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최고의 활약을 펼친 여성 예능인을 꼽으라면 단연 이효리를 들 수 있다. 2017년 정규 6집을 끝으로 가수 및 예능인으로 활동이 뜸했던 이효리는 지난 여름 MBC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유재석, 비와 함께 3인조 혼성그룹 싹쓰리를 결성해 린다G라는 캐릭터로 변신했다. 싹쓰리가 부른 <다시 여름 바닷가>는 음원차트 1위는 물론, 음악방송 1위를 3번이나 차지하며 말 그대로 지난 여름을 '싹쓸이'했다.

이효리의 활약은 가을에도 멈추지 않았다. 엄정화, 제시, 화사와 함께 결성한 프로젝트 걸그룹 환불원정대에서 리더 천옥으로 활약한 이효리는 넘치는 예능감으로 천옥 캐릭터에 몰입하면서 2020년 가을을 수놓았다. 특히 환불원정대의 데뷔곡 < Don't Touch Me >는 발매와 동시에 주요 음원차트에서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같은 글로벌 아이돌 그룹의 노래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이효리는 지난 29일에 있었던 MBC <연예대상>에서도 베스트 커플상과 뮤직&토크 부문 여자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하지만 유쾌함과 걸크러시 매력을 동시에 갖춘 이효리도 20여 년 전에는 누구보다 맑고 순수한 청순가련 걸그룹 멤버였다. 레전드 예능인 이효리가 '소싯적에' 리더로 있던 팀은 바로 걸그룹 역대 최초로 연말 지상파 가요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한 핑클이었다.

무대에서 "난 네꺼야"를 외치던 당돌한 소녀들
 
 핑클 1집의 대성공으로 대성기획은 젝키와 핑클이라는 양날개를 거느릴 수 있게 됐다.

핑클 1집의 대성공으로 대성기획은 젝키와 핑클이라는 양날개를 거느릴 수 있게 됐다. ⓒ 대성기획

 
핑클은 1997년부터 기획돼 1998년 5월에 데뷔한 걸그룹이다. 핑클은 먼저 <별이 빛나는 밤에> 뽐내기 연장원 출신 옥주현이 메인 보컬로 들어왔고 옥주현의 지인을 통해 '은광여고 얼짱'으로 유명했던 이진이 합류했다(물론 당시엔 '얼짱'이라는 표현을 거의 쓰지 않았다). 막내 성유리는 고1때 교내 사생대회를 나갔다가 캐스팅 디렉터에 의해 발굴됐고 1998년 1월 다른 기획사에서 힙합그룹으로 데뷔를 준비하던 이효리가 들아오면서 핑클의 멤버 구성이 완료됐다.

핑클은 Fine Killing Liberty의 약자로 여기서 Fine은 좋다, 괜찮다는 뜻의 영어가 아닌 이탈리아어로 '끝'을 의미하는 단어다. 따라서 핑클은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것을 끝낸다'는 갱스터 힙합 그룹에나 어울릴 법한 뜻을 가지고 있다. 핑클의 청순한 이미지와 이름의 뜻이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그냥 '그 땐 그랬지'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당시 DJ DOC의 DOC는 'Dream of Children'의 약자였고 <뿌요뿌요>로 유명한 UP는 'Ultra People'의 약자였다).

핑클의 데뷔 앨범이 나왔던 1998년 5월엔 이미 S.E.S.가 < I'm your Girl >과 < Oh,My Love >로 가요계를 휩쓸고 간 시기였다. 따라서 핑클은 차별화를 위해 발라드곡인 < Blue Rain >을 타이틀곡으로 들고 나왔다. 핑클은 < Blue Rain >에서 '청순가련' 이효리가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많은 주목을 받았지만 S.E.S.의 데뷔 때만큼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

핑클이 본격적으로 남자들의 우상으로 떠오른 계기가 된 곡은 후속곡 <내 남자친구에게>였다. 핑클은 이 곡에서 통통 튀는 귀여운 안무를 선보이면서 뭇 남자들의 심장박동을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특히 1절 마지막에 이진과 성유리가 부르는 "난 네꺼야"는 당시로선 상상할 수도 없었던 충격적인 노랫말이었다. 핑클은 이 곡을 통해 지상파 순위프로그램에서 4번이나 1위를 차지하며 '슈퍼루키'로 떠올랐다.
 
 핑클은 2집으로 60만장 가까운 판매량을 기록하며 걸그룹으로는 최초로 연말 시상식 가수왕에 선정됐다.

