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ey를 부르는 30호 가수 이승윤

Honey를 부르는 30호 가수 이승윤 ⓒ JTBC

 
난 음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노래방도 따라는 가지만 즐기는 편은 아니다. 음원 한번 다운받은 적 없고, 어쩌다 음악을 들어도 한 곡을 다 못 듣고 다른 것으로 넘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의 음악은 열심히 챙겨 듣는다. 내가 정년퇴임 하기 전에 교과서에 실리고, 수업에서 다룰 인물들이기 때문에 알아둬야 할 것 같아서다. 물론 음악도 참 좋다. 여러 곡을 들어보니 해외 팬들이 왜 위로받았다고 말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방탄소년단의 음악을 하나하나 들어봐서인지 알고리즘이 다른 음악도 추천해 주었다. 그중에서 기사를 쓰고 싶게 만든 곡을 만났다.
 
'심사위원들을 혼돈에 빠뜨린 30호의 Chitty Chitty Bang Bang'이라는 섬네일을 보았다. <싱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을 본 적은 없지만, 화제가 된다면 알아두어야 할 상식 같아 직캠 동영상 버전으로 보았다. 붉은빛 조명 속에서 음악에 빠져 휘적휘적 춤추며 단정한 청년 하나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끝까지 들어본 느낌은 "어? 괜찮은데, 왜 혼돈에 빠져?"였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이번에는 같은 방송, 같은 가수의 'Honey'를 추천해 주었다. 내가 아는 'Honey'는 신나는 댄스곡이었다. '멋진 밤을 함께 하자'는 표현이 있지만, 그 정도야 90년대 노래에 흔한 가사였고, 중고생들이 장기자랑으로 춤을 출 때도 부담 없이 사용하던 곡이었다.
 
경기도에서 서울로 가는 아침 광역버스에 앉아서, 버스 소음과 뒤섞인 채로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 속 동영상을 보던 내 머릿속에 뜬금없이 침실을 배경으로 한 19금 영상이 그려졌다. '헉, 내가 왜 이러지?'하고 놀라 동영상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동영상 속 가수는 세상 얌전한 자태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 음란마귀의 작품을 투척한 범인은 바로 이 가수였다! 유혹적인 춤, 뮤직비디오, 노골적인 가사 하나 없이도, 그가 부른 'Honey'는 19금 딱지를 붙이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오직 가수가 부르는 노래와 그가 만들어 낸 분위기만으로 말이다.
 
갑작스러운 음란마귀의 강림에 당황했지만, 당혹감은 잠시 후 감탄으로 바뀌었다. 30호 가수 이승윤이 부른 'Honey'가 19금 노래라는 사실을 깨닫고, 오히려 기분이 좋아졌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예술가가 표현하고자 한 바를,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스스로 이해했다는 사실이 기뻤기 때문이다. 댓글을 보면 그가 부른 'Honey'를 듣고서야 처음으로 필자와 같은 느낌을 받은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이승윤은 오직 자신의 목소리만으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채 노래 속에 깊이 숨겨져 있던 19금 본성을 드러내 보여주었다.
 
매혹적으로 표현한 섹시함과 비교가 되어, 문득 몇 달 전 본 카디비의 'WAP'가 떠올랐다. 빌보드 차트 1위까지 했던 곡이다. 알아두어야 할 것 같아서 번역이 달린 동영상을 보다가 조금 충격을 받아 며칠간 혼란스러웠다. 동영상에 달린 어느 댓글이 지적한 대로, 텍스트를 읽고 있는데도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를 지경인 가사였기 때문이다. 솔직한 심정은 저속하다고 무시해버리고 싶지만, 판단을 보류했다. 미국의 대중이 선택했으니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는 생각과 음란의 기준이 시대마다 다르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걸까 싶다.
 
예술을 이해하는 자세

나는 예술을 직접 보고 듣고 스스로 느껴보라는 말을 싫어한다. 아무리 유심히 보거나 들어도 딱히 느껴지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워낙 예쁘게 그린 르네상스 시대 그림이나 클래식 음악은 배경지식을 배우며 접했기 때문에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교과서에서 배운 시 외에는, 좋은 시인지 아닌지, 시인은 대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감도 잡지 못한다. 평론가들이 극찬한 영화는 등장인물들이 대체 왜 저러는지, 감독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도무지 알지 못한다. 평론을 몇 편 읽어보고 나서야 작가의 의도를 이해한다. 내게 예술은 교양을 가진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공부해야 하는 영역이다.
  
 Chitty Chitty Bang Bang 무대

Chitty Chitty Bang Bang 무대 ⓒ JTBC

 
'Chitty Chitty Bang Bang'으로 돌아가서 다시 보았다. 이번 곡은 'Honey'와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김이나 심사위원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몸짓이 멋진 동작이 아닌데, 멋있었다고 평가했다. 나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Chitty Chitty Bang Bang'에서 가수 이승윤이 보여준 춤은, 한껏 심취해 노래를 부르며 자연스럽게 나오는 동작 같았다.

새해 첫날 공개한 미공개 연습 영상을 보니 전체적인 틀은 비슷하지만 세부 동작은 달랐다. 큰 틀만 정하고 노래를 부르며 즉흥적으로 춤을 춘 것이 맞다. 미리 정해 놓은 것이 아니면, 혹시라도 실수할까 불안해서 못 보는 성격인데, 그의 춤과 노래를 편안하게 보았다. 이번에도 다른 이의 평가를 읽지 않고도 스스로, 한없이 자유로운 청년의 모습을 느꼈다.
 
