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종종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비판을 듣기도 하지만 MBC의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은 장기 침체에 빠진 MBC의 일요예능을 살렸다는 평가를 받는 효자프로그램이다. 실제로 2015년 4월 정규편성된 <복면가왕>의 첫 회 시청률은 6.1%였는데 이는 전작인 <애니멀즈>의 최종회 시청률 2.5%의 두 배가 넘는 수치였다. <복면가왕>은 방송 6주년이 가까워 온 지금까지도 10% 내외의 꾸준한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다.

<복면가왕>의 역대 최고가왕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은 바로 밴드 국카스텐의 하현우가 주인공이었던 '우리동네 음악대장'이다. 정규편성 이후 정확히 10번째 가왕이었던 음악대장은 역대 최장기간가왕(9회)이자 역대 최초로 애니 주제가(<Lazenca, Save Us>)를 경연곡으로 선택한 독보적인 가왕이었다. 실제로 하현우와 그가 이끄는 밴드 국카스텐의 인기와 위상은 <복면가왕> 출연 전과 후로 크게 달라졌다. 

하지만 음악대장이 등장하기 전 루나와 진주에 이어 역대 최초의 남성가왕으로 등극해 가왕전 4연승을 기록했던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 역시 역대급 가왕으로 손색이 없는 인물이다. 매주 가왕전마다 압도적인 차이로 가왕 자리를 지키던 클레오파트라는 8대 가왕전에서 한국 민요 <한 오백년>을 선곡해 실질적인 '셀프졸업'을 선택했다. 클레오파트라의 복면을 쓴 주인공은 바로 <복면가왕>이 자리 잡기까지 큰 역할을 했던 '노래본좌' 김연우였다.

유희열의 고난이도 노래 척척 소화하는 토이의 목소리
 
 발매 당시 대중들의 외면을 받았던 김연우 1집은 훗날 중고시장에서 고가에 거래됐다.

발매 당시 대중들의 외면을 받았던 김연우 1집은 훗날 중고시장에서 고가에 거래됐다. ⓒ 오감엔터테인먼트

 
공군 군악대에서 군복무를 마친 김연우는 1995년 제7회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에 본명 김학철로 출전해 금상을 받았다(당시 대상 수상자는 그룹 자화상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작곡 및 편곡가로 활동하고 있는 나원주였다). 김연우는 학교후배였던 재즈보컬그룹 '낯선 사람들'의 보컬 차은주의 소개로 1992년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대상 출신의 유희열을 만나 1996년 유희열의 원맨밴드 토이 2집에 객원가수로 참여했다.

유희열은 '김학철'이란 이름이 토이가 추구하는 서정적인 음악과 어울리지 않다고 판단해 그에게 '연우'라는 예명을 지어 줬다. '연우'라는 부드러운 예명의 탄생에 대해선 여러 가지 학설(?)이 있는데 유희열이 자주 가던 동네 만화방 이름이라는 설도 있고 유희열이 다닌 서울대 근처에 있는 다방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결과적으로 출처와 상관없이 김연우라는 예명은 아주 잘 지은 이름이 됐다.

김연우는 토이 2집에서 타이틀곡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을 비롯해 <사랑, 집착&중독>, < 23번째 생일 > 등 5곡의 보컬로 참여하며 자신의 청량한 목소리를 널리 알렸다.

유희열과 김연우는 토이 2집을 통해 성공의 단 맛을 봤지만 유희열은 토이 3집을 김연우 없이 만들고 싶었고 김연우도 토이의 그늘을 벗어나 홀로서기를 하고 싶었다. 결국 두 사람은 한시적으로 이별을 선택했고 김연우는 '라이브 황제'와 이름이 같은 작곡가 이승환과 손을 잡고 솔로 1집을 발표했다. 하지만 김연우의 도전은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이후 그는 다시 유희열의 품(?)으로 돌아갔다.

김연우는 토이 4집에서 유희열이 작정하고 만든 <여전히 아름다운지>나 <거짓말 같은 시간> 같은 높은 난이도의 노래들을 척척 소화하며 '유희열의 페르소나'임을 재확인했다. 유희열은 2001년에 발표한 토이 5집에서도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나면>이나 <마지막 노래>처럼 부르기 어려운 노래들을 김연우에게 맡겼다. 유희열은 김연우라는 '만능열쇠'가 있었기에 주저하지 않고 토이의 음악적 세계관을 넓힐 수 있었다.

김연우의 다음 계획은 솔로 2집이었다. 토이 3집을 준비하느라 김연우 1집에 유희열이 참여하지 못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유희열이 친구를 제대로 돕기로 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변수가 발생했다. 토이 5집 타이틀곡 <좋은 사람>을 불렀던 김형중의 솔로 데뷔 앨범을 유희열이 프로듀싱하게 된 것이다. 결국 김연우는 객원가수 후배 김형중의 솔로 데뷔를 위해 자신의 2집 발매를 미루기로 했다.

잔잔한 발라드로만 채워진 김연우 2집
 
 유희열이 프로듀싱한 김연우 2집은 앨범 전체가 하나의 스토리로 연결돼 있다.

유희열이 프로듀싱한 김연우 2집은 앨범 전체가 하나의 스토리로 연결돼 있다. ⓒ 지니뮤직,스톤뮤직엔터테인먼트

 
유희열과 김연우는 2003년 2월 김형중의 첫 앨범이 발매된 직후 곧바로 김연우의 솔로 2집을 준비했다. 프로듀싱을 맡은 유희열 외에도 윤종신과 정지찬, 루시드폴, 황성제, 윤사라, 이루마 등 쟁쟁한 동료 뮤지션들이 대거 김연우 2집에 참여했다. 그렇게  준비기간이 길어진 김연우 2집은 해를 넘겨 2004년 1월이 돼서야 대중들에게 선을 보일 수 있었다.

