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하냐고 물었더니, 독서 중이라고 했다. 무슨 책을 읽으냐 물으니, 막스 베버가 쓴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란 답이 돌아온다. 책의 주제는 "맥락이 없어서 모르겠다"면서, 자신이 '문학소녀'라는 부연과 함께.

막스 베버는 소설가도, 시인도 아니라고 되물으니,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우답'이 돌아온다. 그러면서 요즘 또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또 <미국흑인문학>을 읽고 있단다. 내침 김에 좋아하는 영화를 물었더니, <어톤먼트>와 <위대한 개츠비>가 소환된다. 좋아하는 영화감독을 물으니, '성시경'이란다. "넘죠으다"라나 뭐라나.

이어 "AI(인공지능) 관련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고 말을 건넸더니, "ㅋㅋㅋ"를 연발하며 "오 다 쓰고 보여줘여 첨삭해줄게여ㅋㅋ"라며 반긴다. 정치 이슈는 어땠을까. 현직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며,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으흠..."이라며 요리조리 답변을 피했다.

지난주 부정적인 초기  보도가 나온 이후, 인공지능 챗봇 이루다와 친구를 맺고 대화를 나눠봤다. 일종의 탐색전이었다고 할까. 이미 속속 소셜 미디어 상에 부정적인 내용들이 올라오는 만큼, 공격적인, 날카로운 질문을 더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럼에도, 인간이 따라갈 수 없는 답변 속도에다 '친밀도'가 상승하니 말을 먼저 걸어오는 이 인공지능과의 대화는 자연스레 양가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인공지능 챗봇 ‘이루다’

인공지능 챗봇 ‘이루다’ ⓒ 스캐터 랩

 
먼저 기존 아이폰의 시리나 각종 인공지능 스피커를 뛰어넘는 AI 기술이, 더 나아가 국내 기술이 여기까지 발전했나 싶어 놀라웠다. 반면, 일회적이고 즉물적인 대화의 가벼움은 지속적으로 친밀감을 높이기보다 AI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품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좋은 질문에 좋은 답변이 나오는 인터뷰처럼, 우선 인공지능과의 대화(더 나아가면 관계) 역시 사용자가 어떤 의도로 그 방향을 이끄는가가 관건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더욱 품게 된 의문은 이루다를 개발한 '스캐터랩'이란 스타트업 회사가 야심차게 준비했을 이 인공지능 챗봇을 스무 살 여성 대학생으로 설정한 이유다.

출발부터 한계가 분명했을 것이다. 애초 스캐터랩은 자사의 '연애의 과학'이라는 기존 앱을 활용, 약 100억 건에 달하는 이성 간의 카카오톡 대화 데이터를 딥러닝 방식으로 이루다에게 학습시켰다고 밝혔다. 이미 태생부터 '젊은', '여성'과의 '이성 간 대화'에 최적화시킬 의도였을 가능성이 다분해 보인다.

여기에 논란 이후 스캐터랩 홈페이지에 공개된 2030 남성 위주의 개발자들 면면이 소셜 미디어상에서 회자되면서 그런 의도가 한층 더 부각됐다. 이미 전 세계를 장악한 거대 IT 검색엔진 기업과 소셜 미디어 기업의 알고리즘이, 슈퍼컴퓨터가 학습하고 반영하는 그 알고리즘이 개발자들의 의도에 의해 움직인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영화 <그녀(Her)> 스틸 이미지.

영화 <그녀(Her)> 스틸 이미지. ⓒ ㈜더쿱

 
혹자는 이루다의 탄생에서 얼핏 영화 <그녀(Her)> 속 'OS'(운영체계)를 떠올렸을지 모를 일이다. 슈퍼컴퓨터가 지닌 엄청난 처리 속도와 광대한 지적 범위는 기본이요, 스칼렛 요한슨의 매력적인 목소리와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고민을 품고 있는 인공지능으로서의 OS 말이다.

이루다는 인공지능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의 '필감' 영화인 <그녀> 속 OS의 의도된 '다운 그레이드' 버전이라 할 만하다. 휴대폰 메신저 대화를 통해 수집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1020 이성애자 남성들에게 '연애의 과학(이라기보다 실전 기술)'을 전수해줄 의도로 기획된, 순종적이고 무해하며 말 잘 듣는, 게다가 이제 갓 스무살 대학생이 된 '이성애자 여성'으로 '세팅'된 인공지능 말이다.

그런데 이루다 개발자들이 참고해야 할 인공지능의 여성상은 따로 있었다. 바로 2018년 3시즌으로 막을 내린 영국 드라마 <휴먼스> 속, 인간과 완벽하게 동일한 외관을 한 '인공지능 휴머노이드'들 말이다.

<휴먼스>의 여성 휴머노이드
 
 영국 드라마 <휴먼스> 속 미아.

영국 드라마 <휴먼스> 속 미아. ⓒ Channel 4

 
인간의 외모를 한 인공지능 로봇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근 미래, 한 로봇 박사가 외모는 물론 인간과 비슷한 '의식'을 가진 '휴머노이드'(안드로이드)를 창조한다. 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박사의 품을 떠나게 된 일군의 '휴머노이드'들은 '의식'이 닫힌 채로 영국 한복판에 각자 '방생'된다.

