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우승 세리머니가 끝나고 라이언 킹 이동국이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삼십 년 넘게 축구 선수 아들을 뒷바라지 해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다는 말씀 올립니다. 아내를 비롯해서 다섯 꼬맹이들 태어날 때부터 아빠가 축구 선수의 삶을 사는 것을 이해해줘서 고맙고 아빠가 많은 시간을 함께 못 보낸 것에 대해 미안하고. 너무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해 주고 싶습니다. 오늘 운동장에 들어오면서부터 20번이라는 유니폼을 보면서 계속 울컥했고 더 이상 20번을 볼 수 없다는 점에서 많이 감격스럽고. 20번 번호가 너무 많이 보여서 감사드립니다."

눈시울 뜨거워진 은퇴식이 열린 전주성에는 이동국을 상징하는 번호 20번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등장했고 게임이 끝나고도 오랫동안 걸려있었다.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하여 입장할 수 있는 관중 비율이 25%로 제한되었고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린 날이었지만 놀랍게도 전주성에는 1만251명의 많은 축구 팬들이 찾아왔다. 코로나 시즌 최다 관중 역사가 만들어진 날이다.

조세 모라이스 감독이 이끌고 있는 전북 현대가 1일 오후 3시 전주성에서 벌어진 2020 K리그 1 파이널 A 대구 FC와의 최종(27) 라운드 홈 게임에서 2-0으로 완승을 거두고 또다시 우승을 차지했다. 2017년부터 4년 연속 우승 기록이며 팀 통산 여덟 번째 K리그 우승 역사를 쓴 것이다.

아기 사자 '조규성' 2골 활약

같은 시각에 울산에서 열리는 '울산 현대 - 광주 FC' 게임 결과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리그 마지막 게임이었지만 전북은 비겨도 우승보다는 주장 이동국을 중심에 두고 정공법을 택했다. 이동국은 태어난지 41년 186일이나 된 노장 골잡이였지만 마지막 게임을 교체 없이 끝까지 뛰는 능력자였다. K리그 소속 팀(포항 스틸러스-성남 FC-전북 현대) 게임은 물론, 연령대별 국가대표 경력까지 포함하여 그는 845게임을 뛰며 무려 344골을 넣은 희대의 골잡이였다. K리그 기록만으로도 548게임 228골이라는 놀라운 발자취를 남긴 이동국이었다.

라이언 킹의 은퇴 게임이자 전북의 리그 우승 결정전은 전반전에 모든 결과가 나왔다. 게임 시작 후 13분만에 전북 미드필더 쿠니모토가 감각적으로 넘겨준 공을 받은 이동국이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오른발 발리슛으로 골문을 여는 듯했지만 대구 FC 골키퍼 최영은의 정면으로 날아가 잡히고 말았다. 

이 게임이 레전드에게는 마지막 게임이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빛낼 수 있는 기회였다. 그 주인공은 바로 전북 현대의 떠오르는 골잡이 조규성이었다. 26분, 최철순이 왼쪽 측면으로 달려와 부드럽게 띄워준 크로스를 받아 조규성이 반대쪽에서 솟구쳐 올라 헤더 골을 터뜨렸다. 조규성은 40분에도 동료 날개 공격수 바로우의 왼발 중거리슛이 대구 FC 수비수 몸에 맞고 흐른 것을 잡아 침착하게 오른발 슛을 적중시켰다. 그 자리가 맏형 이동국이 떠나는 자리였기 때문에 그 중요한 역할을 자신이 이어받겠다는 아기 사자의 멋진 작별 인사로 보였다.

이동국은 조규성의 오른발 슛이 이루어질 때 옆으로 움직이며 득점 길을 열어주었다. 공격수가 동료들과 어울려 골을 만들고 승리를 이끌어내기 위해 어떤 보조적 역할까지 필요한가를 자신의 마지막 게임에서도 실천한 셈이다. 

떠나는 이동국이 남긴 잊지 못할 순간들

그렇게 전북 현대는 이동국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K리그 원 4년 연속 우승 위업을 이뤘다. 승점 싸움으로는 대부분의 기간을 울산 현대에게 밀렸지만 세 차례의 만남을 모두 승리로 장식한 덕분에 리그 마지막 뒤집기 우승 드라마를 쓸 수 있었던 것이다. 

전북 현대는 그 어느 때보다 감격적인 우승 세리머니를 펼쳤고 곧바로 레전드 이동국의 은퇴식을 성대하게 열어주었다. 전주시의 명예시민증을 받은 것은 물론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가족과 팬들에게 남기는 인사말 중간에는 뜨거운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동국이 전북 유니폼을 입을 때에는 의심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축구 인생 내리막 길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이동국은 누구보다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해내며 '라이언 킹'이라는 수식어를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그가 터뜨리는 골들마다 웬만한 공격수들이 넘볼 수 없는 기술적 완성도가 돋보였고 K리그와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의 역사가 바뀌었다. 

2016년 11월 19일 전주성에서 열린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 1차전(전북 현대 2-1 알 아인)은 이동국을 빼고 설명할 수가 없다. 스타팅 멤버가 아니었지만 이동국은 교체 선수로 들어가 5분만에 레오나르도가 넣은 동점골을 어시스트했다. 76분에는 키다리 골잡이 김신욱을 겨냥하여 자로 잰 듯한 크로스를 올려줘 페널티킥 역전 결승골을 얻어내는데 일조했다. 그 덕분에 그 다음 주 어웨이 게임을 1-1로 끝내며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릴 수 있었다. AFC 챔피언스리그 최다 골 기록 보유자는 아직 이동국(37골)이다.

이동국은 2018년 시즌 시작부터 놀라운 골 감각을 맘껏 자랑했다. 그 해 2월 13일 전주성에서 열린 AFC 챔피언스리그 E조 가시와 레이솔(일본)과의 홈 게임에서도 후반전 교체 선수 이동국은 멀티 골 큰 활약을 펼쳤다. 55분에 이재성의 코너킥 도움으로 헤더 골을 터뜨린 것은 물론 84분에 홍정호의 롱 킥을 받아 상대 팀 수비수들의 오프 사이드 함정을 허물고 아름다운 오른발 감아차기로 골문 오른쪽 톱 코너를 꿰뚫어 3-2 펠레 스코어 대역전 드라마를 완성시켰다.

2018년 3.1절 시작한 울산 현대와의 K리그 1 개막 게임에서도 이동국은 61분에 교체 선수로 등장한 뒤 단 1분만에 이재성의 왼쪽 코너킥을 받아서 멋진 왼발 발리슛을 꽂아넣었다. '발리슛 장인'이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명품 골이었다. 전북 팬들이 특별히 그를 아낄 수밖에 없는 명장면들이 이밖에도 수두룩하다.

또한 이동국은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모든 메이저 대회를 뛴 유일한 선수로 남았다. 1998년 19세 이하 AFC 챔피언십부터 시작하여 FIFA(국제축구연맹) 20세 이하 월드컵, 아시안게임, 올림픽, AFC 아시안컵은 물론 월드컵 2회 출전까지 모든 축구 선수들이 부러워할 만한 발자국을 남겼고 프로 선수로서 자기 관리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교과서로 남게 되었다. 4년 연속 우승 트로피를 든 라이언 킹이 가장 빛나는 자리에서 이처럼 아름답게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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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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