핑클은 2집으로 60만장 가까운 판매량을 기록하며 걸그룹으로는 최초로 연말 시상식 가수왕에 선정됐다. ⓒ 디에스피이엔티

 
핑클은 3번째 활동곡 <루비:슬픈 눈물>까지 크게 히트시키며 순식간에 S.E.S.의 라이벌로 급부상했다. 이후 핑클은 1999년 5월 발표한 2집 'WHITE'의 타이틀곡 <영원한 사랑>에서 "약속해줘"란 손가락 안무를 히트시키며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 

당시 옥주현의 과감한 변신도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 <영원한 사랑>의 백미는 긴 생머리를 좌우로 찰랑거리며 후렴구를 부르던 이효리였다. 20세기에 선보였던 이효리의 이 안무는 15년이 지난 후 < LUV >를 부른 에이핑크의 손나은에 의해 오마주되기도 했다.

핑클은 <영원한 사랑>을 통해 KBS <뮤직뱅크> 2주 연속 1위, SBS <인기가요> 3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최고의 걸그룹으로 군림했다(MBC <음악캠프>에서는 그 시절 순위제를 시행하지 않았다). 핑클 2집의 후속곡은 '불량감자'로 유명세를 떨치던 배우 유현철과 훗날 <대장금>의 연생이로 유명해지는 박은혜가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자존심>이었다. 청순한 요정 이미지였던 핑클도 친근한 여자친구의 느낌으로 변신하며 또 한 번 큰 사랑을 받았다. 

핑클은 2집 앨범을 통해 단순히 노래만 부르고 무대에만 오른 것이 아니라 작사, 작곡에도 참여해 뮤지션으로서 발을 넓혔다. 리더 이효리와 메인보컬 옥주현은 각각 발라드곡 < still in love >와 <그래서 우린>의 작사에 참여했다. 이진과 성유리는 앨범 마지막에 있는 <유리>라는 곡을 함께 작사(이진), 작곡(성유리)했다. 핑클은 2집 앨범을 통해 1999년 서울가요대상과 SBS <가요대전>에서 H.O.T., 조성모 같은 쟁쟁한 가수들을 제치고 대상을 수상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다.

핑클빵-핑클음료 등 부가가치 창출하던 문화 아이콘
 
 핑클은 작년 <캠핑클럽>을 통해 14년 만에 완전체가 모여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했다.

핑클은 작년 <캠핑클럽>을 통해 14년 만에 완전체가 모여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했다. ⓒ jtbc 화면 캡처

 
핑클은 1999년 11월 <나의 왕자님께>와 < WHITE >가 있는 스페셜 앨범을 발표했고 2000년에는 3집 < NOW >, 2001년에는 리메이크 앨범 <당신은 모르실거야>, 2002년에는 4집 <영원>을 발표하며 누구보다 부지런히 활동했다. 당시 핑클은 단순히 노래로 유명세를 탔던 인기 아이돌을 넘어 핑클 멤버들의 스티커가 들어 있는 빵, 핑클 멤버들의 얼굴이 들어간 음료수가 출시되는 등 하나의 '문화 아이콘'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2002년 4집 앨범을 마지막으로 개인 활동에 들어간 핑클은 아직 공식적으로 핑클의 이름으로 무대에 서거나 활동을 재개한 적은 없다. 물론 '소길댁' 이효리와 2000년대 섹시 가수 이효리, 싹쓰리와 환불원정대로 활동했던 이효리, 그리고 핑클 시절의 이효리는 이제 도저히 연결이 안 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핑클 멤버들은 지금도 그 시절의 추억을 간직한 채 각자의 영역에서 멋진 삶을 살고 있다.

핑클 해체 후 곧바로 배우로 변신한 막내 성유리는 국군홍보 드라마 <막상막하>를 시작으로 <천년지애>, <황태자의 첫사랑>, <어느 멋진 날>, <쾌도 홍길동>, <태양을 삼켜라>,<신들의 만찬> 등에 출연하며 배우로 자리 잡았다. 이진 역시 <논스톱3>, <대풍수> 등에 출연하며 배우 활동을 했고 옥주현은 각종 뮤지컬 시상식에서 수십 개의 상을 휩쓴 대한민국 뮤지컬계의 톱 배우 중 한 명으로 자리 잡았다. 

이제 누구도 핑클 스티커를 모으기 위해 빵을 사먹진 않지만 그 시절 발랄한 음악으로 많은 대중들을 행복하게 해준 핑클이 있었기에 우리는 불안하고 혼란스러웠던 세기말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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