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암행어사: 조선비밀수사단>의 한 장면

KBS 2TV <암행어사: 조선비밀수사단>의 한 장면 ⓒ KBS

      
KBS 2TV 드라마 <암행어사: 조선비밀수사단>에 나오는 어사출도는 <춘향전>과 유사하다. <춘향전>의 어사출도 장면은 이랬다.
 
"그때 어사또가 부채를 번쩍 들어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동서남북 사방의 문에서 역졸(역 직원)들이 육모 방망이와 채찍을 손에 쥐고 해와 같은 쌍마패를 여기 번쩍, 저기 번쩍 들고는 대문을 두드려 쳤다."
 
<암행어사: 조선비밀수사단>에 맨 처음 등장한 암행어사 박철규(김승수 분)도 위와 유사한 방식으로 출도(出道)를 했다. 마패를 꺼내들고 역졸을 동원하는 방식으로 출도했던 것이다.
 
박철규에 이어 암행어사 성이겸(김명수 분)이 그 고을에 파견된 직후에도 어사출도가 있었다. 성이겸을 수행하는 노비이자 약간 들뜬 성격의 소유자인 박춘삼(이이경 분)이 사전 계획도 없이 마패를 꺼내든 채 어사출도를 선언한 것이다.
 
갑자기 부딪힌 현지 고을 아전의 모습에 박춘삼은 당황했다. 그래서 어사도 없는 상황에서, 또 어사의 허락도 없는 상황에서 암행어사 출도를 선언한 것이다. 순간의 충동을 이기지 못했던 것이다. 비록 역졸들이 없는 상태에서 단행됐지만 박춘삼의 어사출도 역시 마패를 꺼내들며 상대방의 기선을 제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이몽룡의 어사출도와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드라마나 소설에 나오는 가장 전형적인 어사출도 장면은 <춘향전>을 모델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춘향전>의 묘사는 조선시대의 가장 전형적인 그림은 아니었다. 그것은 매우 드문 방식에 속했다.
 
조선시대에 가장 전형적인 어사출도는 어사가 수행원들과 함께 관청 정문에 서서 신분을 밝히고 서류 및 창고 열람 등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그다음으로 종종 볼 수 있었던 어사출도 방식 중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일반 백성들을 상대로 하는 어사출도이고, 또 하나는 관청을 상대로 하는 어사출도였다.
 
지방 관아가 아닌 백성들을 상대로 하는 어사출도는 정조 임금이 31세 때인 1783년에 파견한 조홍진 암행어사의 사례에서 나타난다. 집권 8년 차인 정조는 그 해에 과거시험 대과에 급제한 40세의 조홍진을 암행어사로 임명했다. 40세 대과 급제는 조선왕조 오백년을 놓고 보면 평균보다 3, 4년 늦은 편이었다. 조홍진은 당시 관념으로는 상당히 싱싱한 젊은 관료였다.
 
조홍진이 파견된 지역은 원춘도였다. 이것은 강원도의 별칭이었다. 강릉과 원주의 첫 글자를 따서 부를 때는 강원도였지만, 원주와 춘천의 첫 글자를 따서 부를 때는 원춘도였다. 특정 시기에 그 지역에서 가장 발달한 두 도시가 어디였는가를 기준으로 도(道)의 명칭이 달라지곤 했다.
 
음력으로 정조 7년 11월 10일자(양력 1783년 12월 3일자) <정조실록>에 따르면, 31세 된 군주는 40세 된 암행어사에게 구두가 아닌 문서로 업무지시를 내렸다. 봉서(封書)로 불린 이 문서에서 정조는 "이 도(道)는 땅이 척박하고 백성들이 가난하여 수재·한재·태풍·서리로부터 가장 먼저 피해를 입게 돼, 비록 여러 차례의 풍년이 있다 해도 항산(恒産) 없는 탄식을 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토질이 척박하고 자연재해가 많아 강원도 백성들이 안정적인 재산을 가질 수 없어 탄식이 끊이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던 것이다.
 
정조가 가장 우려했던 것은 강원도 농민들이 자기 지역을 떠나 떠돌아다니는 것이었다. 토지를 이탈한 그런 농민들을 사료(역사 기록물)에서는 흔히 유민(流民) 또는 유망민 등으로 부른다. 그들의 존재는 농업국가 군주인 정조에게 매우 두려운 일이었다.
 
노동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 생산력을 증가시킨다는 관념에 입각해서 거주·이전의 자유를 보장하는 공업시대와 달리, 농업시대에는 백성들이 한 곳에 정착해 있어야 농업생산과 국부가 증대된다는 관념 하에 대중의 거주·이전에 제약을 가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농민들은 일생 동안 군(郡) 단위 지역을 벗어나기 힘들었다.
 
