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알 것이다. SBS 월화드라마 <펜트하우스> 속엔 온갖 '막장'요소들이 다 들어 있다는 것을. 부와 권력을 이용해 타인을 짓밟는 부모들. 이런 부모를 꼭 닮은 아이들. 그리고 출생의 비밀과 죽음, 불륜, 살인.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극적인 요소들이 한꺼번에 버무려져 있는 만큼 시청자들의 반응도 뜨겁다. 첫 회부터 시청률 10%를 넘겨 출발하더니 매회 시청률이 상승하며 순항 중이다. 

이 드라마 속 인물들은 너무나 극단적이어서 현실적으로 느껴지지가 않는다. 특히 '펜트하우스'의 부자들 중에서도 '성골'에 속하는 주단태(엄기준)와 천서진(김소연)의 악행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토록 많이 가졌음에도 자신보다 약한 자들을 무참히 짓밟는 이들의 심리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정도다. 하지만 지난 5회 방송분에서 양심선언을 한 남편 하윤철(윤종훈)에게 쏘아붙이는 서진의 말 속에서 이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내 자존심 짓밟는 거 나 정말 못 참아!"

서진의 이 외침은 자기애적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보여주는 전형적인 심리기제였다. '펜트하우스'의 부자들이 내뿜는 왜곡된 자기애의 면면들을 살펴본다. 

'자기애' 혹은 '나르시시즘'
   
 더 높은 곳을 향하지 않으면 불안하기만 한 부자들이 발산하는 '자기애'로 가득찬 드라마 '펜트하우스'

더 높은 곳을 향하지 않으면 불안하기만 한 부자들이 발산하는 '자기애'로 가득찬 드라마 '펜트하우스' ⓒ SBS

  
'나르시시즘'. 심리학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자신의 모습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물에 빠져 죽은 그리스 신화의 주인공 나르키소스에서 따온 이 단어를 우리 말로 '자기애'라고 번역한다. 신화 속 나르키소스가 자신을 너무나 사랑했듯 '자기애'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일컫는다. 

자기애는 정의 그대로라면 사람에게 꼭 필요한 요소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자존감을 유지하기도, 타인과 평등하게 교류하기도 힘들다. 때문에 프로이드는 심리적 에너지가 자기 자신에게도 향하는 것이 '자기애'라 규정하며 어린 시절의 자기애는 정상적인 것이라 보았다. '자기심리학'의 창시자 하인즈 코헛도 어린 시절 부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과정을 통해 나타나는 자기애는 성장 과정에 필수적이라고 했다. 즉, 유아가 원하는 대로 해달라고 요구하며 떼를 쓰거나 마치 자신이 뭐든지 다할 수 있을 것처럼 여기는 행동들은 정상적인 발달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유아의 자기애는 성장하면서 적절한 충족과 좌절의 과정을 반복하면서 현실적으로 바뀐다. 코헛에 따르면, 자기애는 부모의 공감적인 반응을 통해 일정 부분 충족되면서 자기상을 형성하는 바탕이 된다. 하지만 자기애를 통해 형성된 웅대한 자기는 필연적으로 좌절되기 마련이고 유아는 이를 통해 점차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현실을 수용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기애는 현실적인 것으로 전환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서도 좌절을 받아들이고 타인에게 공감하고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의 토대가 된다. 

문제는 바로 자기애가 적절히 충족되지 않거나, 좌절되지 않는 경우다. 코헛은 자기애가 충족되지 못하고 지나친 좌절만 경험했을 경우,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오히려 비현실적인 자기애를 발전시킨다고 보았다. 반대로 부모의 과잉보호나 성장 과정의 특이점으로 좌절을 경험해보지 못할 경우에도 유아기적인 자기애를 성인기까지 유지하게 된다. 심리학자들은 이렇게 자기애의 충족과 좌절에 문제가 있어 성인이 되어서까지 비현실적인 자기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자기애적 성격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분류한다. 

'외현적 자기애'의 화신들 
  
'자기애적 성격장애'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하나는 '내현적 자기애'로 타인의 반응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나를 좋아해주고 있는지 아닌지에 집착하며 사랑받기 위해 애쓰는 유형을 말한다. 이들은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지만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야 마땅하며 거절당해서는 안된다'는 신념을 마음에 품고 있으며 이것이 좌절되었을 때 쉽게 분노하거나 수치심을 느낀다. 반면 '외현적 자기애'는 '나는 중요한 사람'이라는 자기애를 거침없이 뿜어낸다. 이들은 거만한 태도로 타인을 대하며 권력과 성공에 집착하고,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타인을 착취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펜트하우스>속의 부자들은 바로 이 '외현적 자기애'의 화신들이다. 특히, 펜트하우스 안에서도 권력의 정점에 있는 단태와 서진의 모습에서 이 같은 특징들이 두드러진다. 단태는 자기 자신의 특권을 더 공고히 하기 위해 재개발 지역의 주민들을 몰아내면서도 일말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자신의 비서를 서슴없이 '개'라고 부르며 자신의 수족처럼 부린다. 결혼 전 심수련(이지아)이 파혼을 선언했을 때 "누구 맘대로 파혼을 해?"(3회)라고 분노하는 장면이나, "우리 집에서 유명한 성악가가 나와야 한다"(2회)며 아이들에게 매질하는 장면은 그가 가족들마저 자신의 욕망을 위한 소유물로 삼고 있음을 드러내는 장면이었다. 모두 외현적 자기애가 과도할 때 나타나는 행동들이다. 