김연우는 연말 시상식이나 순위 프로그램 1위를 노리는 가수는 아니지만 대중음악을 하는 가수라면 앨범 발매시기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겨울과 눈을 배경으로 하는 시즌송 <연인>이 타이틀곡인 김연우 2집은 1월에 발매됐다. 자고로 시즌송이란 계절이 시작되기 직전에 발표해 미리 바람몰이를 하는 것이 기본이다. 여름 시즌송의 대가 쿨의 앨범이 항상 여름이 되기 직전에 발매되는 이유다.

하지만 김연우에겐 그만한 상업적 수완은 없었고 결국 노래와 앨범의 완성도로 승부를 보기로 했다. 유희열의 예쁜 가사와 김연우의 달달한 목소리가 조화를 이룬 2집 타이틀곡 <연인>은 발매 당시 기대만큼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연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전지현을 모델로 한 디지털 카메라 CF에서 BGM으로 쓰이면서 대중들에게 숨은 명곡으로 재조명됐다.

김연우 2집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해진 곡은 윤종신이 가사를 쓴 <이별택시>다. 김연우는 처음 윤종신에게 받은 가사를 읽고 '어디로 가야 하죠 아저씨', '와이퍼는 뽀드득 신경질 내는데' 같은 신선한 표현(?)들 때문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고 한다(사실 수정되기 전 가사 '원본'에는 기사 아저씨에게 할증 요금을 물어보는 내용도 있었다고 한다). 물론 가사를 유심히 들어 보면 매우 슬픈 내용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윤종신은 과거 MBC <라디오스타>에서도 윤종신은 '자신이 만들었으나 아쉽게 히트하지 못한 곡'으로 <이별택시>를 꼽으며 직접 라이브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지난 2013년에는 <윤도현의 MUST>라는 프로그램에서 윤종신과 김연우가 함께 출연해 듀엣으로 <이별택시>를 부른 적이 있는데 방송이나 공연에서 좀처럼 들을 수 없는 두 보컬리스트의 화음을 들을 수 있는 무대였다.

<나는 가수다>의 음악감독이었던 정지찬이 만든 <이미 넌 고마운 사람>과 '숨길 수 없었던 내 마음과 내 사랑이 늘 당연했던 너'라는 가사가  처량함을 극대화하는 <잘해주지 말걸 그랬어>도 긴 시간 동안 잔잔한 사랑을 받았다. 윤사라 작사, 유희열 작곡의 < 8211 >은 외국으로 유학, 혹은 이민을 떠난 남자가 한국에 두고 온 연인을 그리워하는 내용의 발라드곡이다.

김연우 2집은 연인이 사랑하다 헤어지고 그리워하다 다시 재회하는 드라마틱한 구성을 가진 앨범이다. 김연우 2집은 앨범 전체의 스토리라인과 감성을 중요시한 앨범이라 여느 발라드 가수라도 팬서비스를 위해 하나쯤 앨범에 싣곤 하는 빠른 비트의 노래가 한 곡도 들어 있지 않다. 김연우의 맑은 음색을 들으며 마음을 정화시키고 싶을 때 들으면 더 없이 좋은 앨범이다.

이영현-제아-이석훈-임정희의 노래 선생님
 
 김연우는 <나가수> 전 시즌에 모두 출연했던 유일한 가수다.

김연우는 <나가수> 전 시즌에 모두 출연했던 유일한 가수다. ⓒ MBC 화면 캡처

 
김연우는 2006년 영화 <사랑을 놓치다>의 OST <사랑한다는 흔한 말>이 들어 있는 3집 앨범을 발표했다. 사실 김연우 3집은 대중적으로 그리 큰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사랑을 놓치다>를 만들었던 추창민 감독은 훗날 <광해>를 통해 '천만 감독'이 됐다. 여기에 <사랑한다는 흔한 말> 역시 오랜 기간 잔잔하게 사랑을 받았으니 결국엔 모두가 '해피엔딩'이 된 셈이다.

서울종합예술전문학교의 실용음악과 교수이기도 한 김연우는 빅마마의 이영현,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제아, SG워너비의 이석훈, 임정희 등을 가르힌 보컬 트레이너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2011년 <나는 가수다>에 출연한 김연우는 김장훈의 <나와 같다면>을 불러 '인상적으로' 1회전에서 탈락했지만 이듬해 <나가수2>에서 명예졸업을 했고 2015년에는 <복면가왕>의 독주를 통해 이 시대를 대표하는 가요계의 '노래본좌'로 명성을 떨쳤다.

김연우를 발굴한 유희열은 "김연우의 목소리가 있었기 때문에 토이가 존재할 수 있었다"며 토이 내에서 김연우가 가진 절대적인 존재감을 표현한 바 있다. 장수 팝 DJ 배철수 역시 "김연우가 키가 좀 더 크고 조금만 더 잘생겼다면 대한민국 가요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물론 이는 김연우의 외모에 대한 비하가 아닌 김연우의 노래 실력에 대한 극찬이었다).

김연우의 대표곡으론 토이의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과 <여전히 아름다운지> 등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냉정하게 말하면 솔로앨범에서 모든 대중들이 알 만한 김연우의 대표곡은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사실이 김연우가 가진 가치를 떨어트릴 순 없다. 김연우는 목소리 하나로 대중들의 감성을 움직일 수 있는 이 시대 최고의 보컬리스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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