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중·후반 백두산과 들국화, 시나위, 부활은 마이너 음악이었던 한국 록음악의 자존심을 지키던 '밴드 4대천왕'이었다. 그 중 시나위와 부활은 뛰어난 실력과 존재감을 자랑하는 걸출한 기타리스트가 리더를 맡고 있는 팀으로 비슷한 시기에 데뷔해 끊임없이 비교되곤 했다. 보컬이 한 번도 바뀌지 않았던 백두산과 들국화에 비해 시나위와 부활은 보컬이 비교적 자주 교체됐다는 공통점도 있다.

팝시장에서 에릭 클랩튼과 지미 페이지, 제프 벡이 세계 3대 기타리스트로 불렸던 것처럼 한국에서는 시나위의 신대철과 부활의 김태원이 백두산의 김도균과 함께 한국의 '3대 기타리스트'로 불렸다.

'시나위'의 신대철과 '부활'의 김태원 모두 80년대 중반 자신이 결성했던 밴드를 30년 넘게 유지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많은 전설적인 보컬들이 두 그룹을 거쳐 갔지만 양 팀의 리더들이 추구하는 음악색깔이 워낙 다르기 때문에 보컬이 겹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시나위와 부활의 역사에서 단 한 명의 보컬은 양 팀을 모두 경험했다. 한국 1세대 헤비 메탈 뮤지션이자 가요계를 대표하는 '고음 마스터' 김종서가 그 주인공이다.

전설의 부활과 시나위를 모두 거친 유일한 보컬리스트
 
 김종서 2집은 100장이 훌쩍 넘는 판매량을 기록하며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김종서 2집은 100장이 훌쩍 넘는 판매량을 기록하며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 케이비에스미디어

 
김종서는 80년대 중반 신대철이 결성한 시나위에 몸 담으면서 처음 밴드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시나위에서는 앨범 발표 전에 탈퇴했고 이태원 등지에서 여러 밴드로 활동하다가 동갑내기 김태원의 권유로 부활의 전신인 'The End'에 합류했다. 하지만 김종서는 부활에서도 앨범 발매 직전에 탈퇴했다.

1987년 임재범이 탈퇴한 시나위에 재합류한 김종서는 시나위 2집을 통해 <새가 되어 가리>, <해 저문 길에서> 등을 히트시켰다. 2집 이후 다시 팀을 떠난 김종서는 백두산의 유현상이 기획한 밴드 카리스마에 합류했다. 하지만 카리스마는 저물어 가던 록음악의 하락세를 버티지 못하고 해체됐고 김종서는 신대철의 연락을 받고 다시 시나위 4집의 보컬로 합류했다. 이 때 만난 어린 베이시스트가 바로 서태지였다.

시나위 4집에는 훗날 서태지가 <환상 속의 그대>에서 한 소절을 인용했던 < Farewell To Love >와 김종서가 2집에서 리메이크해 크게 히트시킨 <겨울비> 등이 실리며 록 마니아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대중적인 음악을 하고 싶었던 김종서와 정통 하드록을 추구하던 리더 신대철 사이의 음악적 갈등은 쉽게 해소되지 않았고 김종서는 4집을 마지막으로 다시 시나위에서 나왔다. 

김종서는 1992년 1월 친한 후배인 서태지보다 한 발 먼저 데뷔 앨범을 발표했다. 김종서는 1집 앨범에서 본인이 직접 작·편곡한 <대답없는 너>를 크게 히트시켰다. <대답 없는 너>는 마니아 음악으로만 치부되던 록음악이 일반 대중들에게 크게 사랑 받은 최초의 사례였다. 김종서는 조금 더 부드러운 분위기의 후속곡 <지금은 알 수 없어>를 통해 순위프로그램에서 처음 1위를 차지하며 록밴드 보컬리스트 최고의 성공사례를 만들었다. 

김종서는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이덕진, 신성우 같은 피지컬을 갖추진 못했지만 부활과 시나위를 거치며 쌓은 탄탄한 보컬 능력은 단연 최고였다. 김종서는 1993년에 발표한 2집에서도 <그래도 이제는>과 <겨울비>를 크게 히트시켰다. 특히 한국 음악 역사상 최고의 록발라드로 꼽히는 <겨울비>는 오늘날까지도 김종서를 대표하는 명곡으로 기억되고 있다. 김종서 2집은 100만장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하며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1994년에 발표한 3집 앨범에서 김종서는 뜻밖의 암초를 만났다. 방송국에서 장발 남자 연예인의 출연을 규제시킨 것이다. 결국 김종서는 3집에서 방송활동을 자제했고 이 때문에 <남겨진 독백>이나 <악몽> 같은 명곡들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지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김종서는 1995년에 발표한 4집 앨범을 통해 <플라스틱 신드롬>, <다시 난 사는거야> 등을 히트시키며 건재를 과시했다. 특히 <플라스틱 신드롬>은 록의 정통성을 버리지 않은 채 대중성을 확보한 곡이라며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여기에 절친인 서태지와의 음악적 교류를 통해 같은 시기에 앨범을 발표하면서 함께 부른 <프리 스타일>이라는 곡을 각자의 앨범에 동시에 싣기도 했다.