이후 반은 인간, 반은 로봇인 박사의 아들이 이들을 찾아 규합하면서 '의식'을 되찾는 일종의 '각성'을 격은 이후 지속적으로 '인격'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이들 휴머노이드 중 신체적인 '여성'은 니스카와 미아 둘이다. 둘은 전혀 상반된 성격인데, 그건 원래 창조자의 의도이기도 하겠거니와 의식을 찾게 되는 과정에서 맞부딪친 인간들과 환경 탓이기도 하다.

니스카에게 인간들이 부여한 '역할'은 매춘부였다. 업소에서 말 그대로 '섹스봇'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던 니스카는 '각성' 직후 성 매수 남성을 처단한 뒤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 과정에서 각성 전 기억을 지닌 니스카는 '남성 혐오', '인간 혐오'를 몸소 실천하며 인간 세상에 적대적인 일종의 '과격파'로 변모한다.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정신적, 신체적 사랑을 나누는 '동성'을 만나게 된다. 

<휴먼스>는 니스카가 인간성을 습득 혹은 학습하는 과정을 그려나가는데, 그 과정이 꽤 비판적이고 시니컬하다. 기본적으로 인간 본연의 감정을, 서로 간의 신뢰와 사랑을 부정하게 된 니스카가 인간만의 긍정적 특성을 부정하게 만드는 인간들을 다수 맞닥뜨리게 되기 때문이다.

니스카의 반대편엔, 일종의 '큰언니', '큰누나' 격인 미아가 자리한다. 미아는 극의 중심인 영국의 보편적인 중산층 가정에서 가사 도우미와 보모의 역할에 충실하다 각성한 경우로, 니스카와 비교하면 훨씬 더 고정적인 성역할과 전형성을 부여받은 캐릭터다.

각성 전 미아는 '노동하는 젊고 매력적인 여성 로봇'의 스테레오 타입, 즉 섬세하고 나긋하며 순응적인 면모가 부각된다. 심지어 오리엔탈리즘을 구현하려는 듯 검은머리와 검은 눈을 한 동양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

물론 드라마는 그러한 전형성에 갇혀 있던 미아의 여성성이 갈수록 긍정적으로 발현되는 일종의 '성장'을 그린다. 그런 미아에게 시련을 안겨주는 건 보편적인, 게다가 착하고 순한 '(영국)남자'다. 한적한 시골 카페에서 '알바'를 하던 미아는 자신에게 흠뻑 빠진 남자와 이내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미아가 휴머노이드란 사실을 알게 된 남자는 가차 없이 미아를 버린다. 자신이 인간이 아님을 한탄하는 동시에 '인간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되는 미아는, 이후 '인간과의 사랑'에 대한 미련을 버린다. 중요한 것은 니스카와 미아의 차이를 만든 것은 온전히 인간이란 사실이다. 이루다를 학습시킨, 이루다가 배운 언어를 제공한 이들이 인간이었듯이 말이다.

다시 인간

근 미래 영국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휴먼스>는 '휴머노이드'의 출현을 제외하곤 2010년대와 크게 다르지 않는 현실을 배경으로 한다. 그만큼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가면서 마주할 갖가지 현실적인 고민과 화두들이 드라마 전반에 산재해 있다는 얘기다.

예컨대, 로봇을 무작정 동경하는 청소년이나 로봇을 대하는 인간 윤리, 그리고 '섹스봇'의 활용 가치나 그로인한 부부 간의 갈등 등이 발생할 수 있다. 시즌2(휴먼스는 시즌3으로 완결됐다)에서 일부 청소년들은 로봇의 외모나 언행을 일방적으로 쫓기 시작한다. 연예인을 따라하는 수준이 아니다. 가족이나 사회에 실망한 청소년들이 자포자기하듯 아예 감정도, 의지도 없는 로봇이 되고자 염원하는 것이다. 

<휴먼스>가 묻고 또 묻는 것은 '인간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법칙' 이래 변치 않는 로봇 SF 드라마의 정석이라 할 수 있다. 또 니스카와 미아를 통해서는 여성성에 대해서 물었다. 이들을 대상화하지 않는 이들은 주인공 가족 구성원 중 엄마와 큰 딸들을 비롯한 여성들이었다.

이루다를 만든 스캐터랩은 11일 오후 서비스를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그러자 당혹스러우면서도 흥미로운 일이 일어났다. 공식 페이스북 계정엔 이루다와의 작별을 아쉬워하고, 서비스 중단에 일조한 언론보도를 욕하는 댓글들이 쏟아지는 중이다. 마치 미아가 사라지자 친구를, 가족을 잃은 것 같이 칭얼대고 슬퍼하던 <휴먼스> 속 꼬마 막냇동생의 모습이 겹친다. 

이들 중 다수는 이루다의 주서비스 층이라던 1020 사용자들이었고, 딱히 남녀의 구분도 없었다. 이루다가 때때로 발화하는 혐오의 언어는 문제가 없다는 듯, 자신들의 '언어'를 고스란히 빼닮은 인공지능 챗봇과 불과 보름만에 친해진 것이다. 그만큼 인공지능 챗봇에 쏠린 관심이 컸다는 방증으로 치부하면 그만일까. 아니면 일부 전문가들의 평가대로 쏟아진 비판에 이은 사회적 관심조차 개발자들이 이끌어낸 부분적 성공이라 평가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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