농민이 군역이나 과거시험 응시 같은 특별한 이유도 없이 자기 지역을 벗어나면 유민으로 간주되기 쉬웠다. 이런 유민의 증가는 오늘날의 불법체류자 증가보다 훨씬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됐다. 정조는 이들의 증가에 대한 염려를 표현하는 대목에서, 이 글의 주제인 어사출도 방식을 조홍진에게 알려줬다.
 
"만약 길거리에서 유망민 부류를 만나게 되면, 바로 그곳에서 출도(出道)하여 조정에서 구제하고자 하는 뜻을 알려주고 얼굴을 맞대고 위로하여 깨우쳐 주며, 각자가 살던 곳에 정착할 수 있도록 하라."
 

강원도 길거리에서 유민들을 만나면 즉석에서 출도한 뒤 '조정에서 조만간 구제해줄 테니, 원래 살던 것으로 돌아가라'고 권유하라는 것이었다. 참고로, '바로 그곳에서 출도하여'의 실록 원문은 '즉지출도(卽地出道)'인데. 국사편찬위원회가 운영하는 조선왕조실록 사이트에는 '즉성(城)출도'로 잘못 표기돼 있으므로 주의를 요한다. 땅 지(地)와 성읍 성(城)이 비슷해서 오기(誤記)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KBS 2TV <암행어사: 조선비밀수사단>의 한 장면

KBS 2TV <암행어사: 조선비밀수사단>의 한 장면 ⓒ KBS

 
정조는 노상에서 유민들을 만나면 즉석으로 어사출도를 하라고 지시했다. 유민들은 집을 떠난 상태인 데다가 제대로 먹지도 못했을 것이기 때문에, 어사가 마패를 번쩍 들고 역졸들을 동원해 어사출도를 한다면 그들 대부분이 순식간에 다 달아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애초에 어사출도를 단행한 목적을 실현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이런 유의 어사출도는 조용하고 점잖게 이뤄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춘향전> 방식을 절대로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정조는 길에서 유민들을 만나면 가까이 가서 어사 신분을 밝히고 그들에게 접근하라고 지시했다. 이것이 어사가 자기 신분을 드러내는 어사출도의 원래 개념에 부합했다. 역졸들을 동원해 시끌벅적한 상황을 만드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어사출도가 아니라 어사출도의 다음 단계였다. 신분을 밝히는 어사출도가 있은 뒤에, 역졸을 동원하는 공권력 행사가 단행됐다. 이 같은 시끌벅적한 방식은 백성을 상대로 하는 어사출도에서는 애당초 불필요했다.
 
현대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조선시대에 종종 있었던 또 다른 어사출도 방식은 고종시대 암행어사인 이헌영(1837~1907)의 활동 기록인 <교수집략>에 언급돼 있다. 이것은 관청을 상대로 어사출도 할 때 사용하는 방식 중 하나였다.
 
<교수집략>에 언급된 그 방식은 노문(路文)출도였다. 이것은 공문을 미리 띄우는 방법으로 어사 신분을 밝히는 것이었다. <교수집략>을 소재로 하는 김현영 국사편찬위원회 교육연구관의 논문 '이헌영의 <교수집략>을 통해 본 암행어사의 실상과 경상도 지방관'에 아래와 같은 대목이 있다. 이 논문은 2009년에 <영남학> 제16호에 실렸다.
 
"암행어사가 공식적으로 종적을 드러내는 것은 출도를 통해서이다. 이헌영의 일기에는 출도를 두 가지로 나누어 적고 있다. 즉 그냥 '출도'라고 적은 것과 '노문(路文)출도'라고 적은 것이 있다. 즉 노문출도는 출도하는 곳에 노문을 보내어 위장(威杖)을 갖추고 공개적으로 나타나는 것이고, 그냥 출도는 사전 예고 없이 갑자기 나타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노문출도는 공문을 통해 예고한 다음, 어사의 권위와 수행원들을 갖춘 상태에서 등장하는 것이었다. 이 방식은 이헌영이 1882년 임오군란 뒤에 경상우도(경상도 서부) 암행어사로 활동할 때 적지 않게 사용됐다. 위 논문은 이렇게 말한다.
 
"그가 출도를 한 것은 아래와 같이 암행어사 10달 사이에 총 12차례였다. 상주목·통제영·진주목·성주목·대구부 등 대읍에서부터 웅천현·칠원현과 같은 소읍에 이르기까지 두루 출도를 하였다. 통제영 등 4곳은 노문출도를 하였고, 웅천과 칠원은 출도하여 봉고(관아 창고 봉인)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이처럼, 어사가 관청 정문에 갑자기 나타나 신분을 밝히는 어사출도 외에도, 일반 백성들을 상대로 하는 어사출도와 사전에 공문을 띄운 뒤 관청에 나타나는 어사출도도 있었다. 조선시대 대중한테는 이런 류의 어사출도들이 더 친숙했다. 조선시대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었던 어사출도 이미지는 오늘날 우리 머릿속의 이미지와 확연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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