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스터 존스>포스터

영화 <미스터 존스>포스터 ⓒ (주)디오시네마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국가>를 집필하면서 포박된 채 동굴에 갇혀 있는 포로를 상상했다고 전한다. 오랜 세월 묶여있던 까닭에 사지는 물론 목조자 자유로이 움직이지 못하는 포로. 포로 앞에 어떤 가시적인 대상이 있다 해도 그것은 대상의 진실이나 본질과 무관한 그림자이거나 허상에 불과하다. 이른바 '동굴의 비유'다.
 
대상이 무엇인지 알려면 포로는 그것을 가지고 빛이 있는 동굴 밖으로 나가야 한다. 온전한 빛의 세계에서 대상의 본질과 진실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동굴 안에서 마주한 거짓과 허상을 깨트려야 비로소 진실과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실을 깨우친 자는 동굴로 돌아가 허상과 불의를 일깨워야 한다고 플라톤은 주장한다.
 
진실을 파헤쳐 세상에 널리 알리는 것을 천직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다. 탐사 전문기자나 다큐멘터리 종사자가 그러하다. 그들은 '국경없는 의사회'에 소속된 사람들처럼 언제나 목숨이 위태롭다. 절대 권력이나 자본가들이 그들을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권력과 자본에 포섭되어 영화를 누리는 자들은 진실에 눈을 질끈 감는다.
 
청년 기자 존스, 스탈린을 만나려 하다!
  
 <미스터 존스> 스틸컷

<미스터 존스> 스틸컷 ⓒ (주)디오시네마

 
아주 젊은 기자 가레스 존스가 나이 먹은 정객들을 대상으로 연설한다. 히틀러의 세력 확장에 대비해 모스크바의 권력자 스탈린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늙은이들은 젊은이의 말에 유쾌한 얼굴이지만, 말도 되지 않는 얘기라며 코웃음 친다. 1933년 런던의 자유당사에서 벌어진 진풍경을 영화 <미스터 존스>가 예리하게 포착한다.
 
영국의 전직 총리이자 자유당수이며 노회한 로이드 조지가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그들에게 화답한다. 자유당의 어려운 재정 형편에 직면한 그는 존스에게 추천장을 써주고 작별을 고한다. 히틀러를 취재한 경력의 존스는 이참에 스탈린을 만나고자 한다. 세계적인 대공황이 한창인 시점에도 혁명자금이 차고 넘치는 크레믈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1933년 겨울 존스는 런던 주재 모스크바 대사관에서 소련 방문 비자를 획득한다. 출국 직전 그는 베를린 출신의 기자 파울과 통화한다. 하지만 애초 약속받았던 모스크바 체류에 적신호가 켜지고, 존스는 소련의 일상적인 도청과 뇌물수수, 미행과 살해에 직면한다. 모스크바 거리에 내걸려 있는 혁명가 레닌의 거대한 초상화가 불길하다.
 
존스는 혁명 이전 러시아에 없던 트랙터와 자동차, 화학과 탱크가 스탈린의 소련에 있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해 한다. 그는 <뉴욕타임스> 모스크바 지국장 듀란티에게 도움을 얻으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하라는 핀잔만 듣는다. 파울의 실종이 궁금했던 존스는 우크라이나에 관심을 가졌던 파울이 살해당했다는 놀라운 사실을 접하게 된다.
 
우크라이나의 무섭고도 처절한 진실
 
존스는 웨일스 출신이며, 그의 어머니는 한때 우크라이나의 '유조프카'에서 영어를 가르친 이력이 있다. 잘 익은 밀이 바람에 흔들리고, 목재 창고가 들판에 서 있는 목가적인 풍경 사진, 이는 존스가 어머니에게 받은 것이다. 호기심 많은 기자 존스는 이제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격으로 질주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열차로 유조프카로 향한다.
 
흑백으로 처리되는 승객들의 관심은 오직 '먹는 것' 하나에 쏠려 있다. 존스는 불길한 무엇인가를 직감한다. 스탈린을 기념하고자 1924년부터 '스탈리노'로 개명된 유조프카에 내린 존스가 마주한 상황은 상상을 넘는다. 온화한 표정의 스탈린이 소련의 최대 곡창 우크라이나의 밀을 두 손에 가득 담고 있는 벽화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풍경이다.
 
