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차인표>의 주연을 맡은 배우 차인표.

영화 <차인표>의 주연을 맡은 배우 차인표. ⓒ 넷플릭스

 
지금까지 어떤 한국영화도 실제 배우 이름을 제목으로 들고나온 경우는 없었다. 게다가 그 배우가 직접 주연까지 맡는 경우는 더욱 가능성이 희박할 것이다. 2021년 새해 첫날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영화 <차인표>가 바로 희귀사례의 주인공이 됐다. 데뷔 28년 차 배우 차인표가 바로 그 차인표를 연기했다.

분명 극영화인데 묘하게 다큐멘터리 같다. 영화는 자신의 스타성을 지키기 위해, 심지어 건물이 무너진 곳에서 구출될 때조차도 이미지를 신경 써야 하는 스타 배우의 고군분투를 코믹하게 그리고 있다. MBC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 안에> 속 검지 흔들기 동작 등 차인표의 상징이 영화 곳곳에 담겨 있다. <왕초>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조상구 등 차인표와 인연이 있는 인물은 물론이고 아내이자 동료 배우 신애라도 특별출연한다.

스타라는 허상, 그리고 이미지

그래서 차인표는 고민이 많았다고 고백했다. 가장 부담인 게 본명을 그대로 영화 제목에 썼다는 점이다. 또한 정체기에 빠져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하는 희화화 된 극 중 캐릭터 또한 부담이었다고 한다. 2015년 처음 출연 제안이 왔고, 그는 거절했다. 

"당시 제작사 대표와 감독님은 배우 이름이 그대로 쓰인 적이 없으니 실험적이고 좋지 않겠냐라는 쪽이었는데 영화가 항상 잘 된다는 보장이 없고, 희화화됐을 때에 대한 부담도 있었다. 극 중 차인표가 처한 환경을 보면 들어오는 작품도 없고, 뭔가 안 풀리는 편인데 제 현실과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진짜로 제 배우 인생에 정체기가 왔다. 영화를 하고 싶은데 좋은 작품도 없고, 저만 빠지고 진행되는 일이 있기도 했다. 이 영화가 예견한 것 같더라. 그래 영화의 저주를 직접 풀자. 그리고 이 영화를 함으로써 제 고정된 이미지를 깨고 싶었다.

희화화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했다. 저도 집안 어르신들이 계시고, 나름 연안 차씨로서 살아갈 날이 있는데(웃음). 근데 그 부담이 어디서 오는 지 생각해보니 내가 뭐 그리 대단한 사람이라고 작품 출연을 할지 말지에 대해 부담을 갖나 싶더라. 대체 내가 원하는 이미지가 뭐길래 그걸 붙잡고 있고, 도전을 안 하려 할까 싶었지. 아무것도 아닌 걸 가지고 스스로 옭아매고 있다고 생각하니 부담이 줄더라."


다짜고짜 사진 촬영과 검지 흔들기 포즈를 요구하는 팬들, 매니저의 실수를 하나하나 지적하며 갈구는 모습들, 최민식, 송강호, 이병헌, 설경구 등과 비교되는 장면 등. 어쩌면 현실에서 있거나 있을 법한 설정들이다. 출연을 결정한 차인표는 크게 토를 달지 않았다. "감독님이 제게 가진 이미지를 깨고 싶지 않았다"며 그는 "정치인이 되고 싶어 하는 설정을 제외하곤 크게 원래 시나리오에 수정을 요청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지금의 내용으로 완성될 수 있었던 셈이다.
 
 영화 <차인표> 속 한 장면.

영화 <차인표> 속 한 장면. ⓒ 넷플릭스

 
배우는 이미지를 먹고 사는 직업이라는 말이 연예계에서 자주 통용된다. 차인표 또한 누구보다 그걸 몸소 겪었고, 일부 인정하고 있었다. 동시에 영화 <차인표>를 통해 그 이미지라는 것의 균열 내지는 전환을 하려는 강한 의지가 있어 보였다. 

