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과 <놀면 뭐하니?>를 연출한 김태호 PD의 최대 장점은 바로 '추진력'이다. '설마 이게 가능할까' 싶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프로젝트를 현실가능하게 만드는 능력이야말로 예능 PD로서 그가 가진 최대 장점이다. 제작진이 꾸며 놓은 납량특집에서도 혼절을 하던 <무한도전>의 겁 많은 멤버들이 프로레슬링이나 봅슬레이,  조정, 카레이싱에 도전했던 것은 김태호 PD의 엄청난 추진력이 아니면 불가능했던 일이다.

게다가 김태호 PD는 방송에서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나 멤버들이 농담처럼 흘려 버린 말들을 캐치해 실제 방송 아이템으로 이용하는 능력도 매우 뛰어나다. 유재석이 <식객특집>에서 요리비법을 알려준 알래스카의 김상덕씨에게 감사의 말을 농담처럼 전했는데 이는 진짜로 '알래스카 특집'으로 이어졌다. <무한도전>의 막내 노홍철과 하하가 자주 티격태격하는 장면을 보고 무려 4주에 걸친 '홍철vs. 하하' 프로젝트를 만든 것도 김태호 PD였다.

김태호PD의 이런 능력은 <놀면 뭐하니?>에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물론 뽕포유나 유플래쉬, 싹쓰리처럼 작정하고 기획한 프로젝트도 있었지만 잔잔한 사랑을 받았던 유라섹의 경우 평소 라면을 좋아한다는 유재석의 말을 기억해 뒀다가 만들어 낸 부캐였다. 그리고 14일 무려 10주가 넘는 장기 프로젝트로 진행됐다가 14일 대단원의 막을 내린 '환불원정대' 역시 이효리가 쏘아 올린 농담 같은 한마디가 현실이 된 위대한(?) 프로젝트였다.

이효리의 농담으로 시작된 '쎈 언니'들의 조합
 
 '환불원정대'는 싹스리의 노래가 정해지기도 전에 이미 넌지시 결성이 예고된 바 있다.

'환불원정대'는 싹스리의 노래가 정해지기도 전에 이미 넌지시 결성이 예고된 바 있다. ⓒ MBC 화면캡처

 
그룹과 솔로로 모두 가요대상을 차지한 이효리와 2000년대를 풍미했던 최고의 댄스가수 비,그리고 변신하는 부캐마다 화제를 몰고 온 유재석의 만남만으로 싹쓰리는 엄청난 화제를 모으기 충분했다. 싹쓰리는 데뷔 전 타이틀곡 후보를 듣는 시간을 가졌는데 이효리는 <아유레디?>라는 곡을 들은 후 자신이 멤버들을 모아서 따로 노래를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이 때 언급된 이름이 바로 '환불원정대'의 멤버 엄정화와 제시, 그리고 화사였다.

이효리는 최대한 강한 이미지를 가진 여성 가수들을 농담처럼 나열했는데 이들이 뭉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였다. 사실 엄정화의 경우 2017년에 발매했던 정규 10집을 끝으로 가수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상태였고 해외파 래퍼 제시는 거침 없는 말투와 행동으로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여성 뮤지션이었다. 그렇다고 마마무 활동과 솔로 활동을 병행하는 '대세' 화사가 프로젝트 그룹 활동을 할 여유가 있을 거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엄정화와 제시,화사는 각자의 SNS를 통해 '환불원정대' 결성에 관심을 보였고 김태호PD와 <놀면 뭐하니?>는 그 모이기 어려운 4명을 한 자리에 모으는데 성공했다. 물론 지나치게 강한 개성을 가진 4명의 조합이 잘 어울릴 수 있을까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서로의 음악과 스타일을 존중하는 이들은 의외로 잘 어우러졌다. 물론 지미유라는 부캐로 활동한 유재석의 존재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매니저 선정도 대단히 탁월했다. '파리지앵' 정재형은 (비록 운전면허는 없지만) 엄정화, 이효리와 친분이 있어 개성 강한 두 언니들을 케어하는데 상당히 유리한 지점이 있었다. 여기에 김종민은 40대 초반의 적지 않은 나이에도 예능인으로서 워낙 순수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 언니들은 물론 어느 정도 나이차이가 있는 동생들도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캐릭터였다.