<미스터 존스>는 살풍경한 우크라이나의 기근과 추위를 전문적인 기록영화처럼 적나라하게 들춰낸다. 아마도 그것의 정점은 '콜랴'라는 이름을 가진 소년의 형제자매가 어쩔 도리없이 자행해야 했던 '동종포식(카니발리즘)'일 것이다. 극한의 위기 상황에 몰린 동물 개체들이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 행하는 극한의 선택적 살해와 섭취인 셈이다.
 
역사는 그것을 가리켜 '홀로도모르(Holodomor)'로 기록한다. 홀로도모르는 1932~1933년 우크라이나를 덮친 대기근과 그에 따른 300만 이상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사건이다. '홀로드'와 '모르'의 합성어인 홀로도모르는 '기아로 인한 대규모 사망'이라는 의미다. 문제는 그것이 자연재해가 아니라, 스탈린이 강제한 농업 집단화와 중공업 우선 정책으로 발생했다는 점이다.
 
워싱턴과 런던, 베를린과 모스크바
 
스탈리노를 배회하며 취재하는 존스는 당연히 보안당국에 체포된다. 존스는 양자택일을 강요 당한다. 아그니에슈카 홀란드 감독은 이 지점부터 기자는 왜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를 집요하게 제기한다. 사회주의 혁명의 대의를 위해서 작은 실패와 죽음 따위는 묵인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논리의 듀란티와 거기 동조하는 일군의 기자가 있다.
 
그와 반대로 진실은 하나밖에 없으며, 기자는 그런 진실을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는 신념의 파울이나 존스 같은 기자가 있다. 그런데 관건은 이들 언론인의 배후에 거대한 권력과 이권이 항시적으로 자리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적실하게 구현하는 인물이 세계적인 정론지를 자부하는 <뉴욕타임스>의 베테랑 특파원이자 민완가 듀란티다.
 
듀란티는 우크라이나 대기근과 사회주의 소련의 허구를 폭로하는 존스의 기사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기사를 작성한다.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그것에 기초하여 스탈린과 소련을 국제적으로 용인하게 된다. 영화는 언론 권력이 정치 권력을 조종하는 역사의 현장을 보여준다. 그와 비슷한 상황이 런던의 로이드 조지와 자유당을 기다리고 있다.
 
같은 시간대에 베를린에서는 존스가 우려했던 상황이 현실로 구체화하고 있다. 파울의 동료 기자이자 듀란티가 총애했던 아이다 브룩스가 존스에게 히틀러가 통치하는 베를린의 심각한 상황을 알린다. 불의한 언론인과 부도덕한 정치가가 만나면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심각하게 돌이키도록 인도하는 영화가 <미스터 존스>다.
 
존스, 한국 기자에게 기자정신을 묻다
  
 영화 <미스터 존스> 스틸컷

영화 <미스터 존스> 스틸컷 ⓒ (주)디오시네마

 
2020년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초미의 정치적인 문제는 '검찰개혁'이었다. 숱한 보수언론의 머리기사는 거의 매일 검찰개혁 관련 기사로 도배되었다. 그것은 수면 아래로 잠시 내려앉아 있지만, 그 배후에는 거대 족벌 언론이 자리하고 있음은 불문가지다. 그래서 일부 시민들은 검찰개혁과 더불어 언론개혁을 여전히 갈망하고 있다.
 
2016년 세계 70위였던 한국의 언론자유지수는 2020년 세계 42위로 28계단 뛰어올랐다. 그만큼 언론의 취재와 표현의 자유가 강화되었다는 얘기다. 반면에 한국인의 언론 신뢰도는 어떤가? 2019년 38개 조사대상국 가운데 38위를 차지했다. 한국 언론을 신뢰한다는 응답자는 고작 22%에 머물렀다. 80%에 이르는 불신율은 무엇을 말하는가? 속어로 '기레기'가 유행하고, '기데기'라는 참혹한 신조어마저 떠돈다. 이런 상황의 상당 부분은 기자들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기사에 보이는 잦은 오탈자와 비문은 그렇다 쳐도 기자정신은 어디에 있는지, 물어야 한다.

존스가 고향인 웨일스에서 미치광이 취급을 당하면서도 진실을 알리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장면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존스처럼 철저한 기자정신으로 무장한 사람이어야 비로소 독자가 믿고 의지할 수 있을 것이다. 1935년 8월 내몽골을 취재하던 존스는 소련 안내인에게 살해 당한다. 그대들은 진실을 위해 동굴 밖으로 나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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