청아재단의 딸 서진은 부모의 부와 권력으로 현재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성악가로서 자신의 실력도 있었겠지만, 서진은 부모덕에 경쟁자를 제치고 현재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딸을 위해 부정까지 서슴지 않는 서진의 부모는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서진의 모든 욕구를 부와 권력을 이용해 충족해주었을 것이다. 이런 서진에게 좌절은 매우 낯선 일일 것이다. 때문에 자신에게 도전하는 오윤희(유진)의 행동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서진은 자신의 부모들이 그랬던 것처럼 온갖 술수를 써가며 자신에게 도전하는 자들을 짓밟으면서도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 

더 무서운 건 이런 외현적 자기애가 자녀에게 대물림된다는 점이다. 자기애로 똘똘뭉친 '펜트하우스'의 부모들은 자신들이 양육받은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자녀들의 모든 욕구들을 물질적으로 채워줬을 것이다. 이렇게 자라난 '펜트하우스'의 자녀들 석훈(김영대), 석경(한지현), 은별(최예빈), 그리고 제니(진지희)는 자신들의 부모들처럼 과잉충족된 자기애를 발산하며 자신들의 특권을 지키기 위해 타인을 짓밟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서진(김소연)은 자신의 자존감을 짓밟는 사람들을 결코 그냥 놔두지 않는다.

서진(김소연)은 자신의 자존감을 짓밟는 사람들을 결코 그냥 놔두지 않는다. ⓒ SBS

 
진실은 내면이 공허한 사람들 

그렇다면 이들은 과연 악의 화신일까? 이들의 심리적 기제를 '자기애적 성격'에 기인한 것으로 이해하고 나니 나는 이들이 조금은 안쓰럽게 보이기 시작했다. 작은 도전에도 몸서리치고 어떻게든 짓밟아야 직성이 풀리는 이들의 모습은 실은 '자기애적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공허한 내면을 반영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자기애적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특권을 과시하고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을 매우 중시하는 것은 '있는 그대로' 사랑받아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어릴 적 적절한 좌절을 경험하고, 이 때 작아진 나의 모습을 수용받고 존중받는 것을 경험한 사람들은 '자기애'를 과시하지 하지 않고도 나약한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애적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이런 경험이 부족하다. 좌절을 경험하지도, 부족한 모습을 수용받아보지도 못한 이들은 '잘나지 않으면' 존중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때문에 이들의 내면은 늘 공허하고 외롭다. 엄밀히 말하면 이런 공허함을 들키지 않기 위해 이들은 타인에게 군림하며 자기애를 뽐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즉, 이들은 자신이 떠받들여지지 않는다면, 존재 자체가 무너지는 불안을 경험하는 것이다. 

서진이 "내 자존심 짓밟는 거 나 정말 못참아!" 라고 외친 것은 바로 이런 불안을 드러낸 말이었다. 즉, 자존심을 짓밟힐 때 붕괴되는 듯한 불안을 경험하는 것이다. 단태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가진 힘과 부에 조금이라도 금이 가는 것만으로도 그의 뻥 뚫린 자아는 무너져 내린다. 그가 수련이 자신의 전화를 받지 않는 것만으로도 불같이 화를 내는 것은 불안한 내면을 반영한 것이었다. 이런 부모에게 정서적인 사랑을 받기보다 물질적인 충족만을 받았을 아이들 역시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사랑하지 못하고 특권을 휘두를 때만 자신의 존재감을 느낀다. 남을 짓밟지 않으면 내가 사라질 것 같은 불안을 느끼며 살아가는 이들. 어쩌면 이들이야말로 진정 가난하고 가련한 존재들인지도 모르겠다. 
 
 '펜트하우스'의 자녀들. 이들은 자기애의 화신인 부모들에게 소유물처럼 취급받는다. 정서적 허기를 지닌 이들 역시 타인을 짓밟으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든다.

'펜트하우스'의 자녀들. 이들은 자기애의 화신인 부모들에게 소유물처럼 취급받는다. 정서적 허기를 지닌 이들 역시 타인을 짓밟으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든다. ⓒ SBS

 
그렇다면 이들의 왜곡된 자기애를 바로 잡을 수 있을까? 유아기의 아이가 적절한 좌절을 통해 현실적 자기애를 만들어가는 것처럼, 이들에겐 '적절한 좌절 경험'이 꼭 필요해 보인다. 서진에게 늘 짓밟히면서도 딸을 위해 다시 꿈틀대는 윤희와 펜트하우스 주민 중 유일하게 균형 잡힌 자기애를 가지고 있는 수련. 어쩌면 윤희와 수련의 도전이 이들에게 좌절 경험이 되어 줄지도 모를 일이다.

문제는 이 좌절이 약이 되려면 펜트하우스의 주민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공허한 내면을 인정하고, 그동안 겪어온 외로움에 대해 공감받는 경험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들이 벌여온 극악무도한 일들을 떠올려 볼 때 이들이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거나, 공감받는 경험을 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과연 이들이 자신들의 공허한 내면을 공감받고, 좌절을 수용하며 '건강한 자기애'를 확립해갈 수 있을까. 아니면, 자신들을 향한 도전에 더 강렬한 '외현적 자기애'를 발산하며 자신만을 바라보다 물에 빠져 죽은 나르키소스처럼 파멸로 나아갈까. '막장'같은 이 드라마가 흥미진진한 이유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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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사람은 물론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하며 평등과 생명존중을 담은 글을 쓰고 소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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