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 서넛만 모이면 '군대' 얘기로 날이 샌다고 하는데 여자들 역시 '출산'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풀어내기 시작하면 '우여곡절'의 롤러코스터가 끝없이 펼쳐진다. 세상에 '거저' 아이를 낳고 기른 엄마가 어디 있으랴. 그 우여곡절 많은 출산과 육아담이 tvN의 미니 시리즈로 왔다. 바로 <산후조리원>이다. 

드라마는 회사에서는 최연소 임원, 병원에서는 최고령 산모인 42세 오현진(엄지원 분)이 재난과 같은 출산과 조난과 같은 산후조리원 적응기를 거쳐 조리원 동기들과 함께 성장해 나간다는 취지를 내세우고 있다. 
 
 산후조리원

산후조리원 ⓒ tvn

 
조난과도 같은 모유 수유

그리고 '조난'과 같은 산후조리원 적응기라는 취지에 걸맞게 2회 펼쳐진 오현진의 '수유' 에피소드는 참으로 눈물겹다. 42살의 나이임에도 무사히 아이를 출산하고 딱풀이 엄마가 된 오현진, 그런데 아이를 낳기만 하면 고생은 끝인 줄 알았는데 '조난'급의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바로 '모유 수유'다.

'출산'과 관련된 줄임말들이 난무하는 수유실에서 여유롭게 수유를 기다리던 현진. 하지만 현진의 유방은 수유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모양인 데다 첫 수유로 긴장한 탓에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엄마 젖을 물던 아이가 울음을 터트리자 수유실의 직원은 "다음 기회에"라며 엄마 현진을 밀쳐낸다. 

현진이 그리던 로망, 아이를 품에 안고 우아하게 젖을 물리는 한 폭의 그림 같은 장면은 아이를 낳아 젖을 먹여 본 엄마들이라면 '환타지'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아이를 낳으면 당연히 젖을 먹인다는 그 '만고불변'의 진리가 현실에서는 여러 가지 장애물이 있는 '허들' 경기와 같다는 것을 말이다.

현진처럼 유방의 모양이 수유에 적절한가부터 시작해서 젖이 차올라 젖몸살을 앓는가 하면, 젖의 양이 부족해서 아이가 늘 허기져해 애가 닳기도 하고, 처음 해본 수유에 젖이 너덜너덜해지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의 여정이 되기 십상이다. 

드라마는 이런 '고난'의 여정을 42살의 노산을 겪은 직장맘 현진과 전업주부 사랑이 엄마 조은정(박하선 분)의 미묘한 갈등으로 치환한다.  

이미 쌍둥이 2명을 출산한 사랑이 엄마는 쌍둥이 2명을 21개월까지 모유 수유로 키운 육아계의 '천연기념물'같은 존재로 산후조리원의 산모들에게 칭송받는다. 엄마들은 모여 '태교'와 모유 수유의 장점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찬사를 더하는데, 그런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직장맘 현진은 바쁜 직장 생활에 태교랄 것도 없이 좋아하는 좀비 영화를 보고, 시끄러운 음악을 들으며 양수가 터지도록 일을 했던 자신을 떠올린다. 

그때까지도 최연소 임원이 된 자신의 삶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찼던 현진은 자신의 젖을 거부하는 아이 딱풀이의 자지러지는 울음 앞에 속수무책이 된다.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사랑이 엄마에게 '아부'까지 마다하지 않는 산후조리원 동기들을 비웃으며 결국 '직장맘'과 '전업맘'을 둘러싼 감정 충돌을 일으켜 졸지에 산후조리원의 '왕따'가 되고 만다.

직장 맘 vs. 전업맘
 
 tvN 드라마 <산후조리원> 한 장면.

tvN 드라마 <산후조리원> 한 장면. ⓒ tvN

  
 tvN <산후조리원> 한 장면.

tvN <산후조리원> 한 장면. ⓒ tvN

 
드라마는 최연소 임원까지 올랐지만 아이를 낳고 키우는데 있어서는 '젬병'인 캐릭터로 오현진을 그려낸다. 그런 현진을 산후조리원 원장이 소환하여, 육아 9단 사랑이 엄마와의 화해를 '주문'한다.

드라마는 무엇보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데 있어서 직장맘은 무지하며, 전업 주부는 유능하다는 이분법적 논리로 '갈등'을 만들어 낸다. 물론 이 갈등은 결국 자신의 아이를 자신의 젖으로 '모유 수유'하고 싶다는 현진의 '절대 항복'으로 귀결된다.

드라마 속 산후조리원은 군대와도 같다. 처음 엄마의 젖이 낯설어 우는 아이를 냉큼 데려가 버린다. 졸지에 엄마는 수유의 도구가 된 듯 처리된다. 기계적인 수유의 시스템에 초보 엄마 현진은 무기력하게 KO패를 당하고 만다. 

그리고 직장을 다녀야 하는 엄마는 심지어 육아에 대해 무지하거나 무책임 엄마로 묘사된다. 물론 이후에 이런 오해에 대해 풀어갈 여지가 있겠지만 적어도 2화에 있어서 현진은 '죄인' 취급을 당한다. 최연소 임원까지 오른 여성으로 '일'에 있어서는 유능하지만 '엄마'로서는 무지하다는 전형을 드라마는 다시 한번 재생한다. 

결국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나보다 먼저 아이를 낳은 엄마들의 경험이 중요하고, 같이 아이를 낳고 키우는 엄마들과의 교류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었겠지만, 막상 드라마를 통해 얻은 메시지는 '저렇게까지 해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야 할까'라는 두려움이다.

뿐만 아니라, 드라마 속 남편은 앱 개발 스타트업 CEO라는 직책이 무색하게 무능력하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건 엄마와 아빠가 함께 해야 한다고 하면서 막상 드라마에서 수유의 문제는 온전히 현진만의 문제가 된다. 또, 현진과 그 주변 엄마들이 해결할 '인간 관계'가 되며, 아빠인 도윤(윤박 분)은 산후의 달라진 상황에 짜증을 내는 아내 때문에 전전긍긍하며 눈치없이 구는 걸림돌처럼 취급된다. 아빠가 바빠서 함께 할 수 없는 상황도 아니고 산후조리원에서 함께 지내고 있는데도 여전히 육아의 전적인 책임과 과업은 엄마의 몫이다. 

아이를 낳았지만, 그래서 편하게 조리하려고 했지만, 그 과정 자체가 다시 한번 '조난'이 되고 마는 산후조리원의 에피소드는 엄마들 사이의 이분법적인 갈등을 통해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을 그려낸다. 그런데 어쩐지 드라마를 보고나면 아이를 낳고 키우기보다는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만든다. 과연 <산후조리원>은 앞으로의 방영을 통해 '무자식 상팔자'의 깨달음을 '감동적인 육아담'으로 역전시킬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산후조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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