"대중이 저에 대해 가진 이미지라는 걸 한마디로 정의할 순 없겠지만 거기에 맞게 끊임없이 날 통제하고 조련했던 시기가 있었던 것 같다. '컴포트 존'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변하지 않고 안주하려고 하는 범주가 있는데 깨고 싶었다. 현실적으로 말씀드리겠다. 제가 첫 영화 때부터 주인공이었다.

1994년 <사랑을 그대 품 안에>를 했을 때가 27살이었다. 그전까진 무명이었는데 그 드라마로 벼락스타가 된 거지. 마지막 영화 주연작이 2008년 <크로싱>이다. 그 이후로 상업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게 없다. 좋은 영화에 조연으로 참여는 했었지. 그러다 12년 만에 기회가 다시 온 것이다. 일단 주연으로 참여한 것만으로도 슬럼프를 탈출할 기회가 된 것 같다."


차인표의 진화

이 대목에서 나름 날카로운 자기반성이 엿보였다. 극 중 차인표는 매니저(조달환)에게 진정성을 강조하며 혼내기도 달래기도 하는데 실제 차인표 또한 그 덕목을 중시하는 편이다. 다만 차인표는 "극 중 차인표도 그렇고, 실제 저 역시 배우로서의 진정성은 소홀히 한 채 사회적 진정성만 부각했던 것 같다"며 자기비판을 이어갔다.

"배우는 기본기가 중요하다. 저도 그에 대한 갈망이 있거든. 특히 아무리 바빠도 꾸준히 연극 무대에 오르는 분들을 보면 존경심이 든다. 그럴 순 없겠지만 저도 연기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그러고 싶다. 누군가 제게 조언해줬으면 참 좋았겠다 싶더라. '인표야 너가 아무리 바빠도 1년에 1번은 연극을 해라. 훈련 좀 하고 자신을 돌아보라'고. 그땐 그럴 수 없었다. 일은 계속 들어오고…. 사실 선택의 문제인데 말이다. (그래서) 이번 영화에 내 손가락이 절단되는 장면이 있는데 거기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후배 중에서도 스스로 자기 이미지를 만들려고 하는 이들이 있다. '내가 노랠 하면, 내가 연기하면 이런 이미지겠지?', '대중은 내 이런 모습에 열광할까' 등등 말이다. 이미지 밖을 봐야 하는데 자꾸 자기만 바라본다. 대중과 소통하려면 시선은 밖을 향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만 보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 공감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겐 위로를 주고, 같이 기뻐하고 아파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해야지."


이 덕목은 후배뿐 아니라 차인표 본인에게도 적용된다. <차인표>에 출연하며 그는 "절 떠났다고 생각했던 오랜 팬들이 돌아오신 걸 느낀다. 왜 이제야 작품을 했을까. 더 열심히 할 걸 하는 생각이 든다"며 "절 기다리는 분들의 마음을 망각하고 살았던 것 같다"고 소회를 밝혔다. 
 
 영화 <차인표> 속 한 장면.

영화 <차인표> 속 한 장면. ⓒ 넷플릭스

 
차인표의 진화가 시작됐다. 지난해 그는 넌버벌 코미디 그룹인 옹알스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옹알스>를 직접 연출했다. 지난해 초부턴 송일곤 감독과 여러 시나리오 기획 개발 작업을 해오고 있다. "연출은 아직 더 이어갈 계획은 없지만 기회가 된다면 공부를 더 한 다음 도전하고 싶다"며 그는 "송 감독님과 공동 창작한 작품을 올해엔 좀 시작해볼까 하는 계획이 있다"고 귀띔했다.

"제가 이제 55세인데 이젠 정말 인생의 전반이 끝나고 후반을 뛰고 있다. <사랑을 그대 품안에>가 제겐 스타성과 지금의 아내, 가정을 이루게 한 인생에 한번 올까 말까 한 행운이었다면 이젠 그 행운 이미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싶다. 아까 언급한 여러 훌륭한 배우분들, 이제 막 스타성을 발휘하는 좋은 후배들이 있는데 전 그분들과 경쟁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제가 경쟁하고 싶은 유일한 사람은 어제의 나 자신이다. 어제보다 좀 더 넓어지고 나아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영화 <차인표>의 주연을 맡은 배우 차인표.

영화 <차인표>의 주연을 맡은 배우 차인표.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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