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산후조리원> 현장 스틸 이미지.

tvN <산후조리원> 현장 스틸 이미지. ⓒ tvN

 
"임신은 고달프고 출산은 잔인하고 회복의 과정은 구차하다."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산후조리원>에서 자지러지게 우는 아기도 순식간에 재우는 신비한 능력을 지닌 육아 베테랑 최혜숙(장혜진 분) 원장은 임신, 출산의 과정을 이렇게 정의했다. <산후조리원>은 그동안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그 고달프고 구차한 과정을 낱낱이 펼쳐서 보여준 첫 번째 작품이었다.

연출을 맡은 박수원 PD를 10일 서면으로 만났다. 그는 "출산의 고통만 크게 이야기하지, 그 이후에 대해선 아무도 이야기를 해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저는 이 드라마를 준비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마냥 미화되는 모성애 뒤에 엄마들의 눈물과 자신에 대한 자책, 괴로움이 있다는 걸 이전엔 몰랐다. 같이 이야기하고 오픈해보고 싶었다"고 전했다.

출산, 육아는 우리 삶과 아주 밀접한 문제이지만, 막상 드라마나 영화에서 정면으로 다룬 적은 많지 않았고 그 중에서도 산후조리원을 배경으로 한 것은 최초였다. tvN <푸른거탑> < SNL > <슬기로운 감빵생활> <빅포레스트> 등의 프로그램을 거친 박수원 PD는 자신이 "그동안 유독 남자 중심의 이야기를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여자 캐릭터들이 정말 웃긴 코믹을 해내는 그림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던 중 김지수 작가와 함께 기획하면서 산후조리원이라는, 철저히 여자들만 모이는 공간에 자연스레 흥미가 갔다"고 말했다. 이어 박 PD는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조리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산후조리원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한 번도 주목하지 않은 공간이라는 점에서 신선한데다, 이제 막 엄마가 된 각양각색의 여자들이 여러 사연을 가지고서 함께 머무는 곳이라는 점에서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누군가는 처음이라 혼란스럽고, 누군가는 슬픈 사연을 갖고 입소하는 이 곳에서 몸만 조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도 산후조리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보는 사람도 '힐링'이 되는 드라마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격정 출산 누아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드라마에는 파격적이고 현실적인 연출들이 매 회 등장했다. 출산 후 엄마가 처음으로 아이와 함께 병원을 나오는 순간을 재난영화의 한 장면처럼 연출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출산을 이미 경험한 여성 시청자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모두 드라마에 빠져들 수 있게 만들었다. 
 
 tvN <산후조리원> 현장 스틸 이미지.

tvN <산후조리원> 현장 스틸 이미지. ⓒ tvN

 
박수원 PD 역시 "출산 경험이 없고, 산후조리원을 경험해보지 않은 시청자들에게도 재밌는 드라마가 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많이 뒀다"고 고백했다. 이어 "살면서 조리원에 아무 관심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이 이야기를 봤을 때 몰입되고 같이 생각해볼 수 있도록 공감대에 기반을 둔 코미디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아기를 안고 나올 때 처음 부모가 된 마음을 재난영화처럼 보이게 한다든지, 아기 낳은 후 복잡한 마음으로 삼바를 추는 신처럼 시청자가 저 상황을 겪지 않아도 그 정서를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삼바 댄스, <설국열차> <엽기적인 그녀> 패러디, 무협 영화, M자 탈모 상상 신 등 드라마 속 다양하고 유쾌한 코미디 연출이 많은 화제를 모았다. 출산, 육아의 현실을 가볍고 재미있게 다룬 장면에 호응한 시청자들도 많았다. 이는 제작진이 현실성과 코미디 사이의 선을 잘 넘나들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제작진은 맥락에 맞게 튀지 않는 코미디 연출을 위해 많은 회의를 했다고.

박 PD는 "대본 회의 때, 2회에 요람이 된 조은정(박하선 분)의 신이 말이 되냐 안 되냐로 하루종일 토론한 적도 있다. 저희 딴엔 엄청 진지하게 (토론했다). 그래서 과해보이는 코미디가 나올 때 오히려 감정이랑 주제가 선명하게 보이는지에 대해 더 신경썼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그는 1회의 삼바 신 촬영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꼽았다.