밴드음악에 대한 갈증으로 탄생한 'THE TEAM'
 
 김종서는 5집을 만들면서 밴드 'THE TEAM'을 결성해 7집까지 함께 활동했다.

김종서는 5집을 만들면서 밴드 'THE TEAM'을 결성해 7집까지 함께 활동했다. ⓒ (주)카카오M

 
서태지와 아이들은 1996년 1월에 해체됐고 록발라드 가수로 이미지를 쌓아가던 김종서는 다시 밴드 음악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 과거 기존에 결성돼 있던 밴드에 가세해 보컬로 참여하던 김종서는 솔로가수로 높은 인지도가 생기면서 직접 밴드를 결성했다. 시나위 출신의 드러머 김민기와 베이시스트 김영진, 기타 토미 김, 그리고 보컬 김종서로 구성된 밴드 'THE TEAM'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밴드를 결성한 김종서는 더 실험적이고 강한 음악을 추구했다. 5집 타이틀곡은 강한 비트가 돋보이는 힙합록 장르의 <추락천사>. 언제나 그렇듯 김종서가 직접 작·편곡한 곡이다(뛰어난 보컬실력에 가려져 있지만 김종서는 자신의 앨범에 있는 모든 히트곡을 직접 만드는 프로듀서이기도 하다).

"내 친구도 먼 미래의 적일 뿐이야"라는 냉소적이고 염세적인 가사가 돋보이는 <추락천사>에서 김종서는 데뷔 후 처음으로 랩을 시도했다. 김종서는 기존래퍼들을 따라 하기 보다는 김종서가 가진 특유의 하이톤을 최대한 살려 김종서만의 독창적인 랩을 구사했다. 일반인들이 비트가 빠르지 않다고 방심하며 따라 불렀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강렬한 록사운드의 <추락천사>는 남성팬들을 중심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여성팬들은 후속곡인 록발라드 <영원>을 좋아했다.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가요계는 김종서를 비롯해 서태지와 아이들, 박정운, 조관우, 핑클, SKY(고 최진영) 등 많은 가수들이 <영원>이라는 제목의 곡을 마치 유행처럼 발표했다. 김종서의 <영원>은 감성적인 가사와 진성과 가성을 오가는 김종서의 노련한 보컬이 돋보이는 명곡이지만 핑클이나 SKY의 <영원>에 비하면 그리 크게 히트를 하지 못했다.

김종서 5집은 염세적인 록힙합의 타이틀곡 <추락천사>와 슬픈 록발라드의 후속곡 <영원>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앨범 색깔이 대체로 어두운 편이다. 하지만 정작 이 앨범, 아니 김종서의 커리어에서 가장 유명한 노래는 김종서가 가수 인생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달달한 러브송 <아름다운 구속>이었다. 물론 대단히 예쁜 가사에 김종서의 곡치고는 상대적으로 따라 부르기도 좋지만 골수팬들은 김종서가 전성기 시절의 파워를 잃었다며 걱정했다.

이 앨범에는 드러머 김민기가 <삶에 관한 명상>과 <항상>의 가사를 썼고 베이시스트 김영진은 < Blind Hero >를 작사·작곡했다. 여기에 기타리스트 토미 김이 만든 연주곡 < Tommy's Blues >도 실리며 밴드 멤버 전체가 앨범 작업에 참여했다. 의도적으로 밴드 앨범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낸 것이다. 김종서의 솔로 데뷔곡 <대답 없는 너>의 가사를 썼던 채정은은 음침한 분위기의 록발라드 <악마의 미소>에 작사가로 참여했다. 

신대철과 김태원을 한 무대에 올릴 수 있는 인물
 
 김종서는 지난 2014년 <불후의 명곡>에서 김태원,신대철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김종서는 지난 2014년 <불후의 명곡>에서 김태원,신대철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 KBS 화면 캡처

 
김종서는 스페셜 앨범 < Love Song >, 6집 <에필로그>, <희망가>, 7집 <실연>, < Loving You > 등을 발표했다. 비록 90년대 후반 이후 대한민국 최고의 인기 록보컬리스트 자리는 김경호에게 물려 줬지만 여전히 대중 친화적인 록 보컬리스트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김종서는 2000년대 들어 드라마와 예능에 진출하며 활동영역을 넓혔지만 공연이나 앨범 발표를 통해 음악 활동을 이어갔다.

김종서는 지난 2014년 KBS <불후의 명곡>에 출연해 선배 가수들의 노래를 부르면서 건재한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특히 2014년 4월 '내한가수특집'에서는 이글스의 명곡 < Hotel California >를 불렀는데 시나위의 신대철과 부활의 김태원이 함께 무대 위에 올라 노래를 연주하며 관객들과 시청자들을 전율시켰다.

김종서는 피를 토할 때까지 연습을 멈추지 않는 노력파이면서도 언제나 대중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보컬리스트다. 물론 비음이 섞인 개성 있는 목소리는 여전히 호불호가 갈리고 김종서의 전성기를 모르는 젊은 대중들은 그의 실력을 의심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 록의 역사에서 김종서가 차지하는 비중은 누구도 낮게 평가할 수 없다. 김종서는 한국 록음악 전성기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살아 있는 레전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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