학습해야 예술을 겨우 이해하는 나도 나이가 드니 갑자기 심사위원에 필적할 만큼 예술에 대한 안목을 갖추기라도 한 것일까?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이들이 "혼자서 무대를 꽉 채웠다, 완전히 무대를 부수어 버렸다"며 감탄하는 무대를 보아도,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승윤의 무대는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한없이 무딘 나도 느낄 수 있었다. 예술에 대한 감각이 부족한 대중에게도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해 내는 것, 이것이 예술가로서의 능력이 아닐까? 심사위원들이 말한 가수로서의 매력이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나도 경험한 퓌지스

이 기사를 쓰기 전날까지 난 기말리포트를 쓰고 있었다.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의 '테크네' 개념에 기반하여 기술이 불러온 사회 변화에 대해 쓰는 것이었다. 하이데거라는 철학자를 이번 학기에 처음 알았고, 주제만 들어도 머리 아팠다. 게다가 기술에 대해 쓴 하이데거의 짧은 글은 매우 어려웠다. 그의 사상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는 처음부터 포기하고, 기술에 대한 글만 읽고 또 읽고, 스스로 노트 정리까지 해 가며, 기본 개념만 간신히 나름대로 이해했다.
 
하이데거는 기술을 '인간의 행동'이자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이라고 정의하고, 기술은 진리를 드러내는 '탈은폐'의 방식이라고 했다. 당연한 말을 왜 어렵게 하나, 드러난다고 하면 될 것을 '탈은폐'와 같이 두 번 뒤집는 표현을 쓰나 싶다. 그는 현대 기술을 비판하며, 고대 그리스어 '테크네'를, 만드는 '행동'과 '능력'일 뿐만 아니라 고차원적인 '예술'도 지칭한다고 말했다.

다른 학자의 해설도 읽어보니 '테크네'는 머리에 든 지식을 몸으로 실현해 내는 것이라고 한다. '테크네'는 영어 technology의 어원이고, '기술'로 번역하는 단어이다. 필자가 이해한 바로는, 기술인 '테크네'를 통해 '포이에시스(제작, 만들기)'가 나오는데, 포이에시스 중 스스로 안에서부터 솟아오르는 '퓌지스(스스로 제작함)'가 가장 높은 의미의 포이에시스이다. 최선을 다해 정리했지만, 쓰고나서 다시 읽어도 어렵다.
 
기말리포트를 절반 정도 썼을 무렵 이승윤의 무대를 스마트폰으로 처음 보았고, 연구실을 오고 갈 때 며칠간 계속 듣다가 문득 기사를 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다음부터 필자도 '퓌지스'를 경험했다. 기말리포트는 1/3이나 남아있었고, 기사를 쓸 결심은 아직 하지도 않았는데, 잠시 연구실을 나가거나 점심 저녁을 먹으러 자리에서 일어나기만 하면, 기사에 쓸 문장과 구상이 내 안에서 계속 용솟음쳤다. 리포트에 쓸 문장은 머리를 싸매고 짜내도 안 나오는데, 기사에 들어갈 아이디어는 스스로 나와서 스스로 다듬고 스스로 첨삭까지 하고 있었다.
 
하이데거의 짧은 글을 기반으로 이승윤의 무대를 분석하면, 그는 노래 속에 은폐되어 있는 '진실'을 자신이 가진 '테크네'로 '탈은폐'시켰다. 그가 수행한 '탈은폐'는 필자같이 무딘 대중도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Honey'를 부르고 나서 그가 한 인터뷰를 보면, 섹시함을 의도하지는 않았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건 '퓌지스'였을 것이다. 이미 충분한 '테크네'를 갖추고 있으니, 내면으로부터 솟아오른 '퓌지스'로 곡에 맞는 무대를 만들어낸 것 같다.
 
'새것'인 이유를 정말로 알고 싶다

이승윤이 부른 'Chitty Chitty Bang Bang'이란 곡에 대한 호불호는 개인의 취향이니까 당연하지만, 심사위원들을 비롯해 그곳에 모인 음악전문가들이 왜 충격적이고, 혼돈스럽고, 족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는지, 몰라서 정말 궁금하다. 나만의 개인적이고 편파적인 기준으로는, 이 곡은 귀에 거슬리는 부분 없이 편하게 들리는, 대중적인 음악이다. 파격적이고 생경한 노래는 나 같은 문외한은 좋다고 느끼지 못한다. 아직은 가수 이승윤이 이제 막 알려지기 시작한 단계라서인지, 왜 그의 음악이 새로운지 평가해 주는 글을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정말 궁금하고 알고 싶어서 이 기사를 쓴다. 무지한 내게 누가 설명해 주었으면 좋겠다.
  
 이승윤

이승윤 ⓒ JTBC

 
사족을 하나 덧붙이자면, 이승윤은 그동안 인디 밴드 활동을 해 왔고, 밴드 '알라리깡숑' 유튜브 계정에 그동안 발표한 곡이 여럿 올라와 있다. 2020년 7월에 구독자 150명을 돌파했다고 기뻐하며 기념 Q&A 영상을 올렸었는데, 새해 첫날에 보니 이미 1만9천 명을 넘었다. 2만 명이 넘으면 무얼 할지, 10만이나 20만이 넘으면 어떤 이벤트를 할지 궁금해진다.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 그래도 노래를 불러서 먹고사는 것이 소망이라는데, 그 소박한 소망 중 첫 번째는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 같다. 많은 이가 그를 알아보고, 많은 것이 달라질 것 같다. 그래도 그가 만든 '영웅수집가'와 '사형선고'를 들어보니, 새해가 되어 33이 된 그가 세월을 그냥 보낸 것이 아님을, 사람에게 받은 상처와 그 극복도 경험해 보았음을 느낄 수 있다. 부디 잘 헤쳐나가기를, 부디 상처받지 않고 행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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