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고 이성규 감독으로 인해 시작된 춘천다큐영화제가 2020년 7회를 맞아 SF영화제로 방향을 전환했다. 1회와 7회 포스터

2014년 고 이성규 감독으로 인해 시작된 춘천다큐영화제가 2020년 7회를 맞아 SF영화제로 방향을 전환했다. 1회와 7회 포스터 ⓒ 춘천영화제

  
"한국 관객들은 외국 예술영화만 사랑하지 말고 한국의 독립예술영화도 사랑해 달라."
 
지난 2013년 세상을 떠난 춘천 출신 고 이성규 감독의 마지막 유언은 독립영화를 도와달라는 간절한 부탁이었다. 다큐멘터리 영화들을 여러 편 제작했던 이성규 감독은 생과 사의 기로에선 순간에도 "저예산 예술독립영화들의 르네상스가 오도록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그리고 며칠 뒤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했다. 감독의 뜻은 이듬해인 2014년 1주기를 맞아 선후배 등 동료들에 의해 '1회 춘천다큐멘터리영화제' 개최로 이어졌다. 이성규 감독의 다큐멘터리 정신을 기리고 그 뜻을 잇기 위해 영화제를 시작한 것이다.
 
2017년까지는 다큐멘터리 중심으로 이어가다가 2018년 5회 때부터 독립영화로 영역을 확장했던 춘천영화제가 7회를 맞는 올해부터 'SF영화'라는 새로운 옷을 하나 더 걸쳤다. 

다큐-독립영화-SF
 
지난 15일 개막한 춘천영화제가 주목을 받은 건 이런 방향성 전환 때문이었다. 예년처럼 4일간의 행사를 마무리하고 18일 폐막했는데,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가 1단계로 완화된 직후 열려 개막식부터 모든 상영이 정상적으로 치러졌다는 점에서 운이 좋은 경우였다.
 
코로나19 이후 규모가 작은 영화제들은 온라인 상영이 여의치 않다 보니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그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춘천영화제는 온라인 상영도 개최하며 조금 여유를 보였다. 
 
 17일 토요일 춘천영화제를 찾은 관객들

17일 토요일 춘천영화제를 찾은 관객들 ⓒ 성하훈

 
지난 16일과 17일 춘천영화제가 열리고 있던 메가박스 남춘천 상영관은 적지 않은 관객들로 북적였다. 무료상영으로 진행되면서 화제작들 중에는 매진된 작품도 생겨났고, 대부분의 상영에 많은 관객들이 들어찼다. 물론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좌석 수가 1회당 50석 정도로 크게 감소한 이유도 있었으나, 티켓을 나눠주는 극장 로비는 코로나19로 한산한 일반 극장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특히 16일에는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가 상영돼 관심을 모았다. 오랜만의 상영에 장준환 감독은 "코로나 시기에 관객들과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반갑다"며 관객의 질문에 친절하게 답변했다. 2003년에 개봉한 <지구를 지켜라!>는 한국에서 제작된 SF 영화 중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가 추진 중이기도 하다.
 
17일 상영된 정진영 감독의 <사라진 시간>도 비슷했다. 유명배우가 연출한 영화인 데다, SF적인 서사를 품고 있는 작품이어서 상영작으로 선정됐다. 정진영 감독은 "원래 생각했던 제목은 '힘을 주는 말'이었다"며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매일매일 힘을 주는 말'이란 책을 보고 생각한 제목이었다고 뒷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개막일을 제외하면 3일간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관객과의 대화에는 감독과 배우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서울과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인 듯 국내 영화제 프로그래머 등 영화인들도 많았는데, 영화제를 둘러본 최정화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대표는 "전체적인 분위기가 좋다"면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사라진 시간> 영화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있는 정진영 감독

<사라진 시간> 영화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있는 정진영 감독 ⓒ 춘천영화제

 
코로나19 불안감을 영화제로 위안
 
춘천영화제가 방향 전환을 선택한 이유는 내실을 다지면서 새롭게 정체성을 확고히 하겠다는 의지가 작용했다. 지금까지는 영화인이 아닌 지역 출신 인사가 영화제를 이끌어왔지만, 올해는 공모를 통해 집행위원장과 프로그래머를 새로 선정한 했는데 이것이 변화의 단초가 됐다. 
 
이안 집행위원장은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와 이주민영화제 집행위원, 독립예술영화관 영화공간주안 관장을 지냈고 다큐멘터리 영화 프로듀서 등으로 활동했다.
 
이 집행위원장은 춘천영화제의 방향 전환에 대해 "코로나19와 환경, 기술의 변화로 미래에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며 "영화제를 통해 위안을 전하길 원했다"고 말했다. SF영화제로서 주제를 안전한 미래(Safe & Futuristic)로 정하고 미래의 희망인 청소년 영화에 비중을 둔 것도 그런 이유다.
 
또한 "새로운 축제로서 영화제를 특성화해 춘천이라는 지역을 브랜드로 만들겠다"면서 7회를 맞이했지만 새롭게 1회를 시작한다는 각오를 나타냈다. 비슷한 성격의 영화제들이 적지 않은 시점에서 SF장르의 영화에 초점을 맞춘 것은 앞으로 지켜봐야겠지만 일단 긍정적인 전환으로 평가된다.
 
다만 방향 전환이 안정적으로 정착되기 위해선 3~5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집행위원장과 프로그래머의 연속성이 중요해 보인다. 몇몇 영화제들 경우 집행위원장과 프로그래머를 단기계약직으로 채용해 안정되지 못하고 흐지부지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백승기 감독의 <인천스텔라>

백승기 감독의 <인천스텔라> ⓒ 백승기

 
한편 춘천영화제는 경쟁부문 수상작으로 봄내상에 김아영 감독 <다공성 계곡2:트릭스터 플롯>, 춘천의 시선상(장편) 백승기 감독 <인천스텔라>, 춘천의 시선상(단편) 민현기 감독<사는게 먼지> 춘천YE상 이민섭 감독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 과학창의재단 관객상 박윤진 감독 <내언니전지현과 나> 등을 선정했다.
 
백승기 감독의 <인천스텔라>는 부천영화제에서 배급지원상을 받은 데 이어 춘천영화제에서도 수상했는데, 관객들로부터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C급 영화'라는 신세계를 개척한 감독이 독립SF 영화의 히어로로 부상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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