"아무래도 첫 회라 더 신경이 쓰이기도 했고, 나름 퍼포먼스 신이라 스태프 회의를 여러 번 했다. 배우들도 미리 춤을 연습해야했고. 특히 그 신은 뜬금없어 보일수록 재밌는 신이라, 춤추기에 좋은 공간으로 가지 않고 굳이 좁은 병실에 많은 사람들을 불러 춤을 추게 했다. 그렇기 때문에 촬영하기에 좋은 컨디션도 아니었다. 하지만 현장 분위기가 정말 재밌었고 또 배우들도 생각보다 춤을 굉장히 잘 췄다. 우리가 지금 무슨 드라마를 찍고 있는건지 모르겠다는 스태프들의 감상을 들으면서 이 신은 무조건 재밌게 나오겠다는 확신을 가졌던 기억이 있다."

특히 아이가 자라서 M자 탈모 어른이 된다는 상상 신은 온라인 상에 '캡처' 사진으로 돌아다닐 만큼 인기를 끌기도 했다. 박수원 PD는 이 장면이 배우 윤박(김도윤 역)으로부터 탄생했다는 비하인드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윤박은 아이디어가 되게 좋은 배우였다. 특히 시청자분들이 엄청 좋아해주신 상상 딱풀이 신 아이디어는 윤박이 냈다. 원래는 그냥 다른 연기자를 섭외해서 어른 딱풀이를 만들 생각이었는데 제작진이 미처 생각 못한 훌륭한 아이디어를 낸 거지. 그러고나선 자기 굴욕 사진이 많이 나올 것 같다고 걱정하던데(웃음). 그걸 상쇄시킬 정도의 다정함을 도윤이란 캐릭터로 또 너무 잘 표현해줘서 좋았다." 
 
 tvN <산후조리원> 현장 스틸 이미지.

tvN <산후조리원> 현장 스틸 이미지. ⓒ tvN

 
또한 <산후조리원>은 여느 미니시리즈 드라마(16부작)의 절반에 불과한 8부작이라는 짧고 간결한 구성을 택했다. 박수원 PD는 이에 대해 산모들이 짧게 머무는 산후조리원을 다룬 작품이기 때문에 그 기획의도를 충실하게 담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설명했다. 

"처음부터 이유가 있었다. 산후조리원 생활을 리얼하고 공감갈 수 있게 그리고 싶었다. 하지만 보통 2주 정도 머무는 산후조리원 생활을 기존 드라마처럼 길게 만드려면, 공감 스토리보다는 다소 극적인 설정이 더 많이 필요했다. 그런 점이 과연 우리의 원래 의도에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을 했다. 불필요한 설정 없이 짧은 회차로 가는 게 기획의도를 잘 살릴 것 같았다. 물론 비교적 빨리 끝났다는 점이 살짝 아쉽지만, 완성도를 생각하면 후회는 없다."

이어 박 PD는 시즌2에 대해서도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논의 중"이라며 "<산후조리원>의 DNA를 훌륭하게 이어받은 이야기가 되길 제작진도 바라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실의 출산, 육아 문제를 쉽고도 유쾌하게 잘 담아낸 <산후조리원>은 "학교에서 성교육 자료로 써야한다"는 반응도 있을 정도라고. 박수원 PD는 "처음엔 웃고 넘겼는데, 생각해보니 그만큼 미디어에서 리얼한 출산기를 다룬 적이 없고 또 아이를 만나면서 겪게 될 엄마의 혼란을 솔직하게 그려낸 이야기가 많지 않기 때문에 우스갯소리로라도 그렇게 말해주신 것 같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이 드라마를 통해 박수원 PD는 자책하는 이 시대의 엄마들을 향한 응원을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서툴러도 괜찮다. 당신은 이미 충분히 좋은 엄마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부족한 엄마라며 자신을 계속해서 자책하기만 하는 엄마들을 응원하고 싶었다, 정말로. 제 주변의 사람들이 실제로도 출산 이후에 자신의 부족함을 자꾸 자책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거든. 이미 그들은 충분히 열심히 하고 있는데." 
산후조리원 박수원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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