 로큰롤 피아니스트 제리 리 루이스를 위한 헌정곡으로 더 클래식 1집에서 유일하게 신나게 들을 수 있는 노래다. 

더 클래식 앨범에서 주목해야 할 두 곡은 바로 또 한 명의 멤버 박용준이 부른 <그대의 향기>와 <문제아>다. 박용준은 분명 객관적인 기준으로 보면 좋은 보컬리스트와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목소리에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더 클래식 앨범에서 가능성을 보인 박용준의 이른바 '환관창법'은 1997년 토이 3집의 <선물 Part2>에서 정점을 찍었다.

더 클래식 1집은 적극적인 활동 없이도 무려 100만 장이 넘는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직장생활을 병행하느라 변변한 홍보 활동조차 할 수 없었던, 그리고 솔로 앨범을 발표했을 때는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했던 김광진이 3년 만에 '더 클래식'이라는 이름으로 당당히 인기가수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음악에 전념하기 위해 퇴사 후 더 클래식 재결성
 
 1997년 3집을 끝으로 해체됐던 더 클래식은 2014년 17년 만에 새 앨범을 발표했다.

1997년 3집을 끝으로 해체됐던 더 클래식은 2014년 17년 만에 새 앨범을 발표했다. ⓒ 캐슬뮤직

 
김광진은 1995년 이소라 1집의 <처음 느낌 그대로>와 한동준 3집의 <사랑의 서약>, 1996년 이소라 2집의 <기억해줘> 등을 작곡하며 작곡가로서 입지도 더욱 탄탄하게 다졌다. 더 클래식은 1995년 초겨울에 발표한 더 클래식 2집에서 <여우야>와 <송가>를 차례로 히트시켰지만 1997년 3집 <해피 아 워>를 끝으로 해체됐고 더 클래식의 깨끗하고 맑은 음악들을 좋아했던 대중들의 아쉬움도 함께 커졌다.

하지만 홀로서기를 한 김광진은 1998년 6년 만에 솔로 2집을 발표하며 돌아왔다. 김광진 2집에는 타이틀곡 <진심> 같은 신곡을 비롯해 1집에서 빛을 보지 못했던 <멀리 있어도>, <너를 위로할 수가 없어>, <일보접근> 등을 다시 녹음해 실었다. 그리고 이승환, 이소라, 한동준 등 다른 가수들에게 줬던 히트곡들 역시 김광진의 목소리에 실려 수록됐다. 사실상 '작곡가 김광진'을 정리하는 베스트 앨범 같은 형식이었다.

그리고 2000년에는 드디어 '불후의 명곡' <편지>가 수록된 3집을 발표해 작곡가, 그리고 가수로서 다시 한 번 건재를 과시했다. 2002년에는 <동경소녀>가 들어있는 4집을 발표하며 꾸준히 활동을 이어갔다. 김광진은 슬하에 아들 하나와 딸 하나를 두고 있는데 4집의 <유치원에 간 사나이>나 5집의 <행복을 주는 노래>를 통해 가족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기도 했다(물론 가사는 엄마인 작사가 허승경이 썼다).

잘 나가는 펀드매니저이자 애널리스트 출신 뮤지션으로 이름을 날리던 김광진은 지난 2012년 음악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회사에 사표를 냈다. 그리고 박용준과 함께 더 클래식을 재결성해 2014년 <우리에겐>이 들어 있는 미니앨범을 발표했다. 2017년에 발표된 김광진의 싱글 앨범 역시 작사를 허승경, 작곡과 노래를 김광진, 편곡을 박용준이 맡아 실질적인 더 클래식의 앨범이나 다름 없다.

김광진은 더 클래식을 재결성하면서 "오래 시간이 지난 후에 들어도 창피하지 않을 '고전'으로 남을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이야기한 바 있다. 그가 생각하는 '클래식'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마법의 성>, <편지>, <동경소녀> 같은 곡은 이미 '대중가요의 고전'으로 평가 받기에 충분한 명곡들이다. 그리고 이 노래들을 만든 김광진 역시 충분히 자신의 음악에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훌륭한 뮤지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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