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가 죽던 날>에서 형사 현수 역을 맡은 배우 김혜수.

영화 <내가 죽던 날>에서 형사 현수 역을 맡은 배우 김혜수. ⓒ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시나리오를 읽고 받은 느낌이 촬영 현장, 나아가 완성된 영화에까지 오롯이 담기는 건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내가 죽던 날>에 참여한 배우 김혜수에게도 그것은 드문 경험일 것이다. 개인적 아픔을 겪은 형사, 그런 그가 추적한 한 여고생 실종 사건을 그린 이 영화에 대해 김혜수는 '위로의 정서'를 강조했다. 

영화의 중반까진 형사 현수(김혜수)의 시선을 따라간다. 이혼 위기에 놓이며 자신의 인생이 부정당하는 느낌에 절망하고 있는 현수는 아픔을 딛고 일어나고자 경찰 복귀를 결심하고 상사로부터 고교생 세진(노정의) 실종 사건을 마무리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아니 자청한다. 

개인의 아픔을 승화시키다

묘하게 자신의 어둠과 비슷한 뭔가를 봤기 때문일까. 미스터리 장르의 탈을 쓴 이 영화는 정작 사건 해결보단 현수와 세진, 그리고 이들 사이의 연결 고리가 되는 제3의 인물 순천댁(이정은) 사이의 정서 흐름에 주목하며 관객들에게 또 다른 감흥을 전한다. 

"무슨 얘기기에 제목을 이렇게 지었을까. 그렇게 읽게 됐지. 자연스럽게 현수를 따라갔고, 세진의 시선이 있었고, 등장인물 간에 느껴지는 연대가 좋았다. 단지 책을 읽었을 뿐인데 미처 기대하지 않았던 위로가 느껴졌다. 내가 글로 느낀 걸 관객분들도 느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누구나 살면서 힘든 시기를 겪잖나. 저도 그 무렵 그랬고, 마치 책이 제게 이야기하는 느낌이었다. 토닥거리는 느낌이랄까.

세진과 순천댁을 연기하진 않지만 그들의 마음도 알 것 같았다. 세 사람 모두 깊은 상처가 있었다. 현수는 자신의 고통을 헤쳐나가야 했고, 순천댁은 이미 그 고통을 겪어낸 인물이었다. 많이 아팠던 사람이 과거의 날 꿰뚫어 보는 것 같이 무언의 손길을 내밀지 않나. 연기로 표현하는 건 별개지만 정말로 실제 내게 내미는 것처럼 받아들여 졌다." 


지난 언론시사회와 인터뷰 자리에서 김혜수는 이 영화를 택했을 당시 겪고 있던 아픔을 언급한 바 있다. 모친의 빚 문제 등이 그것이다. 나중에야 안 이 사실로 김혜수는 개인적으로 꽤 오랜 시간 힘든 시기를 겪었다고 전했다. 이 영화의 제목을 보고 '운명 같았다'고 느낀 이유도 바로 오롯이 그 상처를 감당해 와서가 아니었을까.

"살면서 지치게 하는 게 많잖나. 시기적으로 힘들었던 지난 몇 년이 있었지. 기사 찾아보시면 다 나온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후 힘든 시간이 지속됐지. 인생에서 그런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피해갈 수는 없는 것 같다." 

몇몇 인터뷰에서 솔직하게 말한 은퇴라는 화두 또한 김혜수가 가슴에 품고 있는 것 중 하나였다. "그 얘길 해서 연락을 많이 받았다"고 웃어 보이면서 그는 "배우로서 항상 그만하자 생각하다가도 다음 작품을 하는데, 내 연기를 화면으로 볼 때 수시로 드는 감정"이라 말했다. 

"(웃음) 제가 고민이 많다. 열심히 하긴 하는데 연기하기 전과 연기할 때마다 늘 여기까지인가 하는 얄팍한 마음이 있다. 세월이 지나면 더 진중해지는 줄 알았는데 저의 내면은 늘 요동치고 제가 주체할 수 없을 때도 있다. 그래, 그럴 수 있지 하고 그냥 내버려 둔다."

부정할 수 없는 믿음과 연대감
 
 <내가 죽던 날> 스틸컷

<내가 죽던 날> 스틸컷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그렇기에 <내가 죽던 날> 촬영 때 느낀 특별한 위로와 치유의 경험을 누구보다 관객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클 것이다. 김혜수는 실제 현장에서 배우 이정은과 촬영에 들어가기 직전 눈빛만 보고 서로 함께 손잡고 울게 됐다고 고백한 바 있다. 상처를 겪고 있는 현수, 이미 상처를 이겨내고 살아가고 있는 순천댁의 마음을 부지불식 간에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작품이 전하는 게 위로인 것이고 전 배우로서 그걸 잘 표현하고 싶었던 거다. 위로를 전하고 싶으니 영화를 봐달라는 게 아니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그랬다는 것이다. 모든 작품이 운명이겠지만 이건 제목만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보라고 쓴 건가? 책을 다 본 다음엔 나보다 더 힘든 사람에게 필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인물과 이야기에 집중하다 보니 예상치 못한 큰 위로를 받은 셈이다. 그 반대인 경우도 있을 수 있겠지. 역시 사람이 희망 같다. 운이 좋아서 제 곁에 사람이 늘 있었다. 화려했던 순간도 그랬고, 암흑의 터널에 있을 때도 사람이 있었다. 행운이고 축복이고 고마웠다. (영화 속 대사처럼) '네가 널 구해야지'라고 느끼게 해준 사람이 그 순간에 있었다. 그 당시엔 그걸 생각하거나 온전히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가 없었지만 지나고 나서 보면 지금의 제가 있는 건 그 순간에 누군가 있었기 때문이더라."

 
 영화 <내가 죽던 날>에서 형사 현수 역을 맡은 배우 김혜수.

영화 <내가 죽던 날>에서 형사 현수 역을 맡은 배우 김혜수. ⓒ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희망과 연대의 가능성을 김혜수는 강하게 믿고 있었다. "피상적인 말이지만 결과적으로 희망을 너무 거대하게 생각하지 않고 작은 공감, 그리고 사람을 향한 좋은 마음을 갖는다면 거기에 바로 있을 것"이라고 김혜수는 말했다.

"요즘 읽는 시집이 있다. 거기에 김혜자 선생님의 추천사가 있는데 정확히 지금 기억하진 못하지만 이런 내용이다. '나에겐 친구가 있습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내가 아프거나 무너지거나 놓고 싶을 때 그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제 그 친구에게 자주 연락하려 합니다. 바로 희망이라는 친구입니다'. 선생님의 추천사가 우리 영화와 같은 맥락이다. 제가 시나리오를 봤을 때 그런 느낌을 받았다." 

평소 책을 자주 읽는 김혜수는 한동안 잊고 있었던 시집을 읽기 시작했다. 더불어 음악도 찾아 듣고 있다. 마음이 각박하고 지쳐있을 때 영화를 통해 위로를 받고, 따뜻한 차와 시집을 좋은 사람과 나눠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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