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감 밝히는 양의지 지난 7일 강남구 리베라호텔에서 열린 프로야구 선수협회 이사회에서 신임 회장으로 선출된 NC 양의지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소감 밝히는 양의지 지난 7일 강남구 리베라호텔에서 열린 프로야구 선수협회 이사회에서 신임 회장으로 선출된 NC 양의지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프로야구 선수협회(아래 선수협)는 현재 큰 위기에 놓여있다. 전임 집행부에서 벌어진 판공비 논란과 회장-사무총장의 동반 사퇴, 고액 연봉자들의 이익만 대변하는 등 '귀족화' 되었다는 비판, 야구계 각종 현안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모습 등이 겹치며 여론이 등을 돌린 상태다. 오죽하면 야구인들 사이에서도 선수협의 정체성과 존재 가치에 대한 의구심이 나올 정도다.

최근 집행부를 새롭게 구성한 선수협은 변화를 위한 시동을 걸었다. NC 다이노스 소속의 양의지가 최근 신임회장으로 선출되었고, 김용기 대회협력사업국장이 임시 사무총장 직무대행을 맡았다. 15일 서울 리베라호텔에서 신임 집행부가 주최한 첫 총회에서는 회장을 직접 보좌할 선수출신 '부회장' 제도를 신설한  것도 눈에 띈다. 양의지 회장과 프로야구 입단 동기생인 김현수(LG), 황재균(kt), 이재원(SK) 등 세 명이 나란히 공동 부회장에 올라 집행부의 권한과 책임을 다원화했다.

그간 선수협의 가장 큰 문제점은 출범 20년이 지났음에도 조직 운영에 대한 제대로 된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회장이나 사무총장의 개인 의지에 따라 존재감이 극과 극을 달렸고, 제도적 투명성이 취약하여 언제든 전횡이 일어나기도 쉬운 구조였다. 집행부가 바뀔 때마다 인수인계가 제대로 되지 않거나 이전에 만들어놓은 규정이 지켜지지 않아서 조직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무엇보다 선수들이 자신들의 권익을 대변하기 위하여 만들었던 선수협에 대한 책임감과 애정이 부족하다는 것도 문제였다. 몸값이 비싼 스타급 선수들은 부담스러운 회장직을 기피하기 일쑤였다. 개인의 의지나 리더십과 무관하게 각 팀의 상위 고액 연봉자들을 강제로 선수협 회장 후보에 올리는 것이나, 판공비 셀프 인상 논란 등도 결국 이런 배경과 관련이 있다.

이로인해 정작 소외받는 저연봉자 선수들의 처우나 복지 개선 등은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였다. 결국 선수협은 언제부터인가 구단이나 팬들은 물론이고 그 주체인 선수들 내부에서도 점점 인정 받지 못하는 조직으로 전락했다. 

힘은 누가 대신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길러야한다. 20년-30년 전 고 최동원-송진우 등 초기 선수협을 만들기 위하여 노력했던 선배들은 아무도 가지 않으려 했던 척박한 사막에서 모진 시련을 감수하면서 첫 씨앗을 뿌렸다. 지금의 선수협을 이끌어가야할 선수들이 선수협이 힘없고 부담만 주는 조직이라고 불평하기 전에 과거의 초심을 돌아봐야할 이유다.

다행히 양의지 회장 취임 후 새 집행부에서 이제라도 자발적인 혁신과 참여의 필요성을 자각하고 있는 모습은 희망적이다. 원래 선수협 정관에는 부회장 제도가 없었지만, 추후 정관 개정을 통해서라도 여러 선수들이 부회장으로 선수협 운영에 참여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이사진이 회장 한 명만 뽑아내고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방치하는 구조에서 탈피하겠다는 것은 긍정적인 시도다.

실질적으로 선수협 운영을 관리해야할 사무총장과 전문성을 갖춘 실무진 구성도 중요한 과제다. 행정이나 법률, 회계 등의 복잡한 문제는 선수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노력한다고 해도 세세한 내용까지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앞으로 정식 사무총장 선임이후 진행될 대대적인 회계 감사와 정관 개정 논의를 통하여 바로잡아야할 부분이 많은데, 관건은 촉박한 시간이다. 현역 선수들로 구성된 회장단이나 이사진은 아무래도 다음 시즌 준비 돌입 무렵부터는 개인 성적도 신경을 써야 해 선수협 업무에 관심을 기울이기 어렵다.

또한 역대 선수협은 그동안 전임 회장들이 사적인 인맥을 통하여 데려온 '낙하산 사무총장'들이 문제를 일으킨 경우가 적지 않았다. 선수협 이사회에서는 투명성 강화를 위한 또다른 장치로 앞으로 '특별보좌역'이라는 제도를 새롭게 신설할 것으로 알려졌다. 특보는 선수협 내에 중요한 이슈가 발생했을때 회장단과 선수이사들에게 직보하는 역할을 맡을 계획이다. 이는 그동안 회장 1인이 직접 나서지 않으면 견제할 장치가 없었던 사무총장의 비대한 권력이나, 선수협와 무관한 외부 인사들의 월권을 다각도로 감시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했다는 데서 의미가 있다.

현재 선수협은 내부 개혁 외에도 밖으로 목소리를 내야할 만한 이슈들이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2차 드래프트 폐지 논란이다. 지난 8일 한국야구위원회(KBO) 실행위원회(단장 모임)는 2차드래프트 폐지에 합의했다.

구단들의 입장은 실효성이 없고 오히려 베테랑 선수들을 정리하는 무대가 되거나 특정 구단만 공들여 키운 육성선수들을 다른 팀에 빼앗기는 수단으로 변질되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하기보다 무조건적인 폐지는, 선수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제공할수 있는 사다리만 걷어차는 꼴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아쉬운 것은 선수협이 그동안 어수선한 내부 갈등으로 인하여 중론을 모을 기회가 없어서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양의지 회장도 이를 의식한 듯 지난 총회에서 2차 드래프트 문제를 언급하며 폐지 반대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했다. 선수협이 현재 대외적으로 입지가 위축된 상황이라고 해도 이처럼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침묵해서는 안 된다.

선수협에게는 지금의 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부정적인 이슈로나마 선수협이 화제의 중심에 올랐고, 변화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만큼 그동안 손을 대지 못했던 기존의 관행이나 내부 문제에 대하여 과감한 쇄신을 시도할 수 있는 명분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2012년 최악의 상황에서 출범했음에도 오히려 선수협을 성공적으로 재건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던 박재홍 회장 시절의 전례를 교훈으로 삼아야할 필요가 있다. 아직 늦지 않았다. 비록 시간은 걸리겠지만, 선수협은 다시 구성원들과 팬들의 신뢰를 받고 야구계 발전에 앞장설 수 있는 '건강한 조직'으로 돌아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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