실제로 정재형은 지난 9월19일 방송에서 엄정화가 갑상선암으로 고생할 당시 걱정하며 눈물을 흘렸던 일이 이효리에 의해 공개되며 엄정화를 울렸다. 때로는 친구 같고 때로는 부부 같은 정재형과 엄정화의 '케미'는 '환불원정대' 방영 기간 내내 시청자들에게 소소한 재미와 감동을 안겨줬다. 물론 언제 어떤 순간에도 미소를 잃지 않은 김종민 역시 '환불원정대'의 빠질 수 없는 볼거리 중 하나였다.

녹음과정부터 마무리까지 '환불원정대' 다웠다
 
 '환불원정대'의 녹음과 활동은 90년대 레전드 디바 엄정화의 '부활기'였다고 해도 큰 과장이 아니다.

'환불원정대'의 녹음과 활동은 90년대 레전드 디바 엄정화의 '부활기'였다고 해도 큰 과장이 아니다. ⓒ MBC 화면 캡처

 
'환불원정대'의 멤버들은 모두 짧게는 6년, 길게는 20년 넘게 가수활동을 해온 베테랑들이지만 녹음과정에서는 의외로 난항이 있었다. 바로 맏언니 엄정화가 노래에 자신감을 크게 잃은 것이다. 이에 유재석은 성시경과 SG워너비, 다비치 등의 노래를 지도했던 보컬코치 노영주를 소개해 노래에 대한 엄정화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해줬다. 엄정화가 남다른 노력으로 잃었던 자신의 음역대를 되찾을 때는 시청자들도 함께 희열을 느꼈다. 

'환불원정대'는 지난 10월17일 <음악중심>을 통해 데뷔 무대를 가졌는데 방송 후 일부 시청자들로부터 안무가 유치하다는 혹평을 들었다. 사실 '환불원정대'와 <놀면 뭐하니?>의 지명도였다면 얼마든지 현역 최고의 안무가를 섭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김태호PD는 미국 댄스 경연대회에서 BEST4에 등극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 받으면서도 대중가요의 안무를 만들 기회가 없었던 아이키에게 안무를 맡기며 그들에게도 가슴 벅찬 음악방송 데뷔 기회를 줬다.

비록 팬들의 기대치에 비하면 턱없이 짧았지만 활동 과정도 '환불원정대'다웠다. 뮤직비디오 촬영과 화보촬영을 한 자리에서 동시에 진행하며 비용절감효과를 누렸고 첫 대면공연을 간호사관학교로 정한 것도 의미 있었다. 야구장 공연과 시구행사 역시 방문이 쉬웠던 서울팀이 아닌 최하위 한화 이글스가 사용하는 대전으로 방문했다(어차피 관중을 30% 밖에 받지 못하는 것은 모든 구단이 마찬가지지만).

'환불원정대'는 헤어지는 순간 지미유로부터 큰 선물을 받았다. 대전에서의 스케줄을 마치고 서울로 이동한 '환불원정대'는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오직 그들만을 위한 굿바이 스페셜무대를 가졌다. 그리고 1절이 끝났을 때 제작진이 준비한 팬들의 '떼창버전'이 무대를 가득 메웠고 감격한 멤버들은 노래를 제대로 이어가지 못했다. 멤버들이 가장 그리워했던 팬들의 환호소리를 '환불원정대'를 위한 마지막 선물로 안겨준 것이다. 

싹쓰리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일각에서는 방송을 통해 만들어진 프로젝트 그룹의 음원차트 올킬이 다소 불편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하지만 '환불원정대'는 '싹쓰리' 때와 마찬가지로 음원과 오프라인 음반으로 얻은 수익을 모두 기부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상업성과는 거리가 멀다. 여러 가지 선을 넘은 불편한 말들을 극복하고 보란 듯 해내서 보여줘 버린 쎈 언니 4명의 다음 여정이 기다려 지는 건 너무 이른 기대일까.
 
 '환불원정대'는 그토록 받고 싶었던 관객들의 뜨거운 환호를 받으며 첫 번째(?) 활동을 마쳤다.

'환불원정대'는 그토록 받고 싶었던 관객들의 뜨거운 환호를 받으며 첫 번째(?) 활동을 마쳤다. ⓒ MBC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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